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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9편 (9/21)

2026-09-21 21:42:33 조회 14
리넷 도일과 팔짱을 낀 페닝턴은 안내인이 설명하는 수치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었다. "높이가 2미터 가량이라고? 과연 그 정도가 될까? 훨씬 작은 것 같은데. 라메스는 이집트의 위대한 왕이었어." "어때요, 아저씨. 굉장한 상인이죠?" 페닝턴은 정감어린 시선을 리넷에게 보냈다. "리넷, 오늘은 유쾌하게 보이는구나. 네가 요즘 마른 것 같아서 걱정했단다." 일행은 큰소리로 떠들고 웃으면서 배로 돌아왔다. 그들이 배에 오르자 카나크 호는 다시 강 위를 미끄러져 갔다. 멀리 야자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배는 서서히 강 위를 부드럽게 흘러갔다. 경치의 변화로 인해 승객들의 분위기가 다소 밝아지는 듯 했다. 팀 앨러튼도 불쾌함이 가셨고 로잘리의 침울한 표정도 밝아졌다. 그리고 리넷 도일도 훨씬 유쾌해 보였다. 앤드류 페닝턴이 그녀에게 말했다. "신혼 여행을 즐기고 있는 신부에게 사업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구나. 그러나 꼭 해결해야 할 것이 있어서‥‥" "앤드류 아저씨, 전 괜찮아요." 리넷은 금방 사업가다운 자세가 되어 말했다. "제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변동이 있는 게 있죠." "그래, 서명을 해야 할 서류들이 좀 있지." "그럼, 지금 서명을 하죠?" 앤드류 페닝턴은 주위를 한 번 살펴보았다. 승객의 대부분이 갑판에 나가 있어서 전망실은 텅 비어 있었다. 전망실에는 에르큘 포와로와 퍼거슨, 그리고 밴 슈일러 뿐이었다. 퍼거슨은 가운데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에르큘 포와로는 전망실 앞머리에서 경치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밴 슈일러는 구석 자리에 앉아 이집트 책자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럼, 지금 서명을 하도록 하지." 앤드류는 그렇게 말한 후, 밖으로 나갔다. 리넷과 시몬은 마주보며 잔잔히 미소지었다. 시몬이 물었다. "기분이 어떻소?" "네, 이제 괜찮아요. 참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요." 시몬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놀라운 여자야!" 페닝턴은 가득히 타이핑된 서류 한 묶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리넷이 큰소리로 물었다. "아유, 세상에! 아저씨, 여기에 모두 서명을 해야 하나요?" 페닝턴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피곤한 일이지만 일을 잘 마무리 지으려면 어쩔 수 없단다. 제일 처음 처리해야 할 게 5번가의 토지 임대 계약 건이고, 그 다음에는 서부의 부동산 등록‥‥" 앤드류 페닝턴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일일이 설명을 했다. 시몬은 곁에서 계속 하품을 해 댔다. 그때 문이 열리며 팬숍이 들어와 주위를 휘 둘러본 후, 천천히 걸어가 푸르디 푸른 강물과 모래를 조용히 내려다보는 포와로 곁에 섰다. 페닝턴은 재촉하듯 리넷에게 말했다. "여기에다 서명을 하면 돼." 그는 말하면서 손으로 빈 칸을 짚었다. 리넷은 서류를 처음부터 죽 훑어내려갔다. 그리고는 앞을 펼쳐서 만년필로 리넷 도일이라고 서명했다. 페닝턴은 그 서류를 치우고 가방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놓았다. 팬숍은 그쪽으로 가까이 가서 공연히 주위를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무슨 구경거리라도 기대하는 듯이 옆 창문으로 열심히 내다보았다. 페닝턴이 서류를 펼치면서 한마디 했다. "그 서류는 읽어보지 않아도 돼. 명의 변경에 필요한 단순한 서류이니까." 페닝턴의 부언에도 불구하고 리넷 도일은 그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페닝턴이 세 번째 서류를 내놓자 리넷은 주의깊게 서류를 살펴보았다. 앤드류 페닝턴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이건 모두 간단한 서류지. 이권이 관계된 게 아니라 법률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이지." 시몬이 지루해서 견디기 힘든지 또 하품을 하며 불평했다. "리넷, 그 서류를 모두 읽을 작정이야? 그걸 다 읽으려면 점심 시간을 다 써도 모자랄 것 같은데." 리넷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서류는 무슨 서류이건 모두 다 읽고 있어요. 아버지가 언제나 서류는 모두 읽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서류를 읽지 않고 서명했다간 나중에 큰 손해를 입게 된다고 하셨어요." 페닝턴은 리넷의 말에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리넷은 정말 뛰어난 사업가야."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네, 리넷은 뛰어난 사업가죠. 저보다 훨씬 수완이 좋아요. 나는 여지껏 서류를 제대로 읽어 본 기억이 없는데요. 