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大 天 王 (사대천왕) - 33편 (33/44)
그 말에 비마왕은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흐흐...... 잘 찾아보시구료. 육천마의 여섯분 선배들 사이에......!" 툭......! 의미심장한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비마왕은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혀를 깨물어 자진한 것이었다. "지독...... 한 놈!" 고루천마는 앓는 듯한 신음을 발하며 일어섰다. 그때, "수고하셨어요. 지옥혈황시주!" 한 줄기 온화한 음성과 함께 대비신니와 망아사태가 막붕비 쪽으로 다가왔다. 망아사태, 그녀는 여전히 고깔로 얼굴을 깊숙이 감추고 있었다. 이때, "지옥혈황!" "으음! 자네가 요즘 새로이 떠오르는 신성(新星) 지옥혈황(地獄血皇)인가?" 대비신니의 말에 적수천마와 고루천마는 놀란 표정으로 막붕비를 주시했다. 막붕비는 대비신니에게 포권하며 고소를 지었다. "신니(神尼)의 천기안은 속이지를 못하겠군요!" 이어, 그는 힐끗 망아사태를 일견한 뒤 궁금한 듯 물었다. "한데...... 귀문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동문끼리 살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셨는지요?" "휴...... 얘기하자면 길어요!" 대비신니는 탄식하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어,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십 년 전---- 외지에 나갔다온 만겁마종은 갑자기 성격이 급변했다. 신중하고 관대하던 패무극, 그가 갑자기 호전적이고 포악한 성격으로 변한 것이었다. 그는 무림제패의 날이 왔다며 급격히 세력을 확장시켰다. 천하 각지에서 거마효웅들을 끌어 모으고 만겁마가에서조차 금기로 되어 있던 각가지 사술로 마인들을 만들어 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강시의 제련이었다. 패무극은 만겁마가 비전의 강시마경으로 중원모처에 숫자 이상의 강시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는 한편, 그는 호전적인 소장파들을 만겁마가의 주력군단의 요직에 앉혀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만겁마가의 원로들은 소장파들을 만류하면서도 그것이 가주의 권한에 속한 일인지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석 달 전, 한 가지 일로 마침내 참고 참았던 원로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마모(魔母) 여운상(麗雲霜)! 패무극의 정실, 그녀는 모종의 일로 패무극과 크게 다툰 후 자살을 기도했다. 결국 그녀는 시녀들의 응급조치로 겨우 회생할 수 있었다. 하나, 그 직후 패무극은 마모에게 독수를 써서 모든 혈도를 막아 버린 채 뇌옥에 감금시켜 버렸다. 지금 마모는 식물인간이 된 채 겨우 연명해 나가고 있었다. 그 후, 패무극과 마모 여운상의 양녀 혈관음 빙화정이 만겁마가를 탈출했다. 그녀는 악마혈종을 지닌 채 가출한 것이었다. 이에 대노한 패무극은 전문도에게 혈관음의 추살령을 내렸다. 결국, 혈관음은 옥문관 부근에서 생포되었다. 하나, 그때 그녀의 몸에서는 이미 악마혈종(惡魔血鐘)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 때문에 혈관음은 참살을 면했으나 패무극에게 악마혈종을 감춘 곳을 대라고 지독한 고문을 당했었다. 혈관음이 끝내 불지 않자 패무극은 수하들에게 그녀를 능욕하도록 시켰다고도 했다. 하나, 혈관음은 윤간당하면서도 끝내 악마혈종의 종적을 불지 않았다고 한다. 이같이 패무극의 만행은 극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된 만겁마가의 원로들, 그들은 마침내 육대천마를 주축으로 패무극에게 모반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반을 삼태상 중 가장 덕망 높은 대비신니에게 지휘해 주도록 부탁하기 위해 적수천마와 고루천마가 대비암을 찾아온 것이었다. -불사전황(不死戰皇). -천뇌자(千腦子). -대비신니(大悲神尼). 그들 삼 인(三人)이 바로 마가삼태상이었다. 개개인이 만겁마종 패무극만큼 강한 초고수들, 그들을 일컬어 달리 천(天), 지(地), 인(人) 삼태상이라고도 한다. 천태상(天太相) 불사전황(不死戰皇)---- 그는 무공만으로는 삼 인 중 으뜸이었다. 하나, 성격이 열화 같은 인물이라 철저한 비밀을 맡길 수가 없었다. 그의 제자가 바로 사대가신 중 전마 혼해룡이었다. 지태상(地太相) 천뇌자(千腦子)---- 가장 심기가 깊은 자, 그는 계산과 암계에 밝은 자로 패무극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당연히 모반에는 거론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되자, 결국 인태상(人太相)인 대비신니가 적격의 지도자로 남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삼태상 중 한 명이기도 하나 한 번도 무공을 시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혹자는 대비신니가 불사전황 이상으로 강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대비신니, 신비에 싸인 불가의 여승, 그녀는 바로 마모 여운상의 스승이기도 했다. * * * 막붕비, 그는 문득 주위를 돌아보다 흠칫했다. 