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황(卍皇) 1 - 39편 (39/50)
자천릉이 갈 곳이 바로 장강이었던가? 만황 자천릉. 부나비도에서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된 그의 내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고 또한 문둥이의 몸으로 태어나 지독히도 천하인을 저주하는 흑나 비가 부나비도를 빠져나온다. 문둥이들이 겪어야 했던 한을 간직한 채 로.... 제24장 십왕전쟁(十王戰爭) ① - 십팔만사천백와마루가 천하를 장악하다! 삼 개월 전 대곤륜산맥 가장 높은 곳인 곤마대고원의 백마성에서 백마회 의를 주재하며 곤오풍우가 천하를 향해 부르짖었던 경고(警告)는 실현됐 다. 대곤륜의 산문이 열리고 십왕과 백마가 전 중원을 휩쓸기 시작한 지 불 과 삼 개월. 이제 그들의 발길이 이르지 않은 천하는 없었다. 그들의 피 어린 손이 스치지 않은 천하도 없었다. 있다면 단 세 곳, 총정의 지주인 숭산의 대소림과 연사의 영수인 귀주의 초왕사성, 그리고 북경의 자금성 뿐이었다. - 새외변방의 일백 칠십 사 개 변방문파들과 장강 이북의 팔십 칠 개 대 소방파와 삼십 일 개 저항 세력들을 열흘만에 초토화시킨 십왕과 백마는 다시 한 달만에 숭산과 귀주성을 제외한 장강 이남, 곧 중원의 가장 번 성한 요충지를 발길 아래 장악했고 세 달이 지났을 때 천하는 모두가 단 합하여 백기를 들기라도 하듯 십왕과 백마 앞에 항서(降書)를 써야 했던 것이다. 숭산이 무사한 이유는 그곳이 총정을 비롯한 잔여 저항 세력들의 구심점 이라는데 있었고 초왕사성이 무사한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대항을 포기 하고 어디론가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마를 효수할 것을 공언했던 달그림자의 그림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고 영락제가 밀지를 내렸다는 사내도 감감히 나타날 줄을 모르는 지금 십팔만사천백와마루는 천하를 장악했고 만세제일신마의 경 고는 실현된 것이다. 십팔만사천백와마루를 분노하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적인 싸 움보다도 더욱 무서운 한 예증(豫證)으로 그들은 영락제에게 자신들을 시위(示威)한 것이다. 십팔만리 중토를 피와 주검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난세의 바람은 끝나고 이제 단 한 개의 하늘이 지배하는 완벽한 통합무국(統合武國)으 로서의 평화가 이제 이 땅 위에 도래하려는가? 허나 그런 천하인들의 기대는 무참히도 깨어졌다. 일찍이 들어본 적도 겪어 본 적도 없었던 사상 초유의 무섭고도 거대한 피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 대명 영락 이십 오 년 십이 월(十二月) 초하루. 팔대거점(八大居點)을 구축하고 힘을 비축해 온 십왕들의 세력간 갈등 표면화되다. 서열 육 위 미막의 막주 백리려려의 전진(戰陣)이 위치한 소 호(巢湖)를 서열 십 위 사삭전겸 완안무독이 기습, 해갈선자 즉각 반격. 십왕들의 전쟁이 시작되다. 십왕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랐다. 그러나 그 전쟁의 결과 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위대한 무맥(武 脈)을 상징해 온 십왕. 그들의 싸움은 언젠가 단 한 사람의 고금 사상 유 례도 없는 가장 위대한 영웅(英雄)을 탄생시킬 것이며, 그 동안 천하는 돌이킬 수 없는 병화(兵禍)의 상처에 깊이 가슴을 베이고 말 것이다. 곤오풍우가 십왕벌에서 선언했고 십왕들이 천하를 장악한 후로 기한을 합의했던 본격적인 후계자 계승 전쟁은 십왕들에게 명예와 영광을, 천하 인에게는 피와 죽음을 남기는 가장 영예롭고도 가장 잔인한 싸움일 수밖 에 없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핏빛 말발굽 소리가 중토의 한 곳을 울리는 그 시 각 팔대거점에 웅거하던 세력들도 일제히 난세의 검을 빼어 들고 있었 다. - 통합서열 이 위 비사벌은 은하태극삼십육가의 주력을 금릉(金陵秘家) 의 영토에 투입하다. 서열 팔 위 적도천은 점창파(點蒼派)를 괴멸시키고 장악한 거점에서 긴급히 휘하 백마를 소집하다. 