저는 서명할 자리를 가리켜 주면 그곳에 서명을 해 왔지만 잘못 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리넷이 어리석음을 꾸짖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에요." 시몬이 유쾌히 말을 받아 넘겼다. "나는 사업과는 거리가 멀지. 그런 머리가 부족하단 말야. 서명을 하라는 곳에 서명을 하는 편이 훨씬 간단한 일이잖아." 페닝턴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도일 씨, 그건 좀 위험한 일 같군요." 시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나는 세상 모두가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나는 비교적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편이랍니다. 네, 사람은 믿을 만한 가치가 있지요. 여태껏 내가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은 없거든요." 그때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던 팬숍이 놀랍게도 입을 열고 말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리넷, 당신의 사무적인 능력은 특출하군요. 나는 변호사입니다. 직업적인 일을 하다보면 여자들은 실무에 눈이 어두운 것을 많이 봅니다. 당신의 그 서류를 다 읽고 난 후에 서명을 하는 태도는 높이 살 만 합니다. 그래야만 해를 입지 않습니다." 팬숍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약간 숙여 보였다. 그는 얼굴이 상기된 채, 나일 강의 경치를 감상했다. 리넷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팬숍의 태도가 아마도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엄숙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앤드류 페닝턴은 크게 당황해하며 쩔쩔 매었고 시몬 도일은 불쾌하게 느껴야 좋을지 유쾌하게 느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팬숍의 귀가 붉게 물든 모습이 보였다. 리넷은 기분좋은 표정으로 페닝턴에게 말했다. "다음 서류를 가지고 오세요." 페닝턴은 몹시 불쾌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하도록 하지. 도일 씨 말처럼 이 서류를 모두 읽으려면 점심 식사 시간까지도 지나갈테니. 그러면 경치도 구경하지 못할테고, 서명은 나중에 하도록 하는 게 좋겠어. 급한 서류 두 가지는 해결했으니 됐어." 리넷이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말했다. "어기는 너무 더워서 못 견디겠어, 어서 밖으로 나가요."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포와로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팬숍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의자에 몸을 반쯤 눕히고 휘파람을 부는 퍼거슨을 바라보았다. 포와로는 또 퍼거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밴 슈일러를 보았다. 그때 왼쪽 문이 열리더니 코넬리아 롭슨이 급히 들어왔다. 밴 슈일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참, 오래도 걸리는군.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는 거야?" "메리 아주머니, 죄송해요. 말씀하신 곳에 털실이 없어서요. 털실은 다른 가방에 있어서 이렇게‥‥" "너는 참 덜렁거려서 물건을 못 찾는 거야. 노력하는 줄은 알지만, 좀 찬찬히 걷고 재빠르게 행동해. 정신만 집중하면 모든 게 해결된단 말이야. 그렇게도 어렵니?" "죄송해요, 아주머니. 제가 너무 어리석게 굴어서." "더 노력하도록 해. 내가 너를 이 여행에 데려왔으니 너도 노력해서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니?" 코넬리아는 얼굴이 상기되어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아주머니." "아니 약 먹을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는데 바워즈는 어디 갔지, 어서 찾아 오렴. 의사는 시간 맞추어 약을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때 바워즈가 약병을 들고 들어왔다. "약을 가지고 왔어요." 밴 슈일러는 불평을 쏟아 놓았다. "11시에 먹어야 하는데 늦었어. 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걸 알지?" 이번에는 바워즈 양이 사무적으로 대꾸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시간은 정확히 11시 5분이에요." 밴 슈일러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내 시계는 10분이야." "내 시계가 정확해요. 단 1분도 틀리지 않는답니다." 바워즈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말했다. 밴 슈일러는 약을 삼키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몸이 더 약해졌어." "참 유감이군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바워즈의 목소리에는 유감인 듯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적이고 냉담히 울렸다. 