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16편 (16/21)
나는 식사가 끝날 때쯤 도일 부인의 진주 목걸이가 없어졌다고 발표할 작정입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짐을 조사할 계획입니다." 포와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좋습니다. 목걸이를 훔친 사람도 아직 그걸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아무 말도 없이 조사한다면 물 속에 빠뜨릴 시간도 없을 겁니다." 레이스 대령은 종이 몇 장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수사 진행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요. 메모를 해 두면 기억도 잘 나고 복잡하지도 않아서 편리하지요." "그것 참 좋은 방법입니다. 매사에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하지요." 레이스 대령은 종이에 무엇인가를 잔뜩 써내려 갔다. 그는 다 쓴 후 종이를 포와로에게 건넸다. "혹시 당신 의견과 다른 게 있나요?" 레이스 대령이 건네 준 종이 위에는 큼직하게 <리넷 도일 살인사건>이라고 씌어 있었다. 살아있는 도일 부인을 제일 끝에 본 사람은 하녀 루이스 버제트로, 그녀는 11시 30분쯤 부인을 보았다. 코넬리아 롭슨, 제임스 팬숍, 시몬 도일, 재클린은 11시 30분에서 12시 20분 간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범죄는 그 이후에 저질러졌다. 그 이유는 범행에 사용된 무기는 재클린의 총으로, 그 권총은 그때까지 재클린의 핸드백 속에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권총이 범행에 쓰였는지는 검시 결과가 나와야 단정지을 수 있다고 본다. <사건 경과에 대한 추정> 살인범은 전망실에서 재클린이 시몬 도일을 쏜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권총이 소파 밑에 들어간 것을 알고, 전망실에 사람이 한 명도 없자 권총을 몰래 훔쳤다. 범인은 재클린이 혐의를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코넬리아 롭슨은 팬숍이 전망실로 총을 가지러 가기 전까지 권총을 훔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바워즈 양도 롭슨과 똑같다. 베스너 박사 역시 그런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팬숍은 혐의를 둘 수 있다. 그는 권총을 찾고서도 없다고 했을 수도 있었다. 그 외의 승객들도 모두 10분 안에 권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범인의 살인 동기> 앤드류 페닝턴 - 리넷의 재산을 도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실을 입증할 심증은 있으나 물적 증거가 불충분하다. 신전에서 바위를 떨어뜨린 사람이 바로 앤드류라면 그는 분명히 절호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번 사건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사건은 아니라고 본다. 어젯밤에 재클린이 시몬을 쏜 충격적인 사건으로 범인은 적절한 기회를 잡은 것이다. 페닝턴이 범인이 아니라는 견해 - 그가 범인이었다면 재클린에게 불리한 증거가 되는 권총을 물 속에 던져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플릿우드 - 그는 복수심 때문에 살인을 할 수도 있다. 리넷이 자기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며 원망하고 있다. 어젯밤 장면을 목격하고 권총을 입수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재클린에게 혐의를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권총이 손쉬운 무기이므로 그걸 훔쳤는지 모른다. 그러면 왜 기관사 플릿우드는 벽에다 'J'라고 썼을까? 주의사항 - 권총을 쌌던 손수건은 상류층에서 쓰는 게 아니라 플릿우드 같은 류의 사람 이 쓰는 값싼 것이었다. 로잘리 오터번 - 밴 슈일러의 증언을 믿어야 하는지 로잘리 양의 말을 믿어야 할지 확신이 안 선다. 주의사항 - 로잘리 오터번은 리넷을 살해할 동기가 있을까? 그녀는 리넷의 미모와 부 때문에 미워는 했지만 살해할 동기는 뚜렷하지 않다. 만일 로잘리가 범인이라면 다른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잘리와 리넷은 전에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인물들이다. 밴 슈일러 - 권총을 쌌던 벨벳 목도리는 밴 슈일러의 것이다. 그녀는 어젯밤 전망실에서 그 목도리를 본 후 잃어버렸다고 한다. 어제 저녁 계속 목도리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고 한다. 범인은 어떻게 벨벳 목도리를 수중에 넣었을까? 어쩌면 일찍 목도리를 숨겼는지도 모른다. 그럼 왜 일찍 그것을 감추었을까? 재클린이 시몬 도일을 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는데, 아니 범인은 소파 밑의 권총을 훔칠 때 그 목도리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럼 왜 밴 슈일러가 찾았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면 밴 슈일러가 목도리를 잃어버리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럼 그녀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녀가 또 로잘리 오터번이 물 속에 무엇인가를 빠뜨렸다고 말한 것은 거짓일까? 