[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54편 (54/79)
그리고 신기수사 백리호가 초조한 모습으로 남궁수를 지켜보고 있 었다. 문득 죽은 듯 누워 있던 남궁수의 몸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으음……." 힘겨운 신음성과 함께 그의 두 눈이 천천히 뜨였다. 순간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신기수사 백리호가 반색의 탄성을 발했 다. "구…… 군사(軍師)!" 남궁수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백…… 백리당주." 그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예전보다 몇 배는 더 심한 것 같았다. "내…… 내가 얼마 동안 정신을 잃었소?" 백리호가 다급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꼬박 만 하루였소이다." 남궁수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러나 침조차 이미 메말라 있었다. "백리당주…… 지금 전황은 어떻소?" 백리호는 안색을 굳혔다. "눈을 뜨고 못 볼 지경이외다. 양쪽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소 이다." "그. 그렇게까지……?" 순간 남궁수는 창백한 안색을 급변시키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백리호는 황급히 남궁수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군사! 아직 움직먹선 아니됩니다." 그러나 남궁수는 침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번 일은 너무 중대한 만큼 내가…… 반드시 일어 나야 하오." 그는 고집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근심스럽게 그를 지켜보는 귀수천의 팍생에게 시선을 던졌다. "곽의원…… 앞으로 내 목숨이……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소?" 귀수천의 곽생은 뜻밖의 질문에 대답할 길을 찾지 못했다. 그는 그 저 당혹한 표정만을 보일 뿐이었다. "후후……." 남궁수는 창백한 웃음을 흘렸다. "나 역시 의도(醫道)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소. 후후…… 내 생명 은 길어야 한 달 정도…… 아니. 어쩌면…… 그것도 안될지 모르지… …." 남궁수의 입가에는 처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군사……." 귀수천의 곽생은 무어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남궁수는 침상의 이불을 걷어냈다. 그리고는 침상애서 내려서려 했 다. 그러나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괴로운 기침이 터지며 시뻘건 핏 덩이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쿨룩! 쿨룩……!" 신기수사 백리호가 대경하억 급급히 그를 부축했다. "군사! 아직 움직일 수 없소이다." "배. 백리당주…… 나…… 나를 좀……." 백리호는 남궁수를 부축하여 자리에 눕혔다. 그는 침상 위에 누운 채 한동안 괴로운 기침을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좀 흐르자 기침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남궁수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배, 백리당주. 내 할 말이…… 있소이다." 백리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듣고 있으니 어서 말씀하시오." 남궁수는 천천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신기수라는 별호대로…… 대단한 기재요." 엉뚱한 말이었다. 백리호는 부지불식간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군사. 과, 과찬의 말씀을……." 남궁수는 백리호의 겸양에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결코 과찬은 아니오. 당신은 나 남궁수화 하후당주 때문 에 여지껏 진정한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오." "남궁군사……." "당신의 해박한 지식은 결코 나 못지 않소." 남궁수의 표정에는 한 점 가식도 들어 있지 않았다. 백리호는 남궁수가 극찬을 해오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 다. 남궁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백리당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있소." 남궁수의 목소리가 진증하게 변했다. 백리호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무언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짐작이 갔다. 남궁수가 의미심장한 눈빚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백리당주…… 어제 성주님의 행동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느끼지 않으셨소?" 백리호는 흠칫했다. 그러나 곧 안색을 굳히며 고개를 덕였다. "불초 역시 그렇게 생각했소이다." 남궁수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후…… 그러셨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모두 성주님의 연극이었 소." 