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만황(卍皇) 1 - 45편 (45/50)

2026-09-21 21:18:45 조회 14
흑나비의 그 가공할 절세의 마공은 인두탑을 박살내 위대한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흰 붕대는 잔인하게 어느 특정인을 가리지 않으며 무 차별 대학살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② 두 개의 눈은 서로 다른 의미와 표정을 담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천릉의 눈은 그저 담담한,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알지 못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무심함을 보여주고 있었고, 시제 상관목수 잔기사의 눈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인두탑의 최정상에서 석 자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응시 하고 있었다. 잔기사는 자신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듯 씹어뱉는 듯한 음성을 토해 냈다. "크크크, 미친놈! 죽고 싶어 안달나서 이제 막가는구나." "그럴까? 하긴 나도 당신을 높이 평가해 주고 있었지. 이런 썩은 시궁창 에서 서열 사 위로 오른 것을 생각하면 가상히 여겨주고 싶으니까. 허나 그 지위가 오늘 당신을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하게 된 것이지." 자천릉의 음성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그 무심함은 오히려 잔기사의 엄청난 분노가 토해내는 기도를 지그시 내 리누르고 있다. 그래서일까? 잔기사의 분노한 눈에는 은연중 긴장의 빛 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요방에서 칼이나 잡고 아궁이에 불을 붙이던 놈과는 다르다. 달라 도 너무 엄청나게 달라졌다.' 긴장과 더불어 그의 자의누더기가 무형 중에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흐흐흐, 너의 그 광기가 가상하여 가볍게 다루어 주마." "ㅋ! 꽤나 시간이 많군. 허나 나는 바보니까 단 이 초로 끝냈으면 하네." 잔기사의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미쳤군! 청파유장, 천사!" 잔기사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좌수가 가볍게 허공을 할퀴는 순간 흡사 대해의 심연 속에 이는 와류 소리와도 같고, 지평선 건너에서 다가오는 엄청난 회오리 소리와도 같은 기음이 벼락처럼 때려 울렸다. 시퍼런 녹광(綠光)이 그의 장심에서 일시에 천줄기로 쏟아지며 마치 대 해가 광활한 대륙을 삼켜 가듯 한 치의 공간도 없이 팔방으로 쏘아갔다. 동시에 녹빛 속에서 섬세한 흰 빛이 면도날과 같은 예기를 토하며 밤하 늘을 가르고 솟구쳐 올랐다. 그순간 자천릉의 담담한 일갈이 울렸다. "설상쇄시!" 어느 사이엔가 자천릉의 손에는 설상루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잔기사에게 정면으로 충돌해 갔다. 이미 잔기사의 전신은 녹빛에 휩싸여 있었으나 그는 흡사 청해를 가르는 상어처럼 빛과 같은 엄청난 속도로 녹빛을 가르며 쏘아나간 것이다. 한순간 잔기사는 도저히 자신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흠칫하고 는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순간, 사악! 하면서 살을 저미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설상루가 잔기사의 누더기 자포를 한 조각 베어냈다. 엄청난 굉음이 천지간을 일시에 함몰 시킬 듯 울리며 대지가 진동을 일으킨 것은 그 다음이었다. 대해의 파랑과도 같이 쏘아나간 녹광이 깎아지듯 가파른 시망산의 중턱 을 친 것이다. 와르르! 