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3편 (3/21)
앨러튼 부인의 모습이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저는 어머니의 엄격하고 완고한 덕분에 훌륭히 컸어요." 팀은 웃으면서 편지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앨러튼 부인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애는 여태껏 거의 모든 편지를 보여주었는데 왜 조안나의 편지는 읽어주지 않을까? 내가 들어선 안되는 이야기가 씌어 있는 모양이지?' 앨러튼 부인은 고개를 흔들며 자기의 생각을 떨쳐 버리고 점잖게 행동하려고 다짐했다. "그래, 조안나는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니?" "그냥 그런가 봐요. 그녀는 메이페어에서 식품점을 하나 냈으면 해요." "그 애가 돈이 어디 있니? 언제나 궁색해서 쩔쩔매면서." 앨러튼 부인은 못마땅한 투로 말하더니 다시 덧붙였다. "그애는 그러면서도 너무 값비싼 옷을 입더구나. 언제나 옷차림만 그럴 듯 하게 꾸미니 무슨 실속이 있겠니?" 팀은 건성으로 말했다. "네, 그건 그래요. 조안나가 돈을 내는 건 아니겠죠, 뭐. 어머니, 너무 비약은 하지 마세요. 돈은 아마 다른 사람이 내나 봐요." 앨러튼 부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어쩜 모두 그런 식으로 살아나갈까? 알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 그것도 모두 타고난 능력인 걸요. 어머니도 그런 사람들처럼 돈을 마구 써 버릴 수 있고, 돈이 무서운 줄 모른다면 외상 거래도 가능할 거예요." "그야 그렇겠지. 그러나 결국에는 가엾은 조지 우드 경처럼 파산해버리고 급기야는 법정에 서는 꼴을 당할 거야." "어머니는 그 우드 영감님에게는 늘 관대하시군요. 그 사람이 무도회에서 어머니보고 장미꽃처럼 아름답다고 했기 때문인가요?" "별소릴 다 하는구나. 넌 언제나 그분 이야기만 나오면 그런 식으로 말하더구나. 조지 경은 예의바른 사람인데 그렇게 말을 하면 안된다." "그분에 대한 우스운 소문을 좀 들었어요." "나는 조안나와 네가 다른 사람에 대해 여러 말을 해 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계속되면 나중에 큰코 다치는 일이 있을 게다." 팀은 신경이 곤두서는지 눈썹을 치켜 세우고 말했다. "어머니, 그만 진정하세요. 전 어머니가 우드 영감님을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너는 그분이 우드홀을 파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나를 모를 게야. 그곳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셨단다." 팀은 어머니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결국 그는 자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네, 어머니 말씀이 맞는 거 같군요. 얼마 전, 리넷이 우드홀을 개조하고 나서 변한 모습을 구경하러 오라고 그 영감님을 초청했는데 그분은 그냥 거절했답니다." "그랬을 거다. 나도 그분을 이해할 수 있어. 리넷이 사려깊은 여자였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다." "영감님은 리넷을 좋아하지 않는 거 같더군요. 그녀를 대하면 낮은 소리로 욕을 하거든요. 그분은 리넷이 우드홀을 산 걸 용서하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그 낡고 쓸모없는 영지를 거액을 치루고 샀는데도요." "너는 그 영감님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겠니?" 앨러튼 부인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어머니, 전 솔직한 심정으로 이해가 안 돼요. 왜 지난 과거만 붙잡고 살려는 거죠? 과거에만 집착하고 연연해 하는 이유가 뭐죠?' "팀, 그럼 넌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글쎄요, 저는 매일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오래 북은 땅이나 고옥을 지키고 사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능력껏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럼 증권 투자 같은 것으로 한밑천 잡는 걸 말하는 거냐?" 팀은 못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그러면 증권 같은 걸 하면 안 되나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큰 손해를 입게 되면 어쩔 셈이냐?" "그건 그렇고, 이집트 여행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팀은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으며 이야기했다. "벌써 결정된 거예요. 어머니도 이집트에 가보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잖아요." "그럼 언제쯤 갈 계획이니?" "다음달이 좋겠어요. 이집트는 1월이 날씨가 제일 좋대요. 몇 주일, 이 호텔에 더 묵으며 사람이나 사귀죠." 앨러튼 부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렀다. "팀, 리치 부인이 경찰서에 갈 때, 네게 함께 좀 가 달라고 했는데 어쩔 거냐? 