서열 칠 위 율리새와 그 를 추종하는 십일인(十一人)의 백마는 구룡반도(九龍半島)에서 중토를 향 해 재진격을 시작하다. 서열 사 위 잔기사는 자신의 고향인 육천마을 중 시망상천이 위치한 천 남 시망산(屍邙山)에서 십왕을 향해 선전포고하다. 서열 오 위 용등택은 자신의 기원(棋院)인 낙양기성루(洛陽棋聖樓)를 기점으로 하남, 안휘, 강 소, 절강에 긴급히 백마를 밀파하다. 서열 구 위 완안무독은 사천당문(四 川唐門)의 자리에 예하 백마 구인이 이끄는 병마를 주둔시킨 채 소호를 기습하다. 서열 육 위 백리려려는 완안무독의 기습을 받고 소호에 진주하던 대곤륜 백팔십일방계 이십 칠 개 방파를 긴급 대동하여 사천땅을 향해 반격하 다. 서열 구 위 주희빈은 장강(長江)의 장안포(長安浦)에 수상가옥(水上 家屋)을 짓고 유일하게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다. 병화의 거센 불길은 중토의 여덟 군데에서 동시에 일어나 한꺼번에 천하 를 살라버릴 듯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대명 영락 이십 오 년 십 이 월 아흐레. 백리려려가 이끄는 미막 휘하 이십 칠 개 방파의 보복 공격으로 완안무 독의 거점인 사천당문이 불길에 타다. 같은 시각 은하태극 삼십육가의 주력이 금릉을 벗어나 거점을 옮긴 완안무독과 적도천의 세력이 자리한 북칠성(北七省)으로 진격하다. 총정에 속해 있는 오대(五代), 태행(太行), 항산파(恒山派)등 이십 사 개 문파가 두 번 불길에 타다. - 대명 영락 이십 오 년 십 이 월 열 사흘. 율리새와 그의 십 일 인의 백마들이 구룡반도의 아홉 개 섬에서 아홉 방 향으로 천하를 향해 포화를 터뜨리다. 낙양의 용등택의 세력이 가장 큰 손실을 입고 격노하여 남쪽을 향해 피의 진군을 시작하다. - 대명 영락 이십 오 년 십 이 월 스무 이틀. 용등택의 주력이 율리새 예하의 삼대백마와 백리려려의 미막의 병마(兵 馬)와 세 방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다. 율리새의 삼대백마가 전멸하고 미 막의 병마는 사 할이 사상했으며 용등택의 주력은 계속 피의 남하를 이 어가다. 대노한 백리려려의 본군(本君)이 용등택의 거점이 있는 낙양을 직접 공략하여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을 야기시키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너무도 엄청난 대혼전이 중토를 전란의 겁화 속에 휘몰아 넣고 있었다. 십왕의 힘은 너무 강했기에 그리고 백중 했기에 도 대체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치열하게 이어지는 이 싸움의 결말은 아예 예측할 수도 없는 대혼돈의 황사풍(黃沙風) 속에 묻혀 있었다. 허나 천하는 결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반전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변 수가 난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서히 혈해 위로 떠오르고 있음을. 그것이 바로 위대한 만황의 역사를 여는 시작이었음을.... ② 도도한 물줄기의 흐름과 함께 중원의 역사를 대신해 온 중원의 젖줄인 장강(長江).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 장강 위로 수백 개의 수상가옥(水上家 屋)이 강심 위로 늘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부연수옥(浮煙水屋)이라고 불렀으며 이곳이 바로 십왕 중 일 인인 주희빈의 전진 기지라는 것은 이미 천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교교로운 월광(月光)이 풀어헤쳐진 여인의 머리카락인 양 휘늘어진 채 잔잔한 월파를 장강의 물결 위에 흩뿌리고 있는 밤이었다. 지금 장강의 주위에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이 장강에서 밤낚시질을 즐기 고 있었다. 