백리호는 어리등절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수는 진중한 신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것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오." "모종의…… 이유라니요?" 남궁수의 두 눈에서 은은한 기광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오존…… 바로 오존 중 한 명이 우리 만금성 내부에 있기 때문이 오." 순간 백리호는 대경하여 외쳤다. "오, 오존이 본성 내부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때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귀수천의 곽생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 다. 그러나 너무도 순간적인 변화이기에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빠르기 로 사라지고 말았다. 남궁수는 음성을 낮추어 백리호를 불렀다. "백리당주…… 귀를…… 가까이…… 쿨룩! 쿨룩!" 백리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남궁수의 입술에 자신의 귀를 밀착시켰 다. 남궁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백리호의 안색이 급변을 일으켰다. 잠시 후 백리호는 남궁수의 입술에외 귀를 떼엇다. 그러더니 귀수 천의 곽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곽의원! 잠시 밖에 나가 주시겠소?" 귀수천의 곽생은 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곧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당주의 영을 받듭니다." 그가 허리를 숙이는 그 순간이었다, 휙--! 백리호의 좌수가 비쾌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의 좌수는 시뻘건 멎을 뿜으며 허리 숙인 곽생의 등을 그대로 쑤 셔 버렸다. "크악!" 곽생은 약상자를 움켜쥐며 헛바람 빠지는 비명을 터뜨렸다. 너무도 기습적인 살수이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으으……." 곽생은 약상자를 움켜런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파지직! 고통 때문인지 곽생이 움켜쥔 약상자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본 백리호가 홈칫하여 외쳤다. "곽생! 이제 보니 무공을 지니고 있었구나!" 곽생은 본래 무공에 대해 문외한이라 알려져 있었다. "으……." 곽생은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남궁수를 향해 원독의 신음성을 터뜨렸다. "나, 남궁수…… 이미…… 알고 있었구나." 힘겹게 누워 있던 남궁수는 신형을 일으키며 차갑게 말했다. "오존이 본성에 잠입시킨 첩자가 네놈일 줄은 기실 나도 정확히 알 지 못했다." "그, 그런데……?" 곽생은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나마 강렬한 호기심이 그의 생명력을 지탱시켜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간 네놈이 나에게 쓴 약재가 문제였다. 네놈은 나를 일찍 죽이 기 위해 약에 조금씩 독을 풀었지," 남궁수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본래 창백했던 안색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내 비록 진맥까지 할 능력이야 없지만, 적어도 독은 알아볼 수 있 음을 너는 알아야 했다." 곽생의 입가에 처절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그랬었구나." 그러나 남궁수의 안색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거듭 차갑게 말올 이었따. "내가 그 동안 침상에 누워 있었던 것은 아픈 탓도 있었지만, 무엇 보다도 오존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가 면을 쓸 필요가 없다." 그의 음성은 미약했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다니……." 곽생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뜨거운 선혈을 내뿜으며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쿨룩…… 쿨룩!" 남궁수의 빕에서 다시금 격렬한 기침이 새어 나왔다. 곽생의 죽음 을 화인하자 긴장의 일부가 해소된 탓이었다. "배, 백리당주! 나를 부축해…… 밖으로……." 백리호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군사…… 몸이 불편한데……." 남궁수는 힘겹게 손을 내저었다. "괜찮소. 무엇보다…… 밖의 일이 급하오." 백리호는 남궁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남궁수를 부축하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신형은 곧 방안에서 사라졌다. 거듭되는 음모와 음모. 그리고 이제 제 삼의 음모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한 천기서생 남궁수가 드디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과연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41장 아수마궁이 패퇴하다 장장 일천 초의 대혈투! 