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11살 차이 - 완. - 23편 (23/49)
================ 응봉산... 기껏 혜주가 날 이끌고 간다는 여행의 목적지가 응봉산이었다... 평소에도 운동하기 싫어하는 나였는데 갑자기 무슨 산이란 말이냐... 씩씩하게 걷는 혜주의 발걸음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달려 나는 혜주의 뒤를 쫓아가게 되었다. 정말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여럿 보내곤 혜주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뭔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나도 고개를 들어 혜주의 시선을 쫓는데... 샛노란 개나리가 만발한 돌담 위를 볼 수 있었다...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혜주의 시선은 개나리의 화사한 노란빛보다도 더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길을 따라 산행과도 같은 걸음을 옮기던 혜주가... 자신도 많이 힘든지 숨을 헐떡이며 갑자기 주의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곤 길을 찾았는지 서슴없이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른 채 혜주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혜주가 길을 벗어나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왕래가 뜸해 사라진 길인 듯 주위와는 층이 져서 조금은 풀이 자라 그냥 모르고 지나칠 길을 따라 혜주를 쫓아가기를 근 10여분이 지났을 쯤... 혜주가 가만히 서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내게 미소를 짓는다... 화사한 미소를 쫓아 혜주에게 다가가던 나는 그제야 혜주의 주위에 여기저기에 혜주가 좋아한다는 제비꽃들이 즐비하게 많이 피어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홍색의 여러 제비꽃들에 둘러싸이듯 서 있던 혜주가 꽃을 피해 가져온 돗자리를 펼쳐선 가방에서 반합 통을 꺼내 앉는다...그리곤 나보고 빨리 와서 앉으라는 듯 돗자리를 손으로 귀엽게 두드린다... 음식을 풀어 놓으며 삼단 반합통 중 한통의 김밥을 내 앞에 꺼내 놓았다. 이런 외진곳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나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우선 혜주 앞에 앉았다. 내게 젓가락을 건네곤 서둘러 자신도 젓가락을 꺼내선 내게 먼저 김밥을 하나 들어 입에 가져다 댄다... 내가 받아먹은 후에서야 혜주 자신도 먹기 시작한다... 김밥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어딘지 모를 숙연함에 쉽게 말을 걸지 못하게 된 나다... 연신 제비꽃들을 바라보며 이유모를 미소도 짓고는...김밥 하나를 먹고는 잠시 또 숙연한 표정으로 변하기도 하는 혜주의 변화무쌍한 표정에 압도당했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아침겸 점심식사는 혜주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김밥을 다 먹고 나서도 혜주는 제비꽃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 채... 그렇게 한동안 말도 없이 감성에 취해 있었다... 그리곤 엉덩이를 가볍게 털고 일어나서 제비꽃들이 유독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쪼그리고 앉아 찬찬히 그리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은은한 표정을 하곤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는 혜주였다. 제비꽃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삶에 치여 살면서도 이런 비밀 장소까지 만들어서 올 정도로 좋아하는 꽃이라니...이런 혜주의 의외의 모습에 신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혜주는 이상하게 꽃과는 매치가 잘 되질 않았다. 신선한 반찬 재료를 보며 웃음 짓는다면 모를까...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있던 혜주가 눈을 비빈다... 울었나보다...내 시선을 느꼈는지 혜주가 다시 내게 미소를 지어준다...그리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글을 적기 시작했다. -여기 데려온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수이한테도 안가르켜 줬는데... "그래? 영광이네..." -당연하죠... 제비꽃 예쁘죠? "응... 정말로 제비꽃 좋아하는구나..." -여기 제 아빠하고 엄마가 있는 곳이거든요... "..." 갑작스런 혜주의 말에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에 무슨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말인지... 선뜻 이해를 못한 난 혜주를 빤히 쳐다보게 되었다.