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나일강의 죽음 - 7편 (7/21)
시몬은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수입이 많지 않답니다. 글쎄 1년에 한 2백 달러나 될까요? 내 생각엔 아마 그래요. 그녀는 아마 주식을 처분해서 비용으로 쓸 겁니다." "그럼, 그녀는 머지않아 빈털터리가 되겠군요?" "네‥‥" 시몬은 대답하기가 거북한지 망설였다. 그러한 생각이 그를 편치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포와로는 그러한 시몬의 태도를 세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포와로 씨, 우리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잘 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건 일종의 도피 행위로 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시몬은 얼굴이 금방 상기되어 물었다. "우리가 도망간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리넷은‥‥" 포와로는 말없이 시몬 도일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글세, 그게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키 양도 명석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시몬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언젠가는 그녀와 부딪쳐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재키의 태도는 너무 즉흥적이고 감상적이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키는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포와로는 어리둥절해 하는 시몬에게 다시 말했다. "그녀는 자니치게 이성적인 것 같습니다. 나도 카나크 호에 승선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내 여행 계획이거든요." 시몬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포와로 씨, 혹시 우리 때문에 그러시는 건 아닙니까? 내 말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포와로는 곧바로 그의 생각을 바꾸어 주었다. "아닙니다. 그건 벌써 내가 런던을 떠나기 전부터 계획한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계획을 세워서 행동하지요." "그럼, 당신은 여행도 마음대로 여기 저기를 다니는 게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합니까? 여행은 발길 닿는대로 하는 게 즐겁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인생을 효과있게 성공적으로 살려면 미리 세밀히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시몬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살인자들도 치밀히 계획을 세워서 행동하겠죠?" "네, 맞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것 중에서 제일 어려운 범죄는 우발적인 거이었는데 그 사건은 아주 교묘하고 해결하기가 힘들었지요." 시몬은 마치 소년처럼 포와로를 졸랐다. "카나크 호를 타고 당신이 해결한 사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전문적인 것이라 뭣하고‥‥" "그렇겠죠, 하지만 배 위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스릴 만점이겠군요. 앨러튼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참, 그 부인은 포와로 씨께 반대심문을 하고 싶은 눈치더군요. 그 부인도 역시 카나크 호를 타실 겁니다." "앨러튼 부인요? 아, 그 머리가 반백인 매력적인 노부인 말이군요. 아들이 효자이죠. 그 부인도 당신 계획을 알고 있나요?" 시몬은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 "아뇨, 전혀 모릅니다. 제 계획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고 있죠. 아무도 믿지 않는 게 제 신조거든요." "그것 참, 감탄할 만한 신조이군요. 나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은 먹지만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아, 당신들과 동행인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네, 페닝턴 씨요?" "그 사람도 함께 여행하고 있습니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죠? 페닝턴 씨는 리넷의 미국인 재산관리인이랍니다. 우연히 카이로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럼,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부인의 나이는 지금 몇 살쯤 되었죠?" 시몬은 기분이 다소 좋아진 듯 표정이 밝아졌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직 스물 한 살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누군가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페닝턴 씨는 꽤나 놀랬나 봅니다. 우리의 결혼을 알리는 편지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카마니크 호로 뉴욕을 떠났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결혼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카마니크 호라고요?" 포와로는 놀란 듯이 반문했다. "카이로의 세퍼트에서 우리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페닝턴 씨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건 우연 중의 우연이군요." "페닝턴 씨도 나일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군요. 그래서 동행한 겁니다. 박절하게 뿌리칠 수도 없어서요. 뭐 어떤 면으로 보면 더 편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요." 그는 다시 나지막히 말했다. "포와로 씨도 느끼셨겠지만 리넷이 너무 예민해져서요. 재키가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형편이고요. 우리 두 사람만 있으면 화제가 자꾸 재키 쪽으로 돌아간답니다. 그래서 페닝턴의 동행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 셈이죠. 그가 옆에 있으면 자연스러운 화제가 나오니까요." "리넷은 페닝턴 씨를 많이 의지하나 보군요?" 