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만황(卍皇) 1 - 36편 (36/50)

2026-09-21 21:18:45 조회 20
'화아! 정말 기가 막힌 미인이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천하에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공자님같이 잘 생긴 분이나 열흘만 기다리고 만날 수 있지 다른 못생긴 사람들 같으면 평생을 기다려도 만날 수 없을 거야.' 자천릉이 미막의 부막주라고 부른 이 여인이야말로 과거 만장석굴에서 필혜슬과 함께 자천릉의 심기를 교란시켰고 자천릉보다 이 년이나 앞서 출관해 백마서열 사십 일 위에 올라 있던 빙월척 냉교채였던 것이다. 냉교채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인사드려라. 이분은...." "호호호, 소녀들도 익히 알고 있어요. 천요만방의 그 유명한 주방장님이 잖아요." 냉교채의 등 뒤에서 짤랑짤랑한 여인들의 교성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얼굴은 여자처럼 준수하고 요리솜씨는 여자보다 더 뛰어나고." "그리고 천하에서 가장 괴팍한 인물이구요!" 자천릉과 냉교채의 주위에는 어느새 조금 전 냉교채를 뒤따르던 열 한 명의 황포여인들이 호위하듯 둘러서 있었다. 냉교채가 자천릉을 향해 화 사하게 웃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친자매처럼 함께 지내고 있는 미막십일홍이야." "훗! 알고 있지. 대곤륜일천무성좌에 속해 있는 가시가 달린 아름다운 열 한 개의 별이 라는 것을." 자천릉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미막십일홍. 황포를 입는 대곤륜일천무성좌 중 몇 안되는 여인무사들 중의 십 일 인. 웃을 때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우나 그 웃음 뒤에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가 시가 도사리고 있어 사람들은 그녀들을 가시달린 별, 혹은 열 한 떨기의 피꽃송이라고 불렀다. 미소짓는 입술 속에 부서진 칼날을 감추고 있다 느닷없이 상대에게 뿜어 버리는 잔인한 살수를 취미처럼 즐기는 기이한 여인들. 그들은 십팔만사천백와마루 통합서열 사백십구 위부터 사백 이십 구 위 까지의 인물들로 모두 미막의 휘하에 속해 있었다. "훗, 무섭군. 그대를 보니 십왕과 백마가 벌써 하남 땅까지 왔다는 말인 데." 자천릉의 말에 냉교채가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릉은 모르고 있었어? 이제 중원에 남은 곳은 산동과 절강, 강소 뿐이 야."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가공할 힘은 어느덧 중원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릉. 그대는 지금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지?" 냉교채가 얼음같은 얼굴에 한 줄기 부드러운 훈기를 띈 채 자천릉을 쳐 다보았다. "그것은 내가 그대에게 물을 말인데?" "음, 나는 현오묵원의 묵화장송 담화산을 죽이러 가는 길이야." 냉교채가 스스럼없이 대답하자 자천릉이 기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묘한 인연이군. 나도 그자를 죽이려고 열흘 동안이나 이 자리에 죽치고 있는 참이었는데." - 현오묵원과 묵화장송 담화산. 당금 천하의 상권은 수로(水路)의 지배자나 교역의 관장자, 특정 산물의 독매상인(獨賣商人)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조그만 지필묵 가게의 주인 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바로 천여 년 전부터 가업을 이어온 중원최대의 서화원(書畵院)인 현오 묵원이었다. 그 가업의 뿌리는 중원전체의 문맥(文脈)과 서통(書統)에 닿아있어 조금 씩 축적되어 간 현오묵원의 금력은 당금 천하에 이르러 천하의 칠 할에 해당하는 황금보유고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당대의 주인 담화산이 아니었더라면 그 엄청난 황금은 영원한 비밀로 묻 혀진 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을른 지도 몰랐다. 