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만황(卍皇) 1 - 23편 (23/50)

2026-09-21 21:18:45 조회 18
"이것은 중할아버지가 말했던 제이대(第二代) 라마교의 대교주 만통법왕 (卍通法王)이 남겼다는 황금만루(黃金萬?)! 헌데 제국보림장경대전도가 가리키는 그곳에 있다던 황금만루가 왜 여기에 와 있지?" 헌데 잇달아 녹슨 청동 궤짝 위로 옮겨지던 자천릉의 시선은 그만 얼어 붙듯 굳어졌다. "난세십승천우동궤(亂世十僧天友銅 )! 이, 이건 또 뭐야! 낙양 백마사에 있어야 할 난세십승의 마지막 유품까지 여기에 있다니!" 청동궤의 뚜껑 위에는 분명 푸른 녹이 슬어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고대 전자체(篆字體)로 <난세십승천우동궤> 라 쓰여져 있지 않은가.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자천릉이 황급히 청동궤의 뚜껑을 여는 순간 시퍼런 화광(火光)이 순간 적으로 솟구쳤다 사라졌다. 청동궤 안에는 거무튀튀한 철편(鐵片) 수십 장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 고 그 아래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철그럭! 자천릉이 급히 묵직한 철편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청룡소예(靑龍蕭藝)... 이건 청룡소에 관한 무결을 적어 놓은 것 같고, 유경기(酉鏡技)... 이건 철유경, 그리고 타단팔창술(駝短八槍術)에 혈장무 경(血藏武經)까지!" 자천릉은 철편들을 끝까지 들춰보지 않고 그대로 팽개치며 허리를 폈다. "맞군. 분명 난세십승들이 남겨 놓은 철편십권이야." 지금 자천릉의 손에서 흩어진 철편들은 바로 천 오백 년 전 전국시대의 십주대장정에 참가했던 난세십승의 무학을 담아 놓은 희세의 기서들이었 다. 이때 자천릉의 가슴 속에는 격렬한 의혹의 난류(亂流)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분명, 황금만루나 이 청동궤에는 다른 사람들이 손 댄 흔적이라고는 조 금도 없었어. 오래 전부터 여기에 있던 물건이라면 삼천 년 동안 이곳을 스쳐간 사람들이 그냥 두었을 리가 없는 터, 더욱이 일대부터 사십대까 지 태대각들의 무경진본들이 저렇게 완전히 보존되어 있을 까닭도 없다.' 자천릉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역대 태대각들이 남긴 진본무경과 제 국보림장경대전도가 가리키는 곳에 있어야 할 황금만루, 그리고 낙양 백 마사에 있어야 할 난세십승의 철편십권들. 이 모든 것들이 누구도 손 댄 흔적도 없이 만천무벽의 서가에 모여 있다 니 말이다. '허면 누군가 내가 들어오기 바로 직전 의도적으로 이 만천무벽의 서가 를 다시 정리해 놓았다는 뜻이 된다. 릉아를 잘 아는 누군가가, 릉아가 이 무학들을 익히기를 바라며!' 만장석굴이 지금 이 시각 처음 열린 것이 아님에 틀림없다면 누군가 자 천릉이 들어오기 직전 이 모든 것들을 가져다 놓았을 것 또한 분명한 일 이 아닌가. '허나 릉아의 주위에 그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란주의 할아범들 은 이미 모두 죽었고, 린아는 아직 어린아이. 게다가 아버지는 십팔만사 천백와마루의 인물이 아니니, 당연히 이곳에 있을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문득 자천릉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쳇, 그까짓 걸 릉아가 신경쓸 필요는 없지. 이 모든 무서들이 어디에 있 든 릉아는 익히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털썩! 자천릉은 더이상 생각할 것 없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천천히 한 권 의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도대체 누가 난세십승의 철편십권과 만통법왕의 황금만루를 옮겨다 놓았 고,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역대 태대각들의 무경진본들을 갖추어 놓았단 말인가? 