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大 天 王 (사대천왕) - 41편 (41/44)
그래서 드디어 그는 복수를 결행키로 결심했다. 그는 단목후의 북방행에 자원하여 함께 길을 떠났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단목후를 독살시키고 그의 시체를 음양흡열마갱에 던져 버린 것이었다. 형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없앤 단목뇌황, 그는 그후 형인 단목후로 변장하여 자부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면천존 행세를 하며 미려군과 부부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실로 너무도 감쪽같이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어린 실혼여제 단목혜린만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인가 밤에 잠이 깨었을 때 어머니 미려군이 단목뇌황과 욕정을 불사르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 후, 실혼여제는 미려군과 단목뇌황을 증오하며 오직 무공에만 전념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가슴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서서히 죽어 버렸다. 모든 것에서 무감정하고 회의적인 마음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아버지 단목후를 죽인 원수 단목뇌황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단목뇌황은 아버지의 원수임과 동시에 미려군의 진정한 연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복수를 시도하지 않았다. 한 사내의 그릇된 욕정, 그것이 천 오백 년 전 악마성황의 때와 같이 또다시 엄청난 비극을 부른 것이었다. * * * 자부문이 자리한 십만대산의 산록 끝---- 그곳에는 하나의 깊은 계곡이 있었다. ----호로마곡. 마치 호로병같이 생긴 그 계곡은 자부문의 뇌옥으로 쓰이고 있었다. 자부문 내부의 죄인이나 무림의 질서를 어지럽힌 마인들, 그들은 그 호로마곡에 자리한 뇌옥에 감금당해 죽을 때까지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했다. 황혼 무렵---- 짙붉은 황혼이 뚝뚝 핏물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붉고 선렬한 빛의 황혼이었다. 문득, 그 황혼빛을 받으며 호로마곡의 입구에 실혼여제의 우울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의 옆구리, 한 명의 사내가 늘어진 채 안겨 있었다. 막붕비, 바로 그였다. 문득, "나는...... 어렸을 때 그 짐승 같은 두 사람을 피해 늘 이 주위에 와서 놀며 자랐어요!" 사박...... 실혼여제는 호로마곡의 입구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마곡에서 두 명의 죄수를 만났어요. 그들은 그때 단목뇌황에 의해 심지를 제압당해 가고 있었어요!" "천일...... 제왕과 철사패왕이었겠군요!" 막붕비는 실신한 체 하며 실혼여제의 말에 대꾸했다. 실혼여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그 두 분은 미혼사법과 약물에 의해 의지를 잃어가고 있었는데 때때로 정신이 돌아왔어요. 그 분들은 정신이 들면 그때마다 내게 무공구결을 일러 주었어요!" "아......!" 막붕비는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그제서야 그는 실혼여제가 이제 갓 서른이 된 나이에 고금무적의 경지에 이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실혼여제---- 그녀는 사대천왕 중 삼천왕의 절기를 한 몸에 지닌 상태였다. 자부천존, 태양성황 그리고 철사대제! 저 위대한 사대천왕 중의 삼인(三人). 그들의 초인적 절기가 실혼여제의 천년제일의 재질에 더해져 하나의 무공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실혼여제가 고금무적의 경지에 이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도 했다. 그 후, 철사패왕 담철형과 천일제왕 하륜, 그들은 완전히 의지가 상실되어 단목뇌황의 명령만 듣는 무서운 살인 기계로 변하고 말았다. 얼마 전 막붕비를 습격한 천일제왕이 광인으로 보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느 덧,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 실혼여제와 막붕비는 호로마곡의 입구 철책 앞에 이르고 있었다. 제29장 魔谷으로 부터의 脫出 "여제(女帝), 호로마곡에 무슨 볼 일이 계십니까?" 호로마곡에 다가서자 한 명의 노인이 음침하게 말하며 실혼여제를 막아섰다. -지살황(地煞皇)! 이것이 그 자의 이름이었다. 자부문의 천(天), 지(地), 현(玄), 황(黃), 네 명의 호법 중 둘째가 그 자였다. 그는 만겁마가의 마가삼태상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무서운 고수자였다. 지살황은 호로마곡의 곡주(谷主)였다.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단 두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바로 실혼여제와 뇌황이었다. "죄수를 한 명...... 데리고 왔어요!" 