밴 슈일러는 또 불평을 시작했다. "여긴 너무 덥군. 바워즈 양, 갑판 위에 자리를 좀 잡아 봐요. 코넬리아, 내 뜨개질감을 조심해서 가지고 나와라. 떨어뜨리지 말고. 그리고 털실 좀 감아 주렴." 밴 슈일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은 일에 착수했다. 젊은 반항자 퍼거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빌어먹을! 저 여자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군." 포와로가 관심이 있는 듯 그에게 물었다. "퍼거슨 씨, 당신이 미워하는 인간류가 저런 여자입니까?" "네, 잘 보셨습니다. 저런 여자는 살아있어도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죠. 저 여자는 자기 손가락은 까딱도 하지 않고 살아갈 겁니다. 저 여자가 세상에 무슨 도움을 주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부려 자기는 편안하고 사치스럽게 살아가죠. 저런 사람은 기생충이에요. 사람을 괴롭히고 해만 주는 기생충입니다. 이 배에는 세상에 해를 끼치는 저런 인간이 아주 많더군요." "아,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방금 이 방에서 서류에 서명을 하던 여자도 그런 부류죠. 수많은 노동자들이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고 혹사 당하는 것도 모두 저런 여자가 사치스런 생활을 즐기도록 해주기 위해서 착취당하는 겁니다. 저 여자는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하더군요. 저 여자야 평생동안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살았겠지요." "당신은 저 여자가 영국의 소문난 부자라는 걸 누구에게서 듣고 알았습니까?" 퍼거슨은 당장 싸움이라도 할 듯한 도전적인 태도로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그런 사람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신처럼 옷이나 말쑥하게 차려입는 사람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지요." 퍼거슨은 경멸하는 시선으로 포와로의 넥타이와 분홍색 셔츠를 쳐다보았다. 포와로도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내 손과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있소." 퍼거슨은 포와로의 말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마구 떠들었다. "그런 쓸데없는 인간들은 모조리 죽여야 해." 포와로는 조용하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젊은이, 그렇게 폭력을 쓰고 싶소?"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의 정의가 폭력없이 성취된다고 보십니까?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수어야 합니다." "그건 적극적이고 시끄러운 방법이군." "당신은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아니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겠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을 중산 계층이라고 스스로 부르면서 세상을 빈둥빈둥 놀면서 살아갈 겁니다." "아니오, 나는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이오." 포와로는 거만하게 약간 오기를 부리며 말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죠?" 에르큘 포와로는 당당하고 거만한 투로 말했다. "나는 탐정이오." 젊은이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탐정이요? 그럼 그 젊은 여자가 정말 탐정까지 고용했군요. 그 여자는 자신의 귀한 몸을 그야말로 지극히 보호하는군요. 물론 귀하신 몸이니 걱정이 될테죠." 포와로는 점잖은 태도로 말했다. "나는 도일 씨나 리넷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오. 나는 그저 휴가를 즐길 뿐이오." "아, 당신은 지금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당신도 휴가 중인가요?" 퍼거슨은 비웃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휴가요? 나는 지금 노동조건을 연구는 중일 뿐입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거 참 흥미있는 일이로군요." 포와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나갔다. 밴 슈일러는 갑판의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코넬리아가 무릎을 꿇은 채 털실을 잔뜩 팔에 감고 있었다. 바워즈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포와로는 오른쪽 갑판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막 배 모퉁이를 도는 순간 자칫 잘못하면 한 여자와 부딪쳐 쓰러질 뻔 했다. 그녀는 얼굴이 검은 라틴계로 제복의 건장한 남자와 이야기하며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죄를 진 사람처럼 쩔쩔 맸다. 