한 채의 가장 화려함으로 치장을 하고 있는 부연수옥 안에는 지금 한 명 의 인물이 뒷짐을 진 채 초조한 안색으로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주희빈이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는 언제나 무색 무심하고 설사 하늘이 두쪽으로 갈라져 그의 머리를 쥐어 누른다 해도 외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위인이 었다. 헌데 그런 그가 지금 이토록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 가? '흠, 설마 놈들이 이런 방법으로 나 주희빈을 제거하려 할 줄이야. 십왕 중 한 놈이라면 곤오풍우라도 두려울 게 없지만 십왕중 어느 누구도 둘 이 모이면 천하무적이 된다. 어떻게 이들이 뭉쳤을까?' 얼마 전의 일이지만 주희빈은 이 부연수옥에서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 게 된 것이다. <주군(主君)! 십왕 중 서열 팔 위인 적도천과 서열 십 위인 완안무독이 주군을 제거하기 위해 이 부연수옥으로 향하고 있다는 밀령이 들어와 있 습니다.> 지금 주희빈이 이렇듯 방안을 서성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 때문이었 다. 주희빈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반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십왕 중 한 놈이라면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둘만 합치면 천하무적! 십왕 중 두 명이 나를 노리고 있다.' 그의 생각으로도 지금의 사태는 너무도 상상 밖인 것이다. 십왕은 예로 부터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힘을 합친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헌 데 그 십왕 중 이 인이 연합하여 주희빈을 공격하려 하는 것이다. '하하, 이럴 때 그가 생각나는 것은 왜인가? 그는 이 동정호 근처에서 갑 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누군가의 암습을 받았다는 뜻 인데, 힘들군!' 가장 아쉬울 때 자천릉의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주희빈에게는 자천릉이 라는 존재가 그만큼 뇌리 깊숙히 박혀 있다는 증거이리라. 헌데 바로 그 때였다. 꽈꽈꽝! 부연수옥의 맨 북쪽에 있는 서너 개의 수상가옥이 그대로 박살이 나며 처절한 비명성이 초조한 심경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주희빈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왔다. 놈들이!' 주희빈의 시선이 벼락처럼 비명과 폭음 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향했다. 두 명의 자포인(紫袍人)이 허공을 유유히 떠오며 손발을 가볍게 휘젓는 데 그때마다 수상가옥과 사람의 육신은 마치 가랑잎처럼 흐트러져 허공 을 날고 있었다. 자포(紫袍)의 의미는 곧 그들 두 사람이 십왕 중 이 인이라는 것을 증명 해 주고 있었다. 초조하게 흔들리던 주희빈의 눈빛이 순식간에 깊숙히 가라앉으며 싸늘한 예기를 뿜어 댔다. "주군!" 한 명의 황포인이 주희빈의 앞에 바람과 같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주희빈 의 앞에 깊숙히 부복을 하였다. "주군, 십왕 중 적도천과 완안무독이...." 말을 잇던 황포인 금성의 얼굴에서 갑자기 핏기가 싹 가시고 있었다. 수 백 장 멀리서부터 오관의 움직임과 피의 흐름을 일시에 동결시켜 버릴 듯한 살기가 공간을 초월한 채 보고를 하고 있는 그를 향해 쏘아오고 있 었던 것이다. 휘류류륭! 무서운 회오리가 방원 백여 장을 그대로 난도질해 댄 채 금성의 목을 향 해 쏘아오는 것이 주희빈의 망막 속으로 확 파고들었다. 주희빈의 얼굴에 다급한 경악이 순간적으로 스쳐 갔다. '천수주의 사삭적겸이다. 십왕 중 서열 십 위!' 저 무서운 회오리를 동반한 채 무자비하게 모든 살아있는 근원을 말살하 면서 금성을 향해 쏘아오는 것은 사삭적겸이라는 긴 줄이 달린 낫(鎌)이 란 말인가? "피해라! 금성!" 그러나 주희빈의 외침은 뒤를 잇는 금성의 비명에 가려져 버렸다. 사아아악! 