만약 그녀가 리넷을 살해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살해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 외의 가능성> 강도에 의한 살인 -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진주 목걸이가 없어졌으며 리넷은 어젯밤에도 그 목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그 목걸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리지웨이 집안에 원한이 있는 사람 - 가능하지만 증거가 없다. 이 배에는 요주의 인물이 타고 있다. 이 둘을 관련지을 수 있을까? 그러면 리넷 도일이 요주의 인물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결론 - 이 배의 승객을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살인할 동기가 있는 사람과 알리바이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또다른 부류는 전혀 혐의가 없는 사람들이다. <살인 동기가 있는 사람> 앤드류 페닝턴 플릿우드 로잘리 오터번 밴 슈일러 루이스 버제트(절도?) 퍼거슨(정치적?) <살인 동기가 없는 사람> 앨러튼 부인과 팀 앨러튼 코넬리아 롭슨 바워즈 제임스 팬숍 베스너 박사 리체티 포와로는 다 읽은 후 종이를 대령에게 건넸다. "아주 정확합니다." "이 내용과 달리 생각하시는 건 없나요?" "네, 없습니다." "특별히 더 첨가하실 것은요?" "나는 스스로 '그 권총을 왜 물 속에 던졌나?'하고 자문자답해 보았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네, 지금은 별다른 게 없군요. 그 문제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기 전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게 즉 단서지요. 당신이 기록한 것에는 그 문제의 해답은 없더군요." "혼란스럽기만 하지요." 포와로는 말을 마치고 권총을 쌌던 벨벳 목도리를 탁자에 펴놓고 불에 탄 구멍과 그을린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총기에 대해서 잘 알지요? 목도리로 감고 쏜다고 소리가 정말 들리지 않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으로 감싸도 소리는 들리지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들은 총기류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여자들은 전혀 모르지요." "네, 그럴 겁니다." 레이스 대령은 진주로 장식된 손잡이가 달린 권총을 가볍게 손으로 튕기면서 한 마디 했다. "이 권총은 아주 작아서 그다지 소리가 크지 않을 겁니다. 네, 그저 펑 소리만 약하게 날 거예요. 주위에 다른 소리가 나면 그 총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죠." "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포와로는 권총을 쌌던 분홍색 수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남자 손수건입니다. 신사가 가질 만한 물건은 못되고, 한 3펜스 정도 될 거 같은데요." "그 손수건은 플릿우드에게나 어울릴 것 같군요." "네, 그럴 거에요. 앤드류 페닝턴은 고급 손수건을 쓰더군요." 이번에는 레이스 대령이 은근히 물었다. "퍼거슨은 어떤 손수건을 쓰죠?" "아, 속임수를 쓸 수도 있어요. 만일 그렇다면 퍼거슨은 큰 비단 손수건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 손수건은 장갑 대신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권총을 싼 것입니다." "아, 그럼 분홍색 손수건이 이 사건의 단서가 되겠군요." "그런데, 그 색은 처녀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데요." 포와로는 다시 벨벳 목도리에 난 총탄 구명을 살펴보았다. "이상하군,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야‥‥" 레이스 대령이 궁금한지 물었다. "뭐가 이상합니까?" 포와로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죽은 도일 부인만 가여워요. 평화롭게 누워 있는데‥‥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당신은 그녀의 모습이 생각납니까?" 포와로의 갑작스런 변화에 레이스 대령이 싱글싱글 웃었다. "당신은 내게 무엇인지 말하려는 게 아닙니까?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영 짐작이 안 가는군요." 18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스 대령이 큰소리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웨이터 한 명이 들어와 포와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실은 시몬 도일 씨가 뵙고 싶다고 하던데요." "알았소, 곧 가지." 포와로는 곧 그 방을 나와 도일이 머물고 있는 갑판 위의 베스너 박사 방으로 갔다. 시몬은 상기된 얼굴로 베개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포와로 씨,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뵙자고 한 것입니다." "무슨 부탁이죠?" 