시몬은 싸움이라도 할 사람처럼 거칠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리넷에게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아요." 포와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직 그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이 나려면 멀었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포와로 씨, 당신은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포와로는 진지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친구는 카드 게임 외에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없군. 아직 미숙한 영국인!' 리넷 도일과 재클린 드벨포는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시몬 도일은 남자답지 않게 조급하게 굴고 귀찮아만 했다. 포와로가 불쑥 그에게 물었다. "내가 무례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신혼 여행을 이집트로 오자고 한 건 누굽니까?" "사실은 리넷이 하도 우겨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길 원했는데‥‥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었죠." "아, 그랬군요!" 포와로는 다시 한 번 리넷 도일은 자기가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만다는 것을 확인했다. 포와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천천히 정리해 보았다. '그 일에 대해서 각각 세 사람의 의견을 다 들었군. 리넷 도일과 재클린 드벨포,그리고 시몬 도일의 이야기 중에서 누구의 의견이 가장 진실되다고 볼 수 있을까?' 6 리넷 도일과 시몬은 이튿날 오전 8시쯤 필래로 출발했다. 재클린은 호텔의 발코니에서 아름다운 배를 타고 가는 시몬 부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침한 리넷의 하녀가 짐을 가득 실은 차를 타고 호텔 정문을 나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녀를 태운 차는 호텔을 빠져 쉘랄을 향해 달려갔다. 에르큘 포와로는 점심 식사 전까지의 시간을 엘러팬턴 섬에서 보낼 작정이었다. 그 섬은 호텔 건너편에 위치한 곳이었다. 포와로는 선착장으로 내려가 호텔 보트에 올라타는 두 남자와 함께 보트에 동승했다. 두 사람은 초면인 듯 보였는데 그들 중 젊은이는 어제 기차로 온 사람이었다. 그는 큰 키에 머리가 검은 젊은이로 마른 얼굴과 턱이 반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지저분한 바지에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목이 높이 올라오는 점퍼를 입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한 중년의 남자로, 그는 포와로에게 대뜸 엉터리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등을 돌려 누비아 인이 손으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발끝으로 보트를 민첩하게 조종하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보트는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보트는 거침없이 거대한 바위 사이를 빠져 나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얼마 후, 보트는 엘러팬틴에 도착했다. 포와로는 보트에서 내려 수다스런 중년 나자와 박물관으로 발을 옮겼다. 도중에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포와로에게 건네 주었다. 그 명함에는 <고고학자 시뇨르 기드 리체티>라고 씌어 있었다. 포와로도 그에게 명함을 주고 나서 두 사람은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그 수다스런 이탈리아 사람은 포와로에게 전문적인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함께 보트를 타고 온 젊은이가 하품을 하고 박물관 안에서 왔다갔다 하더니 곧 밖으로 나가 버렸다. 포와로와 이탈리아 인은 한동안 박물관을 살펴보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이탈리아 인은 열심히 폐허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포와로는 강가의 바위 위에서 낯익은 양산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 양산의 부인은 짐작대로 앨러튼 부인이었다. 그녀 옆에는 스케치북, 무릎에는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포와로가 모자를 벗어들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앨러튼 부인도 웃으며 포와로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포와로 씨? 어떻게 해야 이 끈질긴 애들을 쫓아 버릴 수 있죠?"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앨러튼 부인 옆에서 손을 내밀고 돈을 달라고 합창했다. 부인은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유, 귀찮아 죽겠어요! 쟤들이 두 시간 가량이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다가 내가 '예잇, 이놈들!'하고 소리치면 흩어졌다가 이내 또 가까이 다가온답니다. 나는 애들을 좋아하는데 이 애들의 눈빛은 왠지 역겹게 느껴지는 군요." 앨러튼 부인을 위해서 포와로가 용감히 아이들을 쫓으려고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흩어졌다가 곧 돌아와서 두 사람을 빙 둘러섰다. 포와로는 바위에 손수건을 깔고 앉았다. "이런 귀찮은 게 없다면 훨씬 더 즐거운 이집트 여행이 될 거예요. 어디를 가도 귀찮게 구니‥‥ 동냥을 하려고 쫓아다니거나 당나귀가지 사라고 조르는 판국이거든요. 글쎄 오리 사냥을 가자거나 원주민 부락에 가자고 매달리기도 하더군요." "네, 정말 귀찮은 일이죠." 포와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드님이 보이지 않는군요." "여길 떠나기 전에 편지를 부친다고요. 우리는 제2폭포로 간답니다." "네, 그랬군요. 실은 저도 그곳에 갈 계획입니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당신과 동행하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마조르카에서 리치 부인과 함께 있었죠. 그 부인은 수영을 하다가 루비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때 당신이 있었다면 반드시 그 반지를 찾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실은 저는 다이빙에는 자신이 없거든요." 두 사람은 큰소리로 웃었다. 