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2편 (2/21)
"포와로 씨, 우리는 당신을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자주 들려 주십시오. 당신이 저희 레스토랑에 오시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때 시체 한 구와 웨이터 한 명, 블롱댕, 미인 한 명이 관련된 지나간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블롱댕 씨, 정말 친절하시군요." "포와로 씨, 동행이 있으십니까?" "아뇨, 혼잡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 주방장에게 멋진 요리를 만들어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림같이 멋진 요리를요. 여자는 아름답지만 약점이 하나 있지요. 그건 여자들이 음식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른다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은 정말 음식을 즐길 줄 아는 분입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자, 그럼 포도주는?" 계속 주문이 이어졌다. 주문을 받고 물러가기 전, 블롱댕은 잠시 망설이다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포와로 씨, 또 사건이 발생했습니까?" 포와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난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좋을 때 저금을 한 덕택에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참, 부럽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생각처럼 내 생활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답니다." 포와로는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일을 해야만 잡념이 없어진다고요. 그 말이 이제야 실감 나는군요." 포와로의 말에 블롱댕이 나서며 말했다. "그러나 할 일은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여행을 하시는 것도 좋을 텐데요." "아, 그야! 나도 여행을 떠날 생각을 했답니다. 이번 겨울에는 이집트에나 가 볼까 합니다. 그곳 기후가 좋다고 해서요. 이곳의 기분 나쁜 안개와 우울한 날씨, 지긋지긋한 비에서 해방되려고요." "아, 이집트에요!" 블롱댕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지금은 이집트까지 배를 타지 않고 기타 여행을 할 수 있지요. 도버 해협만 빼 놓는다면." "배를 타시는 걸 싫어하십니까?" 에르큘 포와로는 고개를 저으면서 몸을 떨었다. "저도 배는 질색입니다." 블롱댕도 맞장구쳤다. "배만 타면 속이 메슥거린답니다." "그렇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닙니다. 배가 아무리 요동을 쳐도 전혀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배여행을 유쾌히 할 수 있고, 또 즐기겠죠." 블롱댕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 하느님도 불공평하시죠?" 주인은 머리를 몇 번 흔든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얼마 후, 웨이터들이 와서 숙련된 솜씨로 식탁 위에 음식을 늘어놓으며 상을 차렸다. 식탁에는 바삭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버터, 얼음통, 그외에 고급 요리에 나오는 여러 가지 소스가 놓여졌다. 흑인으로 구성된 밴드가 불협화음의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추는 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포와로의 머리에 막연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았다. '저들의 표정은 약속이나 한 듯 따분해 보이는군. 그러나 저 똥뚱이들은 흥겹게 노는군. 그러나 파트너의 표정은 그렇지 않은데. 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살찐 여자는 정말 행복한 얼굴이군‥‥ 뚱뚱하지만 저 여자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날씬하고 예쁜 처녀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기품과 품위가 있어.' 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으나 그들 가운데 몇 명은 공허한 얼굴이었고 또 다른 젊은이들도 왠지 지친 얼굴이었으며, 몇몇 다른 사람들은 불행해 보였다. 누가 젊은 시절을 행복한 때라고 말했나, 그건 실로 우매한 말이다. 일생 중, 가장 상처를 받는 시기가 젊은 시절이다. 여러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 있었는데, 포와로는 한 쌍의 젊은이를 바라보자 곧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그들은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큰 키에 어깨가 넓은 젊은이와 날씬한 아가씨였다. 그들은 행복한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기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밝은 모습이었다. 춤은 바로 끝났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후에도 그 젊은 한 쌍은 두 곡이나 계속 춤을 추고, 포와로와 가까운 자리의 탁자에 와서 앉았다. 젊은 여자가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그녀가 파트너에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을 때, 포와로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포와로는 웃음 이외의 것을 발견하고는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저 아가씨는 목하 열애 중이군. 그러나 너무 뜨거운 사람은 오히려 위험을 부르지!' 그 순간, 그들이 '이집트'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두 젊은이의 말소리가 포와로에게 분명히 들려왔다. 여자는 쾌활하고 명랑하게 말하는데 R 발음에 외국식의 부드러움이 울려 나왔다. 반면에 남자의 목소리는 저음의 세련된 영어를 구사했는데 그런 대로 교양이 있는 말투였다. "시몬,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리넷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그 여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일은 당신에게 꼭 맞는 일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 능력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어. 이 모두가 정말 잘 된 일이야." 여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능력이 인정되려면 석 달은 걸릴 거예요. 