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10편 (10/21)
"그러나 도일 부인은 사업 수완이 뛰어난 거 같던데요." "네, 잘 보셨습니다. 그녀는 아주 명석하답니다." 안내원이 라메스가 세운 신전에 대해 길게 설명을 늘어 놓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입구 양 옆에는 자연석을 깎아 세운 라메스 상이 두 개씩 서 있었다. 이탈리아 고고학자 리체티는 안내원의 설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구의 라메스 상에 새겨진 부조를 세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일행이 신전 내부로 들어서자 컴컴한 정적이 그들을 감쌌다. 안내원은 벽 내부에 여전히 생생한 색감을 빛내는 부조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고 몇 명씩 무리지어 흩어졌다. 베스너 박사는 안내 책자에 쓰인 독일어를 읽으면서 옆에 선 코넬리아에게 번역해 주었다. 그러나 잠시 후, 밴 슈일러가 바워즈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왔기 때문에 박사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중단해야만 했다. 베스너 박사는 코넬리아의 뒷모습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포와로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습니까, 멋진 아가씨죠? 그녀는 다른 처녀들처럼 허약해 보이지도 않고 열심히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죠. 그래서 이해력이 빠른가 봅니다. 그녀에게 설명을 해 주면 이해를 잘 해서 기분이 무척 좋더군요." 그때 포와로는 코넬리아의 운명은 평생을 누군가에게 시달리거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니까. 바워즈는 밴 슈일러가 코넬리아를 불러 곁에 두었기 때문에 몸이 자유로와져서 신전의 중앙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무관심하게 주위를 휘 살펴보았다. 신전 안, 깊숙한 곳에 제단이 있었고 그곳에는 네 개의 상이 주변을 제압하듯 장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상 앞에 시몬 도일이 서 있었다. 리넷은 남편의 팔짱을 끼고 얼굴을 든 채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듯 보였으나 어떤 감동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시몬이 불쑥 말했다. "리넷, 그만 나갑시다. 나는 저 네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면 불쾌해져. 특히 저 모자 쓴 친구는 보기만 해도 역겹단 말이야." "그건 아몬 같은데요, 저건 라메스고. 참 이상하네요. 왜 당신은 저걸 싫어하죠? 제 눈에는 인상적으로 보이는데요." "난 지나치게 인상적이기 때문에 불쾌해. 어쩐지 음산해지는 것도 같고. 이제 밝은 곳으로 나가지."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사원에서 나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그때 갑자기 리넷이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모래 위에 누비아인 어린이들의 머리가 대여섯 개 줄지어 있었다. 그 음산한 머리들은 이내 눈을 빛내며 목을 좌우로 신나게 흔들며 일제히 소리 맞춰 외웠다. "힙, 힙, 힙, 힙! 아주 좋아, 아주 값지군. 아주 고맙군." "아니, 저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어떻게‥‥ 몸이 모두 모래 속에 묻힌 건가?" 시몬은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들 중 우두머리격인 아이 둘이 나서서 돈을 받았다. 리넷과 시몬은 이제 구경도 싫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배에 오르기도 싫었다. 두 사람은 바위에 기대 앉아 햇살을 쬐고 있었다. 리넷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참, 아름다운 태양이군! 정말 행복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어.' 시몬은 흡족한 얼굴로 리넷을 쳐다보았다.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제 뜻한 대로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시몬은 넋을 놓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리넷을 재빨리 끌어안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큼직한 바위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바로 앞에 떨어졌다. 리넷을 자기가 끌어안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는 몸이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리넷과 시몬은 너무 놀라서 꼭 껴안고 말도 못했다. 그때 에르큘 포와로와 팀 앨러튼이 달려와서 말했다. "부인, 정말 큰일 날 뻔 했군요." 네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절벽 위를 쳐다보았다. 그 꼭대기에는 벼랑을 따라 오솔길이 나 있었다. 포와로는 상륙했을 때, 그 길에 원주민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었다. 포와로는 시몬 부부를 쳐다보았다. 리넷은 아직도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시몬도 흥분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몬은 느닷없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년!" 그러고 나서, 그는 옆에 선 팀 앨러튼을 얼핏 쳐다보고는 감정을 억제시키려고 노력했다. 팀이 숨을 길게 쉬고 나서 말했다. "누가 바위를 굴렸을까요? 아니면 바위가 어쩌다 떨어진 걸까요?" 리넷은 창백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바보가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가 부인을 달걀 껍질처럼 부수려고 그랬나 봅니다. 리넷 부인, 부인에겐 적이 없지요?" 리넷은 팀 앨러튼의 말 속에서 비아냥거리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상기되었다. 포와로가 얼른 나서서 말했다. "부인, 어서 배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진정제라도 좀 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들은 배를 향하여 급히 걸었다. 시몬 도일의 얼굴에서는 분노가 터질 듯 했다. 팀 앨러튼은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 리넷을 위로하려고 쾌활하게 떠들었다. 