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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6편 (6/21)

2026-09-21 21:42:33 조회 21
그렇지 않은가요? 물론 도일 부인은 엄청난 보수를 약속했을 거고요." 포와로는 그녀 옆 벤치에 앉았다. "아닙니다. 재클린 양의 짐작은 극히 일부만 맞았습니다. 방금 그녀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러나 난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을 겁니다. 아니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도일 부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 거죠." "아니!" 재클린은 놀라며 뚫어질 듯이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급하게 질문했다. "그럼, 왜 여기 오셨죠?" 포와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엉뚱하게 말했다. "재클린 양, 혹시 나를 본 기억이 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닙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나는 당신이 구면입니다. 언젠가 셰마탕트 레스토랑에서 당신과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시몬 도일과 함께 앉아 있었죠." 그녀의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 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 이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죠." "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재클린의 목소리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건조하게 들렸다. "재클린 양, 나는 당신의 친구로 우정 어린 충고를 하겠습니다. 이제 시체는 매장하는 게 어떻겟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내 말은 과거는 모두 잊으라는 겁니다. 과거는 훌훌 털어 버리고 이제 미래를 내다 보십시오. 지난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괴로움으로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요." 포와로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지금 리넷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딩신의 이런 처사는 앞으로 더 큰 고통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재클린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저는 결코 고통받는 게 아닙니다. 즐기고 있을 때도 있답니다." "그러면 그건 더 나쁜 행동입니다." 재클린은 천천히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당신은 저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재클린 양, 당신은 젊습니다. 머리도 좋고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날이 있을 겁니다." "당신은 모릅니다, 아니 세상의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시몬은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죠. 젊은 시절 한 때는 모두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건 오로지 젊은 시절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재클린은 여전히 고개를 세게 저었다. "포와로 씨, 당신은 몰라요. 아니, 리넷에게서 대강의 얘기는 들으셨겠죠. 당신은 그날 밤 우리를 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저와 시몬은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시몬을 사랑했다는 건 잘 알고 있지요." 재클린은 예리한 여자였기 때문에 재빨리 포와로의 말뜻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서로가 사랑했습니다. 저는 리넷도 친구로 좋아했습니다. 그녀를 굳게 믿어 왔어요. 그녀와 저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리넷은 마음만 먹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소유할 수 있는 입장이지요. 그녀는 시몬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를 강렬히 원했어요. 그래서 그를 자기 소유로 만들었죠." "그럼 시몬은 자신이 스스로 그녀에게 팔려갔습니까?" 재클린은 완강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만일 그렇게 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만일 시몬이 리넷의 엄청난 재산에 눈이 어두워 결혼했다면 그녀는 싫증을 냈을 거예요. 그러나 그는 돈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에요. 거기엔 돈 이외의 문제가 있어요. 그녀는 사람을 황홀하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여자입니다. 돈은 옆에서 약간 도움을 주었겠죠. 당신도 느꼈겠지만 리넷은 분위기를 압도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녀는 한 왕국의 여왕이고 미인 공주입니다. 그녀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건 마치 무대장치와도 같은 거예요. 그녀는 온 세상을 자신의 발 밑에 굴복시켰어요.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층에 드는 데다가, 많은 귀족들이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했으니까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그녀가 별 볼일 없는 시몬 도일에게 고개를 숙였어요‥‥ 이러한 사실이 시몬 도일을 흥분시켰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녀는 갑작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세요. 굉장히 밝지요? 지금은 매우 잘 보이지요. 하지만, 태양이 떠 오르면 저 달은 사라지게 되지요. 바로 이와 똑같은 원리지요. 제가 바로 그 달이었답니다‥‥ 태양이 솟아 오르자 시몬은 더 이상 저를 볼 수 없게 된 거죠‥‥ 그는 눈이 부신 그 태양 밖에는 다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 태양은 바로 리넷이었지요." 그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런 것이 바로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매력이랍니다. 점점 그는 리넷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게다가, 그녀의 태도가 그를 더욱 부추겼어요. 그녀 특유의 명령적인 태도가 말이에요. 