그래야 쫓겨나지 않는 게 확실해지겠죠.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래, 그후에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어.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후에 우리는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가는 거예요.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긴 하겠지만, 나는 언젠가 꼭 이집트에 가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나일 강과 피라밋, 그리고 끝없는 사막‥‥" 남자가 행복에 젖어 있는 여자에게 정답게 속삭였다. "재키, 우리 함께 이집트에 가게 될 거야. 멋지게 보낼 수 있어." "글쎄, 내 기분처럼 당신도 그렇게 황홀할까요? 나는 당신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바뀌었고 눈은 두려움으로 한껏 크게 떠졌다. 남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재키, 어리석긴‥‥ 그런 소리 그만해." 그러나 여자는 아직도 불안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글쎄, 정말‥‥" 여자는 망설이다가 남자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우리 춤이나 춰요." 포와로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와 여자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들고 있는 남자, 글쎄?" 7 조안나 사우드우드가 먼저 말했다. "리넷, 그 남자 좀 거칠은 사람일 것 같아." 리넷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재클린은 분별력이 있으니까요."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머는 법이야.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고 과대 평가하게 되지." 리넷은 화가 나는 듯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나, 피어스 씨를 만나서 의논 좀 해야겠어." "무슨 의논?" "너무 더러운 오두막이 있어서 그걸 헐어 버려리고요. 거기 사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려고요." "아주 깨끗한 계획이군 그래." "그 오두막은 헐어야 해요. 그 오두막은 수영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그 오두막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할까?" "거의가 찬성하는데 두어 명이 말을 듣지 않고 있어요. 사실 그래서 좀 귀찮아요. 그들은 자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결국에는 네 뜻대로 될 텐데 뭘 걱정이야?" "조안나, 이건 정말 그들에게도 손해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야 맞는 말이지. 그렇지만 강요된 일이기 때문이야. 그들은 선택할 기회가 없었어. 리넷, 내 말을 잘 들어 봐. 여태껏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적이 있으면 말해 보렴." "그럼요, 여러 번 있어요." "그래, 정말 구체적인 예를 한 번 들어 봐.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그런 기억은 없을 거야. 생각날 턱이 없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황금 자동차를 탄 리넷 리지웨이에게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아." 리넷이 그 말에 신경질적으로 응수했다. "그럼 나보고 이기적이라는 건가요?" "아냐,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리넷에게는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는 거지. 재산과 미를 겸비한 리넷에게 누가 감히 대항하겠어? 너는 돈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름다운 미소로써 소유하지. 그러니까 너를 모든 걸 소유한 여자라고들 하는 거야." "조안나,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그만해요." "리넷, 그럼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니?" "아니, 내 생각은‥‥ 하여튼 난 그런 말은 참을 수 없어요." "그야 당연히 듣기 싫겠지. 너는 점점 지겹고 안일한 생활이 싫증날 거야. 그러면서도 여전히 값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즐길 거야. 나는 이따금 네가 통행금지라고 씌어있는 길을 가야 한다면,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상상이 안 되더구나." "조안나, 이제 그런 말은 그만해요." 그때 윈들쉠 경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리넷은 그에게 말했다. "조안나가 방금 아주 심한 말을 했답니다." 조안나는 어색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 모두가 심술 때문이야, 심술." 그녀는 실례한다는 말도 없이 방을 나갔다. 방금 들어온 윈들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서 자리를 피해 준 것이었다. 윈들쉠은 말을 하지 않다가 얼마 후에 입을 열었다. "리넷, 그래 마음의 결정은 했소?" 리넷은 일부러 다짐해 두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말을 해 나갔다. "내 태도가 애매했나요? 그래서 저를 나쁘게 생각하셨지요? 마음이 결정되지 않았으니까 '아니오'라고 해 둘까요?" 윈들쉠은 리넷의 말을 막았다. "리넷, 그런 말은 하지 마오. 당신이 원한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주리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우리 두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오." 그 말에 리넷이 변명조로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저는 이곳의 모두가 좋아요.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우드홀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고 계획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꿈이 이루어진 거죠.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나도 이곳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오. 모든 게 다 완벽하오. 당신의 솜씨는 참으로 뛰어나오." 윈들쉠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찰튼베리도 좋아하지 않소? 