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21편 (21/21)
재클린은 나와 이야기하는데 누가 엿듣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누구도 엿듣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건 그녀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위장이었지만요. 나는 언젠가 시몬과 재클린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젠 어쩔 수 없어, 해치울 수 밖에.'라고 말했지요. 그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 내게 수면제를 먹였고, 재클린도 고의적으로 롭슨 양을 붙들어 놓고 수다를 떤 겁니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소란을 피운 것도 놀라운 착상이었죠. 재클린은 시몬을 쏘았다고 말했고 롭슨과 팬숍도 그렇게 말했지요. 또 시몬도 다리에 총을 맞았으니 누가 의심을 품겠습니까? 시몬과 재클린의 알리바이는 완벽했지요. 물론 시몬은 총상을 입었지만 그건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루이스에게 들키고 말았던 겁니다. 그녀는 협박하며 돈을 요구했지요. 결국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인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코넬리아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도일 씨가 루이스를 죽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녀를 살해한 건 도일이 아니라 재클린입니다. 시몬은 재클린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 후, 둘만 있을 기회를 마련하고 그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재클린은 그곳에서 메스를 훔쳐 루이스를 살해하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메스를 갖다 두었지요. 그리고 재빨리 점심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오터번 부인이 그녀가 하녀의 방에 들어가는 걸 보았습니다. 오터번 부인은 그 사실을 시몬에게 알리려고 급히 왔던 거지요. 시몬은 옆 방의 재클린에게 들리도록 일부러 큰소리를 쳤지요. 재클린은 그 소리를 듣고 쏜살같이 달려가 총을 꺼내 문 앞에서 그녀가 범인의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재클린의 사격 솜씨는 정확했습니다. 그녀는 총을 쏘고 재빨리 자기 방으로 돌아갔지요. 얼른 침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 대령이 물었다. "도일이 쏜 총알은 어디로 간 거죠?" "그야 탁자에 박혔겠죠. 탁자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건 시몬 도일이 총알을 파낸 구멍일 겁니다. 그리고 총알을 숨겨 두어서 두 발만 발사한 것처럼 꾸몄죠." 코넬리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서워요, 어쩌면 그런 일을‥‥" 포와로는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이 에르큘 포와로를 미처 생각 못했어." 잠시 후, 포와로를 말을 꺼냈다. "베스너 박사님, 이제 당신 환자와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29 그날 밤 늦게 포와로는 재클린의 선실을 노크했다. 포와로는 방으로 들어가 재클린의 옆 의자에 앉았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재클린은 포와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포와로 씨, 모두 끝났군요. 당신은 과연 명탐정입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으니 우리가 사실을 부인하면 어떻게 되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의 설명으로는 배심원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모두 말하지 않았으면 시몬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당황한 나머지 모두 인정한 겁니다." "당신은 끝까지 냉정하군요." "네, 그래요. 이제 저에게 신경쓰지 마세요. 지금도 저를 걱정하십니까?" "네,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감상에 빠져도 헛된 일이죠. 살인도 별게 아니더군요. 그동안 친절히 대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언젠가 저에게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하셨죠?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그야 모르죠.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요." "그때 그만 둘 생각이었으면 그만 둘 수도 있었는데‥‥ 시몬에게도 그런 제의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러나‥‥ 제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어요?" "그야 당신이 원한다면요." "저는 시몬을 사랑했고 시몬도 저를 사랑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사랑만으로도 만족했고 시몬은 그렇지 않았죠." "네, 그는 언제나 돈이 필요했고 원했어요. 그는 승마와 요트를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서 즐길 수가 없었어요. 시몬은 아주 단순한 사람이랍니다. 모든 걸 가지고 싶어했어요. 그러나 돈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려고는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약혼은 했지만 결혼은 요원했지요. 