일시에 수천, 수만 근의 유황이 폭발하듯 해골더미가 중턱에서부터 통째 로 깎여 허공으로 비산하였다. 실로 가공할 기세가 아닌가. "직(直) 충(庶)!" 설상루의 예리한 검광이 홱 방향을 틀며 허공에 불과 일 장 삼 척 밖에 치솟지 못한 잔기사의 옆구리를 쇄도해 들어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상 상할 수 없는 극쾌였다. 그와 동시에 잔기사의 수중에서 단 한 시도 떠나지 않았던 핏빛 마검(魔 劍)이 섬광처럼 허공을 그으며 곧장 자천릉의 미간으로 내리꽂혔다. 그 두 사람의 움직임은 소리도 없었다. 단지 아리한 백광과 시뻘건 혈광이 서로 교차하듯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그리고 뒤늦게 터져나온 것은 껄 끄러운 신음소리였다. "크으." 잔기사의 몸이 퉁겨져 나갔다. 그는 바닥을 서너 번 뒹굴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허나 그는 비틀 하더니 재차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그의 가슴 에는 설상루가 자루까지 깊숙히 박혀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바둥거리는 그의 시선 속에 자천릉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의 왼쪽 발 석치 옆에 꽂혀 있는 자신의 애검을 보았다. "어떻게...?" 잔기사의 음성은 헛바람 소리에 가까웠다. 자천릉은 무심한 눈빛에 애석 한 듯한 빛을 스쳐 보냈다. "당신의 손에서 검이 떠나기 전 일 푼의 시간차이로 내 검이 먼저 당신 을 찔렀기 때문이겠지." "크..." 자천릉이 설상루를 뽑자 잔기사는 신음을 토하며 끊어진 듯한 미미한 음 성을 흘러냈다. "어떻게 나의 일 장을 받고도...?" "그것이 나의 위대한 점이지. 당신과 내가 다른...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점이 실수라고나 할까?" 잔기사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때 흡사 잔기사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자축의 향연처럼 인광이 화려하 게 빛을 작렬하며 밤하늘의 공간을 수놓고 있었다. "별로 아름다운 빛은 아니군." 자천릉은 자신의 그 한마디로 심중을 토로한 채 발길을 돌렸다. 십팔만 사천백와마루를 향해. ③ 천남 땅, 사황구십구계(死荒九十九溪). 시망상천에서 시작되는 황토의 계곡이 아흔 아홉의 구비를 쌓으며 계속 된다는 천형의 땅. 깊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다시 시작된 겨울의 삭풍과 혹한으로 아흔 아홉 구비가 송두리째 얼어붙 고 그 위에 내리는 어둠조차 닿으면 살갗을 베일 듯 예리하게 얼어붙어 있는 어느 시각, 캐애애앵! 바람소리에 실려 어디선가 섬뜩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어둠 속에 는 푸석푸석하게 동결된 황토 흙만이 기분 나쁠 정도로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ㅋ! 이제 시망상천에서 시제와 칠 인의 백마를 죽였으니 그대가 죽이고 자 하는 십왕과 백마 중 거의 절반은 끝을 냈겠소?" 양철지붕 위를 고양이의 발톱이 할퀴는 소리이기라도 하듯 꺼칠꺼칠하고 기분 나쁜 한 줄기 음성이 그 계곡의 정적을 깨뜨렸다. "후후, 허나 이제부터 시작이네." 맑고 아름다운 또하나의 음성이 뒤를 잇고 잇달아 천천히 얼어붙은 어둠 을 헤치고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나고 있었다. 흑철립에 흑포를 걸친 전신에서 숨막히도록 음습한 늪 속같은 한기를 흩 뿌리는 흑영이 말을 이었다. "그렇겠군. 이제껏 죽지 않고 남아 있는 백마와 십왕이라면 그만큼 먼저 죽어 간 자들보다 강할테니." "물론이지. 끝내는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테고." 맹호가 새겨진 혈포를 입고 등에는 어둠을 반사하는 기이한 도극을 걸쳐 멘 혈영이 다시 말을 받았다. 이들은 바로 시망상천에서 십왕 중 네 번째 인물인 시제 상관목수 잔기 사를 비롯한 칠 인의 백마를 참하고 돌아오는 자천릉과 흑나비였다. 