허나 담화산은 천하에서 모은 황금을 천하를 위해 쓰지 않음은 상리(商 理)의 근본에 어긋난다는 신념을 굳게 가진 자였다. 하여 그는 마침내 집상무림(集商武林)의 태두로 떠오르면서 무림의 각계 각층에 그와 이념이 부합되는 일에 한해 은밀히 자금을 출자하기 시작했 다. 그로부터 육십 년, 현오묵원과 담화산의 힘은 총정십대문파를 비롯한 정 도의 세력에 없어서는 안될 어둠 속의 재원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원으로 진출한 십팔만사천백와마루가 목하 이 현오묵원을 노리고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헌데 왜 쳐들어가지 않고 여기에 숨어 있는 거지?" 냉교채가 의아한 눈빛으로 자천릉을 쳐다보자 자천릉이 고소를 머금었 다. "훗, 쥐가 쥐구멍을 나오지 않으려 한다고 어찌 고양이가 쥐구멍에 들어 갈 수 있겠어." 그렇다. 담화산은 무림의 일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수없이 자 신을 노리는 암살자들의 칼을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왔다.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현오묵원을 통째로 폭발시켜 버리든지 아니면 불규칙하게 외출하는 그의 움직임을 참고 기다리다가 살해하는 것이었는데 자천릉은 후자의 방법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훗, 릉은 마음이 너무 여려. 쥐가 쥐구멍에 숨었다면 쥐구멍을 깨뜨리지 않고 어떻게 쥐를 잡을 수 있겠어. 자 나랑 같이 들어가." 냉교채가 가볍게 웃으며 자천릉의 손목을 붙잡고 그대로 창 밖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자천릉은 미처 말을 잇지 못하며 꼼짝도 못하고 냉교채 의 손에 이끌려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는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 여자도 하나도 안 변했군.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사람을 끌고 다니려고만 하니, 언제 이 지겨운 당나귀신세를 면하지?' 그 순간 눈빛을 묘하게 빛내고 있던 미막십일홍의 여인들도 빛살처럼 주 루를 박차며 냉교채와 자천릉을 따라 나섰다. 소팔의 눈이 화등장만하게 커졌다. '헉! 알, 알고 보니 저 예쁘게 생긴 공자님도 무시무시한 고수였잖아! 어 쩐지 장난감같은 도끼 따위를 잔뜩 짊어지고 있더라니!' 자천릉의 손목을 고삐로 꿰듯 꽉 움켜쥔 냉교채의 신형은 예의 자천릉이 노려보고 있던 그 거대한 고가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거의 햇살에 쫓겨난 안개를 헤치며 현오묵원의 현판이 용사비등한 필력 으로 그들의 시야를 메어왔다. "잘봐! 쥐새끼 사냥은 이렇게 하는 거야." 냉교채의 입에서 싸늘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쐐애애액! 냉교채의 손에서 초승달처럼 새파란 한기를 발하는 악마의 빙월척이 현 오묵원의 현판을 그대로 쪼개어가고 있었다. ②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황금빛 격자를 두른 붉은 현판이 소스라쳐 경련을 일으켰다. 거칠고 투박한 한 쌍의 손이 고귀한 기품을 발하고 있는 현판의 한복판 에 그대로 꽂혀지고 있었다. 손의 주인은 붉은 꽃술을 터뜨려 놓은 듯 검붉은 적색 혈포를 입은 이십 대 후반의 사내였다. 흡사 싸움터에서 막 돌아온 무사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이 제 막 피의 결의로 가슴 속에 전의의 불꽃을 피워놓은 채 적진을 향해 돌진해 가는 젊은 기병의 체취라고나 할까? 굵은 눈썹, 사각진 턱, 전체적으로 선이 짙고 강인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혈포사내의 전신에서는 섬ㅉ한 피냄새가 물씬물씬 흘러나오고 있었다. 