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15편 (15/21)
"글쎄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밴 슈일러 부인은 불쾌한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첨벙하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지 아십니까?" "네, 분명히 압니다." 레이스 대령이 흥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다고요?" "네, 압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밖이 시끄러워서 나는 문 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밖을 내다보니 오터번 양이 몸을 굽히고 물 속에 무엇을 막 떨어뜨렸습니다." 레이스 대령은 깜짝 놀랐다. "아니, 오터번 양이요?" "네, 오터번이었습니다." "얼굴을 똑똑히 보았습니까?" "네, 분명히 오터번 양이었어요." "그럼, 오터번 양은 당신을 보았나요?" "아뇨, 못보았을 겁니다." 포와로는 관심이 생기는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표정은 어땠죠?" "글쎄, 흥분한 거 같더군요." 레이스 대령과 포와로는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레이스 대령이 또 물었다. "오터번 양은 그 다음 무엇을 했습니까?" "그녀는 배 모퉁이 쪽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다시 누웠습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지배인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퉁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대령님, 이걸 찾았습니다." 대령은 그 보퉁이를 받아 펼쳐 보았다. 속에서 분홍색 손수건이 나왔다. 그 안에서 진주 장식의 손잡이가 달린 작은 권총이 나왔다. 레이스 대령은 짖궂은 표정으로 포와로를 보았다. "내 생각이 옳죠? 권총을 물 속에 빠드린 겁니다." 레이스 대령은 그 권총을 손바닥에 놓고 내려다보았다. "포와로 씨, 이 권총이 당신이 언젠가 호텔에서 본 재클린의 권총입니까?" 포와로는 권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잠시후,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바로 이 권총이 맞습니다. 장식이 붙어있고 J.B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습니까? 이건 숙녀용 권총이지만 살인을 할 수 있는 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레이스 대령도 권총을 보며 중얼댔다. "아, 22구경이로군. 두 발이 발사되었어요.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군요." 밴 슈일러가 그때 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두 사람에게 다그치며 물었다. "내 목도리가 어떻게 된 거죠?" "목도리요?" "네, 저 벨벳 목도리가 바로 내 것입니다." 대령은 아직도 물이 떨어지는 천을 집어들었다. "밴 슈일러 양, 이게 당신 목도리가 분명한가요?" "네, 제 거예요."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분명히 내 목도리입니다. 어젯밤 잃어버려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찾지 못했어요." 포와로가 대령에게 의미있는 눈짓을 보내자 레이스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도리를 제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어디에서였습니까?" "전망실이었습니다. 저녁에 제가 가지고 갔어요. 그런데 선실에 가서 찾아보니 없더군요." "부인, 이 목도리로 무엇을 했는지 아시겠어요?" 그는 손으로 구멍이 난 곳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범인은 총소리를 나지 않게 하려고 이 목도리로 권총을 싸서 쏘았습니다." 밴 슈일러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담!" "당신은 전에 도일 부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요." "그러나 당신은 도일 부인을 알고 있었지요?" "나는 그녀의 신분은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 집안과 아무 교제도 없었나요?" "우리는 그 집안과는 달라요. 우리 집안은 전통이 있고 긍지있는 가문이지요. 우리는 그런 재산만 많은 집안과 교제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것 뿐입니까?" "네, 그 이상 할 말이 없군요. 리넷은 영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전에는 한 번도 못 보았어요." 그녀가 일어나자 포와로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거만한 태도로 방을 나갔다. 두 사람은 마주보았다. 대령이 그에게 먼저 말했다. "밴 슈일러는 계속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요. 오터번 양? 난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요." 포와로는 자꾸 혼자서 머리를 갸웃거리다가 흔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으로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 "아닙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떤 점까지는 명확한데 그 이상은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누군가 리넷을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전망실에서 있었던 사건을 엿본 거죠. 그는 몰래 들어가서 권총을 훔쳤습니다. 그렇게 재클린의 총을 손에 넣은 후, 리넷을 쏘고 나서 벽에다 'J'라는 글씨를 썼습니다. 이게 명확합니다. 이건 모두 재클린에게 혐의가 가게 한 일입니다. 그런 뒤, 범인은 권총을 어쨌죠? 범인은 그 권총을 물속에 던졌습니다. 그건 절대적인 증거물인데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레이스 대령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이상한데요." "이상한 게 아니라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불가능하긴요,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일이 그렇게 진행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거 같아요." 16 레이스 대령은 의혹에 찬 시선으로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그는 포와로의 두뇌를 믿고 있고, 그의 사건 해결에 뛰어난 실력도 알고 있지만 그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대령은 자기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포와로 씨, 이제 오터번 양을 만날 차례인가요?" "네, 오터번을 부릅시다. 