포와로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자못 궁금했다. 포와로는 다시 배 모퉁이를 돌아 왼쪽 갑판을 따라 걸었다. 그때 한 선실의 문이 열리고 오터번 부인이 쑥 나왔다. 그녀는 배의 요동 때문에 포와로 앞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녀는 주홍색 실내복을 여미며 정중히 사과했다. "어머, 정말 죄송해요. 포와로 씨, 미안해요. 배 위에서는 파도가 치면 걷기가 어려워요. 누구라도 이런 배에서는 견디기 어렵겠죠. 나는 배에 약해서요‥‥" 오터번 부인은 포와로의 팔을 힘껏 잡았다. "왜 이렇게 요동을 친담. 몸을 가누기도 힘드니‥‥ 나는 배 멀미를 한답니다. 배만 타면 기분이 나빠요. 딸은 어미는 안중에도 없어요. 나 혼자 선실에 몇 시간 동안 틀어박혀 있어도 동정심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답니다. 나는 저만 믿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전혀 안중에 없어요. 불쌍한 어미를 이해하지도 못하겠고‥‥" 오터번 부인은 서러운지 훌쩍거리며 울었다. "나는 그애만을 위해서 일해왔어요. 쉬지도 못했답니다. 모든 걸 희생해 가면서 저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그걸 모른답니다. 이젠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요. 얼마나 내게 못되게 구는지 다들 몰라요. 이집트까지 나를 끌고 와서는 이렇게 따분하게 만들고요. 어서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요. 지금 당장‥‥" 오터번 부인은 팔을 빼고 달려가려고 했다. 포와로는 점잖게 그녀를 막았다. "내가 따님을 보내 드릴테니 선실에 들어가 계십시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녜요, 이 배에 있는 모두에게 말해야 해요." "부인, 파도가 거칠어져서 갑판에 나가는 건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물에 빠질 수도 있고요." 오터번 부인은 의심을 품은 눈길로 포와로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위험할까요?" "네, 지금은 위험합니다." 오터번 부인은 포와로의 말을 듣고는 머뭇거리다가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포와로는 바로 갑판으로 가서 앨러튼 부인과 팀의 중간에 앉아 있는 로잘리 오터번에게 다가갔다. "로잘리, 지금 어머니가 찾으시는데요."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로잘리의 얼굴이 금새 침울해졌다. 로잘리는 머뭇거리다가 잰걸음으로 갑판을 떠났다. 앨러튼 부인이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저 처녀의 마음은 영 종잡을 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니‥‥ 어느 날은 상냥하고 다정했다가는 또 어느 날은 무례하거든요." 팀도 어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쳣다. "네, 버릇도 없고 괴퍅한 성격 같아요." 팀의 말에 앨러튼 부인은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렇진 않을 거다. 성격이 괴퍅한 게 아니라 불행하기 때문에 그러는 걸 거다." 팀은 어머니의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글쎄, 모르겠군요. 사람에게는 모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때 식사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앨러튼 부인이 쾌활하게 말했다. "점심식사 시간이군, 배가 고픈 참인데‥‥" 그날 저녁, 포와로는 앨러튼 부인이 밴 슈일러에게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포와로가 두 사람 앞을 지나가자 앨러튼 부인은 웃으며 윙크를 해 보였다. 포와로의 귀에 앨러튼 부인의 말이 들려왔다. "카프리 성에서는‥‥ 그 공작께서는 말이죠‥‥" 코넬리아는 갑판에 나와 쉬고 있었다. 그녀는 베스너 박사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는 여행 안내서에 기록된 이집트학에 대해 장황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팀 앨러튼은 난간에 기대어 작은 소리로 불평을 했다. "모두가 썩어 빠졌어!" 로잘리 오터번이 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참 평등치도 못한 세상이에요.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했는데‥‥" 포와로는 자기가 젊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9 월요일 아침, 카나크 호의 갑판 위에서는 갖가지 감탄과 환호성이 터져나와 떠들썩했다. 배는 강기슭에 정박해 있는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바위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신전이 막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벼랑의 자연석으로 깎아 세운 네 개의 거대한 조각이 몇 천년 동안 나일 강을 내려다보며 아침 햇빛을 받아 그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코넬리라 롭슨은 감격하여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포와로 씨, 기막히군요. 