혈포사내는 양손을 현판에 박은 채 문득 사자의 울음처럼 나직하면서도 강인한 힘을 실은 뇌까림을 토해냈다. "천년무당이라, 장삼풍이라는 작자가 세운 도가의 원류." 혈포사내의 손이 박혀져 있는 붉은 현판에는 <대무당파>라는 글자가 고 대의 전자체로 중후한 위엄을 발하며 새겨져 있었다. 대소림과 더불어 중원 총정십대문파의 양대 산맥으로, 그리고 쇠락해 가 는 총정의 정기를 부활시킬 두 개의 축으로, 그렇게 자타가 함께 인정해 왔던 위대한 도가의 발상지. 소림이 이 땅에 무의 씨를 뿌렸다면 무당은 그 위에 무의 양분을 공급했 다고 칭해질 만큼 무인들에게, 나아가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빛나는 명예로써 각인되어 있는 무림의 개원지대(開元地帶). 혈포사내가 손을 박고 있는 이 현판이야말로 그 대무당파의 산문에 걸려 있는 숭엄한 권위의 상징이었다. "아미(峨嵋) 곤륜(崑崙)에 이어, 너 무당은 세 번째로 나 용붕의 손에 의 해 무너진다." 그는 바로 천왕도 용붕이었다. 필혜슬, 적옥기, 냉교채, 그리고 자천릉과 함께 만장석굴에 입굴했던 그 극강한 패기와 야성의 사내. 십왕 중 다섯 번째 인물인 천장원주 용등택의 손자이자 제자라는 막강한 배경과 함께 한 자루의 천왕도를 비껴들고, 만장석굴에 들어왔던 입굴자 수십 명을 일도에 양단하는 무서운 신위를 지녔던 그. 헌데 용붕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는 실로 가공스럽지 않은가. 아미, 곤륜에 이어 세 번째로 무당의 산문을 깨고 있다니. 허면 그는 지금 차 례로 총정십대문파의 이천 년 아성을 격파해 가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 가? "하지만 오늘 나 용붕의 손에 의해 그 원류는 역류로 바뀌고 천 년의 정 사는 산산조각으로 헤어지게 될 것이다. 바로 이 현판처럼!" 용붕의 입에서 싸늘한 뇌까림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무량수불, 누구냐?" "웬 자가 감히 본파의 현판을!" 산문 앞에서 용붕의 모습을 발견한 무당의 도인 두 명이 도호를 외며 다 가오고 있었다. "가라!" 용붕의 입에서 차디찬 냉갈이 터져나왔다. 파파팟! 현판이 두 쪽으로 쪼개지며, 그 갈라진 두 쪽이 무슨 비검이나 륜처럼 허공을 일직선으로 갈라 그대로 두 도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타핫!" 짧은 기합과 함께 용붕의 신형이 솟구쳤다. 막 도인들을 쓰러뜨리고 날 아가는 두 쪽의 현판 위에 깃털처럼 몸을 실었다. 순식간에 현판과 하나가 된 용붕의 신형은 그대로 무당의 푸른 하늘을 난자해 들어가고 있었다. 비릿한 조소를 담은 한 쌍의 눈동자가 실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눈 의 임자는 막 한 알의 능금을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가 그대로 뱉아내 고 있는 참이었다. "후후, 보기 좋군. 쥐떼가 모여서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 일을 의논하는 모양이군." 눈의 임자는 전신에 맹호가 수놓아진 혈포를 입은 문사풍의 탈속한 청년 이었다. 허나 기이하게도 그의 준수한 입꼬리에는 누군가를 조롱하는 듯 비릿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유달리 긴 검은 장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 사각사각 능금을 깨물어 먹고 있는 청년은 바로 홍금서생 적옥기가 아닌가? 그가 노려보고 있는 곳에는 <사사살창> 이라는 현판이 걸려진 아래 하 나의 의사청이 보이고 있었다. 적옥기가 서 있는 곳은 어느 장원의 내전으로 향하는 회랑이었는데 그곳 에서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의사청의 실내에는 지금 숨막히도록 음산한 죽음의 기운을 흘리고 있는 사십여 명의 흑포사내들이 둘러앉아 무언가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남에 왔다. 우리 사십 사 인, 아니 사십 삼 인의 살인제황들은 우리의 영역인 절강의 코 앞에 그들을 둔 이상 이 위기를 벗어날 방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ㅋ! 사십 사 인의 살인귀가 언제 죽음을 두려워 했나? 