실혼여제는 우울하게 말하며 막붕비를 지살황에게 넘겨 주었다. "죄수입니까?" 지살황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막붕비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지살황이건만 실혼여제 앞에서는 항상 몸이 굳어지곤 했다. "그는...... 중죄인이예요. 영제(影帝)를 죽이고 빙마부에 난입하여 천년마녀를 파괴했어요." "예엣?" 실혼여제의 말에 지살황의 안색이 흑빛이 되었다. 그도 천년마녀, 천마서시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실혼여제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은 연공 중이시라 우선 이 자를 이곳에 가두어 두었다가 내일 아침 그 분이 직접 심문하시도록 하세요." "명을...... 받습니다!" 지살황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한...... 한데 이 자의 이름은......?" 지살황은 돌아가려는 실혼여제에게 급히 물었다. "지옥...... 혈황(地獄血皇)이라더군요!" 자박! 자박! 실혼여제는 천천히 호로마곡에서 멀어지며 대답했다. "지옥...... 혈황!" 지살황은 신음하며 그 이름을 되뇌였다. 이어 그는 급히 철책 안쪽을 향해 외쳤다. "제일급의 중죄인이다. 특별실을 준비하랏!" * * * 호로마곡 가장 안쪽에 자리한 동굴, 동굴 깊은 곳에는 햇빛 한 올 들지 않은 어두운 뇌옥이 있었다. 사면 벽이 온통 오금철의 쇠창살로 이루어진 밀실, 그곳은 중죄인들을 가두는 특별뇌옥이었다. 호로마곡 중에서도 최악의 뇌옥이 바로 이곳이었다. "......!" 막붕비는 가늘게 실눈을 떴다. 그는 지금 지살황 옆구리에 끼어 특별뇌옥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각 뇌옥마다에 몇 명씩 죄수들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때는 무림을 떨어울리던 거효대마(巨梟大魔)들...... 지금 그들은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허공을 무의미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막붕비는 한눈에 그들이 몽혼마약에 중독되어 있음을 알아보았다. 단목뇌황----! 그는 마약과 미혼사법으로 그 거효대마들을 그렇게 마음까지 죽인 후에 그들을 살아 있는 강시로 만들어 써먹고 있는 것이다. (없다!) 뇌옥 앞으로 지나가며 막붕비는 소리없이 신음을 흘렸다. 그는 한 여인을 구하기 위해 이 호로마곡에 들어온 것이다. -혈관음 빙화정! 만겁마종 패무극의 양녀이며 장차 만겁마가의 여주인이 될 여인, 패무극은 무언 중에 그녀를 막붕비에게 부탁했었다. 막붕비는 그래서 혈관음을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로 인해 제왕성의 안주인인 비취여제가 불행해 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이제 잊어야만 했다. 모든 죄는 단목뇌황에게 있는 것이다. 한데, 그 혈관음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철컹! 하나의 쇠창살 문이 요란하게 열려졌다. "천면(千面)! 네 동무가 왔다." 쿵! 지살황은 거칠게 말하며 막붕비를 뇌옥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그 자는 이내 몸을 돌려 뇌옥 밖으로 걸어 나갔다. "......!" 막붕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뇌옥 안을 돌아보았다. 그 뇌옥 안에는 막붕비 말고도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한 명 괴인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 자는 끔찍하게도 얼굴에서 가죽이 몽땅 벗겨진 인물이었다. "켈켈...... 어서 오게! 그 동안 혼자 있어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네." 파면인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말이 웃는 것이지 썩어 문드러진 그 자의 안면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막붕비는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선배는...... 고명이 어찌 되십니까?" 막붕비는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혈관음을 무작정 찾기보다는 그 자에게 묻는 쪽이 빠른 것 같아서였다. "핫하...... 노부가 누구냐고? 노부는...... 천면신투(千面神偸)라고 불리던 어르신네다." 파면인이 두 눈을 희번덕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막붕비의 안색이 홱 변했다. "천...... 면신투! 귀하가 환우십강 중의 바로 그......" 파면인이 냉큼 말을 받았다. "캇캇...... 그렇다! 노부가 바로 밤의 제왕(帝王) 천면신투다!" "......!" 막붕비는 해연히 놀라 자세히 그 인물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다른 죄수들과 달리 그의 눈에는 몽혼마약에 중독된 증상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헛소리를 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파면인은 한 가지 불문지보를 갖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마약에 중독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배님께서는...... 