그는 과연 누구이며 또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찾아 자천릉의 앞에 갖다 놓았단 말인가? 숱한 의문 속에서도 세월은 거대한 난세의 흐름을 타고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다. ③ 새벽안개 속에 떠오르는 무지개를 본 적이 있는가? 여기는 따뜻한 수증기가 뽀얗게 시야를 가리고 있는 한 기이한 공간이었 다. 칠채(七彩)로 부서진 영롱한 빛줄기들이 수십 수백 가닥으로 교차되 며 비치고 있는 환상과도 같은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들려 오고 있는 한 줄기 더없이 청아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이 신비로운 공간을 한층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하고 있었다. 헌데 뽀얀 수증기 사이로 오이씨 모양의 발(足) 하나가 규칙적으로 물장 구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음률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이었다. 문득 물장구를 치던 발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시커먼 철편(鐵 片) 하나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 감미로운 음성이 수증기 속에서 흘러나왔다. "흠! 이제 난세십승 중 자린미불(紫麟美佛)스님이 남긴 벽슬예경(碧瑟藝 經)도 다 읽었군. 허면 이제 꼭 두 권의 책과 한 가지 기물이 남았군." 목소리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지극히 퉁명스럽고 차가운 말투였다. 이내 오이씨 같은 발이 다시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이야. 사 년의 세월을 보내고서도 고작 백 권을 넘기지 못했 으니." 무슨 말인가? 이 아름다운 발과 목소리의 주인은 이곳에서 사 년의 세 월을 보냈다는 것인가? 이때 예의 철편이 떨어진 곳에 뽀얀 물방울이 맺힌 채 황금빛과 청포도 빛을 은은히 내뿜는 청동궤 하나가 보였다. 손 하나가 청동궤 안을 한 차례 더듬으며 시커멓고 둥근 약 한 자 길이의 철봉을 꺼내들고 있었다. "응? 천우동궤(天友銅 ) 속에 이런 철봉이 있었던가?" 은은한 놀람과 의문이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상하군. 철편에 가려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청동궤 안을 다시 더듬는 손에 같은 크기의 철봉이 또하나 들려 나왔다. 이번에는 폭 두 치 반, 길이 여덟 치 가량의 금빛 도신(刀身)에 초승달 모양을 한 네 치 길이의 시퍼런 칼날이 붙어 있는 기이한 병장기가 들려 있었다. "호! 이곳의 병가에서도 보지 못한 기형(奇形)의 병장기군. 뭔가? 검(劍) 은 아니고, 도(刀)도 아니고, 극(戟)은 더더욱 아니고." 잠시 침묵하더니 문득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군. 이 기형의 도는 처음부터 조립을 하게 되어 있는 물건이었군". 끼리릭! 기묘한 음향과 함께 기형의 도신과 두 개의 철봉이 조립되고, 난데없는 세 자 길이의 기형스러운 청룡도 하나가 수증기 속에서 태어났다. 두 자 길이의 시커먼 철봉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이 달린 황금빛 도신이 연결되어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베어져 나갈 듯 섬뜩한 예기를 발하는 기이한 병장기였다. "응? 이름까지 각인 되어 있었군. 백마착섬불극도(百魔錯殲佛戟刀)라고?" 조립된 병기의 자루에는 용봉이 나는 듯 붉은 전자체로 백마착섬불극도 라는 일곱 자가 각인 되어 있지 않은가. "이름대로라면 백마를 찢어 죽이는 불타의 도극이라는 뜻인데...." 돌연 박마착섬불극도를 쥐고 있던 손의 주인의 신형이 물보라를 일으키 며 우유빛 수면을 빠져나왔다. 동시에 백마착섬불극도가 어지러이 휘둘 러지며 증기낀 공기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한 순간 수증기가 찢겨진 종이처럼 자욱히 밀려나며 백마착섬불 극도가 천천히 세워졌다. "음, 대단한 마병이다. 