시몬의 얼굴이 더 새빨개졌다. "다름이 아니라 재키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요. 내가 그녀에게 만나달라고 하면 그녀가 기분 나쁠까요? 누워있자니 그 가엾은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너무 몹쓸 짓을 했어요. 그리고‥‥" 시몬은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포와로는 그의 얼굴을 흥미있게 살폈다. "그럼, 내가 재클린 양을 데려오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포와로 씨." 포와로는 재클린을 찾아다니다가 전망실 구석에 쪼그린 채 앉아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녀의 무릎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책을 읽지는 않았다. "도일 씨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재클린 드벨포는 뜻밖의 제의에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당황한 탓인지 얼굴이 붉어졌다가 이내 창백해졌다. "아니, 시몬이요? 정말 시몬이 저를 보자고 했어요?" 재클린은 믿어지지 않는지 반문을 하며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재클린 양, 함께 가시겠습니까?" 재클린은 얌전한 어린아이처럼 포와로의 뒤를 따랐다. 포와로는 시몬이 있는 베스너 박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 재클린 양이 왔습니다." 재클린은 잠시 머뭇거리며 포와로의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잠자코 시몬을 응시했다. 시몬도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재키, 안녕.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마워.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러니까‥‥" 그때 재클린이 그의 말을 막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 나는 리넷을 살해하지 않았어요. 믿어 주세요. 당신도 내가 그녀를 해치지 않은 걸 알죠? 어젯밤에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당신을 믿어. 나는 당신이 아무래도 그 일을 걱정할까 봐‥‥" "시몬, 저는‥‥" "재키는 어제 흥분 상태였어. 물론 그간 너무 괴로워서 그랬을 거야. 당연한 일이야." "시몬, 저는 당신을 죽일 뻔 했어요." "아냐, 장난감 같은 것으론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당신은 어쩜 앞으로 그 다리 때문에 걷지 못할지도 몰라요." "재키, 그만 울어. 애스완에 도착하면 곧 엑스레이를 찍고 탄환을 꺼낸다고 했어. 그러면 좋아질 거야." 재클린은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녀는 달려가 시몬이 누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오열을 터뜨렸다. 그러자 시몬이 약간 어색하게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는 가만히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포와로는 한숨을 쉬며 그 방을 나왔다. 그가 걸으려 할 때,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시몬, 정말 미안해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쏘았을까요?" 밖에서는 코넬리아 롭슨이 난간에 기댄 채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포와로 씨,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좀 이상해요." 포와로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태양이 빛날 때는 달을 볼 수 없지요. 그 태양이 져버린 후에는‥‥ 태양이 져버리면‥‥" 코넬리아가 그에게 반문했다. "선생님, 뭐라고요?" "나는 태양이 사라지면 달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코넬리아는 의혹에 찬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포와로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니 신경쓰지 말아요, 롭슨 양." 포와로는 배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선실 앞을 지나가는데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배은망덕해. 너를 위해 지금까지 희생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어미에게 모질게 대하는구나. 너는 이 어미의 고통을 몰라." 포와로는 그 방문을 몇 번 노크했다. 방안에서는 말소리가 뚝 그치고 오터번 부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네, 로잘리 양 있습니까?" 잠시 후, 문 앞에 로잘리가 나왔다. 포오로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시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입가는 떨렸다. 그녀는 거칠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나요?" "당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잠시면 됩니다." 