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던 혜주는 모든 것을 말하려는 듯 멈춘 손을 움직여 필기를 이어나갔다. -울 엄마, 아빠가 서로를 너무 사랑했나봐요. 아빠 돌아가셨을 때... 화장한 엄마의 재가 들어있는 목걸이를 찾을 수 있었거든요...참... 죽은 사람 뼛가루는 무서웠을 수도 있는데... "..." -그래서 아빠도 화장시키면서 작은아빠 몰래 가루를 조금 훔쳤어요... 작은 아빠가 엄마랑 같은 곳에 뿌려야 된다고 강에 뿌리려고 했거든요...우리한테는 상의도 없이 흔적도 찾지 못하게 말이에요... "..." -여기에 같이 묻어 드렸어요...비록 한줌도 안 되는 재지만... 유일하게 이것만 무작정 들고 작은아빠 집에서 나오긴 했는데요... 일하면서 매일 쫓기듯 도망 다니는 게 아빠하고 엄마한테 걱정시켜 드리는 거 같아서...이 년 전에 뿌려드릴 만한 마땅한 곳을 못 찾아서 막 헤매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제비꽃이 너무 예쁜거에요. 그래서 더 생각도 안하고 여기다 묻어 드렸죠... 제비꽃 정말로 예쁘죠? 아빠 엄마 같이 묻어드리고 나니까... 신기하게 여기 제비꽃들이 더 많아졌어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혜주의 표정은... 내 어휘력으로는 도저히 뭐라고 표현을 할 수 없다... 다만 그 표정에는 이 장소엔 분명히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제의 내 진심을 받아들인 혜주였기에... 이 소중한 장소마저 내게 보여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혜주가 내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물질적인 어떠한 것도 해줄 수 없는 혜주였을지 모르지만...그 어떤 억만금의 선물보다도 내겐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혜주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순간만큼 소중한 시간은 없을 듯 느껴졌다... 더 이상의 대화는 우리에게 필요 없었다... 혜주가 어색하게 손을 내밀며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손을 잡고 숲속 한가운데일지도 모르는 곳에서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비꽃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혜주는 어제와는 달리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꼭 제비꽃들과 대화를...아니 엄마, 아빠와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듯 간간히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제비꽃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던 혜주가 정자를 향해 달려간다... 몇 분의 어르신들이 정자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혜주가 웃으며 남은 반합 통을 꺼내 놓는다... 여길 올 때마다 혜주는 이런 일을 반복했나보다... 왜 저렇게 많은 김밥을 쌌는지...그리고 왜 곧바로 산을 내려가지 않고 이렇게 돌아서 내려오는지... 이 산을 주로 애용하시는 분들처럼 보인 어르신들도 비록 몇 가지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김밥이었지만 정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들어가 있는걸 알고 있는지 너무도 맛있게 전부를 비우셨다. 아마도 이 산에 허락 없이 엄마와 아빠의 거처를 마련한 속죄를 하려는 듯 혜주는 연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터줏대감처럼 보이는 이분들에게 보리차까지 컵에 따라 드린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혜주는 굳이 매장으로 날 끌고 간다... 피곤함이 머리꼭대기까지 차 있었지만... 오늘 내게 자신을 보여준 혜주였기에 복종하듯 혜주의 손에 이끌려 매장으로 향하게 된 나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매장 앞에 낯익은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주가 내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혜주도 알고 있는 심대리였다...정작 이 오해를 풀지 않은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후회가 된다... 아마 혜주는 이 여자와 내 사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혜주를 점원처럼 불렀고, 거기에 퇴근하라는 강요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손을 놓는 혜주를 바라보던 나는 심대리에게 우선 인사를 건넸다. "아.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시나봐요..." "예?...예...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김대리님 좀 만나려고요. 저번에도 그렇고...오늘도 저 한참 기다렸어요..." "저요?" "예...그런데... 이분이 혜주신가 봐요..." "예?? 혜주를 어떻게..." "저번에 병원에서... 