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황(卍皇) 1 - 44편 (44/50)
너는 이제 십팔만사천백와마루로 들어가려면 꽤나 고생 을 해야 할 것이다. 끊어진 십만철로를 다시 잇고 부서진 전각들을 세워 야만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신농궁은 그 말을 끝으로 절명하고 말았다. "무슨 말인가? 신농궁." 자천릉은 불현듯 뇌리를 스쳐가는 예감이 있어 황급히 신농궁의 몸을 흔 들었다. 그러나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침묵뿐이 아닌가? 자천릉은 모르고 있었다. 십팔만사백와마루가 이미 초왕사성의 공격을 받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천릉은 잠시 동안 신농궁의 시체를 내려다보더니 피식 실소를 터뜨렸 다. "훗, 신농궁. 그대는 착각을 했군. 나 자천릉을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인 물로." 죽은 신농궁이 만약 지금 자천릉이 한 말을 들었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게다가 그대는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 자천릉 또한 그대와 목적이 같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백마를 죽이고 십 왕을 제거하려고 했었다." 자천릉의 신형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④ 세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로써 불리우는 여섯 개의 마을이 있다. 광대와 곡예사의 마을 천재촌(千才村). 장인들의 마을 술예벌(術藝閥). 하늘의 저주로 불리우는 문둥이의 섬 부나비도(不癩卑島). 죄인들의 지옥 해란주(海蘭州). 유령과 영매의 언덕 매당파(魅堂坡). 그리고 망자의 대지와 시신의 내(川)로 불리는 시망상천(屍亡喪川)! 시대의 산물로 이어지며 인간이되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배척받으며 철저 한 모멸과 천대 속에서 한(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온 사람들만이 모여 만들어 낸 여섯 개의 천민촌(賤民村). 누가 있어 부인할 텐가? 육천마을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천한 땅이자 저주와 죽음만이 존재하고 있는 땅임을 말이다. 천남(天南) 시망상천(屍亡喪川). 산자의 지옥(地獄)이요, 죽은 자의 낙원(樂園)이라 불리는 그곳은 사천성 (四川省)과 귀주성(貴州省)이 연접해 있는 대류산(大流山)에 존재하고 있 었다. 음삼삼(陰森森)한 월광이 창백한 빛을 토하며 아리하게 사물을 밝혀주고 있는 밤. 울창한 숲이 흑암덩어리인 양 또아리를 틀고 있는가 하면 가도 가도 끝 없이 예리한 난석(亂石)만이 깔려 있는 황무지(荒蕪地)와 오직 잡초 몇 개만이 생명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는 황량한 황토 벌판이 이어져 있는 대류산은 흡사 죽음의 침묵만이 존재하는 듯 음삼삼한 정적 속에 묻혀 있었다. 헌데 이때 삭았던 무엇인가가 힘없이 으깨어지는 듯한 음향이 너무도 고 요한 정적 속에서 섬뜩하게 울렸다. 그 섬뜩한 소리만큼이나 양철판이 깨지는 듯 날카로운 음성이 울린 것은 바로 다음이었다. "제길, 해골을 밟았군. 온통 시퍼런 인광(燐光)... 좌우간 기분 나쁜 산이 야." "흑나비, 잊었는가? 대류산의 지산(枝山)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 시망산 전체가 부골토(腐骨土)라는 것을?" 부골토(腐骨土)라면 그것은 곧 뼈가 삭아 흙이 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헌데 그 한 마디의 대화와 음성은 바로 자천릉과 흑나비만이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아닌가. 산(山)의 허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완만하여 그 정상까지 비스듬한 언 덕이라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곳에 자천릉이 흑나비를 동반한 채 정상 을 응시하고 있었다. 