그 부인은 스페인어를 전혀 못 한단다." 팀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 반지 때문이죠? 그 돈놀이 하는 부인의 빨간 루비 반지 때문이죠? 리치 부인은 지금도 그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우기는 것 같은데, 그건 시간 낭비예요. 괜히 가엾은 하녀만 의심하고 괴롭히는 일이에요.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나는 그 부인이 반지를 끼고 있는 걸 똑똑히 보았어요. 수영하다가 미처 반지가 빠진 걸 모르고‥‥" "그 부인은 분명히 화장대 위에 반지를 빼 놓았다고 하더라." "그렇지 않아요. 제가 이 눈으로 아주 똑똑히 보았어요. 그 부인은 이상해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가 봐요. 보나마나에요. 계속 흐리다가 하루 잠깐 해가 비친다고, 물이 따뜻하다며 수영하러 나가는 여자들이란 알아볼 노릇이에요. 그러나 저러나 법으로라도 뚱뚱한 여자들은 수영복을 입지 못하게 막았으면 좋겠어요. 그 뚱뚱한 몸에 수영복을 입고 뒤뚱거리는 꼴은 정말 가관이지요, 가관." 앨러튼 부인은 아들의 말에 심사가 뒤틀린 듯 쏘아붙였다. "팀, 네 말을 들으니 나도 이제 수영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겠구나." 팀은 어머니의 말에 큰소리로 웃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예외죠. 어머니는 처녀 못지않은 몸매인데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앨러튼 부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너와 어울릴 수 있는 젊은이가 많았으면 좋겠구나." 팀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저는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게 훨씬 더 좋아요." "팀, 조안나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니?" "아뇨,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팀의 목소리에는 완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어머니가 그건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조안나와 어울려 이야기하는 건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녀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와 오래 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 반드시 조안나가 제 신경을 건드린답니다. 저로선 이곳에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워요. 저는 앞으로 조안나를 만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여성은 오직 한 사람입니다. 어머니, 그분이 누군지 아세요?" 앨러튼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팀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멋있는 여자는 많지 않아요. 어머니는 그렇게 드문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9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롭슨 부인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코넬리아, 얼마나 멋진 일이니! 너는 운이 좋은 아이구나." 코넬리아 롭슨은 그 말에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녀는 체구가 거대하고 못 생긴 갈색 눈의 소유자였다. "네, 멋진 일이에요." 그녀는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노처녀 밴 슈일러는 이 가난한 친척들의 대화를 만족한 표정으로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저는 유럽 여행을 하는 게 꿈이었답니다." 코넬리아는 꿈꾸는 표정으로 말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저는 정말 유럽에 가리라고는 꿈에서 조차 생각지 못했어요." 밴 슈일러가 조용히 말했다. "바워즈 양도 같이 갈 거다. 그러나 그 여자는 말벗이 되기엔 부족해-그래 부족하지. 그녀는 사교적인 일을 하기엔 무리니까 네가 나를 위해 간단한 일은 해주어야 될 거 같다." "물론 해드리고 말고요. 염려 마세요, 메리 아주머니." 코넬리아는 신이 나서 활기차게 말했다. "그래, 그럼 결정된 거다. 코넬리아, 어서 바워즈 양을 좀 불러 주렴. 에드노그를 마셔야겠어." 코넬리아가 바워즈를 부르러 밖으로 나가자 그녀의 어머니 롭슨 부인이 말했다. "메리, 정말 고마워요. 아시다시피 우리 코넬리아는 사람들을 사귀지 못해서 괴로와했답니다. 그애는 굴욕감까지 느끼는 거 같았어요. 내가 그애를 데리고 여행을 다닐 능력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당신도 잘 알겠지만 네드가 죽고나서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럴 엄두도 못 낸답니다." "나도 코넬리아를 데리고 가게 되어서 기뻐요. 그애는 영리하고 싹싹한 거 같더군요. 명랑하고 심부름도 잘 하고요. 요즘 애들은 너무 타산적이고 자기만 알지요." 