오싹한 절살음과 함께 완안무독의 사삭적겸이 그대로 부복을 하고 있는 금성의 목을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아아아악!" 금성의 목이 부연수옥을 떠나 장강의 도도히 흐르는 물결 속으로 떨어져 내린 것은 완전히 한 순간의 일이었다. 너무도 빠른 살인신기(殺人神技)였다. 사삭적겸이 완안무독의 손을 떠나 백여 장의 거리를 초월하여 주희빈의 앞에서 막 보고를 올리던 금성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은 실로 눈깜짝할 순 간의 일이었다. "크흐흐! 이제 남은 것은 네놈 사희빈의 목부분에 달린 물건을 이 장강 의 고기밥으로 만드는 일만이 남은 것 같다. 크흐흐!" 사악한 괴소와 함께 두 명의 자포인은 흡사 유령인 양 주희빈의 앞에 뚝 떨어져 내렸다. 왼쪽에 있는 자포인은 한 손에 긴 장창(長槍)을 꼬나 쥐고 있다. 때마침 불어오는 한 가닥 강바람에 장창의 꼭대기에 매달린 붉은 깃발이 휘날린 다. 적발, 적염의 강인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오른쪽에 있는 자포인은 바늘구멍만한 사목(蛇目)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 느다란 수염이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거미를 연상케하는 인물이었다. 어깨에서부터 이어진 긴 끈이 달린 핏빛 낫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적도천과 완안무독이었다. 주희빈은 차가운 기광을 두 눈에 담은 채 적도천과 완안무독을 응시했 다. "비겁한 놈들! 십왕은 예로부터 독자적인 행동을 고수해 왔거늘 두 놈이 합공으로 이 사희빈을 제거하려 하다니." 주희빈의 음성에는 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적도천은 그런 주희빈을 향해 핏빛이 감도는 눈빛으로 괴성을 발했다. "사희빈! 네 놈은 십왕 중에서도 가장 치사한 놈이다. 그래서 언제나 개 똥을 곁에 두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놈이다. 해서 네 놈을 십왕 중 제 일 먼저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하하, 비겁하군. 십왕의 규율을 깨뜨리다니." 팔한지옥의 하나인 홍련지옥을 휘돌아 나온 한풍처럼 극랭하기 이를 데 없는 주희빈의 음성이었다. 헌데 그때 주희빈의 앞으로 희끗한 몽영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앞에는 여덟 명의 불구자들이 형형한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가슴 에는 맹호의 문신이 새겨져 있고 몸에는 헐렁한 혈포를 걸친 불구자들. 그들이 바로 백마 중에서도 잔혹하기로 이름이 높은 신주팔흉이었다. 신주팔흉은 일제히 주희빈을 향해 예를 취했다. "주군, 놈들은 우리 신주팔흉이 막겠습니다." 그들은 예를 마침과 동시에 그대로 섬전처럼 완악무독을 향해 몸을 날리 고 있었다. 츄리리릿! 백마 중 팔 인이 전력으로 펼쳐 낸 가공할 거력은 일시에 천공을 희번뜩 한 살기로 가득 매웠다. 백마 중에서도 고문술에 있어서는 그 악명을 이 미 만천하에 휘날린 그들이다. 혈사철편(血蛇鐵鞭)의 그림자가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완안무독 의 목을 휘감아 오고 있었다. 고문술에서도 가장 악명을 휘날리는 시뻘 겋게 달구어진 인두가 섬칫한 악성괴음(惡聲怪音)을 발하며 완안무독의 가슴을 짓쳐 갔다. 허나 신주팔흉의 그 가공무비한 공세 앞에서도 완안무독은 태연하였다. "크흐흐! 신주팔흉이라는 구더기들이었군. 그래 네놈들은 차라리 한꺼번 에 달려드는 것이 이 어르신에게는 편한 방법이지." 사아악! 그 공포의 사삭적겸이 또 다시 허공을 날고 있었다. 교교롭게 빛을 발하 고 있던 월광이 숨을 죽여 버린 지는 이미 오래였고 사삭적겸이 스쳐간 자리에는 오싹한 전율만이 공기의 진동을 파르르 떨게 하였다. "크아악!" 최초의 비명성은 긴 채찍을 휘두르며 완안무독의 목을 옭아매오던 다리 없는 불구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월광에 선명한 피보라를 뿌리 며 퉁겨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파파파팟! 