헌데 세상에 이처럼 기이하고도 사이하게 느껴지는 땅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밟고 서 있는 땅은 은은한 녹광을 발하고 있었고 그 녹광은 정상 에서 더더욱 사이하게 빛을 토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망자(亡者)의 천국(天國)이다. 이곳에서 우리들이 할 일이 있 단 말이오?" "만화무대주의 말을 따르면 그 썩은 시체가 이곳의 녹시천(綠屍川)을 이 용하여 무슨 독강시(毒 屍)인가 하는 장난감 인형을 만들려고 한다더군." "썩은 시체(屍體)?" "상관목수 잔기사의 이명(異名)이지." "훗! 그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자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오?" "썩은 시체는 아마 지금쯤 녹시천(綠屍川)에서 배를 띄우고 시독주(屍毒 酒)를 마시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찬양의 시를 읊고 있을지도 모르지." 대단한 야유조였으나 거기에 서려 있는 것은 으시시한 살기였다. "우리는 먼저 그 찬양시에 소재를 주기 위해 그의 계획과 수하들에 대한 대폭적인 수술을 단행해야 하네. 그래서 나의 요리가 잠시 필요하기도 하지." "물론 그것 또한 죽음을 위한 요리겠지?"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파앙! 자천릉의 신형은 흡사 유성처럼 포물선을 그으며 정상을 향해 쏘아 갔고 그 뒤를 예외 없이 흑나비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그때 방울 소리가 울리며 시망산 아래로부터 몇 개의 인영이 어둠 속에 떠올랐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관을 떠메고 있었으며 그 행색으로 볼진 대 장의사(葬儀社)들이 시신을 시망산에 묻고자 왔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곧장 정상을 향해 달리듯 올라오고 있었는데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 었으며 식은 땀이 이마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장지(葬 地)를 찾았는지 적당한 곳에서 멈추었다. 그들의 주위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음산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매장되지 않아 부패된 시신들, 이제 막 뼈가 드러나 기 시작한 해골, 다 삭아가 흙으로 화하고 있는 잔뼈, 그리고 그 해골들 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인광(燐光)과 허공에서 재차 폭발하여 바람결에 사이하게 난무하는 푸르른 인화(燐火)! 실로 모골이 송연하도록 전율스런 광경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 었다. 허나 그들 네 장정들은 평소 이곳에 대한 공포의 면역이 있는지 이어 관을 내려놓았다. 선두에 있던 자가 동료를 돌아보며 그들 세 사람 이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으리만큼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자자, 빨리 끝내고 내려가세." "제기랄, 이곳만 오면 술맛이 없어진단 말이야." "나는 마누라를 품을 때 그녀가 시체로 보일 때도 있다네." "우리들이 이것을 직업으로 삼아와 전전하지만 정말 이곳처럼 무시무시 한 곳은 어디에도 없...." "왜 그래?" 한 명이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하자 한 동료가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저기." 그자는 손을 들어 가장 음습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대부분 오래된 해 골들만이 쌓여 있는 곳으로 기이하게도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 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일곱 개의 관이 원을 그리듯 묻혀 있었는데 관의 삼 분지 일이 밖으로 드러나 있으며 관은 전부 선혈을 묻힌 듯 핏빛으로 으 스스한 괴기마저 토해내고 있었다. "저, 저 것들은 못 보던 관인데?" "혹 시신의 마을에서 누가 죽어 관에 넣어 이곳에 묻은 것이 아닐까?" "헌데 왜 완전히 묻지 않고 관의 뚜껑이 드러나 있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던 인물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시신의 마을 사람들은 반드시 관이나 시신을 해골로 묻어 주었는데 이 처럼 관이 밖으로 드러난 일은 처음이군." "내 한 번 가보지." 