롭슨 부인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부유한 친척인 밴 슈일러의 누런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군요." 롭슨 부인은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컵에 노란 액을 담아가는 키가 크고 명석해 보이는 여자와 마주쳤다. "바워즈 양, 당신도 유럽에 가나요?" "네, 저도 간답니다." "정말 멋진 여행이 되겠군요." "네, 그럴 것 같아요. 아주 즐겁고 멋진 여행이 될 거예요." "당신은 외국 여행을 한 적이 있지요?" "네, 지난 해 가을에 밴 슈일러 양과 파리 여행을 했지요. 그러나 이집트 여행은 처음이에요." 롭슨 부인은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순조로운 여행이 되어야 할 텐데‥‥" 바워즈는 목소리를 낮추어 태연히 말했다. "안심하세요, 롭슨 부인.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롭슨 부인의 안색에서 불안의 그림자가 가셔지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을 다 내려가도록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앤드류 페닝턴은 우편물을 한 통씩 뜯어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갑자기 책상을 쾅 소리나게 내리쳤다. 그의 얼굴은 흥분하여 빨갛게 상기되고 이마에는 정맥이 두 줄 솟아 올랐다. 그가 책상 위의 벨을 누르자 아름다운 타이피스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빨리 록포드 씨 좀 들어오시라고 해!" "네, 페닝턴 씨." 얼마 후, 그의 동업자인 스텐데일 록포드 씨가 들어왔다. 두 사람의 모습은 거의 비슷해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들은 키가 크고 마른 체구에 머리는 반백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말끔하게 면도한 모습에 명석해 보이는 것까지 공통된 점이었다. "페닝턴, 무슨 일인가?" 그는 거듭 읽고 읽은 편지에서 눈을 떼고는 록포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느릿느릿 말했다. "리넷이 결혼했어‥‥ 리넷이." "뭐라고?" "내 말이 안 들리나? 리넷이 결혼했단 말이야, 결혼!" "아니, 언제 결혼했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우리가 소식을 듣지 못했지?" 페닝턴은 책상 위의 달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 편지를 보낼 때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벌써 결혼을 했을 거야. 4일 아침이 결혼 날짜라고 했거든. 오늘이 바로 4일이잖아." 록포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정말 놀랐는데! 뭐 다른 이야기는 없어? 누구야, 결혼 상대자가?" 페닝턴은 다시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시몬 도일." "시몬 도일? 아니 어떤 인물이야? 금시초문인데." "나도 몰라. 리넷도 그 사람에 대한 말은 없어." 페닝턴은 깨끗하고 정결한 느낌을 주는 편지를 보면서 말했다. "이 결혼은 글쎄‥‥ 좀 이상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리넷이 결혼했다는 사실이란 말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록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숙고할 문제로군, 그래." "자,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건 내가 궁금한 점이야."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그냥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록포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 무슨 계획을 세웠나?" 페닝턴이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말했다. "오늘 노르망디 호가 출항한다고 하니,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하네." "자네 정신나갔나! 그게 좋은 생각이란 말이야?" "그 영국 변호사 놈들‥‥" 페닝턴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 변호사 놈들이라니? 자네 그들과 맞붙어 보려는 건가? 아예 그런 생각일랑은 하지 말게. 그건 미친 짓이네." "나는 지금 우리 중에 누가 영국에 가야 한다는 게 아냐." "그럼 자네의 그 기발한 생각이란 도대체 뭔가?" 페닝턴은 조바심이 나는지 책상 위의 편지를 집어서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리넷이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간다네. 그곳에서 한 달 가량,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머물지 몰라." "이집트로?" 록포드는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그가 친구를 쳐다보자 곧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음, 이집트‥‥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네." "그렇다네. 