그야 개조해야 할 곳이 더러 있지만, 당신은 그 방면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잘 될 거라고 생각하오." "그럼요, 찰튼베리는 훌륭한 곳이지요" 리넷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갑자기 을씨년스러워졌다. 그때까지 생각했던 모든 것, 그녀의 충족감을 가로막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리넷은 윈들쉠이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자기의 심적인 변화를 생각했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찰튼베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윈들쉠의 입에서 찰튼베리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찰튼베리는 꽤 유명한 곳으로 윈들쉠의 선조들이 엘리자베드 여왕 때부터 소유한 정원이다. 찰튼베리의 여주인이 된다는 것은 사교계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윈들쉠은 영국에서 인기있는 사람중의 한 명이다. 만일 리넷이 그와 결혼한다면, 윈드쉠은 우드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우드홀은 어느 모로 봐도 찰튼베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일 테니까. 이곳은 그녀-리넷 자신의 소유지였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이곳을 꿈꾸어 왔으며, 이제는 이곳을 소유하게 되었다. 리넷은 우드홀을 개조하고 치장하기 위하여 거액을 투자했다. 어쨌든 이곳은 바로 리넷의 소유지이다. 그녀의 왕국인 것이다. 그러나 리넷이 만일 윈들쉠과 결혼한다면 이곳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곳과 찰튼베리 중에서 분명히 자기 소유인 찰튼베리를 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넷 리지웨이란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 그녀는 거액의 지참금을 윈들쉠에게 안겨주고 백작부인이 되겠지. 그럼 리넷은 왕비는 되지만 여왕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리넷은 자기의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중얼거렸다. "참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이야." 리넷에겐 우드홀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실로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었다. 재키를 만났을 때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재키는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그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면 죽고 말겠다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리넷은 그녀의 열렬한 사랑과 윈들쉠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한 번 비교해 보고 싶었다. 자기는 제클린에 미치지는 못한다. 아니, 앞으로 영원히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 열린 창문 틈으로 자동차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리넷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저었다. 아마도 재키와 그의 약혼자가 도착한 것이리라. 리넷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섰다. 리넷은 현관문에 나와서 재클린과 그의 약혼자 시몬 도일이 자동차에서 내리는 것을 쳐다보았다. "리넷!"하고 외치며 재클린이 달려왔다. "리넷, 이 사람이 내가 말한 시몬이야. 시몬, 인사하세요. 내 친구 리넷이에요. 아주 미인이죠." 리넷은 친구의 약혼자인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푸른 눈에 보기좋게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와 각진 턱의 소유자였다. 리넷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시몬의 손은 단단하고 따사로왔다. 리넷은 그의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마치 소년처럼 순수하고 진심이 가득 담긴 눈길을 리넷에게 보냈다. 순간적으로 따사롭고도 짜릿하게 하는 흥분이 온몸에 번졌다.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잘 오셨어요, 시몬 씨. 어서 들어오세요. 새로운 토지 관리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앞장 서서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재키의 약혼자가 정말 마음에 들어. 지금 이 순간 나는 굉장히 행복해.' 리넷은 기쁜 반면, 그 사람이 다름아닌 재키의 약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8 팀 앨러튼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옆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았다. 앨러튼 부인은 제법 머리가 희끗희끗한 쉰 살 가량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엄격하고 가혹할 정도로 대하고 있으면서 그 뜨겁고 지극한 사랑은 감추었다. 그러나 처음 부인을 보는 사람일지라도 그녀의 그런 태도에 속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들 팀도 어머니의 마음을 모조리 꿰뚫어 보고 있는 터였다. 먼저 아들 팀 앨러튼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 마조르카 섬 좋으세요?" 앨러튼 부인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적어도 그곳은 비용이 적게 들지 않겠니?" 팀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 추울 거예요." 청년은 키가 크고 야윈 젊은이였다. 그는 검은 머리에 가슴은 약간 좁은 듯 했고,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그의 눈은 우수에 찬 듯 했고, 길고 가는 섬세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폐결핵을 앓았기 때문에 그리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글쓰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의 작품은 대단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팀,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앨러튼 부인은 예리한 여자였으므로,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아들을 쳐다보았다. 팀 앨러튼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지금 이집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집트?" 