그녀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자신과 똑같은 확신을 가지도록 만드는 재주를 있지요. 어떤 면에서 시몬은 우유부단한 성격이에요. 하지만, 그에게는 무척 단순한 면도 있지요. 만일, 리넷이 그를 가로채서는 황금 전차에 태우지만 않았다면 그는 제 곁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분명히 알고 있어요. 만일, 그녀가 그럴 마음만 먹지 않았다면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따위의 일은 결코 생기지도 않았을 거예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그렇군요." "그 사람은 저를 사랑했어요. 그리고, 영원히 저를 사랑할 거예요." "과연 지금도 그럴까요?" 그 순간, 그녀는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하다가는 갑자기 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포와로를 쳐다보았는데, 얼굴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뒤 눈길을 돌리고는 갑자기 머리를 떨구고 억제된 듯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 저도 알아요. 그는 이제 저를 증오할 거예요. 그럼요, 미워하고 말고요‥‥ 그는 조심하고 있을 거예요." 재빠른 손동작으로 그녀는 작은 비단 지갑을 집어들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무엇인가를 꺼내어서 손을 펴 보였다. 그 위에는 진주 장식의 손잡이가 달린 조그만 권총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난감처럼 보였다. "너무 작아서 진짜처럼 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이건 진짜 총이에요! 여기서 발사되는 총알 하나가 어떤 남자나, 아니면 여자의 목숨을 빼앗아 갈지도 몰라요! 더군다나 저는 총을 아주 잘 쏘거든요." 그녀는 회상에 젖어 꿈꾸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사우드 캐롤리나에 간적이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결투를 신뢰하는 옛날 사고 방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지요. 특히 명예가 손상되었을 때는 반드시 결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셨어요. 저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에는 여러 번 결투를 하신 적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명사수였어요. 언젠가는 잘못해서 사람을 죽인 일도 있었어요. 여자 때문에 벌어진 결투에서요. 자 보세요, 포와로 씨. 제 피 속에는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어요. 그 두 사람 중에 누군가를 죽일 생각에서지요. 그런데 문제는 과연 누구를 죽이느냐 하는 것이랍니다. 분명히 남은 한 사람은 괴로워 하겠지요. 리넷이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볼 수 있다면. 하지만 그녀는 물리적인 위협을 두려워 할 여자가 아니에요. 그녀는 그러한 공격에 과감히 대항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지요. 기다리자고요! 그러는 편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컨대 죽이는 것은 언제고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기다려 보는 것도, 그리고 그걸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그러자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그들을 따라 다니자! 그들이 서로 행복한 얼굴로 어느 곳에 도착할 때마다 그들은 저를 보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건 분명히 효과가 있었어요! 리넷은 몹시 괴로워했지요. 아마 아무도 그녀를 그렇게 괴롭힐 수는 없을 거예요! 결국 그 방법은 그녀에게 적중한 셈이고 저는 쾌감을 느꼈어요. 더구나 그녀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을 테니까요. 저는 언제나 명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했지요. 그들이 제 행동 어디에서도 꼬투리를 잡아낼 수 없도록 말이에요! 지금쯤은 그들의 심장 전체에 독이 퍼져 나가고 있을 거예요.- 전체에!" 그녀는 말을 마치자 맑고 큰소리로 웃어댔다. 포와로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쉿, 조용히 해요. 조용히! 당신에게 말할 게 있어요." 재클린은 빤히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네? 할 말이라뇨?" "제발 당신이 하고있는 일을 중단하시오." "아, 그 친애하는 리넷을 괴롭히지 말라는 말인가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닙니다. 당신의 가슴 속에 악마를 부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재클린은 놀랐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재클린을 계속 쳐다보며 포와로가 말했다. "그 이유는, 만일 당신이 계속 이 일을 하면 악마가 찾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에서입니다. 네, 맞습니다. 분명히 악마가 올 거예요. 악마가 당신의 가슴 속에 일단 들어와서 자리를 잡게 된 후에는 아무리 애써도 쫓아낼 수 없을 겁니다. 네, 쫓아낼 수 없어요." 재클린은 뚫어질 듯이 포와로를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어딘지 불안한 감정을 자제하고 있었다. "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당신도 저를 막지는 못합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건 맞는 말입니다. 나는 당신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사람입니다." "네, 당신은 비록 내가 리넷을 살해한다고 해도 말릴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이 댓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으면 그렇게 행동하실 수 있겠죠." 포와로의 말에 재클린이 다시 큰소리로 웃었다. "저는 죽음 따위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희망으로 살아나가겠어요? 당신은 자기에게 큰 해를 끼쳤다고 해도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는군요. 하지만 인간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겼어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포와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재클린은 또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하는 일을 막지 마세요. 저들을 뒤쫓는 동안에는 절대로 권총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습니다. 네, 저도 두려워요. 저는 그녀를 죽이고 싶은 걸요. 