망아사태, 언제였는지 그녀가 장내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신니! 망아(亡我)란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막붕비는 문득 궁금한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물음에 대비신니는 일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망아는 마모에 이어 빈니가 거둔 두 번째 제자예요. 그 아이가 대비암에 온 지는 이제 석 달 정도 되었어요!" 막붕비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죄송하지만 망아스님의 속세명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상대로 대비신니는 그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불문에 들어온 이상 속세에서의 신분은 별 의미가 없어요." 막붕비는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이때, 적수천마와 고루천마는 그 사이 비마왕의 시체를 처리하고 돌아왔다. 문득, 대비신니는 유현한 눈으로 막붕비를 주시하며 물었다. "소시주는 저희 만겁마가에 볼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어렵지 않으면 빈니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겠어요?" 막붕비는 그 말에 흠칫했다. (역시 늙은 생강이 매운데......!) 이어, 그는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생은 귀문의 한 분 요인을 만나러 왔습니다!" "혈관음 소가주 말인가요?" 막붕비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귀신이군!) 그는 갈수록 대비신니의 안목에 놀라며 대답했다. "그 분에게 긴히 물어 볼 것이 있어 만나 뵈어야만 합니다!" 대비신니는 그 말에 고운 아미를 모았다. "마가의 경계망은 환우최강이랄 수 있어요. 더군다나 혈관음 소가주는 엄중한 지하뇌옥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소가주에게 접근하려는 것이지요?" 막붕비는 그 말에 지체없이 대답했다. "비마왕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 "......!" 듣고 있던 고루천마와 적수천마는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하나, 대비신니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용술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전일 죽은 환마령의 시체에서 한 권의 역용비급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비록 환우십강 중 천면신투(千面神偸)의 그것만은 못해도 대단히 정교한 것이었다. 문득, 막붕비는 은근히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대비신니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소생이 아직 천마애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 "......!" 고루천마와 적수천마, 그들도 뭔가 결정을 바라는 시선으로 대비신니를 주시했다. 대비신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 어린시주를 이용하면 마가 내의 피아를 가릴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윽고, 그녀는 결심한 듯 막붕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적수천마께서 소시주를 안내해 드릴 거예요!" 그제서야 막붕비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신니!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 드릴 것이 있습니다!" 대비신니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함께 온 여시주는 빈니가 잘 보살펴 드리겠어요!" 이어, 그녀는 문득 적수천마를 향해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슥! 적수천마는 대비신니를 향해 포권하며 남쪽으로 날아올랐다. "하오면...... 다시 뵙기를......!" 막붕비도 대비신니에게 포권하며 총총히 적수천마를 뒤따라 날아갔다. "......!" "......!" 대비신니와 고루천마는 나란히 선 채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문득, 고루천마는 염려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외부 인물을 본문의 분규에 끌어 들여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그는...... 본마가와 인연이 많은 시주예요. 어쩌면...... 그 시주에게 본문은 큰 은혜를 입게 될지도 몰라요!" 