그녀는 불쾌한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 "제가 지금 꼭 나가야 합니까?" "네, 부탁입니다." "지금 저는 좀 곤란해요‥‥" 그녀는 머뭇거리며 방을 나왔다. 그녀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포와로는 그녀의 팔을 잡고 선미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사람이 없는 뒤쪽 갑판에 섰다. 포와로는 난간에 몸을 기댔으나 그녀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로잘리는 여전히 불쾌하게 물었다. "포와로 씨, 무슨 일이시죠?"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이 답변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망설이는 겁니다." "그럼, 저를 예까지 데리고 온 게 쓸데없는 일이겠군요." 포와로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어려운 일에 익숙해 있지요‥‥ 그러나 더 이상 지탱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 짐은 로잘리 양에겐 너무 과중합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저는 현실, 고달픈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 어머니는 매일 과음을 하죠?" 로잘리는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잠시 입을 열 듯한 기색도 보였지만 이내 다물어 버렸다. "대답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도 그런 것쯤은 짐작합니다. 당신이 어머니께 심하고 야박한 듯 하지만 사실은 당신은 지금 무엇인가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당신 어머니가 만취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술을 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요. 그러나 그럴수록 당신 어머니는 교묘히 술을 구했고 은밀한 곳에 숨겨 두고 몰래 마셨습니다. 어젯밤에도 숨긴 술병을 찾아 몰래 물 속에 던져 버렸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일부러 그 일을 발설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그 사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이에요. 그 소문이 퍼지면 어머니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데 글쎄 나보고 이런 끔찍한 일을 했다니‥‥" "당신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게 터무니없다는 말이죠?" 그의 말에 로잘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말을 계속했다. "저는 어머니가 알콜중독자라는 걸 숨기기 위해 무척 노력했어요. 그건 사실 어머니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책이 팔리지 않아서 실망을 하셨지요. 독자들은 이제 어머니가 쓰시는 저속한 섹스 내용에 식상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으신 거예요. 얼마간은 저도 어머니가 술을 마시는 걸 몰랐어요. 그 사실을 알고부터 무진 애를 썼어요. 어머니는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다툰답니다. 끔찍해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요. 그래서 저는 잠시도 어머니 곁을 떠나면 안돼죠. 그러면 꼭 일이 벌어지니까요. 저는 어머니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막았어요. 그후부터 저렇게 저를 미워하시고 증오하는 느낌을 받곤 해요." 포와로는 그녀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저를 동정하진 마세요. 그냥 평소처럼 해주시는 게 좋겠어요. 저는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어요."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와로가 부드럽게 그녀를 위로했다. "저도 당신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건방지고 비뚤어졌다고 싫어하죠. 그래고 어쩔 수 없어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저는 기분이 바뀌니까요." "내 말이 바로 그거에요. 당신 혼자 그 짐을 지는 건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해요. 포와로 씨는 늘 제게 친절히 대해 주셨어요. 제가 무례히 굴었던 건 모두 용서해 주세요." "친구 사이에서는 예의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잘리의 얼굴에는 의심이 서렸다. "당신이 물 속에 버린 게 술병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럼 그 시간이 언제였는지 말해 주십시오. 1시 10분이었나요?" "네, 그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로잘리 양, 당신은 그때 밴 슈일러를 보았습니까?" "아뇨, 저는 못보았습니다." "밴 슈일러는 문틈으로 살짝 엿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보지 못했어요. 