헌데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말은 실로 가공스럽기 그지없 는 것이 아닌가? -십왕과 백마! 그 절반이 죽음을 당하다! 그렇다! 곤오풍의 율령에 의해 십팔만사천백와마루가 천하를 질타하고, 죽음을 건 후계자 계승 싸움, 그 십왕들의 전쟁이 시작된 지 이제 꼭 오 개월, 그 짧은 기간 동안 십왕과 백마는 이미 절반이 죽음을 당하고 있 었던 것이다. 십왕 중 생존자는 통합서열 일 위의 곤오풍우와 비사벌, 그리고 만화예 사 사희빈 뿐이었고, 그들에게 나누어 소속된 채 실질적인 전쟁의 첨봉 을 담당하던 백마는 자천릉의 보이지 않는 살수를 포함한 전란의 와중에 서 이미 오십일명(五十一名)이 이슬처럼 스러지고 만 것이었다. 새빨갛게 얼어붙은 황토와 칠흑의 어둠, 그리고 스산한 칼바람 속을 묵 묵히 직시하던 흑나비가 불현듯 물음을 던졌다. "헌데 그대는 어디로 가기에 이토록 으시시한 곳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것 이오?" "후훗, 겁나나?" "그대와 함께 있으니 겁이야 나지 않겠지만 왠지 서글퍼지는 건 사실이 오." "?" "타인들이 모두 잠든 후에 우리는 이렇듯 삭막한 계곡만을 걸어가야 하 니." 자천릉의 눈에 어이없다는 듯 기이한 미소가 스쳐갔다. "그대는 시시때때로 재미있군. 그대의 입에서 그토록 서정적인 말이 다 흘러나오다니." "농담은 아니오. 그대야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지만 나는 목적이 없지 않 소." 검은 장포에 싸인 흑나비의 흉측한 어깨 위로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어 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후후, 그것은 그대가 자청한 것이 아니던가?" 자천릉의 미소는 여전히 차고 무뚝뚝하기만 했다. "크크ㅋ! 그렇긴 하지만 재미없는 당신과 붙어다니려니 조금은 지루하지 않겠소? 물론 내가 차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는 쾌감이 그 지루 함을 간신히 씻어 주기는 하오만." "미안하네. 나도 함께 죽어 주지 못해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그대가 살아 있음로써 나는 죽어가 는데나마 즐겁게 죽는 것이니까." 사람들의 감정에는 지독히도 둔감한 자천릉이었지만 짐짓 유쾌한 듯한 흑나비의 음성에서 보이지 않게 묻어나오는 저 푸른 비애의 빛깔을 어찌 느끼지 못할 수 있으랴. 허나 어디까지나 무뚝뚝하게 말을 받는 자천릉이었고 역시 퉁명스레 대 꾸하는 흑나비였다. 그러나 어둠만은 알리라. 징그러운 듯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가슴 사이에서 움트기 시작하는 저 미묘한 정을. 우정 같기도 하고 의리같기 도 한, 아니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듯도 한 저 복잡한 정감 의 흐름을! 그때 자천릉이 주위를 빠르게 훑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후, 어쩌면 이 황색 동토의 계곡에서 죽어 갈지도 모르겠군." 어디선가 바늘 끝처럼 예리하게 번져오는 죽음의 체취를 맡은 것이다. "크ㅋ, 걱정 마시오. 나는 죽더라도 그대의 목숨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줄 테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는군." "눈물은 내가 죽은 후 흘리시오." 흑나비의 음성이 싸늘하게 울려 퍼지는 그 순간이었다. "늦었군.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네. 자부방주!" "크크, 오늘도 요리를 맛있게 해 쳐드시고 오느라 늦은 모양이군." 자천릉의 전면 어둠 속에서 잘게 갈은 칼날을 귓 속에 뿌려넣은 듯 삭막 한 음성 두 줄기가 들려왔다. "후후, 늦게 오니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 주시지 않소?" 