리넷의 신혼여행 도중에 우연히 만나도록 하는 거야. 리넷과 그녀의 남편이 신혼의 달콤한 꿈에 젖어 있을 때 기회를 봐서 해치워 버리는거야." 록포드는 불안해 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리넷은 철저하고 빈틈이 없는 여자가 아닌가? 그러나‥‥ 방법이‥‥" 페닝턴은 침착하고 여유있게 말했다. "아냐,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마주쳤다. 록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페닝턴은 시계를 쳐다본 후 말했다. "서둘러야겠어, 두 사람 중에 누가 가든지." 록포드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자네가 가는 게 좋겠네. 리넷은 자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자네를 앤드류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따르니까 말이야. 그러니 일이 더 쉬울 수 있어." 페닝턴은 표정이 갑자기 경직되었다. "글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일까가 아니라 분명히 잘 해야 하네. 우리는 지금 아주 심각한 상태임을 잊지 말고 말이야." 11 윌리엄 카미클은 의아한 표정으로 짐을 들고 들어오는 야윈 청년에게 말했다. "짐에게 이리 오라고 해." 잠시 후, 짐 팬숍이 들어와 용건이 궁금한 듯 숙부를 쳐다보았다. 카미클은 고개를 들어 짐을 쳐다보고 나서 신음소리를 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왔냐?" "찾으셨어요?" "그래, 이리 가까이 오너라." 청년은 자리에 앉아서 숙부가 건네준 편지를 살펴보았다. 카미클은 그 모습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니?" "글쎄요, 글씨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군요." 짐 팬숍과 숙부인 윌리엄 카미클은 그랜드 카미클 법률사무소의 공동 경영자이다. 카미클은 숙부가 준 이집트에서 방금 도착한 항공 우편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런 날에 사업상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너무나 따분한 일입니다. 우리는 매나 하우스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페이웅까지 왔답니다. 모레에는 증기선을 타고 나일 강을 거술러 올라가서 룩소르와 아스완까지 가려고 계획했지요. 어쩌면 카타툼에도 갈지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 차표 사정을 알기 위해 쿡 회사에 들렀더니 글쎄 그곳에 제 미국인 재산 관리인인 앤드류 페닝턴 씨가 와 있더군요. 2년 전 페닝턴이 영국에 왔을 때 당신도 만난 적이 있지요? 저는 그분이 이곳에 온 걸 몰랐고, 그분 역시 제가 이곳에 온지를 몰랐대요. 제가 결혼한 일조차 모르고 있더군요. 제 결혼을 알리는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여행을 떠났나 봐요. 그분도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나일 강을 여행할 겁니다. 정말 굉장한 우연이지요? 그건 그렇고 바쁘신 와중에도 여러 모로 신경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그 청년이 다음 장 편지를 넘기려고 하는데 카미클이 재빨리 편지를 빼앗았다. "그 정도 읽었으면 됐어. 그 뒤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짐 팬숍은 잠깐 생각하는 척 하곤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이들의 만남은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닌 것 같은데요‥‥" 숙부는 그 의견에 공감이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너, 이집트에 다녀오지 않을래?" "꼭 제가 가야 하나요?" "내 마음은 조급하단다. 서둘러야 할 거 같다." "숙부님, 왜 꼭 제가 가야 하는 거죠?" "짐, 머리를 회전시켜 봐라. 리넷은 너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어, 그러니 네 얼굴을 모른단 말이야. 페닝턴도 너를 모르고‥‥ 비행기를 타면 제 시간에 그곳에 닿을 게다."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곳에 가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도대체 뭐죠?" "머리를 충분히 활용하고 눈과 귀를 십분 활용하도록 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행동을 취하는 거지." "그렇지만 저는 내키지 않아요." "싫어도 꼭 해야 한다." "꼭 해야만 하나요?" 카미클이 망설이며 말했다. "이 일에는 승패가 걸려있어." 12 오터번 부인은 머리에 두른 터번을 풀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는 이제 예루살렘이 지겨워. 차라리 이집트로 떠났으면 좋겠어. 왜 우리가 그리로 가면 안 되는 거지?" 그녀는 딸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다시 쏘아 붙였다. "너도 말을 시키면 최소한 대답은 하도록 해라." 딸인 로잘리 오터번은 신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사진 아래엔 이런 글이 씌어져 있었다. 