애타게 찾으셨잖아요...이 직원분이 혜주씬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요..." "아!...인사드려 혜주야... 여긴 나랑 같이 일했던 심대리님...여긴 혜주가 맞고요." 서로를 인사를 시키는데... 여자의 감인지... 혜주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어색한 인사를 한다. 심대리는 간단히 목인 사를 하고는 다시 시선을 내게 향했다. "바쁘세요?" "예? 아니요. 이제 매장에 가보려고 하는데 잠깐은 괜찮습니다." "그럼 저 술 한잔만 사주 세요..." "예?? 술이요?" 나도 모르게 혜주를 쳐다보게 되었다. 심대리가 많이 힘들다는 건 수척해진 얼굴로 알 수 있었고, 간단한 술 한 잔 정도는 위로차원에서도 괜찮을 거 같았지만,, 지금 내 옆에는 혜주가 있었다...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였고, 혜주가 날 심대리에게 밀듯 손을 젓고는 가볍게 미소를 띄워준다... 그리곤 그대로 매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분명히 기분이 안 좋을 텐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매장 입구를 바라보는데 심대리가 내 표정이 거슬리는지 약간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예쁘네요..." "예?" "혜주씨 예쁘다고요..." "..." "행복하세요?" "..."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정말 싫다... 비록 내가 내면적인 큰 변화를 겪었지만... 그건 혜주와 혜주에 의해 연관된 사람들에 대한 국한되어진 변화였지... 이런 분위기까지 자발적으로 끼어들긴 아직도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내 사생활을 말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기에 대답을 하지 않게 되었다. "김대리님은 행복해 지셨군요..." "..." "부럽네요... 정말 술이나 한잔 사주 세요..."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다음이요? 다음이라..." 말끝을 흐리는 심대리의 표정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여자가 큰일을 저지른다고해도...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었지만... 혜주가 본 후가 아닌가... 이 여자에게 괜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혜주에게 미움이라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지못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확인해야 했다...아까 오늘도 한참 기다렸다는 말은 이전에도 날 기다렸다는 것인데... 혜주가 미처 보지 못한 괴한이 혹시 심대리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가볍게 한잔만 하시죠... 지금 시간도 이른데..." "그래요... 그럼 가요." "예..." -----------------------------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매캐한 번개탄 냄새와 들려오는 음성의 다급함이... 날 깨우려고 하나보다... 눈을 떠 보려하지만... 연신 머리만 아프고 눈이 떠지지 않는다... "아저씨!!! 아저...아저씨!!" 내 따귀를 때리며 누군가 날 애타게 부르고 있다. 탁하고 쉰 목소리가 약간은 듣기 거북하게 느껴질 만도 한데... 목소리를 들을수록 가슴은 더 평온해 진다... 겨우 어렵게 눈을 떠보니... 혜주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날 부둥켜안는다... 눈물이 내 뺨에 떨어져 타고 흘러 내렸다... 바보처럼 왜 울고 있는 건지...울 혜주는 울고 있어도 예쁘네... 어렵게 눈을 뜬 채 혜주를 보며 멍청하게 미소를 짓고는 주위를 살피려 노력해본다. 혜주에게 안긴 채 고개를 돌렸을 때... 침대 옆엔 내 손을 잡고 있는 심대리가 평안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심대리가 왜 내 손을...그리고 여긴 모텔인거 같은데... 그리고... 왜 심대리와 난 알몸으로 누워있단 말인가...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뜨고 있기가 힘들어 천천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11. 사랑...variety-1 익숙해지기 싫은 병원의 하얀 전등들을 누운 채 희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나가게 된다... 저번엔 기억이 없어 잘 몰랐지만... 이렇게 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를 지나가려니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 겁이 난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 이었나... 아니다... 난 방금 전 혜주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을 뿐이다. 더 이상 듣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겨우 듣게 된 혜주의 목소리인데... 