제법 간이 큰 인물이 나서며 천천히 나무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은 처음의 호언과 달리 갈수록 느려졌는데 스스로 자신의 간담을 자랑하 고자 했던 행동을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 자는 더 이상의 용기가 없는 듯 한 발을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망설 이다 이마에 식은 땀을 한 방울 또르르 흘리며 허공에서 망설이던 발을 과감하게 앞으로 내밀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아니, 이게 무슨 고기 냄새냐?" 놀랍게도 해골더미에서 음산한 괴소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발을 내려놓으려던 사내의 눈이 휩뜨여지며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자는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발을 빼려는데 그 순간 해골 더미 속에서 앙상하고 시커먼 손이 하나가 튀어나오며 그자의 다리를 덥석 잡았다. 뭉턱! 그자의 정강이 살점이 베어져 나갔다. "으아악! 귀, 귀신이다!" 그자는 너무나 놀래 자신의 고통과 중상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이 황 급히 몸을 돌려 그대로 밑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남은 세 사람도 기겁하여 허공으로 펄쩍 튀어 올랐다가 나 살려라 전력 을 다해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때 해골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면서 하나의 핏빛 관이 붕 떠올랐다. "건시마자(乾屍魔子), 일 년 동안 이곳에서 시신들을 지켜 왔지만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건드려서야 되느냐?" "흐흐흐, 활시토마(活屍土魔), 네놈은 마누라마저 쓱싹하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구나." 해골 더미가 와르르 무너지며 또 하나의 혈관이 허공에 떠올랐다. "앞으로는 저 녀석들이 오면 모조리 그냥 두지 않겠다. 자칫 시신들이 상하면 우리의 목이 위험하니 아예 시린수(屍燐樹)에서 지키도록 하자. 이틀후면, 흐흐! 뼈에 붙은 썩은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겠군." 놀랍게도 허공에 뜬 채 대화를 주고 받던 두 개의 혈관은 허공에서 선회 하며 괴목(怪木), 시린수 밑에 내려섰다. 제27장 황야의 결투 ① 인광이 번뜩이는 괴목 시린수와 핏빛의 아홉 개의 혈관(血管), 그야말로 해골 더미 위에 그려져 있는 그 한 폭의 그림은 실로 섬ㅉ한 광경이었 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언제부터인지 일정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물 방울은 해골 더미에서 나왔던 혈관의 뚜껑 위에 정확히 떨어지고 있었 다. 그때 관 속에서 의혹이 담긴 음산한 음성이 다시 울려나왔다. "비가 오나?"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소리는 우리의 관뚜껑에서만 울리고 있어." "헌데, 흠흠, 이게 무슨 냄새지? 세상에 이처럼 구수한 냄새가 있을 수 있다니?" "다, 다, 닭고기다!" 환희에 찬 대갈성이 터지면서 두 관뚜껑이 허공으로 퉁겨졌다. 동시에 두 개의 잿빛 인영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들의 눈에 시린수의 가지 끝에 실에 의해 길게 매달려 있는 두 개의 통구이 닭이 투영되었고 두 사람은 흡사 걸귀에 걸린 듯 허공에 뜬 채 닭고기를 잡고 그대로 입으로 뜯어 갔다. 그 순간 미세한 음향이 울리면서 두 인물은 흡사 뇌전에 감전이라도 당 한 듯 몸을 부르르 한차례 떨었다. 