그런데 또 그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공금을 횡령했다가 그 사실을 들키고 말았어요." 그때 포와로는 언뜻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 듯 했으나 입은 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궁핍해졌어요. 나는 그때 리넷과 그녀의 새 별장이 떠올랐어요. 나는 곧장 리넷에게 달려가 시몬에게 일자리를 주면 우리는 형편이 좋아질 거라고 말했어요. 리넷은 선선히 승낙하면 시몬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때쯤, 당신이 셰마탕트 레스토랑에서 우리를 보았을 겁니다. 우리는 여유가 없었지만 특별히 자축 파티를 하려고 그 식당에 갔지요. 저는 지금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나는 리넷이 시몬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그녀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도 추호도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요. 그녀는 친구의 약혼자를 조금도 주저치 않고 차지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시몬은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답니다. 그는 리넷이 오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결코 그녀를 사랑하거나 원하지 않았지요. 시몬은 잘난 척 하는 여자를 제일 싫어한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의 돈에 매력을 갖게 되었지요. 저도 그걸 깨닫고 그에게 리넷과 결혼하라고 말했어요. 시몬은 그 말을 듣고는 그녀가 부자라 할지라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어요. 시몬은 돈은 자신이 가져야지, 아내가 부자인 것은 싫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만 사랑한다고 했답니다. 시몬이 한 번은, 운이 좋으면 리넷과 결혼하고 1년 가량 지나 그녀가 죽으면 자기가 모든 재산을 상속할지 모른다는 말을 했어요. 그 이후로 시몬은 그런 말을 자주 했어요. 리넷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죠. 저는 그런 끔찍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후부터 시몬은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지요. 어느 날, 나는 그가 비소를 연구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그것에 대해 추궁하자 그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번이 큰 돈을 만질 마지막 기회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시몬이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걸 알고 걱정스러웠어요. 그는 마음 먹은 일은 하고 마는 성격이니까요. 그는 너무 단순해서 치밀하게 그런 일을 해 낼 수도 없답니다. 그는 리넷에게 비소를 먹여 죽게 하면 의사는 위염으로 사망했다는 검시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늘 낙관적이었죠. 그래서 저는 이 일에 공범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됐답니다." 그녀는 간단히 사실대로 말했다. 포와로는 재클린이 돈 때문에 공범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몬을 사랑했기 때문에 공범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시몬을 사랑했기 때문에 모험을 한 것이다. "저는 머리를 짜내서 두 사람의 알리바이를 맞추었어요. 그러다가 우리 서로가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면 혐의를 벗어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시몬을 증오하는 건 쉬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떠오른 게 리넷이 살해되면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의심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일이 잘못되면 저만 체포될 생각이었어요. 그러자 시몬이 제 걱정을 해 주더군요. 그러나 저는 잠든 리넷을 죽일 수는 없었어요. 그녀와 정면으로 싸우는 건 원하지만요‥‥ 우리는 계획을 세밀히 세우고 행동했지요. 그런데 시몬이 피로 'J'라고 벽에다 글씨를 쓴 거예요. 어처구니없는 짓이지만 그건 그에게 어울리는 행동이었어요." "그렇죠, 루이스가 밤에 잠을 자지 않은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니까‥‥ 그 다음에는 어땠죠?" "제 자신도 너무 끔찍해서 믿어지지 않아요. 루이스가 시몬에게 암시를 주었기 때문에 그가 저를 보고 싶다고 한 거였어요. 우리 두 사람만 있게 되자 그는 루이스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제가 할 일을 알려주었는데도 저는 전혀 두렵지 않더군요. 그러나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그 하녀만 아니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주머니를 털어 그녀에게 갔어요. 그리고 돈을 셀 때 재빨리 그녀를 해치웠어요. 그 일은 너무도 손쉽더군요. 그러나 계속 악운이 따라다녔어요. 오터번 부인이 저를 보고 당신과 레이스 대령을 만나 그 사실을 털어놓고 있었지요. 저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쏜살같이 움직여 그녀를 살해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내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겠죠. 