시전하던 내 몸이 살기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 으니!" 한 소리 나직한 탄성과 함께 한 인영이 시야를 가득 메워왔다. 수증기가 밀려난 청화대리석 위에 백마착섬불극도를 비스듬히 세운 채 우뚝 서 있는 전라의 사내가 있었다. 육 척의 훤칠한 키에 미려하게 발달된 근육을 감싸고 있는 윤기있는 피 부가 유난히도 돋보였다. 그 가슴 한 복판에 날개를 펼친 채 하늘로 날 아오르는 붉은 독수리의 형상이 은은히 떠오르고 있고 그 위로 환상같은 보광을 발하는 섬세한 고리목걸이가 늘어져 있었다. 성숙한 혜지(慧智)의 빛을 잔잔히 감춘 두 눈에는 녹색우수가 슬프도록 짙게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 날카롭게 뻗어내린 콧날과 면도날을 베어 문 듯 곧게 다물린 입술은 강인하면서도 어쩐지 비웃는 듯한 조소를 띠 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헌데 그는 바로 사 년 전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사층 만천무벽 속으로 사라졌던 자천릉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천룡은 어느새 역대 태대각들이 남긴 그 희세의 무서들과 난 세십승의 철편십권을 모두 독파하고 이제 단 두 권의 서책과 하나의 기 물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말인가. 이때 십 육 세의 미장부로 성장한 자천릉이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고개 를 끄덕였다. "그렇군. 천우동궤의 밑바닥에는 이 백마착섬불극도가 분해된 채 숨겨져 있었기에 사 년 전 처음 뚜껑을 열 때 새파란 화광이 솟구쳤던 것이었 어." 자천릉이 천천히 청우동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백마착섬불극도는 이름으로 보아 난세십승이 만든 것임에 분명하다. 허면 일천 오백 년 전 그 열 두 명의 스님들도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백 마와 부딪쳤었다는 말인가?" 그는 천천히 청동궤 속을 살폈다. "역시 짐작 대로군. 또 한 권의 철권(鐵卷)이 들어 있었어!" 청우동궤의 밑바닥에는 거무튀튀하고 육중한 또 하나의 철판이 깔려 있 었다. "백마참감(百魔斬鑑)이라...." 자천릉은 철판을 꺼내들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후후, 이제 읽어야 할 마지막 책자가 네 권으로 늘어났군." 거무튀튀한 철판 위에는 주사(朱砂)를 갈아 새겨 놓은 듯 섬뜩하도록 붉 은 전자체 글귀가 박혀 있었다. <오호! 대자대비하신 불타의 뜻을 받들어 백마를 참하고 억조창생을 난 세에서 구원하고자 감히 만병의 으뜸이라 칭할 수 있는 백마착섬불극도 와 백마참감을 만드노라. 어지러운 사바세계에서 우매한 십 인의 불자가 남긴다. 서천축 보리석사(普提釋寺)의 청룡성승, 사산조에서 온 혈장국사, 남황 천불해의 홍황요니, 서백리아에서 온 자린미불, 서장 광명불산의 설산상 성, 섬라 보하밀사(寶河密寺)에서 온 대자승불, 유구 불국열도(佛國列島) 의 장령제자 유상법사, 요서( 西)에서 온 백자가람, 북만 밀타미륵보찰(密 陀彌勒寶刹)의 남작천불존, 대막의 제자 파사랑승 공배절필(共拜絶筆).> "분명 이들은 백마와 비무를 했던 모양이군. 헌데 백마를 참하여 억조창 생을 구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 자천릉은 눈빛을 묘하게 빛내며 철편을 천천히 넘겨 가기 시작했다. 그 는 결코 몰랐던 것이다. 백마의 첫 번째 혈겁이야말로 전국시대의 가공 할 난세를 유발시킨 진정한 원인이었고, 바로 그때 난세십승의 십주대장 정도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백마참감을 노납 청룡이 적어 나가는 것은 결코 노납이 우리 십 인 의 불제자들에 우선해서가 아니라 다만 필에 약간의 재간이 있어 우리들 의 의견을 대필하게 된 것일 뿐임을 먼저 밝혀 두노라.> 백마참감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청룡이라면, 청룡소를 남긴 서천축의 스님이 아닌가? 