허공에서 유려하게 휘돌던 사삭적겸이 이번에는 신주팔흉의 허리께를 횡 으로 벼락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으아아악!" 허공에서 각양각색의 자세로 완안무독을 향하고 있던 신주팔흉은 그 자 리에서 급살을 맞은 듯이 격렬하게 몸을 떨더니 이내 부연수옥으로 차례 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떨어져 내리는 신주팔흉의 상처부위에서는 검붉은 핏뭉치가 뭉클뭉클 터 져 나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천하에 흉명을 날려 온 신주팔흉이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고해 버린 것이다. 스윽! 완안무독은 사삭적겸에 묻어 있는 한 방울의 피를 닦아 내며 몸서리 쳐 지도록 오싹한 살소를 지었다. "크흐흐! 사희빈, 너는 애초에 이따위 애송이놈들로 하여금 본좌의 앞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 실수였다. 이제 약속대로 네놈의 목을 이 사삭적겸 의 재물로 삼을 것이다. 크흐흐흐!" 지금까지의 사태를 음랭한 시선으로 직시하고 있던 주희빈의 시선 끝에 매몰찬 살광이 흡사 악마의 이빨처럼 드러났다. "하하, 좋다. 이 사희빈의 무서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지." 번쩍! 주희빈의 좌수가 벼락같이 완안무독과 적도천을 향해 뻗어지는 순간 온 하늘에서 우박처럼 날카로운 광채들이 두 사람을 향해 일제히 폭사해 가 기 시작했다. 바로 만화세침이었다. 주희빈이 한을 참기 위해서 찌르던 그 바늘이 병장기로 화하여 죽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쐐애액! 적도천의 손에 들린 긴 장창이 허공에서 요란한 굉음을 동반한 채 주희 빈의 만화세침을 퉁겨내며 앞가슴을 노리고 짓쳐 들어왔다. 신주팔흉을 지옥으로 떨어뜨려버린 사삭적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음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주희빈의 피를 부르고 있었다. 와지끈! 주위에 늘어서 있던 장강의 부연수옥은 그들의 몸에서 뻗어나온 대거력 에 형체조차 잃어버린 채 가루로 화해 날아가고 있었다. 잔잔하기만 하던 장강의 물결이 일대겁난을 만난 듯이 미친 광란의 소용 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가공무비한 힘을 일컬어 단산번해(斷山飜海) 천붕지괴지세(天崩地壞 之勢)라 하는가. "윽!" 무려 오장 밖으로 주욱 밀려난 주희빈은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간 신히 몸을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좌측 어깨는 뼈가 드러날 정도였으며 그의 옆구리와 허벅지는 적도 천의 장창에 의해 깊숙히 찔려 있어 보기에도 끔찍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약간 파리하게 느껴지던 주희빈의 안색은 밀납처럼 핏기 를 잃고 있었으며 생애 처음으로 죽음의 기운이 온 몸을 지배해 오는 희 미한 공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서히 주희빈을 향해 다가서는 완안무독과 적도천의 얼굴에는 이미 승 자의 거만함이 개기름처럼 반지르하게 흐르고 있었다. "크흐흐! 사희빈, 이제 네놈도 끝장이다. 네놈을 시작으로 십왕들은 우리 의 손에 의해 차례대로 죽어 갈 것이다. 결국에는 곤오풍우까지." 완안무독의 손에 들려 있던 사삭적겸이 서서히 주희빈의 목을 향하며 시 뻘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헌데 이때 주희빈이 간신히 등을 기대고 있는 벽면으로부터 냉막한 음성 이 들려왔다. "훗! 보기 좋군." 세 사람의 시선이 똑같이 음성이 들려 온 곳으로 향했다. 주희빈의 눈에 격렬한 기쁨의 빛이 폭발할 듯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그가 왔다!' 돌려진 삼 인의 시선 속으로 부서진 한쪽 벽면을 통해 두 사람이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다. 