그냥 갑판 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던져 버렸어요." "그럼, 그때 갑판에는 사람이 없었습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는 생각을 거듭 한 후, 입을 열었다. "거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꽤나 심각했다. 19 승객들은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식사를 열심히 하는 것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계속 식당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지만 그들의 태도는 마치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했다. 팀 앨러튼은 어머니 앨러튼 부인이 자리에 앉고 나서 식당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팀은 낮은 소리로 불평을 했다. "이런 여행이 될 줄 알았으면 애시당초 떠나 오지도 않을 걸‥‥" 앨러튼 부인이 아들에게 꾸짖듯 말했다. "팀, 나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야. 어쩌면 그 아름다운 여인이 죽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누가 그런 아름다운 여인에게 총을 쏘았을까? 참 잔인한 인물이야. 난 그런 잔인한 살인범과 이렇게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게 끔찍하단다. 그리고 또 가엾은 사람이 있잖니?" "재클린 말인가요?" "그래, 나는 재클린만 보면 가슴이 아프단다. 불쌍한 아가씨야." 팀은 빵에 버터를 바르면서 불쑥 한 마디 했다. "장난감 권총을 마구 쏘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었어야 했어요." "성장할 때 환경이 나빴을 게다." "아휴, 하느님! 어머니, 매사에 그런 생각 좀 버리세요." "팀, 너도 불쾌한가 보구나." "네, 이 배에 탄 사람들 중에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뭐가 그리 기분 나쁘다는 거니? 난 그저 슬프다." 팀은 어머니의 태도를 반박했다. "어머닌 감성적으로만 생각하시는군요. 살인 사건에 말려드는 건 아주 골치 아픈 거예요." 앨러튼 부인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건과 관계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결백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누가 그걸 믿겠어요? 모두 혐의를 받는 거예요. 어머니와 저도 예외일 수가 없어요." "그건 이치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머니, 이건 살인 사건이에요. 앉아서 나는 죄가 없다고 해 봐야 믿어 줄 사람이없단 말이에요. 쉘랄이나 애스완의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경찰이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믿어 줄 거 같아요?" "그 전에 범인이 잡힐지도 모르지." "어떻게 범인이 잡혀요?" "음, 포와로 씨가 범인을 알아낼 거다." "그 늙은 영감 말이에요? 그는 밝혀내지 못할 거예요. 수다장이고 콧수염이나 기르고 점잖은 신사 흉내나 내는 사람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하겠어요. 그 사람은 엉터리 사기꾼이에요." 앨러튼 부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팀,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길을 헤쳐 나가야 한단다. 그러니 기분을 좀 전환해서 유쾌하게 보내자꾸나." 팀 앨러튼은 여전히 잔뜩 찡그린 얼굴을 펴지 않았다. "그리고 진주 목걸이도 없어졌잖아요." "리넷의 진주 목걸이를 말하는 거냐?" "네, 진주 목걸이를 누가 훔쳐갔나 봐요." "그럼, 그 진주 목걸이 때문에 살인을 했나 보구나." "그건 단정지을 수 없어요. 어머니 그건 별개의 사건이에요." "누가 별개의 사건이라고 했지?" "퍼거슨 씨가 그러더군요. 그 사람이 거칠어 뵈는 기관사에게 들었는데, 그는 또 죽은 도일 부인의 하녀에게서 들었다고 하더군요." "참 멋진 목걸이였는데‥‥" 그때 포와로가 앨러튼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식탁 앞에 앉았다. 포와로가 그녀를 보고 말했다. "제가 좀 늦었죠." "당신은 늘 바쁘시니까요." "네, 좀 바쁜 편입니다." 포와로는 웨이터에게 포도주를 주문했다. 앨러튼 부인이 포와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취향이 다르군요. 포와로 씨는 늘 포도주만을, 팀은 언제나 위스키소다를, 나는 여러 종류의 탄산수를 마시잖아요." "자, 앨러튼 부인을 위해 건배!" 포와로는 말없이 앨러튼 부인을 쳐다보다가 생각에 잠긴 듯 나지막히 중얼 거렸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러나 포와로는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 앨러튼 부인이 질문했다. "도일 씨는 많이 다쳤습니까?" "네, 그런가 봅니다. 베스너 박사는 속히 애스완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리에 박혀 있는 총알을 뽑아야 한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