훗, 아닌게 아니라 필체 하난 지독히도 수려하고 빼어나군." <오호! 십팔만사천백와마루는 정녕 천하를 병화(兵禍)에서 구하는 난세 의 수호신인가, 아니면 또다른 피의 폭풍을 잉태할 난세의 핵인가. 지난 일천 오백 년간 중원무인들의 하늘로 군림하여 자칫 군웅할거의 난 세가 초래될 것을 막아 온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위업을 생각하면 그들 은 당연히 천하의 방파제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로되, 당금에 이르러 그들 중 최강의 일백 마인들이 중원을 휩쓸며 일으킨 피의 격랑을 생각 한다면 이 또한 천하의 해악일 수 밖에 없음이 분명한 터, 이에 우리들 은 그들에 대한 판단을 놓고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도다.> "난세십승. 결국 이들도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 었군." <허나 마침내 우리의 뜻은 하나로 모아졌으니, 백마가 당금 천하에 돌이 킬 수 없는 난세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음에 분명한 이상, 우리는 그 들을 향해 죽음의 계율을 열고 다시 십팔만사천백와마루를 붕괴시킴으로 써 천하를 구하고 불타의 뜻을 사바에 펼쳐야 하지 않으리요. 해서 우리는 떠나노라. 비록 생과 사를 점칠 수 없는 전도일지라도 최소 한 몇 명의 마인들과 죽을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난세의 종식을 앞당기는 하나의 초석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만일 모두 입적하게 될 경우 다음 대, 아니 그 다음 대의 후손의 손에 의해서라도 난세는 반드시 종식되어야 한다는 염원 속에 하 나의 난세지병(亂世之兵)을 만들어 두나니, 우리가 지닌 열 개의 기병과 기보의 장점만을 취하여 탄생시킨 만병의 으뜸, 곧 백마착섬불극도가 바로 그것이라. 아울러 그 열 가지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열 개의 운용결(運用訣) 을 만들어 백마불참십극도술이라 이름하고 후대의 손에 남김이니....> "흠! 백마가 전국시대의 난세를 시작했고, 그래서 난세십승이 중원에 들 어오게 되었단 말이지. 헌데 이상하군." 자천룡이 철편을 읽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룡스님의 말 대로라면 전국시대의 난세가 평정된다는 것은 백마, 곧 십팔만사천백와마루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십팔만사천백 와마루가 붕괴되지 않는다면 난세 또한 계속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의 눈에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헌데 전국 난세는 이미 종식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팔만사천백와마 루와 백마는 더욱 번성하여 천하의 하늘로 군림하고 있으니." 그렇다. 청룡성승이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라면 정녕 그것은 기이한 모 순이 아닐 수 없었다. 헌데 바로 그 모순이야말로 십팔만사천백와마루에 삼천 년 동안이나 숨 겨져 내려온 거대한 비밀이었으니. 다시 철편 위로 시선을 떨구던 자천릉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흠! 이 스님도 정심이 흔들릴 때가 있었나 보군. 그 수려하던 필치가 점 점 어지러워지고 있으니." <허나 오호!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노납의 팔은 주체할 길 없이 떨리 고 있도다. 우리가 막 백마착섬불극도와 백마불참십극도술을 완성하고 십팔만사천백와마루로 떠나려 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이 각(二刻) 전의 시각에 한 삼십 대의 젊은 시주가 찾아와 우리에게 다짜 고짜 살도를 휘둘렀다. 스스로를 자전쾌도(紫電快刀)라 밝힌 그 시주의 무학은 실로 가공하여 종내 우리는 부끄럽게도 십 인이 합공을 가한 끝에 그를 죽일 수 있었 지만.... 