앨러튼 부인이 유쾌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창문을 바라다보니 당신이 시몬 도일과 걷고 있더군요. 포와로 씨, 시몬 도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아, 그랬군요!" "그럼요,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죠. 그와 리넷 리지웨이의 결혼은 큰 충격을 주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리넷이 윈들 쉠 경과 결혼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금시초문인 남자와 결혼을 해 버렸잖아요." "부인, 리넷을 잘 압니까?" "잘 몰라요. 친척인 조안나 사우드우드가 리넷과 절친하지요." "그 이름은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 이름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더군요." 앨러튼 부인은 숨도 쉬지 않고 재빨리 말해 버렸다. "그녀는 자기를 선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답니다." "아, 부인께서는 조안나를 좋아하지 않나 보군요?" 앨러튼 부인은 그를 쳐다보며 바로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이곳엔 너무 젊은 사람이 없어요. 갈색 머리의 예쁜 아가씨와 터번을 쓰는 그녀의 어머니가 좀 젊은 축이지요. 참 당신은 그 모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더군요. 나도 그 아가씨에게 관심이 많아요." "그 이유가 뭐죠, 부인?" "웬지 그 아가씨가 애처롭게 보여서요. 젊었을 때는 괴로움도 많지만 그 아가씨는 무척 고민을 하는 것 같아서요." "네, 잘 보셨습니다. 그 아가씨는 그리 행복하지 못하죠. 가엾게도 그렇질 못하답니다." "내 아들과 나는 그녀를 새침데기라고 하죠. 한 두 번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했는데 그 아가씨가 냉담하게 나왔어요. 그녀도 나일 강 여행을 할 테니까 차차 친해지겠지만‥‥ 포와로 씨,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여러 사람을 보노라면 각각 흥미가 생기죠. 아무리 사람이 많이 있어도 모두 제각기 개성이 있지요. 아들은 그 검은 머리의 처녀가 바로 시몬 도일과 약혼했던 재클린 드벨포라고 하더군요. 시몬 부부는 아주 어색하고 쑥스럽겠죠. 그녀와 부딪쳤으니‥‥" 포와로도 대꾸했다. "네, 어색한 게 당연하죠." 앨러튼 부인은 곁눈질로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좀 어리석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웬지 무섭고 섬뜩해지더군요. 내가 너무 관민한 걸까요?" 포와로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아뇨, 잘 보신 겁니다. 격앙된 감정은 사람을 두렵게도 하니까요." "포와로 씨, 당신도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시나요?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서 범죄의 가능성을 찾으며 즐기고 있나요?" "부인,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앨러튼 부인은 크게 놀란 듯 반문해 왔다. "포와로 씨, 정말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네, 특별한 동기만 주어진다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야 모두 가능성이 다르겠죠?" "네, 그렇습니다." 앨러튼 부인은 잠시동안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그렇겠지요?" "뭐랄까, 모성애의 발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어머니들은 자식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상상할 수 없게 잔인해지지요." 앨러튼 부인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네, 그건 당신 말이 맞아요. 제 생각도 그렇답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호텔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 만일 범죄를 저지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동기가 각각 무엇일까요? 그건 참 흥미롭더군요. 예를 들어 시몬 도일은 어떤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를까요?" 포와로는 의미있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는 지극히 단순한 범죄를 저지를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총을 대고 쏘려고 할 겁니다. 교묘하지 않고 지극히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럼 그건 쉽게 들키겠군요." "네, 시몬은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를 위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리넷은 어떨까요?" "그녀라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여왕같이 하겠죠. 그 여자의 목을 베어 버리라고 명령할 겁니다." "네, 그녀라면 그러고도 남겠죠. 리넷은 독재자처럼 굴 겁니다. 자기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항상 위기의 여자 같은 재키는 살인을 할 수 있을까요?" 포와로는 머뭇거리며 입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내 생각 같아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신하는 건 아니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 작은 아가씨는 좀 까다로와서요." "페닝턴 씨는 살인 따위는 하지 않겠죠?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거든요. 즉흥적인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는 전혀 흥분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 반면에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하는 본능이 유난히 강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나도 동감입니다. 그리고 터번을 두른 그 오터번 부인은 어떻죠?" 앨러튼 부인의 목소리에는 짙은 의혹이 깔려 있었다. "살인의 동기에는 예상 밖의 극히 사소한 경우도 있지요." "포와로 씨. 가장 흔한 살인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거야 물론 돈이죠. 돈이야말로 다양한 결과를 초래하니까요. 