자꾸 의식이 멀어져 간다... 혜주를 찾아 겨우 뜬 눈동자를 돌려본다.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혜주의 이마엔 땀이 흐르고 있다... '바보처럼 뭐가 저렇게 급하다고...' 나는 움직이지도 않는 손을 올리려 애를 쓰며 혜주의 이마의 땀을 닦아 주려고 한다. 이동메트리스에서 겨우 10cm정도나 손이 올라갔으려나... 힘을 줘 보지만 올라가지 않는 내 손이 원망스럽다...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혜주의 눈물과 땀을 닦아줘야 하는데 말이다. 혜주가 내 손을 봤나 보다. 꼭 잡아주는... 혜주의 손은 너무 따뜻하다... 다시 기억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혜주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내 입을 막고 있는 산소호흡기의 마스크로 인해 내 숨소리만 귀에 울려 멍하게 들렸기에 난 혜주의 목소리를 들으려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아저씨..." 울면서 아저씨를 외치는...무슨 문이 열린 건지 보지도 못한 채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그렇게 문으로 들어가 혜주와 떨어지게 되었다... 겨우 잡고 있던 정신의 끈이 끊어지듯 기억을 잃게 되었다... 내 목숨은 질긴가 보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죽는 게 무섭진 않았다... 앞서 말했듯 혜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이제서야 겨우 듣게 되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약간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 의사와 그리고 마주보고 뭐라고 얘길 하고 있는 삼구가 보였다... 혜주는?? 혜주가 없다... 어렵게 고개를 들어 혜주를 찾아보려하는데 내 손을 누군가가 꼭 잡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혜주가 지쳤는지 내 손을 잡고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다. 자면서도 손을 놓지 않으려는 듯 작은 내 움직임에도 혜주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간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혜주의 손은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제 스물 둘인데 나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겪은 혜주의 손은... 날 작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혜주를 바라보고 있는데 삼구와 의사의 말이 들려온다. "다행히 아이도 무사합니다..." "일산화탄소 중독인가요?" "예...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아마 두 명의 생명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쯤 퇴원할 수 있는 거죠?" "여자분은 그나마 괜찮지만 민호씨가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경미한 일산화중독이라고 해도 최소 삼사일은 두고 본 후에 퇴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 의사가 자리를 뜨자 삼구는 잠시 팔짱을 끼고는 생각에 잠겨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삼구를 바라보는데 몸을 내 쪽으로 향하던 삼구가 내 뜬 눈을 보게 되었다. "참나... 이 미친놈..." "..." "니 얘냐?" "..." 말하기가 거북하다... 목이 따갑고 연신 나오려는 기침을 자고 있는 혜주가 깰까봐 겨우 참고 있었기에 삼구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고를 제대로 치는구나... 아니! 니네가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이냐? 아니지. 다 큰 성인들이 누가 반대한다고 죽을라고 지랄인데?" 더 이상 듣고 있을 순 없었다. 어렵게 입을 열어 말을 해본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도 목에 힘을 준다. "혜주 깬다..." "미친놈... 지금 혜주가 문제야? 까딱 잘못했으면 너 살인자 될 뻔했어 이 새끼야!..." "..." "말도 못하겠지?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짧냐? 돈도 잘 벌면서 왜 죽을려고 한 건데?!" "내가 아니야..." "뭐? 뭐가 네가 아닌데?" "애 아빠도.,, 자살하려고 했던 것도 내가 아니라고...단지 기억이 없다..." "그럼? 저 아가씨가 니 옷까지 다 벗겨놓고 모텔방안에다가 번개탄에 불 붙였단 말이냐?!! 그게 말이 돼?" "..." "하옇튼 나 없었으면 너 죽었어 새끼야..." "어떻게 찾은 거야?" 삼구가 혜주의 핸드폰을 꺼내 내게 보여준다... 내 번호로 온 문자 한통... [미안해요. 이제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 눈을 깜빡이며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지만 분명히 내 핸드폰 번호였다... 