그들의 움푹하게 꺼져 들어가 있던 눈이 점점 크게 확대되며 곧장이라도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놀랍게도 얄팍하기가 종이의 그것과 같고 투명하기가 얼음과도 같은 칼 날이 그들의 뒤통수로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칼날은 경 악스럽게도 닭고기 속에서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들의 찢어질 듯 부릅떠진 동공에 하나의 얼굴이 불쑥 거꾸로 투영되었 다. 자천릉이었다. 그는 시린수에 두 다리를 걸친 채 거꾸로 매달려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죽기 전에 알아둬라. 나 만황의 손에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을." 그 순간 두 개의 실이 뚝 끊어지며 두 개의 시신(屍身)이 떨어졌다. 그때 한 명의 흑영이 옆가지에서 섬광처럼 쏘아져 오면서 떨어지는 시신을 걷 어찼다. 두 개의 시신은 그 발길의 엄청난 힘에 밀려 일직선으로 날아가 해골 더 미의 최정상 바로 밑에 깊숙히 파고 들어갔다. 와르르! 위에 있던 해골 더미가 무너지며 두 사람을 덮어 버렸다. "훗! 이제 완전히 시신 속에 묻혔겠지. 유귀들 하고 꽤나 친해져 있었으 니까 심한 충돌은 없을 것이다." 흑영은 흑나비였다. 흑나비는 여전히 거꾸로 시린수 가지에 매달려 있는 자천릉을 올려다보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발했다. "후훗, 이번에는 짓궂은 살인이었소. 죽기 전에 그 닭고기를 목에 넘기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억울하다고 그러더군." "누가?" "그들 표정이 그러했단 말이오." "눈보다 마음이 좋군. 그런 놈들을 생각해 주다니, 하지만 머리는 둔하더 군." "?" "우리들이 먹을 닭고기마저 함께 해골더미 속에 묻어 버렸으니까." "당연하지. 닭고기 속에 비수가 들어 있는데 그것을 한 발 먼저 먹으려 다 한 발 먼저 황천에 가면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길이 없을 테니까." "그래도 어차피 가야 할 황천길이 아닌가?" 자천릉은 입가에 씨익 미소를 띄며 가지에 걸었던 다리를 풀었다. 순간 그의 신형이 급격하게 추락하더니 한 바퀴 뒤집혀지며 일자로 누운 채 그대로 건시마군이 들어가 있었던 혈관 속에 들어갔다. "흑나비, 잠시 관 속에서 쉬라고. 조금 후에 또 한 번 간단하게 몸을 풀 어야 할 테니까." "빌어먹을, 이곳은 정말 기분 나쁜 곳이란 말이야! 내 이곳을 깡그리 날 려 버려야겠군." 흑나비는 투덜거리며 흑철립을 벗어 가슴에 대고 남은 혈관 속에 들어가 누웠다. 자천릉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관뚜껑을 닫을 필요가 있겠지." 순간, 팽! 하는 소리와 함께 십여 장 밖에 떨어져 있던 관뚜껑이 섬광처 럼 날아옴과 동시에 그 날아오던 기세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관을 닫았다. 초상감각(超常感覺)! 만황(卍皇) 자천릉만이 갖고 있는 초상감각의 위대 한 능력이 소리 없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휴식을 취하듯 침묵 이 길게 이어지더니 그 긴 침묵을 격하고 다시금 세 개의 인영이 소리없 이 시린수 옆에 내려섰다. 헌데 그들의 모습을 보라. 만일 그들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지상의 모든 인간은 더할 수 없이 준미하고 아름다우리라. 가장 앞에 선 인물은 한마디로 허수아비가 바람 결에 위태롭게 서 있다 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뼈에 가죽만을 감싼 것인지 가죽을 뼈에 감싼 것인지 모를 해골같이 깡 마른 체구에 꽤나 큰 흑포장삼(黑袍長衫)이 바람결에 헐렁거리고, 이미 살이 없어진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위의 해골처럼 눈이 쑥 들어간 인물이 었다. 허나 그의 눈에서 쏟아져나오는 시퍼런 광채만큼은 가히 살인적으로 날 카로운 것으로 칼날과 같았다. 문득 흑포장삼인 뒤에 서 있던 우측의 회의인이 얼음처럼 차가운 냉소를 터뜨렸다. "놈들이 미쳤군. 백마 가운데 한 분이자 시망상천의 가장 위대한 시의(屍 醫)께서 오셨거늘 코빼기도 안 내밀고 잠만 자고 있다니." "요즘 젊은 아해들은 가정교육이 부실해져 버릇이 없어." 좌측 인물이 눈에 살광을 띠고 자천릉과 흑나비가 누워 있는 혈관(血棺) 으로 다가가자 흑포인이 손을 조용하게 저었다. "우선 나의 실험결과부터 보도록 하자. 