맨 먼저 들어선 사람은 이곳에 있는 삼 인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천 릉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흑포의 철립인이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따 라 들어왔다. 몸 밖으로 드러난 손과 목은 온통 흰 붕대로 칭칭 동여매 고 있는 그의 몸에는 마치 유귀(流鬼)처럼 음습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가슴에 매달린 한 송이 핏빛 장미꽃을 만지작거리며 다가서는 그는 바로 흑나비였다. 완안무독과 적도천의 안색이 가벼운 파랑을 일으켰다. "네놈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 것은 너무도 돌연히 자천릉이 이 자리에 나타났기 때문이리라. "후후훗, 벌써 잊지는 않았을 텐데? 천요만방에서 당신들에게 북해빙면 을 선물했던 주방장인데, 벌써 그것을 잊었다니 당신들의 머리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아마 녹슨 쇳덩이가 차 있는 모양이군." 자천릉은 힘겹게 신형을 의지하고 있는 주희빈을 보았다. "후훗, 보기 좋군. 아마 그 도도한 목이 날아 갔다면 지금 보다는 더 보 기 좋은 광경이었을 텐데 아쉽군." 그러나 주희빈의 시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흑나비에게 머물러 있었다. '무서운 고수다!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십왕 중 일 인인 주희빈이 생전 처음 보는, 대체 그는 어디서 이런 고수를 데려왔다는 말인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주희빈은 순간적으로 흑나비가 절대 자신을 비롯한 십왕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중원에 저만한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가 경이의 눈으로 흑나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자천릉은 완안무독과 적 도천을 응시하며 메마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들이 이렇게 직접 발을 벗고 저 멍청한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은 이미 십왕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뜻! 좋아. 그렇다면 이 기회에 이 자 천릉 또한 십왕의 몇 놈쯤은 사냥을 해 명성을 좀 얻어야겠군." 적도천의 안색이 울그락 불그락 요란한 진동을 보였다. "으흐흐! 애송이놈. 주방장 주제에 혈포를 걸치고 백마의 행세를 하다니, 나 적도천이 지옥구경을 시켜 주겠다." "후훗! 계산을 잘못하는군. 나는 단지 외상값을 좀 계산을 하러 왔을 뿐 인데, 후훗, 북해빙면은 좀 비싼 편이라 당신의 목 정도면 되겠다는 계산 이 나오더군." 완안무독이 소리도 없이 자천릉의 앞으로 미끄러져 오며 냉소를 날렸다. "애송이놈. 외상값은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이라는 놈한테나 받아라." 그의 손에 들린 사삭적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데 그때 지금까지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자천릉의 옆에 서 있던 흑나비의 신형이 천천히 완안 무독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친구! 당신의 상대는 바로 이 흑나비라네." 그의 음성은 듣는 이의 귀청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음산무비한 것이었 다. 완안무독의 독사 눈이 잔뜩 찌푸러졌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놈이다!' 기분 나쁜 놈이기에 빨리 죽여 없애겠다는 말인가? 쐐애액! 완안무독의 손이 번뜩였다 싶은 순간 사삭적겸이 회오리치며 무자비하게 흑나비의 목으로 짓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