대비신니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고루천마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으나 더 묻지는 않았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 * * -천마애(天魔崖). 대비암의 남방 오십여 리 부근에 자리한 단애, 깎아지른 유리벽처럼 가파른 단애. 그것은 중간부터 자욱한 운무에 뒤덮여 있어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하나, 내공이 오 갑자 이상된 자라면 운무를 꿰뚫고 볼 수 있으리라. 고성(古城)! 한 채의 거대한 고성이 운무 속에 우뚝 버티고 서 있음을...... 사방 수십 리에 이르는 거대한 청강석의 석성(石城)! <만겁마성(萬劫魔城).> 바로 마도(魔道)의 하늘 만겁마가의 총본영이었다. 천여 년 전, 사대천왕끼리 대접전으로 천궐마황산(千闕魔皇山)에 있던 만겁구중궐은 초토화 되고 말았다. 이에, 만겁마종의 후예들은 남하하여 이곳 천마애에 새로운 성(城)을 쌓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만겁마종(萬劫魔宗)이었다. 밀실(密室)---- 만겁마성의 깊은 곳에 자리한 밀실이었다. 츠으...... 츠으...... 시뻘건 핏무리에 뒤덮인 채 한 명의 괴인이 앉아 있었다. 오른 팔이 없는 독비괴인, 그의 무릎에는 한 자루 기형고검(奇形古劍)이 붉은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흡혈마황검(吸血魔皇劍)! 바로 악마삼보 중 하나인 흡혈마황검이었다. 독비괴인, 그는 누구인가? 자면의 신비인 뇌황! 바로 그였다. 그는 지금 흡혈마황검으로 흡수한 열화태세의 십 갑자 내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운공 중이었다. 아! 끔찍하게도 그의 전신은 피를 칠한 듯 붉었다. 그것은 흡혈마황검의 악마혈기(惡魔血氣)가 심맥을 침투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때였다. (정말 끔찍한 마물(魔物)이군...... 흡혈마황검......!) 문득 한 명의 인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뇌황에게로 다가섰다. 문사차림의 노인, 턱밑으로 탐스러운 검은 수염을 운치있게 기른 모습이었다. 일견하여 청수한 용모였다. 하나, 그의 눈꼬리는 가늘고 음침하여 심기가 깊어 보였다. 이때 문득, "천뇌자, 왔느냐?" 뇌황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천뇌자(千腦子)라 불린 노인은 급히 포권하며 말했다. "불러계십니까, 지존(至尊)?" "그렇다! 급히...... 자부(紫府)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그대를 불렀다!" 뇌황은 아주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뇌자! 그렇다! 문사노인, 그는 바로 마가삼태상 중 한 명인 천뇌자였다. 가장 뛰어난 심기를 지녔다는 만겁마가의 군사(軍師)! 천뇌자는 한눈에 뇌황이 흡혈마황검의 악마혈기와 싸우느라 매우 지친 상태임을 알아 보았다. 흡혈마황검은 뇌황에게 천년내공을 이루게 해 주었지만 반면 무서운 마성도 함께 이전하여 그를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 하는 것이었다. 범인이었다면 이미 흡혈마황검의 마성에 제압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뇌황이 어떤 인물인가? 그 옛날의 사대천왕보다 오히려 강하고 야심이 큰 일대효웅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그는 흡혈마황검을 버리면 천년내공을 얻고 마성에는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나, 그것은 뇌황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뇌황은 눈을 감은 채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 좌는 자부(紫府)로 돌아가 이놈의 마성(魔性)을 제압할 방도를 찾겠다. 그 사이 마가는...... 그대가 맡으라!" "알겠습니다, 지존!" 천뇌자는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좌를 노리고 있는 효웅이었다. 어쩌면 그 기회가 예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번뜩 스쳤다. 뇌황, 그는 문득 눈을 뜨며 천뇌자를 바라보았다. "육...... 천마(六天魔) 사이에서 불길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보느냐?" 그 물음에 천뇌자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육천마와 다른 원로들에게는 이미 감찰단의 밀정들을 파견하여 감시 중입니다!" 뇌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대를 믿는다, 천뇌자!" 이어, 슥! 그는 흡혈마황검을 들고 일어섰다. "대략......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다. 철혈강시들의 연단에 박차를 가하고...... 육천마...... 그리고 대비신니와 불사전황에게서 한시라도 눈을 떼지 마라!" "맡겨 주십시오, 지존!" 천뇌자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다시...... 