아하... 우리는 세 명의 불우가 입적하고 나머지 일곱이 모두 전신을 난 자 당하는 엄청난 결과를 맞고야 말았음이니. 그리고 우리는 죽어가는 그 시주의 입을 통해서 더욱 무서운 사실을 알 게 되었도다. 그는 백마 중에서도 서열 일 위부터 십 위까지로 구성되는 십왕의 일 인이며, 그 중 제일 마지막 서열에 있는 자였다는 사실을. 우 리는 아연 경악할 수 밖에 없었노라. 우리 십승이 생사를 걸고 대적하려 했던 그 백마 위에 군림하는 십왕이 라는 조직이 또다시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강하다. 너무도 강하다.>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한 조직체인 십왕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서열의 인물과 싸워 우리는 세 불우(佛友)가 죽고 나머지 칠 인이 모두 전신을 난자 당하는 비극을 맛 보았거늘.... 그렇다면 도대체 십팔만사천백와마루는 얼마만큼 강하고 얼마만큼 보이 지 않는 잠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가. ... 중략.... 하지만 우리는 가노라. 승패의 귀결과 생사의 여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 는 것,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백마와 십왕, 그 마인들을 얼마나 제거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뿐이리니. 우리의 산화공덕(散華功德)이 조금이라도 난세의 종식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흡족하여 불타의 곁으로 돌아가리라. 이방십국(異邦十國) 불우(佛友)들의 뜻을 대신하여 어리석은 불자 청룡 절필(絶筆).> "십왕이라... 그래서 서열 일 위부터 서열 십 위까지 인물들이 모이는 회 의를 십왕벌(十王閥)이라 했었군." 자천릉은 낮은 탄성을 발하며 난세십승의 처절한 집념과 숭고한 불심이 점점이 묻어 있는 철편을 오래도록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15장 만황천하(卍皇天下) ① "만화무대의 주인이라던 그자의 서열이 십왕벌의 구위(九位)라 했으니, 청룡성승의 말을 빌면 그자도 꽤나 한 가락 하는 인물이라는 뜻이 되는 군." 역사이래 단 두 번 열렸고, 열릴 때마다 미중유의 난세를 일으켰으며, 또 종식시켰던 그 가공할 피의 연석회의 십왕벌! 헌데 주희빈은 만화예사 사희빈이라는 이름으로 십팔만사천백와마루에 입주, 단 십이 년만에 십왕벌의 일 인이 되는 신화를 창조했으니 그 어 찌 또한 엄청난 일이 아니랴. "훗! 난세십승은 전국시대의 난세를 종식시킨 후 이국십보를 남기고 각 각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알려져 있었거늘, 알고 보니 십왕벌에 도전했던 것이었군. 역시 전설이란 믿을 만한 것이 못돼." 자천릉은 담담히 뇌까리며 다시 한 장의 철편을 넘겼다. 거기에는 난세 십승이 이국십보의 열 가지 장점을 취해 만들었다는 백마불참십극도술의 요결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 백마불참십극도술(百魔佛斬十戟刀術). 제일술(第一術) 철유경. 아계탁란(餓鷄琢卵) 비비단풍(飛匕斷風). <굶주린 수닭이 부리를 세우고 먹이를 쪼니, 백마도극의 날은 비비(飛 匕)로 화하여 바람을 가르도다.> 제이술(第二術) 설상루. 설상란주(雪象亂走) 검환쇄빙(檢幻碎氷). <눈 속의 흰 코끼리가 길을 잃고 헤매어 달리니, 백마도극의 날이 한 자 루 검으로 바뀌어 빙벽을 꿰뚫도다.> 제삼술(第三術) 팔타단창. 금타도막(金駝到漠) 예창파선(銳槍破旋). <금빛 낙타가 물을 찾아 사막을 헤치니, 백마도극의 예봉이 창날로 바뀌 어 용권풍을 잠재우도다.> 제사술(第四術) 소소오각. 흑추번야(黑雛飜野)쌍퇴굉악(雙腿轟嶽). <검은 오추마가 황야에서 발굽을 구르니, 백마도극의 날이 두 자루 철퇴 로 화하여 산악을 부수도다.> 제오술(第五術) 자린벽슬. 자린조양(紫麟爪洋) 벽파붕도(碧琶崩濤). <자주빛 기린이 발톱을 세우고 바다를 헤치니, 백마도극이 비파로 변환 하여 파도를 깨도다.> 제팔술(第八術) 백자공후. 