어쩌다 이곳에 갇히게 되셨습니까?" 막붕비는 신음하며 물었다. 이에 천면신투는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부는 한놈 효웅에게 두 장의 인피면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놈은 사례는 커녕 노부의 얼굴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이곳에 가두는 것으로 보답했다." 막붕비의 눈이 번쩍 신광을 토했다. "그 두 사람의 인피면구는 만겁마종 패무극과 자면천존 단목후의 것이 아닙니까?" "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천면신투가 대경하여 놀라며 물었다. -천면신투! 투도술과 역용술의 천재인 밤의 제왕! 그는 이십 년 전과 십 년 전에 각기 하나씩의 인피면구를 한 명 효웅에게 만들어 주었었다. 그 대가로 그는 얼굴을 잃고 이곳에 갇힌 것이다.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역용재간이 아직도 그 효웅에게 매우 긴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피면구를 가져간 자는...... 뇌황(雷皇)이란 자가 아닙니까?" 막붕비가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천면신투는 부르르 몸을 떨며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말...... 할 수 없다! 그것을 말하면 노부의 자식들이 다친다!" "......!" 막붕비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천면신투의 자식들은 뇌황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자칫 천면신투가 비밀을 발설하면 그들은 그 즉시 해침을 당할 것이다. 천면신투는 보기와 달리 정(情)이 많은 사람이고 그것을 아는 뇌황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의 입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너 어린 아이는 무슨 죄로 이곳에 갇히게 되었느냐?" 천면신투는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한 명 여자분을 찾으러 왔습니다." 막붕비는 기회다 싶어 말했다. "여자를 구하러 왔다고? 그럼 너는 네발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이냐? 이 지옥 같은 곳에......?" 천면신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막붕비를 보았다. 막붕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강호에서 혈관음 빙화정이라고 불렸습니다. 혈관음교의 제이교주였지요!" "그 계집은...... 네 연인이냐?" 천면신투는 조심스럽게 막붕비를 보며 물었다. 막붕비는 슬쩍 얼굴을 붉혔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만 남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구하러 왔습니다!" "그래?" 천면신투의 눈에 한 가닥 안도의 기색이 감돌았다. "이곳에 갇힌 죄수들은 마약에 중독되어 때로 무서운 흉성을 터뜨리곤 한다. 그들의 흉성을 제압하는 데는...... 색욕이 최고지!" 천면신투는 씁쓸하게 말했다. 막붕비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천면신투가 하는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선배도...... 그녀를 안았습니까?" 막붕비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천면신투는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부에게는 그런 염복이 아직은 없었네." "으음......!" 막붕비의 안색이 이지러졌다. 혈관음이 만겁마가에서 뇌황을 비롯한 다른 무리들에게 어떤 짓을 당했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알고 있던 한 여인이 그같이 불행한 일을 또 당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막붕비가 찌르는 듯한 눈빛으로 묻자 천면신투는 어깨를 으쓱했다. "맨 끝의 뇌옥에 다른 색노들과 함께 갇혀 있을 걸세." 막붕비는 벌떡 일어섰다. 우두둑......! 그 순간 막붕비의 몸에서 뼈마디가 엇갈리는 소리가 나며 막혀 있던 혈도가 풀렸다. 천마서시를 안아 양극마강이 또 한 단계 높아진 지금 그의 내공으로 막힌 혈도를 푸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발로 걸어들어 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군!" 콰득! 놀라는 천면신투를 뒤로 하고 막붕비는 쇠창살로 다가가 쇠창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 안에서 오금한철의 쇠창살은 수수깡같이 부러져 나갔다. 막붕비는 말없이 그 사이로 걸어나갔다. 마지막 뇌옥, 그곳에는 십여 명의 여인들이 갇혀 있었다.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여인들, 그녀들은 색노(色奴)라고 불리는 여죄수들로 몽혼마약에 중독된 죄수들의 욕정을 풀 대상으로 이곳에 갇혀 있었다. 그 여인들 중 한 명 백발의 미녀가 벽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주 기품있는 이십대 후반의 미인, 그녀는 바로 혈관음 빙화정이었다. 