리넷의 가슴에는 칼을 꽂고, 내 작은 권총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겨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아니!" 그녀가 갑자기 소리지르는 바람에 포와로도 깜짝 놀랐다. "왜 그러죠, 재클린 양?" 그녀는 날카롭게 어둠 속을 살펴보았다. "누군지 저 어둠 속에 있었어요. 지금은 가 버렸지만요." 에르큘 포와로가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포와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클린 양, 우리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어쨌든 제가 할 말은 모두 했습니다. 이제 그만 들어가야겠군요. 지금 함께 가실까요?" 재클린은 그를 뒤따라 일어나며 하소연했다. "포와로 씨, 저를 좀 이해해 주세요. 저는 절대로 그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답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며 그녀에게 천천히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은 충분히 감정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럼요, 그렇게 할 수 있고 말고요. 리넷도 자기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저지른 후에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지요." 재클린은 그의 말을 중얼거렸다.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요?" 재클린은 얼마동안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그녀는 반항하는 태도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포와로 씨, 그만 들어가서 쉬어야겠군요." 포와로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 호텔로 향했다. 5 이튿날 아침, 에르큘 포와로가 호텔을 나와 마을로 가려고 할 때, 시몬 도일이 그를 불러 세웠다. "포와로 씨,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마을에 가십니까? 그럼 좀 함께 걸어도 괜찮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함께 걸어 봅시다." 두 사람은 호텔 현관에서 빠져나와 시원한 정원의 그늘 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시몬은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입에 문 파이프를 빼고는 말했다. "포와로 씨, 어젯밤에 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셨죠?" "네, 그렇습니다." 시몬 도일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으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서 전혀 손 쓸 방법이 없다고 아내에게 말했다죠?" "그렇습니다. 법적으로는 전혀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시몬 도일은 희미하게 웃었다. "네, 그건 저도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리넷은 그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경찰에 의뢰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믿어온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혀 방법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먼저 시몬 도일이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말했다. "아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참을 수가 없어요. 아내는 잘못한 게 없어요. 괴롭히려면 나를 괴롭히지 왜 죄없는 아내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어요. 리넷을 괴롭히다니‥‥ 아내는 잘못이 없어요." 포와로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와로 씨, 혹시 재키와 이야기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네, 이야기를 나누어 봤습니다." "재키가 당신 말을 따르겠다고 했나요?" "아뇨, 그러지 않을 겁니다." 시몬은 대뜸 신경질을 냈다. "그 여자는 자기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품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자예요. 재키는 자존심도 없는 사람인가 봐요." 포와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재키는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에 시몬이 얼른 말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 행동은 미친 짓이에요. 아무리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그렇게 품위없는 행동은 할 수 없는 거예요. 나는 비난받아도 마땅하지만요. 차라리 그녀가 나에게 대해 증오심을 품고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면 마음이 편하겠어요. 이런 식으로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워요.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놀림감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런 행동이 무슨 이득을 주겠어요?" "이건 복수라고 봅니다." "어리석은 짓이에요. 멍청한 행동이죠. 차라리 영화에서처럼 나에게 총을 쏜다던가 하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 당신은 재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재키는 성격이 급합니다. 그녀는 흥분하면 물불을 못 가리죠. 그런데 이렇게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것은‥‥" 시몬 도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좀 교묘한 방법이죠. 더 똑똑한 방법이란 말입니다." 시몬 도일은 말없이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리넷은 재키 때문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어요." "그럼, 당신은 어떻죠?" 갑작스런 질문에 시몬은 말없이 포와로를 응시했다. "나요? 나는 그 악마같은 여자의 목을 꽉 눌러 죽이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은 옛날의 감정은 이제 모두 사라진 거군요?" "포와로 씨,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비유하자면 해가 솟은 후의 달의 존재 같다고나 할까요? 더 좋은 비유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내 앞에 리넷이 나타난 후로 내 가슴에 재키의 존재는 사라졌습니다." 