포와로의 얼굴은 침통한 표정으로 얼그러졌다. 그들이 배가 정박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시몬은 못박힌 듯이 자리에 서 버렸다. 그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때 배에서 재클린 드벨포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 바둑판 무늬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소년처럼 보였다. 시몬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아유, 하느님! 그럼 그건 우연한 사고였단 말인가!" 그 순간 시몬의 얼굴에서 분노가 걷히고 잔뜩 찡그린 표정이 환히 밝아졌다. 시몬의 얼굴에서 재클린은 심상치 않음을 읽었다. 먼저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군요." 그녀는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는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시몬은 힘껏 포와로의 팔을 잡았다. 팀과 리넷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오해했었습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압니다." 포와로는 여전히 침울한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뒤돌아서서 신전을 돌아보고 나오는 사람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했다. 밴 슈일러가 바워즈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오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앨러튼 부인이 누비아 소년의 머리가 줄지어 있는 모습을 미소띤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오터번 부인도 서 있었다. 그러나 그외의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포와로는 시몬의 뒤에 서서 배에 천천히 올라갔다. 10 "부인, 페이의 뜻이 무엇입니까?" 앨러튼 부인이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포와로와 그녀는 제2폭포가 보이는 바위로 올라갔다. 다른 일행은 낙타를 타러 갔지만 포와로는 낙타를 타면 꼭 배를 탄 것 같기 때문에 거기에 끼지 않았다. 앨러튼 부인은 품위 때문에 낙타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은 어젯밤에 왜디핼파에 당도하여 오늘 아침 작은 증기선 두 척을 타고 제2폭포에 온 것이다. 일행 중에서 리체티만 빠지고 모두 이곳에 온 셈이었다. 이탈리아 고고학자 리체티는 전부터 세므나라는 외딴 곳을 탐험하러 가겠다고 끼지 않은 것이다. 리체티는 그곳이 아메넴트 3세 때에 누비아의 통로였으며 그곳에는 흑인들이 이집트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내용이 조각된 돌기둥이 서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리체티를 설득했지만 그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짝 출발했다.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다른 승객들도 정해진 코스가 아닌 곳으로 관광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앨러튼 부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페이요? 그건 스코틀랜드어랍니다. 재난이 닥치기 전에 들뜬 행복을 가리키는 말이죠. 간단히 설명하기가 어려운데요." 포와로는 앨러튼 부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감사합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다. 어제 부인이 그 말을 하신 게 기묘한 우연이군요. 리넷은 그 후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으니까요." 앨러튼 부인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지 몸을 오싹했다. "정말 큰일날 뻔 했어요. 구사일생으로 별일이 없었죠. 혹시 그 검둥이 어린애들이 장난을 친 게 아닐까요? 누구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포와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야 모르는 일이죠." 포와로는 얼른 화제를 바꾸어 마조르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앨러튼 부인은 이 키가 작고 통통한 포와로에게 점점 호감이 갔다. 물론 거기에는 반발하는 감정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아들 팀은 포와로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포와로와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하였고 또한 포와로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앨러튼 부인은 아들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그의 옷차림이 이국적이고 색다르기 때문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그녀는 포와로가 아주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와는 마음이 서로 통한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그에게 조안나 사우드우드를 싫어하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그녀는 포와로가 조안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자신을 짓누르는 질투와 혐오감을 말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팀과 로잘리 오터번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팀 앨러튼은 자신의 불운을 농담처럼 말했다. 자기는 감상적일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지만 건강이 형편없으므로 힘들다는 것과 돈이 없고 적성에 맞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팀은 퉁명스럽게 자기의 말을 정리했다. "지독히도 무능하고 허약한 인간이죠." 그 말을 로잘리가 재빨리 받았다. "그러나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단한 것을 소유하고 있잖아요." "부러워하는 것이라뇨?" "바로 어머니죠." 