탐스럽고 풍만하던 그녀의 몸은 지금 초췌하기 이를 데 없게 변하여 보기에도 애처로왔다. 그녀의 마음은 죽은 지 오래고 몸도 함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 문득 그녀는 하나의 그림자가 자신을 가로막아 섬을 느끼며 시선을 들었다. 그녀의 흐릿한 시선 속에 한 명 청년의 얼굴이 들어왔다. 연민과 근심으로 가득한 얼굴...... 빙화정은 그 얼굴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빙...... 소저! 이제 되었소." 청년은 연민의 한숨을 쉬며 빙화정을 꼬옥 끌어안았다. 빙화정은 멍한 표정으로 청년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까닭모를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커다란 눈에서 배어흘러 청년의 옷깃을 적셨다. 그 가슴이 무척 넓고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녀는 수혈이 짚여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뇌...... 황! 네 만행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루도록 해주겠다.) 막붕비는 빙화정을 안고 뇌옥 밖을 향해 걸어갔다. 천면신투의 뇌옥 앞에서 그는 잠시 멈추어섰다.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천면신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노부는 노부의 목숨보다 자식들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네!" "음!" 막붕비는 탄식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잘가게, 젊은 친구!) 천면신투는 사라지는 막붕비의 뒷모습을 보며 돌아누웠다. 곧 굉장한 소란이 벌어져 밤새 잠을 설치게 할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직은 조용할 때 잠을 자도록 하려고 그는 눈을 감았다. * * * 밀실. 츠으...... 츠---- 읏! 흡혈마황검에서 일어나는 핏빛 마검기로 석실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석실의 중앙, "으음......!" 단목뇌황----! 그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좌정해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열 겹의 핏빛 장막이 일고 있는데 그것은 십극천강이라는 것으로 천년내공을 지닌 자만이 발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잉...... 지잉! 뇌황은 흡혈마황검을 안고 있으며 그것에서는 끝없이 무서운 마성이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뇌황의 의지가 흡혈마황검의 마성에 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문득, 데---- 에엥! 멀리서 한 소리 섬뜩한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 크지 않으나 그 종소리에는 심장을 갈가리 후벼파는 듯한 공포스러운 마력이 실려 있었다. 번---- 쩍! 뇌황은 부르르 떨며 번쩍 눈을 떴다. "악...... 마혈종의 증폭마음이다!" 뇌황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두 눈은 이미 피를 칠한 듯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흡혈마황검의 마성은 이미 그의 대뇌에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악마혈종의 소리가 들리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뇌황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때였다. "지...... 지존, 보고드립니다!" 석실 문 밖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천, 지, 현, 황 네 호법 중 세째인 현무노조의 음성이었다. "호로마곡에...... 악마혈종을 지닌 자가 나타나 악마혈종으로 백여 명의 고수들을 격살하고 북방으로 달아나고 있습니다!" 현무노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어라고! 호로마곡이 깨졌다고?" 콰직! 뇌황은 앉아 있던 석좌를 박살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를 놀라게 하는 것은 악마혈종의 출현이 아니라 호로마곡이 깨졌다는 사실이었다. 호로마곡에는 그를 파멸시킬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죄수가 둘이나 있었다. 천면신투와 혈관음 빙화정이 그들이었고 호로마곡이 깨졌음은 그 중죄인들의 신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뇌황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바보...... 같은 놈들!" 뇌황의 입에서 짐승 같은 폭갈이 터졌다. 콰득! 뇌황은 미친 듯이 흡혈마황검으로 석실의 석문을 그어 버렸다. 콰---- 쾅! "크---- 악!" 석문이 박살나며 그 뒤에서 현무노조의 처참한 비명이 터졌다. 지---- 잉! 지---- 잉! 흡혈마황검은 허공을 격한 채 현무노조의 내공과 정혈을 빨아 먹으며 미친 듯한 울림을 울려 내었다. "흐흐......!" 뚜벅! 