자천릉이 한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때 자천릉과 흑나비가 서 있는 황토계곡의 주위, 그 칠흑의 어둠 속에 약 사십여 명의 혈포인들과 한 명의 자포노인의 그림자가 은은히 보이고 있지 않은가? 자천릉은 걸음을 내디딤과 동시에 흑나비를 흘낏 돌아보았 다. "후후, 그대는 이들을 모르겠지? 조금 후 가서 인사라도 드리게. 십팔만 사천백와마루의 위대하신 사십 구 인의 백마제위(百魔諸位)와 십왕 중 두 번째 어른이신 은하학사 자연수수 비사벌이라는 분이네." "ㅋ! 기쁘겠소. 오늘 저녁 한꺼번에 쥐를 잡게 돼서." 흑나비가 짐짓 코웃음을 터뜨리며 어둠 속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자천릉과 흑나비를 포위하고 있는 사십 구 인의 혈포인과 한 사람의 자 포노인이 바로 십팔만사천백와마루에 살아남아 있는 사십 구 인의 백마 들 전원과 십왕 중 곤오풍우에 이은 두 번째 인물인 비사벌이었단 말인 가? 그렇다면 십왕들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들 중 곤오풍우와 주희빈을 제외한 전부가 지금 자천릉을 포위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정녕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자포노인이 천천 히 자천릉 앞으로 걸어나왔다. "천요만방의 자부방주. 본좌는 은하태극삼십육가의 총가주이자 본루 통 합서열 이 위인 십왕 중의 일 인으로서 그대에게 정중히 예를 취하며 타 협안을 내놓는다." "타협안이라, 타협을 하자는 자 치고는 지독히도 고자세군." 흑나비가 괴소로써 말을 받았다. "크ㅋ, 타협이 아니라 협박이겠지." 시뻘건 동토 위에 어둠을 깨뜨리며 다가와 서 있는 자포노인의 모습은 마치 영과선초(靈菓仙草)를 지키는 한 마리 백사가 어둠 속에 곧추 서 있는 듯한 모습이랄까? 새하얗게 센 백발을 자포 아래로 늘어뜨린 채 보랏빛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자포노인의 모습은 일견 더없이 강하고 중후해 보이면서도 한편으 로 눈빛만으로도 대하는 이의 등골을 꿰뚫어 버릴 듯 사악한 채취를 풍 겨내고 있었다. 그렇다. 하늘 없는 땅 십팔만사천백와마루를 통틀어 두 번째의 자리에 올라있는 무인이며 십왕 중의 일 인으로서, 또 은하태극삽십육가의 총가 주로서 지난 오 개월 동안의 중원천하를 파멸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게 했던 바로 그 사람, 비사벌이 지금 자천릉의 발길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 었다. 이때 비사벌이 자천릉과 흑나비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껄껄, 협박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어차피 그대들이 택한 길은 단 두 길, 생과 사일 뿐이니까." 헌데 비사벌의 웃음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후훗... 택했다. 죽음의 길을." 자천릉이 차가운 미소와 함께 백마착섬불극도를 빼어들며 그대로 허공에 솟구쳤다. "가라! 백마불참십극도술, 제 팔술! 하얀 쥐떼가 황금벌판을 엄습하니 백 마도극은 철환으로 화하여 폭우를 되치도다! 백서개황(白鼠蓋荒) 만환폐 우(萬丸閉雨)!" 쐐애애액! "크아악!" 백마도극이 허공에서 한 차례 우유빛 무지개를 그리며 가까이 서 있던 두 혈포인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비사벌의 입에서 우렁찬 대갈이 터져나왔다. "기습이로군. 얘들아! 백마십팔만사천합마전을 펼쳐라!" "합!" 혈포인들, 곧 사십 칠 인의 백마들이 돌연 지면을 박차며 기이한 대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백마십팔만사천합마전, 제일합마참인!" 사사사삭! "칠칠사십구 칠성종횡합격대형으로 변환하라!" 먼저 칠인일조(七人一組)의 가로대형이 어둠 속을 교차하며 짜여지는가 싶자 비사벌이 서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한 조가 원을 이루며 내려섰다. 