뭔가 진전이 있을 겁니다." 잠시 후, 로잘리 오터번이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녀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한 얼굴은 아니나 억지로 온 듯, 약간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불쾌한 듯 먼저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는 지금 도일 부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는 중입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당신은 어젯밤에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 어머니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11시 전이지요. 처음엔 아무 소리도 못들었는데 박사님 선실 바깥 쪽에서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어요. 박사님이 독일어로 말하며 멀리 가더군요. 저는 오늘 아침까지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몰랐습니다." "혹시 총소리를 들었나요?" "아뇨, 못들었어요." "선실에서 나간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틀림없이 나가지 않았나요?" 오터번은 날카롭게 말했다. "틀림없어요. 나는 어젯밤에 선실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요." "혹시 배 오른쪽에 가서 물 속에 무엇을 던지지 않았습니까?" "물 속에 무엇을 던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야, 그런 법은 없지요. 그럼 당신은 물 속에 무엇을 던졌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난 내 방을 나간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보았다고 하던데요?" "아니, 누가 나를 보았다고 했죠?" "밴 슈일러 양이요." 로잘리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밴 슈일러 양이라고요?" "맞습니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당신이 물 속에 무엇인가를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로잘리는 완강히 부인했다. "아녜요, 전 그런 일은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그때가 몇 시쯤이죠?" 이번에는 포와로가 얼른 대답했다. "아마 1시 10분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외에 또 무엇을 보았다고 했죠?" 포와로는 흥미를 가지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 것도 본 건 없고 무슨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소리였지요?" "도일 부인의 방에서 인기척이 나는 거 같았다고 했습니다." 로잘리의 얼굴은 마치 시체처럼 창백했다. "그럼, 오터번 양은 물 속에 아무 것도 던지지 않았던 말씀입니까?" "제가 무엇 때문에 밤에 나가서 그런 짓을 하겠어요!' "무슨 이유, 해롭지 않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죠." "뭐요, 해롭지 않은 이유요?" "네, 당신은 물 속에 무엇을 던졌어요. 그건 해롭지 않은 거고요." 레이스 대령은 벨벳 꾸러미를 꺼내 그 안의 권총을 보여 주었다. 오터번 양은 놀라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게 그녀를 살해할 때 쓴 건가요?" "네, 바로 그 권총입니다." "아니, 그럼 당신은 제가 리넷을 살해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녜요,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어요. 내가 왜 이유도 없이 그녀를 살해하겠습니까? 난 그녀를 알지도 못합니다." 그녀는 잔뜩 경멸이 담긴 얼굴로 일어서며 말했다. "참 터무니 없군요. 이건 엉터리 수작이에요." "오터번 양, 분명히 달빛에 비친 당신을 밴 슈일러는 보았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잘리는 어처구니없는 듯 픽 웃었다. "그 심술쟁이 여자가 나를 봐요? 아마 그 늙은이는 눈 뜬 장님인가 보군요. 그 늙은이가 본 건 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제 가도 되겠죠?" 대령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횅하니 나가 버렸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말이 판이하군요.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시키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 게 제일 골치 아픈 일이죠. 많은 사람들이 하찮은 이유 때문에 거짓을 일삼지요. 그럼 계속 승객을 만나 볼까요?" "네, 그렇게 합시다. 순서와 방법을 바꾸지 말고 진행합시다." 잠시 후, 오터번 부인은 딸을 따라서 들어왔다. 그녀는 로잘리의 진술처럼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으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아마, 치정 때문에 살인했을 거예요. 살인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 본능은 성 본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재클린은 라틴 혈통이 있어서 더 본능에 사로 잡히게 되어 있지요. 그녀는 손에 권총을 쥐고 살금살금 다가가‥‥" "재클린은 도일 부인을 쏘지 않았어요. 그건 확실하지요." "그럼, 그야 시몬 도일일 겁니다. 이건 성 범죄로 볼 수 있어요. 그런 예는 왕왕 있습니다." "부인, 그렇지 않아요. 시몬은 다리에 총을 맞아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뼈가 부러졌어요. 그리고 베스너 박사가 밤새도록 옆에 있었답니다." 오터번 부인은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그녀는 또 생각하고는 말했다. "맞아요. 네, 맞아요. 바로 바워즈 양입니다. 바워즈요." "바워즈요?" "네, 틀림없이 그녀의 짓이예요. 심리학적으로 따져 봐요. 그녀가 틀림없을 거예요. 시몬과 그 아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간 겁니다. 바워즈는 미인도 아니고 매력이라곤 찾기 힘든 추녀지요. 