마군자 금소천과 아수마궁주 야율노격과의 역사적인 대접전은 어느 덧 일천 초식을 엄기고 있었다. 방원 수십 장이 초토화되었다. 회오리치는 대접전의 돌풍이 무림사의 숨가쁜 한 장을 장식하고 있 었다. 금소천의 적혈룡과 야율노격의 천절삼인도! 하나같이 천년을 내려온 천고기병들이 유감없이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했다. 적혈룡이 개천의 가공할 혈광을 토하면. 천절삼인도의 세 가닥 눈 부신 도광은 땅을 뒤집어엊었다. 진정 직접 보지 않은 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혈전이었다. 막상막하! 금소천과 야율노격의 대혈전은 그야말로 용쟁호투(龍爭虎鬪)라는 말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황혼에서부터 시작된 대혈전은 너무도 길고 지루했다. 어느덧 동천 으로부터 희뿌연 새벽이 밀려들고 있었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야율노격! 그는 중원에 나온 이래 이토록 고전한 적이 없었다. 아니. 평생을 두고 이런 고전은 처음이었다. '금소천, 저 자의 절공은 도저히 땔 수 없단 말인가?' 난생 처음 절망이 밀려들었다. 아무리 혼신의 모든 공세를 펼쳐도 금소천은 태산인 양 끄덕도 하지 않았다. '결코…… 태가 꽤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할 수 없을 뿐이다.' 그는 그떻게 단정 지었다. 지금의 자신들은 누구도 상대를 거꾸러 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자신의 판단을 뒤엎어야 했다. '혹시 그 비공(秘功)을 시전해 본다면……?' 야율노격은 입술을 깨물며 두 눈에 기광을 띠었다. 비밀스러운 무공! 그는 아직 펼치지 않고 있는 자신의 무공을 그렇게 칭했따. '좋아!' 야율노격은 새로운 결심올 굳혔다. 이어 그는 금소천을 향해 자신 감 넘치는 대갈성을 터뜨렸다. "금성주. 조심하시오!" 말과 동시에 그는 수중의 천절삼인도를 치켜들어 전신의 모든 내력 을 주입시켰다. 우우우…… 웅! 세 개의 도인(刀刃)들이 심장 헤집는 괴성을 터뜨렸다. 금소천의 눈동자가 기이한 빛을 발했다. 그도 무언가 심상치않은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그러나 두려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그는 어떠한 일 에도 두려움을 가질 줄 몰랐다. 그는 눈썹을 꿈틀하며 수중의 적혈룡을 끌어올렸다. "하하하…… 본좌는 항시 조심하고 있으니, 걱정 말고 어디 마음껏 펼쳐 보시오!" 호탕하게 웃고 있는 금소천과 달리 야을노격은 표정을 냉엄하게 굳 히고 있었다. 그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절삼인도의 끝을 움직이기 시작 했다. 동시에 양발을 기모하게 교차시켰다. 급방이라도 무언가 대격 변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었다. 그러나 야율노격은 끝내 자신의 숨겨진 비공을 사용할 수가 없었 다. 돌연하게 들린 거대한 폭음 때문이었다. 꽝! 콰콰쾅! 꽈르르르-- 릉! 그야말로 천지분열의 엄청난 폭음이었다. "으음……." 야율노격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삼켰다.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충격파가 전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악--!" "케엑!" 처절무비한 비명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불기둥이 허공 수백 장까지 말려 올랐다. 야율노격은 다급하게 사방을 폭음이 인 곳을 쳐다보았다. "이, 이럴 수가……." 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확대되었다. 글자 그대로 목불인견의 참극이 그의 눈앞에 껄쳐져 있었다. 혈육난비(血肉亂飛)! 아수마궁 수백 고수들은 피걸레 조각들이 되어 허공 중에 가루되어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형체라도 유지한 자들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온전치는 못했다. 손이든 발이든, 어느 한 구석 이 본래의 몸뚱이를 벗어나 있었다. "으으……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야율노격은 전신을 휘청거렸다. 애당초 이러한 일이 가능하리라고 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문득 흔절하기 일보 직전인 그의 뇌리에 벼락같이 한 사람의 이름 이 떠올랐다. "뇌화진천 갈천후!" 천하제일 화기명인인 뇌화진천 갈천후. 이런 종류의 일을 해낼 사람은 오직 그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 어찌 그 자를 잊고 있었던가?" 그는 전신을 휘청거렸다. 자책과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지독한 통증처 럼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때였다. "와아아아--!" 돌연 만금성 무인들이 일제히 기쁨에 찬 함성을 토했다. 야율노격은 황급히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 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불안감이 닥쳐왔다. "남궁수……?" 