만날 때는...... 악마혈종도 본좌의 손에 들어와 있기를 바란다!" 말을 마침과 함께, 슥...... 뇌황은 소리없이 밀실을 날아나갔다. "......!" 천뇌자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는 그의 두 눈에 섬뜩하도록 음산한 빛이 흘렀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 달...... 이라......!" 문득 그는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뚜벅......!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밀실을 나갔다. 그때, "태상!" 밀실을 나서는 천뇌자에게 한 명의 위사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비마왕이...... 대비암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래?" 천뇌자는 눈썹을 꿈틀했다. 위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그는 급히 볼 일이 있다며 불회마옥(不廻魔獄)에 들어 갔습니다!" 번쩍! 천뇌자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일순 신광이 번뜩였다. "불회...... 마옥에 들어갔단 말이지? 마모가 갇혀 있는?" "예! 태상!" 위사는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천뇌자, 그의 가는 눈썹이 팔자로 모아졌다. (그 자가 왜 노부에게 보고하러 곧장 오지 않고 불회마옥에 들어갔단 말인가?) 그의 뇌리 속으로 의혹이 구름같이 피어올랐다. "노부가 직접 불회(不廻)에 가겠다! 너는 시황(屍皇)을 불러라!" "옛!" 위사는 대답과 함께 즉시 사라졌다. 뚜벅......! 천뇌자도 그 뒤를 따라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옳겼다. * * * -불회마옥, 만겁마성의 끝에 자리한 지하뇌옥. 그것은 천마애의 절벽에 나 있는 천연동굴을 개조하여 만든 뇌옥이었다. 만겁마성의 중죄인들을 감금하는 곳,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여 불회마옥(不廻魔獄)이라 이름 지어졌다. 불회마옥 안---- 주위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음침한 적막이 깔려 있었다. 통로 안쪽, 두꺼운 쇠창살이 쳐진 뇌옥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다. 뚜벅......! 그 동굴 안으로 한 명의 인물이 발소리를 울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영악한 인상의 중년인, 비마왕, 아니 비마왕으로 은신한 막붕비였다. 비마왕은 팔대마왕의 네째였다. 동시에 만겁마가의 감찰 총관이 그의 직책이었다. 그 때문에 막붕비는 별다른 저지를 받지 않고 이곳 불회마옥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도 아니다!) 슥! 막붕비는 빠르게 철창 안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벌써 백여 개의 뇌옥을 살펴 보았다. 하나, 어디에도 혈관음 빙화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막붕비가 살펴 보지 않은 뇌옥은 이제 십여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남은 열 칸의 뇌옥을 살피기 위해 구부러진 동굴로 돌아섰다. 그때, "헉...... 헉! 헤헤...... 역시 일품인데......!" 문득 막붕비의 귓전에서 음충한 사내의 헐떡임이 들려왔다. "......!" 막붕비는 멈칫 몸을 세웠다. 그곳은 한 칸의 구석진 뇌옥이었다. 지금 뇌옥의 철문은 반쯤 열려져 있었다. 그 뇌옥의 안쪽, 한 명의 여인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몸 위, 간수인 듯 보이는 흉악한 인상의 장한이 열심히 하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여죄수, 그녀는 저고리가 제멋대로 흩어져 뽀얀 젖무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치마가 걷혀진 채 장한에게 겁탈당하고 있었다. 장한은 고의로 그녀에게 치욕을 주려는 듯 뽀얀 그녀의 허벅지를 한 팔로 들어 올린 채 능욕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내의 흉측한 물건이 드나드는 여인의 부끄러운 곳이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였다. 하나, "......!" 여죄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체념한 듯 몸을 무방비 상태로 늘어 뜨린 채 장한이 능욕하는 대로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이때, "으음......!" 장한은 절정이 가까와진 듯 움직임이 더욱 급박해졌다. 그러다 문득, "헉!" 뭔가 기이한 느낌에 고개를 돌리던 그는 막붕비가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부르르......! 장한의 전신이 벼락을 맞은 듯 세차게 경련했다. 순간, "쓰레기...... 같은 놈!" 피---- 잉! 막붕비는 쥐어짜듯 중얼거리며 일지를 퉁겨냈다. 