앨러튼 부인은 의아한 눈초리로 아들을 보았다. "어머니, 이집트는 지금쯤 정말 따뜻할 거예요. 평화롭게 빛나는 황금빛 사막과 나일강‥‥ 저는 나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도 가고 싶으시죠?" 앨러튼 부인은 그저 담담히 말했다. "그래, 나도 가고 싶단다. 그러나 이집트 여행을 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우리는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할 처지잖아.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야." 팀은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크게 켰다. 그는 기운찬 모습이 되어 다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 여행 비용은 염려마세요. 제가 마련할 테니까요. 증권거래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증권 시세가 변동되었대요. 우리가 산 주식값이 껑충 올랐다더군요. 아침에 그 소식을 들었어요." 앨러튼 부인은 이내 표정이 바뀌어 날카롭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 연락을 받았다고? 오늘 아침에는 편지 한 장 외에는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그리고 그 편지는 바로‥‥" 앨러튼 부인은 이야기를 멈추고 갑자기 입술을 질근질근 물어 뜯었다. 팀은 밝은 얼굴이었다가 이내 표정이 바뀌더니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렸다. 그러나 그는 기분이 좋은 날이었으므로 명랑하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그 편지는 조안나가 보낸 것이란 말씀을 하시고 싶어서 그렇게 계신 거죠? 네, 어머니. 그 편지는 바로 조안나가 보낸 거예요. 어머니는 마치 탐정 같으세요. 아마 에르큘 포와로도 어머니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할 거예요." 앨러튼 부인은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듯 편안치 못한 얼굴로 변명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그 글씨를 본 거야." "어머니는 그 글씨가 주식 중개인이 쓴 글씨가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아셨죠? 물론 조안나의 필적은 너무 형편없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았을 거예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엉망으로 써갈긴 봉투였으니까요." "조안나가 왜 편지는 썼니? 특별한 소식이라도 있는 거니?" 앨러튼 부인은 일부러 관심이 없는 듯이 덤덤히 물었다. 그녀는 아들 팀 앨러튼과 육촌지간인 조안나 사우드우드가 절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처럼 두 사람은 걱정할 정도로 이상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녀도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전혀 의심할 사이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팀은 그녀에게 이성을 느낀 적도 없었으며 조안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조안나와 팀이 절친한 이유는 두 사람은 세상사에 똑같이 관심이 많았고, 그들은 주위의 친구나 안면있는 사람들까지도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교제하기를 즐겼고 토론하는 것도 유난히 좋아했다. 조안나는 빈정거리는 습관만 버린다면 별 문제가 없는 유쾌한 여자였다. 앨러튼 부인은 아들이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찾아오거나 편지를 보내오는 것은 싫었다. 앨러튼 부인은 그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질투심일지도 모른다. 앨러튼 부인과 그의 아들은 잘 통하는 벗 같았기 때문에, 그녀는 아들이 다른 여자를 좋아하거나 관심을 보일 때마다 언제나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그들에게 참견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따금 아들과 조안나가 열을 내면서 이야기하다가 앨러튼 부인이 다가가 화제에 끼이게 되면 그 열띤 분위기가 이상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별로 달갑지 않은 태도로 그녀를 대화에 끼어 주는 것이었다. 앨러튼 부인은 조안나가 위선적이고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를 싫어했으며 조안나가 억양을 나타내지 않고 책 읽듯 말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다. 팀은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편지를 하나 꺼내서 죽 읽어 내려갔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흠, 아주 긴 편지로군 그래." "별 내용은 없어요. 디베나니시 부부가 이혼할 거라고 씌어 있어요. 윈들쉠 경은 캐나다로 돌아갔고 올드 몬티는 음주 운전을 해서 고발당했대요. 윈들쉠은 리넷에게 딱지를 맞아서 아마 크게 실망했을 거래요. 글쎄 리넷이 새로운 토지 관리인과 결혼할 것 같다고 하는군요." "참 이상하구나. 그 젊은이는 어떻게 생겼다던? 험상궂은 사람인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나 봐요. 그 남자는 데븐셔의 도일 가문 사람인데 가진 게 없나 봐요. 그리고 리넷의 친한 친구인 재키의 약혼자였었대요." 앨러튼 부인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구나." 팀은 정다운 눈길로 어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애인이나 남편을 빼앗는 일은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는 분이시니까요." "글세, 요새는 통 도덕 관념이 없는 거 같다‥‥ 예전에는 좋았어. 요즘 젊은이는 하고 싶은 일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다 하려는데 그건 큰일이란다." 팀은 싱긋 웃었다. "그건 생각의 부재 탓이에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무조건 행동에 옮기니까요. 참 리넷도 어리석은 아가씨로군." "그런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구나." "어머니, 남의 일인 걸요.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제 생각도 어머니와 같아요. 저는 단 한 번도 남의 아내나 약혼자를 좋아한 적이 없어요." "아무렴, 나는 너를 믿는단다. 너는 그런 천박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를 훌륭히 키웠다고 자부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