그 다음은 복수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사랑과 공포심, 증오심, 선행심‥‥" "포와로 씨!" "부인,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 그 살해 동기는 우습게도 C를 단지 돕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해 봅시다. 정치저인 살인의 동기는 모두 이렇죠. 그 판에서는 사소한 이유에서 사람을 제거하죠. 그들은 사람의 생사가 오직 하느님의 뜻임을 잊고 있지요." 포와로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기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할 사람은 주님에 의해서만 선택 된답니다." "부인, 그 생각은 위험 천만이군요." 앨러튼 부인은 한결 가볍게 말을 했다. "포와로 씨, 이런 식으로 가정해 보니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요?" 앨러튼 부인은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선착장에 당도했을 때, 허름한 차림의 젊은이가 막 보트에 앉으려고 하였다. 다른 중년의 이탈리아인은 벌써 앉아 있었다. 보트의 줄을 풀고 출발하자 포와로는 젊은이에게 점잖게 말을 하였다. "이집트에는 구경거리가 아주 많지요?" 젊은이는 독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담배를 빼고는 말했는데, 그 말투가 의외로 세련된 것이었다. "저는 그런 것만 보면 분통이 터집니다." 앨러튼 부인은 안경을 걸치고 호기심이 가득 차 살펴보았다. 포와로는 의외라는 듯 젊은이에게 반문했다.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피라밋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거대한 석조물은 옛날의 사욕에 불타는 한 군주의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려고 세워진 것에 불과합니다. 그 피라밋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습니다. 그 죄없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앨러튼 부인이 나서서 말했다. "그럼, 당신은 피라밋이나 파르테논 신전, 또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덤이나 사원이 없었던 게 낫다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즉 사람은 평범하게 하루 세 끼의 밥을 먹다가 조용히 때가 되면 죽는 게 좋다는 생각이시군요." 젊은이는 앨러튼 부인의 말을 듣고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그녀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저 인간이 돌보다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포와로가 한 마디 했다. "그러나 인간은 돌처럼 오래 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쌍한 노동자들이 굶주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죠.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입니다." 젊은이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리체티는 이해할 수 없는 큰소리로 마구 떠들었다. 젊은이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그의 말에는 독설이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젊은이의 연설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그들은 호텔 선착장에 닿았다. 앨러튼 부인은 먼저 활발히 보트에서 내렸다. 젊은이는 날카로운 시선을 그녀에게 쏟고 있었다. 포와로는 호텔 로비에서 승마복 차림의 재클린 드벨포 양과 마주쳤다. 그녀는 포와로를 조롱하듯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보냈다. "저는 당나귀나 좀 타려고 해요. 원주민 부락을 좀 구경하려고요. 볼거리가 많다던데요. 포와로 씨, 그 말이 맞나요?" "아, 오늘은 그곳에 가십니까? 네, 그곳은 참 아름답지요. 마치 그림과 같은 곳이랍니다. 그러나 골동품을 사지는 마십시오." "골동품이라면 유럽에도 널려 있는데 여기 진짜가 있겠어요? 저는 그런 것에 속아 넘어 가지는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빛나는 햇빛 아래로 걸어 나갔다. 포와로는 짐을 빠른 시간에 모두 꾸렸다. 그는 언제나 물건을 잘 정돈해 놓는 성격이므로 그 일은 간단히 끝낼 수 있었다. 짐을 꾸린 후, 포와로는 약간 일찍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 후, 제2폭포로 갈 손님은 호텔 버스로 역을 향해 출발했다. 역에는 10분 간격으로 카이로에서 쉘랄로 가는 급행 열차편이 있었다. 승객이라고는 포와로와 앨러튼 부인, 차림이 허술한 젊은이와 이탈리아인이 전부였다. 오터번 부인과 그녀의 딸은 먼저 필래로 출발하여 나중에 쉘랄에서 증기선을 탄다고 했다. 카이로와 룩소르에서 오는 기차는 20분 가량 연착이었다. 기차가 도착하자 짐을 부리는 이집트인들이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은 마구 떠들면서 기차에서 짐을 부리고 있었다. 포와로는 겨우 자기의 객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의 객실에는 자기 짐과 앨러튼 부인의 짐 외에도 낯선 짐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동안 팀과 앨러튼 부인은 자기 짐을 가지고 그들의 객실로 갔다. 포와로가 들어간 객실에는 벌써 여자 승객이 들어 있었는데, 그녀는 주름진 얼굴에 하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다이아몬드 치장을 했지만 얼굴에는 타인을 경멸하는 오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귀족처럼 거만한 눈길로 포와로를 쳐다보더니 시선을 거두어 미국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건너편에는 30대 미만의 덩치 크고 못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개눈같이 생긴 갈색의 눈과 더부룩한 머리를 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태도에는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고 싶어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이따금 나이 든 부인은 잡지에서 눈을 떼고 못 생긴 여자에게 억압적으로 명령했다. "코넬리아, 무릎덮개를 다 모으도록 해." "기차에서 내릴 때, 화장품 주머니를 잘 챙겨야 해. 다른 사람 손이 닿아선 안 되니까. 그리고 내 종이 재단기도 잊어버려선 안 되고‥‥" 기차는 이내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들은 10분도 채 안 되어 카나크 호가 대기하고 있는 부둣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