포와로는 혼자 불어로 중얼거렸다. "그거 재미있는 일치인데." "네, 뭐라고요?" "당신들의 일치된 표현이 참 흥미롭기까지 하군요." 시몬은 얼굴이 상기되었다. "재키는 내가 리넷의 재산 때문에 리넷과 결혼했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돈 때문에 결혼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자기를 죽도록 사랑하는 여자를 오히려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재키는 이해하지 못하지요." 포와로는 날카로운 시선을 그에게 보내며 물었다. "재키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했나요?" "글쎄,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지만,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나를 지나칠 정도로 나를 사랑했어요." 포와로는 다시 불어로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여자와 자기를 죽도록 사랑하게 놓아두는 남자‥‥" "지금 뭐라고 말했죠? 남자는 자기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여자가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도 아실 테죠?" 시몬은 이야기하면서 점점 더 흥분되어 갔다. "남자는 자기의 몸과 마음이 소유당한 것 같은 기분은 참지 못 합니다. 그건 소유욕 때문이죠. '이 남자는 내 것이다. 이 남자는 나에게 속해 있어.'- 세상의 어느 남자도 그런 기분은 참을 수 없을 거예요. 소유 당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와지고 싶어하죠. 대개의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여자를 소유하기를 원하지요." 시몬은 말을 끝내고는 약간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포와로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이 재클린에게 그렇게 느꼈어요?" 시몬은 빤히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사실 그렇게 느꼈지요, 그녀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지만요. 이건 말로 표현할 성질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나는 참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내 앞에 리넷이 나타났습니다. 첫눈에 나는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난 평생 리넷같이 사랑스런 여자는 처음 만났답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구혼을 했는데도 그녀는 나 같은 빈털터리를 택했어요."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흥분하여 말했다. 포와로는 사려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재키는 나처럼 이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시몬이 분노한 투로 말하자 포와로는 약간 웃어 보이며 말했다. "글쎄요, 재키는 당신처럼 남자가 아니라서겠죠."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건 내 문제지 당신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한다는 건 정말 비극입니다. 이 말만은 진실이에요. 더군다나 지금처럼 재키가 행동하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녀와 헤어진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포와로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재키가 어떻게 이 일을 몰고 나갈지 알고 있습니까? 그래, 당신은 그녀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시몬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나는 전혀 모르겠어요. 네,전혀 알 수 없답니다. 포와로 씨, 딩신은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시몬, 당신은 혹시 재클린이 작은 권총을 항상 휴대하고 있음을 아십니까?" 시몬은 놀라며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재키가 권총을 사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총을 쏘려고 했다면 벌써 쏘았을 겁니다. 이제는 그런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단지 우리에게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괴롭히려는 것 뿐입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요." 시몬은 다시 강조하듯 말했다. "염려스러운 건 리넷입니다." 포와로도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재키가 권총을 쏜다고 해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넷은 재키가 계속 쫓아다니는 것을 못견뎌하고 있답니다. 내 계획이 있는데 말씀드릴까요? 들어 보시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충고해 주십시오. 나는 우리가 이곳에서 열흘 정도 머무를 거라고 일부러 소문을 냈어요. 내일 증기선 카나크가 쉘랄에서 왜디핼파로 떠날 예정인데 나는 가명으로 예약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 필래로 가려고 합니다. 짐은 리넷의 하녀가 가져올 것이고 우리는 쉘랄에서 카나크 호를 탈 계획이죠. 재키가 우리 두 사람이 호텔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우리는 이미 멀리 가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는 아마 배 안에 있겠죠. 재키는 아마 우리가 카이로로 도망쳤다고 짐작할 테죠. 우리는 짐꾼을 고용하여 그렇게 말하도록 꾸미려고 합니다. 여행사에 연락해도 우리 이름은 없을테니 헛수고가 되겠죠. 어떻습니까, 제 생각이?" 시몬은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그것 참 좋은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돌아올 때까지 재키가 의심없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곳엔 오지 않을 겁니다. 아마 카르툼까지는 갈 수 있겠죠. 그 후엔 케냐로 향할지 모릅니다. 재키가 그곳까지 쫓아올 리는 없겠죠?" "네, 그럴 겁니다. 경제적으로 언젠가는 손을 들어 버리고 말 겁니다. 그녀는 돈이 많지 않은 거 같던데‥‥" 시몬은 감탄하는 시선으로 포와로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당신은 명석한 분이시군요. 나도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실 그녀는 어려운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키는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올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