이어 다시 두 개의 조가 마치 동심원을 만들 듯 그 너머를 겹겹이 에워 싸는 순간 나머지 네 개의 조가 비사벌을 가운데 두고 십자형으로 엇갈 리며 방사형과 동심원이 교차되는 연횡합종(連橫合縱)의 특이한 진세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동시에 사십 칠 인의 백마들이 폭출시키는 가공할 살기가 중앙의 비사벌 에게 집중되며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잠력의 분수가 어둠 속으로 바람기둥 처럼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백마십팔만사천합마전! 십왕을 포함한 일백 마인, 곧 백마가 연합하여 펼치는 최후의 비전!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최고무인 일백 인이 모두 동원되는 초극의 전진 (戰陣)이며 삼천 년 세월 동안 단 한 사람도 목격한 자가 없다는 그 가 공할 악마의 진세가 지금 사십 칠 인의 백마들과 비사벌에 의해 여기 천 남의 이름 없는 황토계곡의 어둠 속에서 장쾌한 웅자를 처음 드러내 보 이고 있는 것이었다. 거대한 잠력의 바람기둥이 비사벌이 선 방위에서 후광처럼 회오리쳐 올 라오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훗!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마지막 저력이라는 백마십팔만사천합마전을 다 구경하게 되다니 영광이군." "크ㅋ! 그럼 그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신화의 보따리가 풀리자마자 산 산조각을 내는 영광도 함께 누릴 수 있겠지." 자천릉과 흑나비는 서로 등을 맞대고 진세의 중앙에 우뚝 섰다. 얼어붙 은 어둠을 깨뜨리며 형성된 더욱 무서운 어둠이 종말의 날처럼 독아를 치뜨고 달려들며 그들의 옷자락은 폭풍에 휩쓸린 조각배의 돛대처럼 미 친 듯이 펄럭이고 있었다. 비사벌의 천둥같은 음성이 터졌다. "제이합마굉륜(第二合魔轟輪)!" 쿠쿠쿠쿠! 어둠이 마차바퀴처럼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회전하 는 어둠의 끝에서 한 줄기 은빛 섬광이 번쩍이며 자천릉과 흑나비의 동 체를 둥근 무지개처럼 휩쓸어 오고 있었다. "훗! 이따위 조잡한 눈속임을!" 쨍! 자천릉이 백마도극으로 가볍게 섬광을 후려치자 놀랍게도 금속성의 맑은 파열음이 터지며 이내 섬광은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있었다. 헌데 다음 순간이었다. 쿠우우우! 어둠이 암초를 후려치는 해일처럼 자천릉과 흑나비를 휩쓸어 옴과 동시 에 그 속에서 수십 수백 줄기의 뇌전이 일시에 작렬하듯 예의 은빛 섬광 이 폭사하며 이리떼의 새하얗게 빛나는 이빨처럼 그들을 물어뜯어 오고 있었다. "크ㅋ! 만약 완성됐다면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죽음 의 전진(戰陣)이 될 뻔했군." "훗! 하지만 반쪽 짜리 진세를 가지고는 감히 나 만황 자천릉의 발길을 묶어 둘 수 없지." 자천릉이 힐끗 흑나비를 돌아보았다. "보았느냐?" "보았소. 좌측에서 다섯 번째, 아래에서 위로 열 일곱 번째요." "내가 먼저 하겠다. 푸른 용이 천둥을 타고 하늘에 오르니 백마도극이 극으로 바뀌며 번개의 그림자를 베도다! 청룡뇌승 섬영극예!" 쐐애애액! 자천릉의 손에서 백마도극이 한 마리 청룡처럼 출렁임을 일으키며 쏘아 오던 수백 수천의 섬광들을 그대로 퉁겨내었다. 동시에 흑나비의 검은 철립이 무섭게 회전을 일으키며 퉁겨쳐지는 섬광들 사이를 뚫고 송곳처 럼 어둠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다시 비사벌의 대갈일성이 터졌다. "제삼합마산산(第三合魔散山)!" 꽈르르릉! 무수한 섬광들이 이번에는 흡사 회를 뜰 때 칼날이 지극히 짧고 예리한 반월형의 도광을 수없이 만들어 내듯 어둠 속에서 폭사되며 그대로 자천 릉과 흑나비의 신형을 난자해 오고 있었다. 헌데 그 순간 흑나비의 검은 철립이 쏘아졌던 방향의 끝에서 짤막한 비 명이 터지며 막 자천릉과 흑나비의 몸을 난도질하려던 짧은 섬광들이 안 개처럼 꺼져 버리지 않는가? 지옥 같은 어둠의 장막이 녹아 내리듯 스러지며 폭우처럼 쏟아지는 별빛 아래로 사위의 풍경이 선명하게 시야에 쏘아들고 있었다. 