그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부릅 치켜져 올라갔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대로 천기서생 남궁수의 모습이 보였 다. 그의 곁에는 부축을 하고 있는 신기수사 백리호의 모습도 보였 다. 이른바 만금성의 최고 수뇌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군사--!" 와룡선생 하후주가 환호성을 터뜨리며 남궁수를 맞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 만금성의 세 두뇌가 한 곳에 모인 것이었다. 남궁수는 환호성으로 반기고 있는 고수들을 돌아보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만금성의 형제들이여! 싸움은 곧 끝날 것이오. 전력을 다해 적들 을 밀어붙이시오." 그의 음성은 결코 우렁차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금성인들에게 있어서는 천둥 소리보다 더욱 커다랗게 들 리고 있었다. 남궁수의 등장은 그들에게 있어서 천군의 원군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 "아수마궁을 완전히 괴멸시키자!" 만금성 고수들은 사기충전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아수마궁인들을 몰 아붙이기 시작했다. 야율노격은 대경하여 발악적으로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전열을 가다듬어라!"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채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또 다른 폭음성이 터져 나온 탓이었다. 쾅--! 콰콰콰쾅! 천하의 모든 것을 일시에 박살내 버리듯 가공무비의 대폭발이 터졌 다. 장소는 만금성의 후원 쪽이었다. 거대한 불기등이 수백 장 하늘에 솟구쳐 오르더니, 시뻘컨 혓바닥 을 날름거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야율노격은 홈칫하여 안색을 급변시켰다. '저, 저곳은 총감(總監) 노극찰(魯極札)이 사천여 명의 궁도들을 이끌고 기습시킨 곳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약속된 기습 시간은 진시다. 지금은 진시…… 그렇다면 저곳에도 갈천후의 폭약이……?' 불안했다.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가는 듯한 불안감이었다. 그는 발작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손속을 멈춘 금소천을 향해 서였다. 금소천은 담담한 눈빚으로 야율노려을 지켜보고 잇었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느냐고 천연덕스럽게 되묻는 것 같았다. 야율노격은 금소천의 그 담담한 신색이 더욱 불안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절대 아니야! 총감 노극찰은 현명한 자다. 결코 암수따위 에 걸리 리가 없어.' 그는 결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항변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매정했다. 꽝--! 꽈르르릉! 또 다시 폭발음이 일었다. 야율노격의 고개가 버릇처럼 돌아갔다. 이번에는 서쪽에서 천변지복의 대폭음이 일며 엄청난 불기둥이 하 늘을 꿰뚫었다. '서쪽! 천병령(天兵領), 함미굴(含米屈)이 일천 명을 이끌고 기습 을 하기로 된 곳!' 야율노격의 안색이 참혹하리만큼 일그러졌다. 이제는 상황이 너무 도 명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수중의 천절삼인도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 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신음성처럼 전면의 금소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금성주! 어찌된 일인지 일러줄 수 있겠소?" 그의 음성은 현격하게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금소천은 적혈룡을 가볍게 흔들며 대답했다. "벽력신화분(霹靂神火粉) 일만 근이 동시에 폭발하는 소리요. 벽력 신화분 일만 근이면 주위 백 장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이 외다." 금소천의 음성은 지극히 담담했다. 그러나 그것은 참흑하기까지 한 확신이었다. "으음……." 야율노격은 이제 모든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 한 자신의 짐작이 모두 맞아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금소천이 침착하게 말문을 잇고 있었다. "벽력신화분은 모두 세 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누구든지 기습을 감 행하면…… 일시에 폭발하도록 되어 있었소이다." "으음……." 야율노격은 둥줄기가 후들거리는 신음성을 그치지 않았다. '그, 그렇다면 결국…….' 절망이라는 글자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노극찰, 함미굴, 포유파(浦幽巴)…… 그들 세 명과 일만의 제자들 이 모두 전멸을 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믿을 수도 없었다. 단 세 번의 대폭발! 그것이 무려 일만의 생명을 먼지같이 날려 버린 것이었다. '실패다. 이것은 완전한 실패야.' 참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보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구, 궁주님……." 