그 뒤에 당신이 제 방으로 오셨죠. 그때 저는 너무 괴로웠어요. 시몬이 죽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당신도 시몬이 죽길 바라지 않나요?" "네, 그게 시몬을 위한 길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재클린." "포와로 씨,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운명적으로 거친 세상을 살 사람이니까요. 우리 계획이 성공했다면 저는 행복해졌겠지요.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감수해야만 한답니다. 포와로 씨, 저는 목을 매지도 극약을 먹지도 않을 겁니다. 급사와 함께 있지 않아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시몬은 제가 있어야 편해요." 30 배는 새벽이 되어 쉘랄에 도착했다. 레이스 대령과 포와로는 기분 나쁠 정도로 괴이한 바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대령이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의 소임을 완수했군요. 리체티를 첫 번째로 상륙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놈을 체포해서 다행입니다. 참, 도일을 운반할 들것을 준비해야겠군요. 그런 놈은 교수형에 처해야 해요. 냉혹한 인간이죠, 재클린이 가엾지만‥‥" "사람은 결코 모든 걸 정당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재클린과 같이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그때 코넬리아가 다가와 말했다. "이제야 도착했군요."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는 밴 슈일러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때 퍼거슨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코넬리아, 이건 사실이 아니지? 어서 그렇다고 말해 봐요." "분명한 사실이에요. 나는 베스너 박사님과 결혼할 거예요." "당신은 왜 그 늙은이와 결혼하겠다는 거지?" "저는 그분을 사랑해요. 그리고 환자와 병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나는 그분과 멋지게 살 거예요." "나보다 그 늙은이가 좋단 말이오." "물론이죠, 당신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분은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늙지도 않았어요." 코넬리아가 돌아서서 가 버리자 퍼거슨은 포와로에게 구원을 요청하듯 말했다. "저 말이 진심일까요?" "물론이죠." "저런 여자는 처음이에요.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고 리체티가 두 명의 기관사에게 둘러싸여 땅에 내렸다. 잠시 후, 시몬 도일이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그는 공포에 질린 듯 했다. 그 뒤에는 재클린이 여급사와 함께 내려갔다. 그녀는 시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 시몬!" 시몬이 어린애 같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재키, 내가 일을 망쳤지? 당황해서 실토한 거야. 미안해, 재키. 내 탓이야, 모두가." "괜찮아요, 시몬. 어리석은 승부를 하다가 패한 거예요." 재클린은 비켜 섰고, 들것을 운반하는 사람이 손잡이를 잡았다. 그녀는 구두 끈을 맨 후, 스타킹을 만지더니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는 몸을 일으켰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뱃전을 울렸다. 시몬 도일은 약간 몸을 떨었으나 곧 그 움직임이 멎어 버렸다. 재클린은 여유있는 태도로 포와로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레이스 대령이 그녀에게 달려가려고 할 때, 그녀는 장난감같이 생긴 그 작은 총을 자기 가슴에 대고 쏘았다. 그녀가 천천히 배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포와로의 팔을 살며시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당신은 짐작했었죠?"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재클린은 한 쌍의 권총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로잘리의 핸드백에서 권총이 발견되었을 때 알았습니다. 그녀는 수색하리라고 짐작하고 그녀의 핸드백에 넣은 거죠. 나중에 그녀의 방에 가서 루즈를 비교해 보면서 다시 그 총을 가져간 겁니다." "포와로 씨, 재클린이 이런 결과를 택하기를 바랐나요?" "그녀는 혼자 죽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덕분에 시몬은 편안히 죽은 거죠." 곧이어 하녀 루이스와 오터번 부인의 시체가 운반되고 끝으로 리넷 도일의 시체가 운반되었다. 널리 이름을 떨치던 아름다운 리넷 리지웨이의 죽음이 온 세계에 알려졌다. 조지 우드 경은 런던 클럽에서, 스텐데일 록포드는 뉴욕에서, 조안나 사우드우드는 스위스에서 신문을 보고 리넷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앨튼언더워드의 술집에서도 화제에 올랐다. 그리고 버나비의 깡마른 친구도 한 마디 했다. "어쩐지 그녀는 모든 것을 혼자 소유한 것 같았어." 그 말에 버나비가 말했다. "맞아, 그녀에게는 돈이나 용모도 전혀 도움이 안 되었어." 잠시 후, 두 사람은 그녀의 이야기는 모두 잊고 장애물 경마 대회에서 누가 우승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룩소르에서 퍼거슨이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니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