놈들은 나중에 적당히 처리하고." 그것도 사람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곰이 식식대듯 목젖에서 부터 울려나오는 그 음성은 더할 수없이 사이하게 울리고 있었다. - 시의(屍醫) 착시마노(錯屍魔老) 의천기(倚天奇). 백마서열 육십 사 위이자 십왕 가운데 일 인이며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통합서열 사 위인 시제 상관목수 잔기사가 가장 총애하는 수하로서 시망 상천의 제 이인자. 그는 시린수 주위에 배치된 혈관 가운데 정남방의 혈관으로 다가가 뚜껑 을 열어 젖혔다. 관 안에는 화복(華服)의 부패 초기의 형상을 보이는 젊 은 여인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역시 옷과 여인의 그것과는 맞지 않는구나. 전번 양지바르고 건조한 곳 에서 시험했던 때와 다를 바 없이 음습한 이곳에서도 부패가 빠르구나." 의천기는 얼굴을 더할 수 없이 심각하게 굳히며 다음 옆의 관으로 다가 가 관뚜껑을 열어 제쳤다. "이것은 여섯 자 반의 옻나무관에 시체가 바짝 밀착된 것인데." 그는 시체를 들여다보다가 입가에 만족스런 흐릿한 미소를 띄웠다. "옻나무 관과 사체(死體)가 밀착될수록 인골에서 흘러나온 인독(燐毒)의 녹시천(綠屍川)에 절였던 시체가 부패가 정지되는구나. 시신을 넣은지 칠 일, 옻이 시신의 냄새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관 역시 남자시신이 들어있는 것으로 약간의 부패를 보이고 있 을 뿐이었다. "십 오 일째, 옻의 독과 녹시천의 인독과 서로 상충하여 굳은 피부를 부 패에서 멈추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드럽게 해주고 있다." 의천기의 뒤에 바짝 달라붙어 다니는 두 사람 가운데 우측의 회포인이 냉랭한 음성을 아부를 위해서 부드럽게 고치며 물었다. "그럼 독강시(毒 屍), 착시불사독강(錯屍不死毒 )이 완성되는 것입니까?" "이제 완성되어 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흐흐흐, 하하하! 나의 손에 의 해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다." 의천기는 음사하게 웃음을 흘리다 문득 시선을 자천릉과 흑나비의 관으 로 돌렸다. 그런 그의 시퍼런 녹광이 번뜩이는 눈에 살광이 잔혹하게 배 어나왔다. "나의 이 중요한 관두에 이른 실험을 위해 파견한 놈들이건만 본좌가 왔 는데도 잠만 자고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생체실험을 할 놈이 필요하던 차에 잘됐다." 그는 이어 거침없이 자천릉이 들어가 있는 혈관에 다가가 관뚜껑을 발로 탁 찼다. 팡! 관뚜껑은 직선으로 날아가 해골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바로 그 순간 의 천기는 흠칫 굳어졌다. "혈포!" 시망상천에서 자신 이외에 혈포를 입을 만한 자격 있는 인물이 없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섬광처럼 스쳐갔다. 그 순간 관 속의 자천릉이 뻣뻣하 게 일어서며 양손을 번개처럼 쑤셨다. "크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의천기의 입술사이로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천릉의 두 손이 그의 양어깨를 관통하면서 갈코리처럼 꿰어 다시 관 속으로 드러누웠다. 의천기의 몸은 의사와 관계없이 자천릉과 함께 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빙글 신형이 뒤집히며 밑에 있던 자천릉이 위로 올라오고 의천기가 밑으 로 깔렸다. "휘이익!" 동시에 자천릉의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렸고 의천기는 마치 뇌전의 벽력 소리에 놀란 듯 몸을 부르르 치떨었다. "너, 너는!" 의천기가 상대방이 누구였는가를 의식하고 입을 열었을 때에는 이미 그 의 칠공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천릉은 매우 친근하게 미소를 씨익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알아보았으니 소소오각이라는 것을 말해주마. 음공에 의해 뇌진탕 으로 죽은 놈은 네가 첫 번째다." 쑥! 자천릉의 두 팔이 의천기의 어깨에서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시 선은 관뚜껑이 박혀 들어간 해골더미를 응시하였다. 