기다릴 필요도 없소. 지금 즉시 하남으로 치고 들어가 먼저 그들의 전진(前陣)을 씨몰살 시켜버리면." "그들은 소림의 문전인 숭산 어귀에 전진을 만들었다. 이는 총정의 힘조 차 이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대형! 허면 우리 연사가 총정보다 못하다는 말이오? 긴 말 필요없소! 당 장 하남으로 밀고가 그들을 치고 내친 걸음에 숭산까지...." 사십 사 인의 살인귀라면 석년에 전 중원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마인(魔人)들이 아닌가. 또한 과거 자천릉이 처음 중원에 상륙했을 때 바로 해변에서 자천릉을 기다리다 대천법왕에 의해 죽었던 귀곡사 철랑궁자 피합추 역시 사십 사 인의 살인귀 중의 일 인이 아니던가. 이곳 사사살창이야 말로 바로 그들 사십 사 인의 살인귀가 이룬 죽음의 살인단체로 전 중원 연사 서열 이 위로 부상해 있는 연사의 새로운 기둥 이었다. 이때 적옥기가 또 한 번 능금을 베어 물면서 웃었다. "하지만 호랑이의 목에는 굳이 방울을 달 필요가 없지. 왜냐 하면 호랑 이는 쥐새끼들 따위는 처음부터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훗훗." 그의 눈 가에 살기가 번뜩였다. "단지 지분거리는 것이 귀찮으니까 앞발로 툭 치는 것이다. 이렇게!" 휙! 반쯤 베어져 나간 빨간 능금이 적옥기의 손을 벗어나며 그대로 의사청 안으로 쏘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리며 관(棺)의 뚜껑이 박살이 나서 날아갔다. 심장의 피 를 찍어 칠한 듯 섬뜩하도록 붉은 여덟 개의 관 중 한 개의 뚜껑이 날아 감과 동시에 그 속에서 붕대를 칭칭 감은 한 인영이 진짜 선혈을 뿌리며 한 차례 허공으로 솟구쳤다 다시 지면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호호호, 재미있군, 재미있어. 관 속에 누워있길래 귀신인 줄 알았더니 살 아서 피도 쏟고 비명도 지를 줄을 다 아네." 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운 교소가 짤랑짤랑하게 울려 퍼지며 한 여인이 예 쁘장한 오현금의 한 줄을 다시 퉁겼다. 팅! "크아악!" 또 하나의 관뚜껑이 그대로 으스러지며 처음과 똑같은 현상으로 한 여인 이 피를 토하며 펄쩍 뛰어 올랐다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땅바닥에 나란히 놓여있는 이 여덟 개의 핏빛 관은 바로 홍포구독이었 다. 언젠가 자천릉이 대곤륜산맥으로 드는 천지금교를 넘기 직전 눈 덮 인 어느 상여집 앞에서 첫 모습을 보였던 홍포구독. 살인자의 집이라 불리는 적곽의 상징과도 같은 그들 공포의 구인이 오늘 또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헌데 그들은 정체 모를 금음(琴音)에 의해 처참 한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호호호, 관을 다 때려부수면 관지기가 나오겠지. 기왕이면 또 관을 끌고 나와 줬음 좋겠어. 본녀는 관을 부수는데 각별한 취미를 갖고 있으니까." 띵! 띠띵! 연달아 다섯 번의 금음이 허공을 찢었다. 꽈지직! "크아악!" 남아 있던 여섯 개의 혈관 중 다섯 개가 송두리째 박살나며 다섯 구의 시신들이 진짜 시신으로 화하고 말았다. 낙엽이 깔린 수풀 위에 나비처럼 사뿐히 앉아 오현금을 탄주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해맑디 맑은 얼굴에 수려하게 부서지는 아름다움을 감춘 채 초야를 맞는 신부처럼 다소곳이 앉아있는 이 여인은 바로 오현금파 필혜슬이 아닌가? 그녀의 저 천진함 어디에 이토록 비정하고 잔혹한 살수가 숨겨져 있었을 까 마는, 연신 아리따운 미소를 흘리며 오현금을 뜯고 있는 그녀는 분명 필혜슬이었다. "크크크, 망할 계집 년! 감히 우리 홍포구독을 뭘로 보고." 마지막 남은 관뚜껑이 스스로 열리며 그 속에서 시커먼 흑의를 걸친 한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새끼줄을 박아 놓은 듯 세 줄기로 흉측하게 불거져나온 검상이 숨막히도록 살벌한 냉기를 발산하는 사십 대의 사내였다. 