자천릉과 흑나비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쌓고 다시 십자 형태로 그 위를 가로 질렀던 사십 칠 인의 백마들은 저마다 은빛 찬란한 병장기를 뽑아 들고 처음처럼 그렇게 서 있었고 자천릉의 시선과 마주보는 지점에는 비 사벌이 붉은 수염을 휘날리며 장승처럼 서 있었다. 헌데 놀랍게도 비사벌의 오른팔이 예리한 톱날에 잘리운 듯 어깨서부터 그대로 떨어져 나가 있지 않은가? "보기 좋군. 반쪽 진세를 펼치려다 결국 신화를 깨뜨리고 말았군." "크ㅋ! 반쪽인 데다가 처음부터 불구였고, 애초 그대가 두 마리 벌레를 죽여 버렸었으니." 자천릉과 흑나비는 여전히 서로 등을 맞댄 채 조소를 주고 받았다. 그렇다. 보여지지도 깨어지지도 않았던 삼천 년 십팔만사천백와마루 그 최후의 신화인 백마십팔만사천합마전이 펼쳐지는 순간 깨뜨려지고 만 것 이다. 칠인칠조(七人七組) 중 한 개의 조가 두 사람을 미리 잃어 불완전했고 더욱이 십왕이 함께 지휘해야 할 자리를 비사벌 단 일인이 방위를 바꿔 가며 대행해야 했던 그 실날같은 틈, 흑나비가 쏘아 낸 철립은 그 두 개 의 틈이 교차되는 시점을 그대로 꿰뚫으며 비사벌의 오른팔을 허공에 띄 워 버렸던 것이었다. "요리나 해 처먹고 있어야 할 혓바닥이 지나치게 나불거리는군!" "거기에 산 송장까지 달고 다니니 빨리 관 속에 눕고 싶어 여념이 없는 놈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도리지." "클클클, 자, 가라!" 파파파팟! 백마 중 삼 인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며 자천릉과 흑나비를 향해 세 방향 에서 쏘아져오고 있었다. "후회가 되는군. 저토록 혓바닥이 썩어 있는 줄 모르고 북해빙면을 정성 껏 만들어 줬던 것이." "크ㅋ! 혓바닥이 썩었다면 죽어 가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빨리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켜보는 사람의 도리지. 고통을 덜어주도록." 흑나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자천릉의 백마도극이 좌우에서 덮쳐 오는 두 혈의인을 한꺼번에 베버렸고 그와 동시에 흑나비의 머리 끝에서 부터 하얀 붕대가 풀러지며 막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 그으려던 세 번 째 사내의 손목과 몸통을 누에고치처럼 묶고 또 죄어가고 있었다. 헌데 붕대에 감긴 사내가 입에서 가래 끓는 신음을 토하며 지면에 나뒹 구는 그 순간이었다. 쐐애애액! 돌연 나머지 백마들이 일제히 자천릉과 흑나비를 향해 폭사되어 오고 있 었다. 언제 움직였는지, 어느새 병장기를 폭사시켰는지를 경각할 사이도 없이 십팔만사천백와마루 최강의 마인 백 명 중 사십 사 인이 펼쳐내는 무서 운 살수는 마치 일만 개의 수레바퀴가 한꺼번에 구르며 덮쳐드는 듯 순 식간에 두 사람의 사방 일 장 앞까지 이르고 있었다. "후훗! 이렇게 미쳐 날뛰는 백마를 제거하려고 이미 천 이백 년 전 난세 십승이 이 백마착설불극도를 남겨 뒀었지." 자천릉의 입에서 냉갈이 터졌다. "초원의 사자와 밀림의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니 백마도극이 두 자루 도 끼로 바뀌며 폭포를 산산조각 내도다! 호사탐병(虎射耽竝耽) 부월격포(斧 鉞擊布)!" 카카캉! 백마도극의 도와 극 부분이 각각 두 가닥의 은빛 포물선을 그리며 방원 사장여의 공간을 맹렬하게 휩쓸어 갔다. "크ㅋ! 여기는 나에게 맡겨두고 당신은 저기 빨간 수염을 가진 늙은이나 좀 달래 주시오. 한쪽 팔을 잃었다고 울고 있을 테니까." 휘리릭! 흑나비가 차가운 음성과 함께 온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는 순간 붕대가 섬칫한 파공음을 내며 덮쳐오던 사십 사 인 중 거의 십여 명을 일시에 휘감아 가고 있었다. "크아악!" 백마도극이 휩쓸어가는 방향에서 또 다시 삼 인의 혈포인이 참혹한 비명 과 함께 퉁겨지며 뒤이어 자천릉의 신형이 그 공격의 구멍을 뚫으며 비 사벌에게로 쏘아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