귀에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율노격은 핏발 어린 눈길을 돌렸다. 호극천이었다, 천행으로 그는 대폭발에서 살아남은 몇 명 중의 하나였다. 물론 전 신의 신색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온몸에 붉은 화상 자욱이 여기 저기 박혀 있었다. "호극천……." 야율노격은 텅 비어 버린 시선으로 잠시 그를 옹시했다. 호극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야율노격의 입술이 힘겹게 벌어졌다. "제자들을…… 퇴각시키시_=_." 순간 호극천의 눈동자에 격렬한 불길이 일었다. 아수마궁 제일 두뇌인 그는 태어난 이래 가장 비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두 놈! 남궁수와 하후주… .. 그 두 놈이 나 호극천을 완전한 바 보로 만들었다.' 지혜로 가득 찼던 자신의 머릿속이 안개 속인 듯 몽롱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도 얕보았다. 저들의 가공할 능력을…….' 그는 참담한 느낌으로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느릿하게 신형을 돌렸다. 이어 주위를 바라보며 절규하듯이 부르짖었다. "아수마궁의 형제들이여! 모두…… 퇴각해라!"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허망합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퇴각 명령! 아수마궁의 고수들에게 있어서 그 말은 가슴이 메어지도록 통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흘러가 버린 강물은 도저히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야율노격은 입술을 꽉 다문 채 금소천을 응시했다. 금소천의 시선은 담담했다. 야율노격의 지글지글 불타는 시선과 금소천의 무섭도록 담담한 시 선이 한데 뒤엉켰다. "금성주! 이번은 본 궁주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겠소. 그러나 아 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오. 금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야율노격은 평생 처음 느끼는 패자의 기분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만금성에서 사라져갔다. 야율노격의 뒤를 이어 아수마궁 제자들도 일제히 퇴각을 시작했다. 만금성의 누구도 그들을 가로막지 않았다. 금소천은 멀어지는 야율노격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의 등뒤로 한 사람의 꼬습이 투영되었다. 금소천은 내심 한소리 나직한 중얼거림을 흘렸다, '아사…….' * * * 금소천과 야율노격의 격전이 막을 내릴 즈음 또 다른 곳에서는 맹 렬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살막 막주 소리탑. 그가 살막의 삼천 고수들을 지휘하여 맹렬한 혈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월랑이라는 이름의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돕고 있기에. 그는 더욱 용기백배한 혈전을 치를 수 있었다. 소리탑을 상대하고 있는 만금성의 고수들은 천도왕 여풍과 낙남신 검 감사립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천도왕 여풍은 소리탑을 맞이하여 격전을 치르고 있었 다. 그들의 싸움은 이미 오백 초 이상 전개되고 있었다. 전반적인 형세는 막상막하였다. 그러나 초식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미미하게나마 소리탑이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챙! 채앵--! 연신 불꽃이 튀며 소리탑과 천도왕 여풍은 찰나지간에 수합의 공세 를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웅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월랑이었다. 월랑이 한켠에 저서 그들의 대접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아…… 가가……." 그녀의 입에서는 불안한 탄식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돌연 월랑위 둥뒤에서 싸늘한 호통성이 터졌다. "살막의 계집년! 죽어랏!" 목소리와 함께 둥뒤로 막대한 검경() 이 벼락치듯 엄습해 들었다. 순간 월랑은 흠칫하여 재빨리 신형을 회전시켰다. 동시에 벼락같이 쌍장을 휘둘렀다. 펑--! 굉음과 함께 월랑은 뒤로 삼 보를 밀려났다. 월랑이 채 신형을 추스르기도 전에, 기습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다 시 한 번 이어졌다. "제법 한 수 하는 계집년이었군." 상대는 조소와 함께 계속 검을 휘둘러왔다. 윌랑도 자세를 가다듬으며 공세에 대비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기습자가 아연 경악성 을 발하며 주춤 공세를 멈추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마치 소리를 지르는 듯한 대경성이 터졌다. 기습자. 그는 바로 일랑이었던 것이다. "너, 너는 월랑……?" 일랑은 너무도 큰 대경에 전신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놀란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