헌데 지금 그가 서 있는 후면에는 음습한 숲을 비집고 한 채의 붉은 기 와집이 지옥의 민가처럼 귀기롭게 웅크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살인의 집이라고 불리면서 천하인들에게는 지옥의 대명사로 인 식되는 지상에서 가장 잔인한 살인단체, 바로 적곽이었다. 그 공포의 저 택이 바로 이곳 어느 이름 모를 숲 속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포 구독은 필혜슬이라는 이 아름다운 기습자를 맞아 미처 관뚜껑을 열고 대 항하기도 전에 금음에 의해 씨몰살을 당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했다. "호호호, 뭘로 보긴? 관 속에서 시체를 파먹고 사는 벌레들로 보지." 띠띠띵! 또 한 번 필혜슬이 교소와 함께 오현금을 퉁겼다. "크윽! 이, 이것은 전설의 오현금파, 크아악!" 흑포사내의 미간에서 단전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이어진 균열이 일어나 며 이내 그는 참혹한 비명과 함께 지면에 나뒹굴고 있었다. "호호호, 관지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지. 지저분한 무덤이지만 통째로 부숴주는 수밖에!" 띠리리링! 오현금에서 심금을 울릴 듯 아름다운 비파음이 연속적으로 파문을 그렸 다. 오현금과 필혜슬의 작은 교구는 그 음률의 파도를 뚫고 그대로 붉은 기 와집 속으로 쏘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왔는가?" "예! 선두는 육천마을 중 부나비도가 위치한 동정호 연변까지 이르고 있 고 후미는 안휘성 봉양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빠르군. 허면 십왕과 백마의 세력판도는?" "예! 십왕들의 암중 밀계는 그들이 현재 중원의 구 할을 점령하는 와중 에 진행된 암투로 거의 유명무실화되고 이미 그들 사이의 우열과 세력판 도가 거의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어디까지 진행 됐느냐?" "예! 백중 아흔 아홉이 완성된 상태입니다." "조금더 서둘러 대계를 이루는데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충!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은 도착했느냐?" "예!" "들여 보내라." "그럴 필요는 없소. 우리 학살교단의 상어떼들은 이미 당신 뒤에 도착해 있으니까." "왔군." "그렇소. 주군을 잃고 통한에 울부짖는 우리 학살교단의 학살교인 척군 차와 사형혈경 을주발도가 성주께 인사드리오." "대계를 이룰 준비는 되어 있는가?" "우려하지 마시오. 우리 학살교단은 단 한 사람을 죽여도 전원이 동원되 는 것이 관례니까. 그것보다도 우리는." "...?" "이 거사가 소주인을 위한 것이 확실한가를 다짐받고 싶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네. 그럼 그대들은 승낙을 한 셈인가?" "어차피 여기에 올 때 정해져 있던 일이오." "고맙네. 이제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신화도 끝장이네. 우리의 계획을 눈 치 챈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끈끈한 음모의 핏빛 향기를 감춘 채 잔잔하면서도 너무도 가공할 의미를 담은 음성들이 오고간 이곳은 초왕사성의 어느 깊은 어둠 속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에 천하의 세 곳에서 현판이 부서지고 능금이 날아들며 여덟 개의 관이 부서졌다. 자천릉과 냉교채의 걸음이 항주성의 어느 지필묵 가게를 들이치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벌어진 이 네 개의 사건은 고삐 풀린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천하 위에 휘몰아치는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거대한 힘과 그 힘을 막으려 하는 대반전의 시작이 뒤엉킨 숨가쁜 종말의 조곡(弔曲)이었다. ③ 호남성 동정호. 바다를 방불케 하는 이 드넓은 호수의 벽파(碧波)가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넘실거리는 호반의 어느 들판. 