내 작품 중 <열매 맺히지 않는 포도 덩굴>을 보면‥‥" 레이스 대령이 재빨리 그녀의 다음 말을 막았다. "부인,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대령은 정중하게 오터번 부인을 배웅해 준 후, 자리로 돌아와 숨을 깊게 쉬었다. "어휴, 끔찍해라. 왜 저런 여자는 살아 있담!" "글쎄, 앞으로 누가 압니까? 정말 누가 죽일지도요." "그건 그렇지요. 이제 누구 차례죠? 퍼거슨과 리체티가 남았군요. 참 페닝턴은 제일 끝에 보기로 합시다." 다음에 온 리체티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이건 너무 끔찍한 일이군요.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살해하다니!" 그는 물음에는 선선히 대답했다. 리체티는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최근에 발행된 논문 <소아시아의 선사시대 연구> 라는 것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나톨리아의 산기슭에서 발견한 채색 도자기에 대해 새로운 설명을 한 것이었다. 그는 11시가 되기 전에 불을 껐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한밤중에 자기 창 가까이에서 첨벙 소리가 크게 들렸다고 말했다. "당신의 선실은 아래쪽 갑판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첨벙 소리가 크게 들렸나 봅니다." "그 소리를 들은 건 몇 시쯤이죠?" "글쎄요, 그건 내가 잠자리에 든 지 한 시간, 두 시간, 아니 세 시간 쯤‥‥ 글쎄 한 두 시간 쯤 지나서였을 겁니다." "그럼, 1시 10분 쯤인가요?" "네, 그쯤 되겠군요. 아, 너무 무서운 일이에요.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을 총으로 쏘다니‥‥" 여전히 리체티는 손까지 마구 휘두르면서 말했다. 포와로와 레이스 대령은 의미있는 시선을 교환했다. 그가 나가고 그 다음에는 퍼거슨의 차례였다. 퍼거슨은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의자에 길게 앉아 이야기했다. 그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비양댔다. "당신들은 굉장한 일을 하고 있군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참, 이 세상에는 형편없는 여자들도 많아요." 레이스 대령이 그의 말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냉정히 물었다. "퍼거슨 씨, 당신은 어젯밤에 무엇을 했습니까?" "당신은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나는 그 일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요. 롭슨 양과 육지로 나갔다가 그녀가 배로 돌아간 후, 나 혼자서 돌아다니다 밤늦게 배로 돌아와 잤습니다." "당신 방은 아래쪽 갑판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지요?" "맞습니다. 내 방은 그런 곳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감히 지체높은 분들과 나란히 방을 쓸 수 있겠습니까?" 대령은 또다시 냉정히 질문했다. "어젯밤에 혹시 총소리를 듣지 않으셨습니까? 어쩌면 병마게 따는 소리처럼 들렸는지도 모릅니다." 퍼거슨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소리를 들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게 몇 시쯤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제가 잠들기 직전이었죠. 그때까지 갑판은 떠들썩하더군요. 갑판 위를 뛰어 다니는 소리도 들렸고요." "그 소리는 재클린이 쏜 총소리였을 겁니다. 또 다른 소린 못들었습니까?" 퍼거슨은 고개만 저었다. "그럼, 첨벙하는 물소리는 듣지 못했습니까?" "물소리요? 들은 거 같기도 한데,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 확실치는 않아요." "당신은 밤중에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퍼거슨은 픽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불행히도 그 일에 참여할 수 없었죠." "퍼거슨 씨,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진지하게 답해 주세요." "아니, 왜 내 대답을 강요하십니까? 난 폭력 행위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포와로는 나지막히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생각을 실행하지는 않겠죠? 퍼거슨 씨, 당신에게 도일 부인이 영국 최고의 갑부라고 말해 준 사람은 플릿우드죠?' "아니, 이 사건과 플릿우드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플릿우드는 도일 부인을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녀를 증오하고 있으니까요." 퍼거슨은 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참, 당신들의 수법은 저질이군요. 자기 자신을 방어할 능력조차 없는 가엾은 플릿우드 같은 사람을 의심하는 건 불공평합니다. 그는 맨주먹이라서 변호사를 고용할 수도 없을 겁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만일 당신들이 플릿우드를 이 사건의 혐의자로 본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포와로는 부드럽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거죠?" 퍼거슨은 얼굴이 상기된 채 말했다. "누가 뭐래도 난 내 친구를 돕겠습니다." 레이스 대령이 얼른 나서서 말했다. "퍼거슨 씨, 이제 됐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퍼거슨이 나가자 대령이 한 마디 했다. "왠지 저 청년은 마음에 들어요." 포와로가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당신은 저 청년은 의심하지 않는 겁니까?" "네, 저 쳥년은 범인이 아닐 거 같습니다. 저 청년은 솔직하죠. 거짓이 없었으니까요. 다음에는 페닝턴입니다." 17 앤드류 페닝턴은 의례적으로 도일 부인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시했다. 그는 평상시처럼 말쑥한 옷차림이었는데 넥타이는 검정색을 매고 있었다. 면도는 말끔히 했으나 당혹한 표정은 지울 수 없었다. "도일 부인의 죽음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내 눈에는 리넷의 어린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귀여웠었죠.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죠. 그는 딸 리넷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내가 공연한 넋두리를 늘어놓았군요. 