시몬 도일 부인. 결혼 전, 리넷 리지웨이라는 이름으로 사교계에서 이름을 떨친 미모의 여인. 도일 부부는 이집트에서 신혼 여행을 즐기고 있음. 그녀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어머니, 이집트에 가시고 싶으세요?" "그래, 난 여기보다 이집트에 가고 싶다." 오터번 부인은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거만하잖니. 사실 내가 여기 머무는 것만도 굉장히 광고가 될 텐데, 호텔비를 할인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슬쩍 말을 비쳤더니 글쎄 건방지게 뭐라는 줄 아니‥‥" 로잘리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디를 가나 모두 똑같아요. 한시바삐 여길 떠났으면 좋겠어요." 오터번 부인은 성급히 말문을 열었다. "오늘 아침엔 지배인인지 뭔지 하는 작자가 와서 무례한 태도로 방을 비워 달라더라. 방들이 모두 예약되었다고 예정보다 일찍 비우라는 거야. 이런 무례한 행동이 어디 있담!" "그럼 어서 다른 숙소를 찾아봐야겠군요." "아니다, 그럴 거 없다. 나는 이미 여행 준비가 끝났으니 비행기로 출발하면 된다." 로잘리는 반면에 침착한 태도로 나지막히 말했다. "우리가 이집트로 가는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에요. 이집트에 간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으니까요." "맞다, 어디 그게 죽고 사는 문제냐." 그러나 오터번 부인은 착각을 한 것이었다. 그 여행이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달린 것이었다. 제 2 부 이집트 1 앨러튼 부인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저 사람이 탐정인 에르큘 포와로야." 앨러튼 부인과 그녀의 아들은 아스완에 위치한 카타랙트 호텔 정원의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 양복을 입은 키 작은 남자가 키가 크고 날씬한 여자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팀 앨러튼은 참을 수 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남자 말이에요?" "응, 저 남자 말이다." 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길 왔을까?" 앨러튼 부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팀, 너무 흥분한 거 같구나. 남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저 범죄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이 없단다. 나는 탐정소설은 흥미없어. 난 그런 건 한 번도 읽지 않았지. 포와로 씨가 여기 온 건 아마 사건 때문이 아닐 거다. 그는 제법 많은 돈을 저축해 놓았기 때문에 이제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거란다." "네, 바로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눈이 아플 정도로 쳐다보면서 있지요." 앨러튼 부인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포와로와 여자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포와로 옆에서 함께 걷는 여자는 그보다 약 3인치 가량 컸는데, 그녀는 우아한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앨러튼 부인은 감탄하며 말했다. "굉장히 예쁜 여자로군!" 앨러튼 부인은 시선을 재빨리 아들에게로 돌렸다. 팀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대꾸했다. "네,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로군요. 그런데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샐쭉한 표정이잖아요." "그건 표정만 그런건지 누가 아니?" "아니에요, 정말 기분 나쁜 표정이에요. 불쾌한 얼굴인 걸요. 그러나 미인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군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 여자는 바로 포와로 곁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오터번은 접은 양산을 무료한 듯 빙빙 돌리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녀의 얼굴은 팀이 말한 것처럼 유쾌한 표정이 아니었다. 눈쌀은 잔뜩 찌푸린 채였고, 꼭 다문 입술은 축 처져 있었다. 그들은 호텔 정문을 지나서 왼쪽으로 구부러져서 그늘이 시원해 보이는 공원으로 향했다. 에르큘 포와로는 다정다감하게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흰 실크 양복에 파나마 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한 그의 손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파리채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이곳에 반했어요. 엘러팬틴의 검은 바위와 태양, 그리고 강 위의 작은 배들‥‥ 모두가 그림처럼 아름다워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