들꽃은 가을 바람에 일렁이며 흐드러지게 피어 수수한 꽃의 대해를 이루 고 있었다. 가을과 하늘과, 들꽃과 호수와 바람, 그리고 사랑이 있어 더 욱 좋은 아름다운 만추의 벌판이었다. 삐류류류! 바람에 이는 가을 풀잎의 울음보다도 맑고 고운 한 줄기 음향이 들꽃의 대해를 살랑이며 울리기 시작했다. 한 아리따운 여인의 교성이 음향이 울리는 곳에서 흘러나왔다. "아휴! 정말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벌이나 나비로 태어날 걸 그랬소. 그대는." 무뚝뚝하도록 투박한 사내의 미련한 음성이 그 교성을 이어 터져 나왔 다. 들꽃이 소리없이 무너지며 드러나는 일남일녀의 모습이 보였다. 자천 릉과 냉교채였다. "또, 그대! 릉, 도대체 그대라는 호칭 좀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냉교채는 자천릉을 바라보며 고운 아미를 예쁘게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 자 자천릉이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야 있소. 허나 그대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누님이라 불러야 할 텐데 아버님께서 그대와 같은 누님을 낳지 못했으니." "뭐?" 자천릉과 냉교채의 등 뒤에서 교소가 터져나왔다. "호호호, 그래요. 자부방주님 말씀대로라면 성 또한 틀리니 누님이라고 부를 수가 없지요." 그들의 등 뒤에서는 미막십일홍의 여인들이 호위하듯 두 사람을 에워싼 채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그때 방금 입을 연 여인의 맞은편에 서 있 던 얼굴에 붉은 점이 있는 앳된 소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가볍게 웃음 을 터뜨렸다. "킥! 꼭 한 가지 있지요. 성이 다른 남녀가 누님 동생하고 부를 수 있는 방법이." "호! 어떤 방법이오, 청앵?" 자천릉이 호기심을 느낀 듯 소녀를 향해 반문하는 것을 보며 냉교채의 미간이 더욱 좁혀 지고 있었다. '바보! 아무리 지켜봐도 정말 술먹고 싸움하고 요리하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그때 청앵이라는 소녀가 눈을 찡긋했다. "부부예요." "두부? 먹는 두부를 말하는 것이오?" 자천릉이 잘못 들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자 마침내 청앵은 까 르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호호호, 부부요, 부부! 쉽게 예를 들어 말하면 자부방주님께서 남편이 되고 부막주님께서...." "청앵! 입이 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 아니다!" 냉교채가 싸늘히 쏘아붙이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교소를 터뜨리던 여인 들이 안색을 굳혔다. 냉교채가 냉기를 뿜기 시작하면 그것이 얼마나 무 서운 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자천릉이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대는 그리 화를 낼 필요가 없지 않소? 청앵은 예를 들어 말한 것 뿐 인데." "멍청한 사람은 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괜히 잘난 척 떠들지 말고!" 냉교채가 얼음가루 같은 냉기를 풀풀 날리며 자천릉을 쏘아보자 자천릉 은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제길! 결국 나는 사 년 전부터 이런 사태를 예측하고 있었어. 이 여자에 게는 왠지 반항할 수가 없단 말야.' 자천릉은 내심 투덜거렸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사 년 전 나를 취하게 했던 향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으니.' 그때 문득 냉교채가 뚫어질 듯한 시선으로 자천릉을 직시했다. "내가 소리를 높여서 화난 거야?" "훗, 화가 날 리가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