내가 도와드려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페닝턴 씨, 혹시 어젯밤에 무슨 소리 못들었습니까?" "아뇨, 전혀 못들었는데요." "당신은 몇 시에 잤습니까?" "11시 좀 지나서였습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이 배에는 소문이 많이 떠돌고 있어요. 재클린 드벨포라는 아가씨가 수상한 거 같은데요. 리넷은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남들만큼은 알아요. 시몬과 그녀는 한때 좋아한 사이로 약혼까지 했었다는 걸 나도 압니다. 재클린은 리넷을 뒤쫓고 있지만 그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당신은 드벨포 양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좀 알고 있지요. 그녀는 리넷을 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재클린이 총을 쏘지 않았다는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었으나 페닝턴은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두 분의 말씀에 동감은 하지만, 그 바워즈 양이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그녀를 지키지는 않았을 겁니다. 간호원이 졸 때 살짝 나가서 리넷을 살해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페닝턴 씨,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녀가 재클린에게 독한 마취주사를 놓아서 그녀는 잠에 빠졌으니까요. 그네들은 늘 환자 옆에서 환자가 움직이면 눈을 뜨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들이니까요." "그래도 나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데요." 레이스 대령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페닝턴 씨,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제클린은 리넷을 쏘지 않았음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돌리기로 한 것입니다. 당신도 우리를 도와 주세요." 페닝턴은 과잉 반응을 보이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돕죠?" "당신은 죽은 도일 부인과 친하게 지낸 유일한 주변 사람입니다. 당신은 남편 도일 씨보다 그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가 리넷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지도 알고 있을 테고요. 도일 씨는 부인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으니까요. 당신은 부인을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는 사람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페닝턴은 초조한 듯 입술에 침을 묻힌 뒤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그녀는 영국에서 성장했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므로 나는 그녀의 주변은 전혀 모릅니다." 포와로는 심중을 뚫어질 듯한 시선으로 날카롭게 페닝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이 배에는 부인의 목숨을 해치려는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일전에 신전에서도 리넷은 바위가 굴러 떨어져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지요. 당신은 그때 그곳에 있었던가요?" "네, 나는 신전 안에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소식을 들었죠. 그러나 나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페닝턴은 값비싼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이스 대령이 계속 질문을 했다. "도일 부인은 언젠가 이 배에 탄 사람 중에서 자기 집안과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페닝턴은 급습을 당한 것처럼 놀랐다. "아닙니다, 저는 금시초문인데요?" "도일 부인이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던가요?" "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녀의 아버지와 절친했었죠? 혹시 그가 나쁜 방법으로 경쟁자를 파산시킨 적은 없었습니까?" "뚜렷이 기억나는 건 없고‥‥ 그런 적은 더러 있지만 협박을 받거나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페닝턴 씨, 당신은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는 게 없군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아는 게 없군요."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도움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페닝턴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일 씨가 일어나지 못하니, 내가 대신 일을 해야 합니다. 실례지만 앞으로의 여정은 어떻죠?" "이곳을 출발하여 바로 쉘랄로 갈 계획입니다. 내일 아침엔 쉘랄에 당도할 겁니다." "시체는 어떻게 하지요?" "냉장실에 보관할 겁니다." 앤드류 페닝턴이 나간 후, 두 사람은 또 한 차례 시선을 교환했다. 레이스 대령이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그는 초조한 모습이군요." 포와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페닝턴은 바위가 굴러떨어졌을 때 신전 안에 없었어요. 그건 내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신전 안에 있었으니까요." "어리석게도 그는 뒤만 돌아서면 밝혀질 거짓말을 했어요." "당분간 그를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레이스 대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나는 너무 마음이 잘 통하는군요." 그때, 배가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배가 쉘랄로 향하는 것이었다. "이제 진주 목걸이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야겠습니다." "좋은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이제 30분 후면 점심 식사 시간이니 승객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