그 순간 해골더미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해골더미 속에 박혀있던 관뚜껑 이 섬광처럼 튀어나와 관을 닫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 그것은 말로써는 길었지만 단지 숨을 급박하게 몰아쉴 정도의 극히 짧은 한순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소소오각, 지상에서 가장 저주스런 악마의 소리. 그것이 만든 음파가 의 천기의 뇌를 진동시켜 죽음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 것이다. "아니!" 순식간에 일어난 뜻밖의 변화에 두 회의인의 눈은 크게 떠졌다. 바로 그 순간 맹렬한 파공음이 밤의 정적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것 뿐이다. 핏빛 혈관 뚜껑이 가공할 속도로 그들의 목을 스쳐 갔고 앞으로 쭈욱 밀려나갔던 관뚜껑이 회전하여 방향을 바꿀 때 흡사 석상처럼 굳어진 몸뚱이가 이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아직도 허 공에 떠 있던 두 회의인의 수급은 쓰러지는 자신들의 몸통을 보면서 역 시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스스스. 관뚜껑이 원래의 관 위에 덮였을 때 어느 사이엔가 흑나비는 자천릉의 옆에 내려서고 있었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믿지 못할 광경이 었다. 그 처절함에 치를 떨기 이전에 그 형상이 만들어낸 사이함은 가히 목불인견의 잔혹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천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를 지었다. "약간은 심보가 밉군.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시신을 보게 만들다니." "그대보다야 무르지." 두 사람은 한 마디씩 주고 받으며 몸을 돌렸다. 방향은 그들이 왔던 방 향의 정면으로 해골봉의 뒤를 넘어서는 방향이었다. 해골봉을 넘어선 능선은 전면의 능선과는 백팔십도로 달랐다. 흡사 도끼 로 비스듬히 찍어내린 듯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고 부시화된 해골이라고 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으며 기묘하게도 해골 하나하나가 흡사 보루를 쌓은 듯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그 급격한 단애의 아래 흡사 짙푸른 해수를 보듯 녹빛탁수가 하천을 이 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바로 녹시천이었다. 그 거대한 해골산으로부터 인골이 삭아 물로 화해 스며 나온 물들이 모여 흘러내리는 하천이었다. 그 녹시천의 건너편 또한 대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편의 장관이 펼쳐 져 있었다. 높이 이백 오십 장, 둘레 삼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인두탑 (人頭塔)이었다. 그것은 본시 대형 석조건물로 사람의 해골을 일일이 한 치의 공간도 없 이 붙이고 박아넣은 것이다. 그것은 음삼삼한 달빛 아래 악마의 불덩어 리와 같은 인화탑(燐火塔)으로 보였다. 바로 이곳이 저주와 신비의 육천마을 가운데 하나인 망자의 대지, 시신 의 내로 불리는 시망상천의 모든 것이자 본체였다. 헌데 지금 시망상천 이 철저하고도 잔인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꽝! 굉음이 터져 울리고 약 지상에서 육 장 높이 가량의 인두탑 벽이 뻥 뚫 리는가 싶자 십여 장에 달하는 희디흰 붕대가 흡사 칼날처럼 튀어나왔다 가 쑥 들어갔다. 동시에 그 붕대 끝에 감겨있었던 회포인이 그대로 녹시 천 속으로 처박혔다. "크아아악!" 녹시천에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자의 몸뚱아리가 순식간에 녹아내 리며 뼈만 남았다. "으아아아!" 인두탑은 벌떼구멍처럼 구겨지고 있었으며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울려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