뇌황은 흡혈마황검을 통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현무노조의 내공에 입맛을 다시며 문쪽으로 다가갔다. "으으...... 지존! 당...... 당신이 나를......" 산산이 부서진 석문 뒤에서 한 명 노인이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피부가 검은 흑포의 노인! 그는 바로 현무노조였는데 급격히 몸이 마른 나뭇가지같이 말라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흡혈마황검에 정혈을 빨리고 죽은 다른 시신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 이미 당신은...... 마인(魔人)이...... 되었군!" 툭......! 현무노조는 공포 서린 어조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캇캇...... 혈종지주! 곧 네놈도 이렇게 만들어 주마!" 현무노조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뇌황은 미친 듯이 웃어제꼈다. 그의 웃음에는 이미 인성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악마성황, 그의 저주는 천 오백 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명의 악귀를 만들어 낸 것이다. * * * -음양계(陰陽界)!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를 불문에서는 음양계라고 부른다. 한 번 건너면 다시 볼 수 없는 곳, 이승과 저승이 함께 공존한다고 하여 음양계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 음양계가 십만대산에도 있었다. 십만대산의 북동쪽에 자리한 하나의 단애를 음양계라 부른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대지(大地)의 갈라진 틈바귀! 그 아래에는 사시사철 짙은 운무와 독장이 뒤덮여 있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경(二更) 무렵----! "으---- 음! 역시 무리였는가?" 스---- 읏! 음양계의 단애를 따라 한 명의 청년이 달려왔다. 그 청년은 등에 한 명의 여인을 업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핏빛이 흐르는 종이 하나 들려 있었다. 청년은 바로 막붕비였다. 화드득! 막붕비는 창백한 안색으로 음양계 위에 몸을 세웠다. 그는 호로마곡을 빠져 나오면서 악마혈황탄의 수법으로 한 차례 악마혈종을 울려낸 상태였다. 악마혈종에서 일어난 증폭음강은 순간적으로 지살황을 비롯한 호로마곡의 일백 명 간수들을 즉사시켰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막붕비도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본래 악마혈종을 울리는 데는 막대한 내공이 소모된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미 탈진하여 쓰러졌을 것이다. 막붕비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양극마강의 영효 때문이었다. -양심초극마공! 그것은 마음을 둘로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공까지도 둘로 나눌 수 있었다. 막붕비는 반으로 나눈 내공으로 악마혈종을 울린 것이고, 지금 그의 몸에는 평소의 절반 밖에 안되는 내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단 위경은 벗어났다!" 막붕비는 심호흡을 하여 숨결을 가다듬었다.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츠으...... 츠으......! 한밤중이건만 음양계의 저 아래에서 뭉클뭉클 독장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여기는 도대체 무어라고 부르는 곳이지?" 막붕비는 검미를 모으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흐흣! 궁금한가, 지옥혈황?" 한 가닥 음산한 음성이 막붕비의 귓전을 울렸다. (뇌황!) 막붕비는 안색이 홱 변하며 음성이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 츠으...... 츠으......! 금방 혈관에서 솟구친 선혈같이 시뻘건 피무리가 음양계의 단애를 따라 다가서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피무리 속에는 한 명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이글거리는 핏빛의 눈에 오른팔이 없는 독비괴인...... 그는 바로 뇌황이었다. "마...... 인이 되었군!" 막붕비는 신음하며 비칠 물러섰다. 뇌황의 두 눈이 흡사 열화태세의 그것같이 핏빛의 광기(狂氣)로 번뜩이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크큽! 혈종지주가 네놈이었다니...... 놀랍구나!" 뇌황은 막붕비의 십장 앞에 서며 음산하게 말했다. 그는 핏빛의 눈으로 음양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여기는...... 음양계(陰陽界)라고 한다!" "음...... 양계!" 막붕비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흐흐...... 한 번 떨어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음양계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