이런 걸 보낸 기억도 생각도 나질 않는데... 혜주의 핸드폰에 찍혀있는 내 번호로 온 문자가 확실했다... 오히려 내가 당황하게 된다... 이게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삼구를 바라보게 된다. "뭐야? 네가 보낸 거 아니야?" "이거 뭐야?" "..." "..." 삼구와 난 서로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거 보고 나 찾은 거야?" "말도 마라... 놀래켜주려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갔다가 불이 꺼져 있어서 혹시나 해서 매장으로 갔더니 혜주 혼자 앉아 있더라... 그때가 아마 새벽 1시였을걸... 근데 갑자기 핸드폰 울리고 나서 문자 보는데... 혜주가 미친년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어버버하는거야..." "..." "내가 수화라도 할 줄 알아야지... 뭐라고 하는지 도통 몰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막 우는데..." "울었어?" "그래 미친놈아... 막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진짜 애절하더라..." "..." "그러다가 목을 부여잡고 한참을 켁켁 되더니 갑자기 말을 하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 저번에 통화할 때 혜주 이 아이 사고인지 뭔지로 벙어리 된 거 아니야?" "실어증이었어...그것보다 그래서 혜주가 뭐라고 그랬어..." "그거 말하면... 남사스러워서 말도 못하겠다..." "뭐라고 했는데?" "..." "야!..."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정작 큰소리가 아닌 쉰 소리로 삼구에게 고함이 아닌 굉음을 내게 되었다... 이런 고통을 혜주는 몇 개월 동안이나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졌지만, 그것보다 지금 삼구의 뒷얘기가 너무 궁금했기에 난 삼구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게 혜주가 나 붙잡고 막...윽~~" 혜주가 일어났다... 갑자기 삼구에게 달려들어선 두 손으로 삼구의 입을 틀어막는다. 빨개진 눈두덩이로 삼구를 노려보며 고개를 젓는... 삼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손을 놓는 혜주였다... 다시 내 옆에 앉아선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날 애절하게 바라본 혜주가 천천히 말을 꺼낸다... 여전히 쉰 목소리로...말을 하면서도 힘이 드는지 목을 손으로 부여잡고 어렵게 입을 연다. "아...저. 씨... 바보예요?" "아니야... 정말 내가 그런 문자 보낸 거 아니야." "알아요..." "알아?" "예... 아저씨가 무슨짓을 하든 저 다 믿어요. 근데 깨웠는데 왜 한 번에 안 일어난 거예요.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미안..." 내가 왜 사과를 하는지도 모르고...아니 혜주를 울린 것만으로도 난 죽을 죄인이 되어 버린 듯 느꼈기에 곧바로 사과부터 한다...혜주는 내 사과를 듣더니 다시 한줄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혜주의 목소리는 아직도 쉰 채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는지 쇳소리도 섞여 나오고 있었다...하지만 난 지금 순간 혜주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신께 감사하고 있다. 아무리 혜주가 내 옆에 울고 있어도 말이다... 머쓱한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삼구가 자리를 피해준다... 삼구가 나가자 혜주가... 내 손을 잡아 준다... 손을 잡고는 연신 쓰다듬으며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그만 울어... 나 자꾸 얘기하는데 목이 너무 아프다..." "...알았어요... 절대 안정이라고 했으니까...주무세요." "응...근데 어디 가지마..." "저 잠깐 심대리한테 다녀올게요... 심대리는 아직 어머니가 안 오셨데요." "응?...응..." 지금 이 와중에 심대리를 걱정하는 혜주가 놀라웠다... 심대리에 대해선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혜주는 일어나기 전에 잠시 날 가만히 쳐다본다. 많은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애써 눈물을 참으며 날 바라보던 혜주가 정말로 심대리가 걱정이 되는지 마지못해 일어나 응급실에서 나간다... 아마도 심대리는 같은 응급실에 있지 않나보다... 혜주가 응급실에서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삼구가 들어온다. "정리 좀 하자... 그럼 그 여자가 네 애를 임신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관계냐?" "말...하자면 길어...같은 직장에 다녔지만 확실한건 내 애가 아니야." "그럼... 널 왜 물귀신처럼 끌고 죽으려고 했던 건데?" "아마... 내가 너무 행복해져서 그런가봐... 자신은 불행해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