팀은 놀라는 눈치였지만 유쾌한 표정이었다. "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제 어머니는 특별한 분이죠." "저도 그 분이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우시고 침착하시죠,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리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시고‥‥" 로잘리는 진지하게 말했으나 약간 더듬거렸다. 팀은 자기 가슴에서 로잘리에게 따스한 감정이 솟는 것을 감지했다. 팀은 그녀가 한 것과 똑같은 말을 로잘리의 어머니에게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오터번 부인을 세상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제일 귀찮은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로잘리에게 그 말을 해 줄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밴 슈일러는 낙타를 타거나 걸어서 어디를 오른다는 게 불가능했으므로 작은 증기선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활기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워즈, 함께 있자고 해서 미안하군. 생각같아선 당신을 보내고 코넬리아를 남도록 하고 싶지만, 젊은이들이란 자기만 알기 때문에 그애는 내겐 단 한 마디도 없이 달아나 버렸어. 나는 그애가 불량해 뵈는 퍼거슨이란 사내에게 말을 거는 걸 보았다오. 그애한테 크게 실망했어. 로잘리는 도대체 사교적이지 못해." 바워즈는 습관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저 위까지 걸어 올라가면 무척 더울 거예요. 또 낙타를 타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고요. 혹시 벼룩이라도 있으면 어떡해요?" 바워즈는 그렇게 말하고는 안경을 한 번 고쳐 쓴 후,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롭슨 양은 젊은이와 이야기하지 않고 베스너 박사와 이야기하고 있군요." 밴 슈일러는 바워즈의 말을 듣고 불만을 늘어 놓았다. 그녀는 베스너 박사가 체코슬로바키아에 큰 병원을 가지고 있으며 내과 의사로 유럽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에 그의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승객 모두가 카나크 호로 돌아온 후, 리넷이 큰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전보가 와 있네!" 리넷은 성급히 겉봉을 뜯고 전보를 펼쳤다. "이게 무슨 뜻이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감자, 근대의 뿌리. 시몬, 이걸 좀 봐요." 시몬이 그녀에게서 전보를 받으려고 하는데, 잔뜩 흥분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인, 실례지만 그 전보는 내게 온 전보입니다." 리체티는 말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리넷이 쥐고 있던 전보를 잡아챘다. 그는 화난 얼굴로 리넷을 노려보았다. 리넷은 크게 당황하여 그를 쳐다보다가 겉봉을 확인했다. "아, 시몬! 어쩌면 좋아요. 저는 정말 바보같은 짓을 했군요. 리체티라고 씌어 있는데 리지웨이라고 읽었어요. 내 이름은 이제 리지웨이가 아닌데‥‥ 리체티에게 사과해야겠어요." 리넷은 허둥지둥 리체티의 뒤를 쫓았다. "리체티 씨, 죄송합니다. 실은 결혼 전의 제 이름이 리지웨이였어요. 결혼한 지가 얼마 안되어 착각했어요." 리넷은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실수를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리체티의 표정은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엄하고 모질게 리넷을 비난했다. "아니, 이름을 읽지도 않고 겉봉을 뜯다니 말이 됩니까? 이건 변명할 수 없는 실수예요." 리넷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리체티의 태도 때문에 몹시 당황했다. 그녀는 시몬에게 가서 심술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탈리아 인들은 모두 저런 심통 사나운 사람 뿐이라니까요!" "리넷, 신경 쓸 거 없어요. 우리 그 크림색 상아색 악어가죽 구경이나 하러 갑시다." 시몬과 리넷은 바로 육지로 내려갔다. 포와로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재클린이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힘껏 난간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 표정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이상했다. 가슴 속 깊숙히에서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 보였다. 포와로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크게 놀랐다. "저들은 이제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 버린 거예요. 그들에게 다가갈 길이 없어요. 그들은 내가 옆에 있건 말건 상관이 없는거 같아요.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힐 수가 없군요‥‥" 난간을 잡은 제클린의손이 가볍게 떨렸다. "이제 늦었어요. 포와로 씨, 당신이 경고를 하기에도 늦었단 말이에요. 네, 당신 말이 옳았어요. 저는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어요. 이 여행을 떠나선 안 되는 건데‥‥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이 여행은 영혼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 돌아가요.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네, 계속 나아가겠어요. 나는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도록 놓아두지 않을 거예요. 저는 반드시 그를 죽일 거예요‥‥" 그녀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 포와로는 멍청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올려 놓았다. "포와로 씨, 여자 친구가 화가 난 모양이군요." 포와로는 고개를 돌린 후 깜짝 놀랐다. "아니, 레이스 대령!" 얼굴이 검게 탄, 키가 큰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왜 놀랐나요?" 에르큘 포와로가 레이스 대령을 만난 것은 1년 전으로,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런던에서 대령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어느날 묘한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그 집 주인은 그날 밤 파티 도중에 살해당했었다. 