그러자, 퍼---- 억! "케엑----!" 장한은 관자놀이에 구멍이 뻥 뚫려 여인의 몸 위에서 꼬꾸라지고 말았다. "......!" 여인은 일순 흠칫했다. 하나, 이내 그녀는 무기력하게 몸을 움직여 사내의 시체 아래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겨우 의복을 추스르고 그녀는 석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막붕비는 내심 혀를 찼다. (귀한 신분의 여인인 듯한데 참담한 몰골이군!) 이어, 그는 뇌옥을 지나 다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그때였다. (읏......!) 문득 막붕비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오싹한 한기가 그의 등줄기로 전율이 되어 흘렀다. 무엇인가 아주 막강한 기운이 등 뒤로 다가섬을 느낀 것이었다. (굉...... 장한 패기(覇氣)다! 누가 이런 패기를 흘리는 걸까?) 그는 내심 침중한 신음성을 발했다. 이어, 스윽! 그는 급히 동굴 모퉁이로 몸을 은신했다. 제24장 무서운 철혈강시 통로 모퉁이로 몸을 숨긴 막붕비, 그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 그의 등줄기로 스쳐간 예기는 그가 지금껏 보지 못한 무서운 것이었다. 굳이 비교된다면 실혼여제만이 그런 정도의 기도를 흘릴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 불회마옥에 들어온 것일까?) 막붕비는 검미를 모으며 입구쪽을 주시했다. 그때, 뚜벅...... 뚜벅......! 입구쪽에서 문득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자국 소리에는 숨통을 조이는 무서운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단지 그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심맥이 파열되어 죽고 말 것이다. "......!" 막붕비는 침을 삼키며 통로 저편을 주시했다. 그때, 하나의 우람한 그림자가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 인물은 거인(巨人)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통로는 온통 그 인물의 몸으로 가득 메워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키는 구 척, 일신에는 검은 장포를 걸쳤다. 그는 얼굴의 반을 천으로 가리고 있어 용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나, 천 사이로 드러난 그의 두 눈에서는 이글거리는 태양 같은 신광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뚜벅...... 뚜벅......! 흑포의 거한, 그는 묵중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통로로 들어섰다. 그 모습은 흡사 하나의 작은 산(山)이 움직이는 듯했다. 막붕비, 그는 경악의 눈으로 흑포거한을 주시했다. (대단한 기도다! 저 인물은 도대체 누구지?) 그는 거한에게 발각될까 봐 호흡을 멈추고 체열을 강기의 막으로 차단했다. 그때, "......!" 거한은 문득 한 칸의 뇌옥 앞에서 멈추어섰다. 그 뇌옥은 바로 방금 전 간수에게 능욕당하던 귀부인이 갇혀 있는 뇌옥이었다. 거한이 뇌옥 앞에 멈춰선 순간, "......!" 부르르......! 돌아누워 있던 여인의 교구에 심한 경련이 일었다. 어떤 강렬한 예감이 그녀의 심령을 강타한 것이었다. 그때, "부인...... 내가...... 왔소!" 철창 밖에서 거한이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참담한 여인의 몰골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모양이었다. "미안...... 하오! 이제야 겨우 그놈 자면천존에게 입은 주화입마의 내상이 치료되어 돌아왔소!" 거한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나, "......!" 여인은 돌아누운 채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다만 소리없이 오열하는지 그녀의 여린 어깨가 가늘게 들썩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들어가겠소, 상매(霜妹)!" 뚜벅......! 거한은 철창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오지 말아요!" 갑자기 여인은 발작하듯 외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어, 그녀는 뇌옥의 벽에 이마를 찍어대며 오열했다. "너무...... 늦었어요. 저의 몸도...... 마음도......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예요!" "미안하오!" 거한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 뿐인 듯...... 그는 탄식하며 철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파스스......! 놀랍게도 만년한철로 만든 철창이 재로 스러져 버렸다. 흑포거한의 몸에서 일어난 무서운 파멸강기가 순간적으로 쇠기둥들을 바수어 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