어쩜 저렇게 크고 거대할까‥‥" 그 옆에 섰던 팬숍도 한 마디 했다. "과연 듣던 대로군. 인상적이야!" 시몬 도일도 다가와 거들었다. "정말 위대하군." 시몬은 포와로에게 다가와 은밀하게 말했다. "나는 사원이나 관광 명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건 정말 굉장한데요. 가슴이 뭉클해지는데요." 사람들이 하나 둘, 그곳을 떠나자 시몬이 그에게 말했다. "이번 여행은 참 잘 온 것 같습니다. 많은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리넷도 이제 정상적이 되었고‥‥ 리넷은 피하지 않고 부딪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리넷은 제일 처음 배에서 재키를 보자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녀를 피하지 않기로 했지요. 그녀가 우리를 쫓는다면 정면으로 부딪칠 겁니다. 그래서 그녀가 그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음을 깨닫게 해 줄 겁니다. 그건 정말 야비한 방법입니다. 재키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기뻐하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절대 그 여자 때문에 피하거나 두려워 하지는 않을 거예요." 포와로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참 잘 된 일이군요." "이제 만사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네? 네, 그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때, 살구색 드레스를 입은 리넷이 갑판을 걸어왔다. 그녀는 웃는 표정이었으나 포와로에게는 아는 체하지 않고 싸늘하게 고개만 까딱해 보이고는 시몬을 데리고 가 버렸다. 포와로는 리넷이 자기가 비판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런 태도로 나온다고 생각하자 통쾌했다. 리넷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디에 가건, 무슨 일을 하건 맹목적인 찬사만 받아 온 사람이었다. 에르큘 포와로는 그런 인생을 살아온 리넷에게 난생 처음으로 도전한 사람이었다. 앨러튼 부인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했다. "참 놀랍군요! 리넷이 애스완에서는 그렇게 근심스러운 얼굴이더니 오늘은 아주 대조적인데요. 행복해 보이죠? 너무 행복해 보여서 사람들은 혹시 그녀가 죽을 날이 가까이 온 게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한답니다." 포와로가 그녀의 말에 답변하기 전에 상륙할 승객은 집합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승객들은 안내원을 따라 아부심벨 사원에 가기 위해 상륙했다. 포와로는 앤드류 페닝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페닝턴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건네 왔다. "이집트 여행이 처음이십니까?" "아닙니다, 1923년에 왔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이로에 왔었죠. 그러나 나일 강을 거슬러 오르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신은 카마크 호를 타고 오셨죠? 도일 부인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페닝턴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네, 맞습니다." "내 친구도 그 배를 탔답니다. 혹시 스미드라는 부부를 만나보셨습니까?" "글쎄,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배가 만원이라서요, 그리고 날씨가 나빠서 선실에서 갑판에 나오지 않은 사람도 많았답니다." "아, 그랬군요! 당신은 도일 부부를 우연히 만나서 꽤 반가우셨죠? 두 사람이 결혼한 사실도 미처 몰랐다면서요?" "네, 알지 못했었죠. 도일 부인이 편지를 냈다는데 나는 그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들을 카이로에서 만나고도 며칠 지나서 겨우 편지를 받았죠." "내가 알기론 선생께서는 오래 전부터 도일 부인과 아는 사이라지요?" "네 그렇습니다, 포와로 씨. 나는 리넷 리지웨이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리넷의 아버지와 나는 친구 사이죠. 그는 특별한 사람이죠. 크게 성공했고요." "그의 딸이 굉장한 유산을 상속받는다죠? 내가 듣기로는‥‥ 이거 죄송합니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앤드류 페닝턴은 기분이 좋은지 선선히 말을 꺼냈다. "그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인 걸요. 사실이지 리넷은 돈이 아주 많은 부자랍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리넷의 결혼으로 인해 주식 가치 등에 변화가 없습니까?" 페닝턴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어느 정도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별로 사정이 좋지 않아요." 포와로가 얼른 그 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