포와로는 레이스 대령이 어느 곳이나 불쑥 잘 나타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대령은 대영제국의 식민지 중, 문제가 발생하는 곳이면 으레 모습을 보이곤 했다. 포와로는 정중하고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왜디핼파에도 대령이 모습을 나타내셨군요." "아, 나는 이 배에 승선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거야 물론 쉘랄로 돌아간다는 뜻이죠." 에르큘 포와로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참, 재미있겠군! 자, 그럼 한 잔 하실까요?" 두 사람은 텅 빈 전망실로 들어갔다. 포와로는 대령을 위한 위스키 한 잔과 오렌지 에이드를 주문했다. 포와로가 궁금한 듯 대령에게 물었다. "대령, 우리와 함께 돌아갈 겁니까? 정부의 증기선으로 가면 더 빨리 갈 텐데요. 그 증기선은 쉬지 않고 달리지 않나요?" 포와로의 말에 레이스 대령은 크게 감탄했다. "언제나 당신은 정곡을 찌르는군요‥‥" "승객 때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승객 중, 한 명 때문입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넌지시 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레이스 대령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은 듯이 말했다. "글쎄요,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포와로는 점점 더 흥미가 당기는지 관심을 보였다. 레이스 대령은 포와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포와로 씨, 당신에게까지 비밀을 지키지는 않겠습니다. 문제가 좀 생겼지요. 지금 우리가 뒤쫓는 것은 앞장서서 폭도를 선도하는 녀석이 아니라 뒤에서 은밀히 그들을 조종하는 무리이죠. 그들은 세 명인데 한 명은 이미 죽었고, 한 명은 감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 남은 한 명을 지금 쫓고 있지요. 그 놈은 대여섯 번씩이나 살인을 해치운 끔찍하고 잔인한 작자입니다. 그 어떤 선동가보다도 더 무서운 놈이죠. 바로 그놈이 이 배에 승선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암호를 해독해 보니 '그가 2월 7일부터 13일까지 카나크 호를 타고 여행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그가 어떤 가명을 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럼 인상착의는 압니까?" "아뇨, 전혀 모릅니다. 글쎄 미국계와 아일랜드계와 프랑스계의 혼혈이라고는 하는데‥‥ 그러나 도움이 될 만한 건 아무 것도 없답니다. 포와로 씨, 무슨 수가 없을까요?" "글쎄요, 지금은 떠오르는 게 없는데요. 한 번 생각해 보죠." 레이스 대령은 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에르큘 포와로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 배에는 좀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답니다." 레이스 대령은 의혹이 담긴 시선으로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대령, 당신도 생각해보십시오. A라는 사람은 B에게 모진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B는 그에게 복수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B는 A를 협박하고 있지요." "그럼, A와 B가 모두 이 배의 승객입니까?" "네, 그렇답니다." "물론 B는 여자겠군요." "네, 잘 보셨습니다." 레이스 대령은 담배를 붙여 여유있게 피웠다. "나는 그런 일은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일을 저지르겠다고 떠드는 사람은 대개 그 일을 저지르지 못하는 편이니까요." "그리고 여자는 더욱 그렇다고 말하고 싶겠죠, 당신은?" 그러나 포와로의 침울한 표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고 있었습니까?" "네, A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지요." "포와로 씨, 당신은 그게 B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B는 그 일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 걱정할 필요도 없겠군요. 그야 우연일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만‥‥ 마음에 걸려서‥‥" "포와로 씨, 그 일에 B가 무관하다고 확신합니까?" "네, 물론 확신합니다." "그래요? 그럼 우연일 수도 있겠죠. A는 어떤 인물이죠? 나쁜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A는 아름답고 부유한 젊은 여인입니다." 레이스 대령은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꼭 한 편의 소설 같은데요?" "그렇기도 하죠. 그러나 난 자꾸 꺼림칙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내 육감은 지금까지 어긋난 적이 없거든요." 레이스 대령은 포와로의 부연 설명에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지금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데 대령께서 또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왔으니 큰일인데요. 당신은 이 배에 당신이 찾는 선동자가 있다고 보십니까?" "안심하십시오. 그놈은 미인을 죽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와로는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걱정되는군요. 오늘 그 부부에게 카르툼으로 떠나라고 충고했지만 듣지 않더군요. 제발 쉘랄까지 무사히 가야 될 텐데‥‥" "당신은 너무 걱정을 하는 게 아닙니까?" "나는 정말 두려운 생각이 들어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아요." 11 그 이튿날 저녁, 코넬리아 롭슨은 아부심벨 신전 안에 있었다. 후덥지근한 저녁으로, 카나크 호는 승객들에게 신전을 구경할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었다. 이 날은 불이 휘황찬란하게 밝혀졌기 때문에 처음의 경치와는 또다른 분위기였다. 그녀는 감탄한 나머지 크게 흥분하여 퍼거슨에게 말했다. "오늘은 더 잘 보이네요. 왕에게 목이 잘렸다는 적병의 모습이 저기에 또렷이 보이는군요. 베스너 박사님이 계셨다면 좋았을텐데‥‥ 박사님은 설명을 잘 하시거든요." 퍼거슨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기분 나쁜 영감을 좋아하죠?" "어머나, 베스너 박사님은 제가 만난 분들 중에서도 가장 친절하고 훌륭한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