백서개황(白鼠蓋荒) 만환폐우(萬丸閉雨). <하얀 쥐떼가 황금들판을 엄습하니, 백마도극은 철환으로 화하여 폭우를 되 치도다.> 제구술(第九術) 천뢰금부와 벽은월. 호사병탐(虎獅竝眈) 부월격포(斧鉞擊布). <초원의 사자와 밀림의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니, 백마도극이 두 자루의 도끼로 바뀌며 폭포를 산산조각 내도다.> 제십술(第十術) 청룡소. 청룡뇌승(靑龍雷昇) 섬영극예(閃影戟刈). <푸른 용이 천둥을 타고 하늘에 오르니, 백마도극이 극(戟)으로 바뀌며 번개의 그림자를 베도다.>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백마참감을 읽기를 끝낸 자천릉이 긴 흑발을 연신 물 속에 담궜다 꺼내고 있었다. "난세십승이 합심해서 창안한 백마착섬불극도의 운용무예는 내가 본 무 학 중 가장 강했다. 그 어떤 무학보다도. 이 무예를 완벽히 연성한다면 십왕 중 사 인을 벨 수 있다고 호언한 청룡성승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천릉은 다시 탐스런 머리칼을 물 속에 담그며 계속 나직이 뇌까리고 있었다. "허나 청룡성승의 생각은 매우 짧았다. 난세십승이 백마의 가공함을 알 았듯 백마 또한 난세십승의 무서움을 경각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 해 서 십왕 중 일 인이 직접 난세십승과 부딪쳤던 것이 아닌가? 허나 결과 는 난세십승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그것도 단 일 인에 의해." 자천릉은 다시 한 번 흑발을 꺼내들며 뽀얀 수증기 너머를 가볍게 응시 했다. "십왕 중 일 인이 비록 난세십승에게 당했지만 그가 죽어 가면서 남긴 승패의 결과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모든 사람 들과 그 싸움을 알고 있는 몇몇의 천하인들에게 난세십승의 무학수위를 정확히 전해 준 것이다" 문득 자천릉이 수증기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또한 난세십승은 그들의 열 가지 절예의 장점만을 따서 백도불참십극도 술을 창안했다고 했지만, 백마와 십왕 등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수뇌진 들도 두 손과 머리를 묶어 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도 끝없이 새로운 무학을 연구하고 창안하며 자신들의 무학을 발전시켜 왔 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다. 무릇 무학이란 창조하는 자가 있기에 생겨나고 연구하는 자가 있기에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무학을 창조하며 연구하는 것은 무인들의 공통된 속성이니 아무리 난세십승이 십팔만사천백와마루를 표적으로 백마불참십극도술을 창안해 냈다고는 하나 백마와 십왕인들 어찌 발전이 없을 수 있을 것인가. 자천 릉은 그 발상의 허점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증거는 십팔만사천백와마루가 세워지고 삼천 년이 지난 오늘, 아니 난세십승이 대장정을 연 지 일천 오백 년이 지난 오늘, 난세십승의 후예 들은 한 번도 천하에 이름을 떨친 적이 없음에도 십왕을 포함한 백마의 후예들은 여전히 천하에 위세도 당당하게 군림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이 십팔만사천백와마루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을 만큼!" 자천릉은 뒷짐을 진 채 서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고개 를 저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백마가 가장 무서운 점은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수뇌들 의 최후 비전절학이라는 백마십팔만사천합마전, 곧 십왕을 포함한 일백 마인들이 모두 연합하여 펼친다는 그 거창한 전진(戰陣)을 삼천 년 동안 천하 그 누구도 목격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