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11살 차이 - 완. - 19편 (19/49)
한편으로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학대하며 살고 있는 혜주가... 또 미련해 보인다. 날 버리고 도망간 내 어머니라는 사람도 혹시 이렇게 죄책감에 사로잡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난 사람을 돈이라는 물건을 매개로 직접 겪고 상대하는 은행원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혜주의 이런 순수함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 혜주가 별종임은 확실했다... "혜주야. 니가 고생하고 일부러 험한 옷만 골라 입는다는 걸 동생들이 알면 고마워할까?" "..." "만약에... 내게 누나가 있다면 말이야...그리고 그 누나가 어쩔 수 없이 나와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떨어져 살고 있다면 말이야... 난 누나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비록 내가 고생하고 힘이 들어도... 누나마저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내가 감히 누나한테 기댈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 "내가 없었던 시간동안 혜주가 혼자 벌면서 모은 돈으로 사치품을 쓰는 게 아까워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걸 잘못했다고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얼마나 착하고 올바른지 충분히 느끼고 그 삶은 존경까지 하는 내가 널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니... 하지만 이제 내가 있잖아... 오빠가 생겼는데... 동생일도 법적인 게 걸려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차차 해결방안을 찾아보면 답이 안 나오겠니? 이 오빠를 믿어봐라..." 조심스럽게 오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혜주가 날 의아한...듯 쳐다본다... 아니, 그냥 쳐다보는 게 맞겠지만... 내 의도된 오빠라는 단어의 사용에 혜주의 표정이 껄끄러워 보이는 듯 했다. "아씨... 알았어!! 아빠!! 아빠라고 하면 됐냐!!? 됐지!!" "풋...큭큭큭" "허... 울다가 웃으면... 엉..." "어우~" 혜주가 내 민망한 농담에 학을 띤다... 나름 내 어릴 적에는 잘 통했는데...어찌됐든 혜주가 웃었다... 혜주는 자주 울었지만... 웃는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린다. 나는 포장을 하고 있는 점원들에게 다가가 품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고, 점원 중 한명이 두 손으로 정중하게 받고는 계산을 시작했다. "전부 122만 2천300원인데요. 2천300원은 디씨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헉!" 갑자기 옆에서 가격을 들은 혜주가 얼굴이 사색이 되선. 점원의 명세서를 낚아챈다... 그리곤 믿기 힘든지 몇 번을 확인 하 듯 멍한 시선으로 반복해서 보고는... 입을 벌린 채 내 카드를 훔칠 기회를 엿보는 게 분명했다. 나는 얼른 카드를 건네주려고 했고, 역시 내 팔을 끌어당기는 혜주였다. "왜 그러세요 손님?" "으으으응응!!" "예???" "아닙니다 계산해주세요." "응응!!!" (필사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법한 혜주의 표정과 행동은 더 이어졌다.) "빨리! 계산해주세요." 급기야 난 혜주의 머리를 잡고 미는 형태의 상황까지 벌어졌고, 점원도 잘못하면 대목을 잃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빠르게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지지지~~지잉' 프린터가 된 영수증을 내게 볼펜과 함께 넘기는 점원의 손에서 잽싸게 낚아 채 사인을 한다. "휴... 혜주야 너 카드 없지?! 여기에 사인하면 이제 무르지도 못해..." "으..." "왜? 여기다 다 버리고 갈까? 그래...네가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 이걸 내가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요... 죄송한데 그냥 불우이웃한테 나눠..." 내 말을 듣던 혜주가 놀라선 포장을 하고 있는 옷들을 막 주워 담기 시작한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혜주였지만... 이 금액은 생각지도 못해봤는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절대 불쌍해서가 아니다. 그냥 이런 모습도 귀여웠기에 그랬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호호...엇..." "..." 점원도 따라 웃었지만 내가 노려봤다. 혜주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건 나여야만 하니까... 혜주의 속사정도 모르면서 웃기 시작한 점원을 보게 되자... 애꿎은 점원에게 눈을 흘기기 시작했고, 점원도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했는지 웃음을 참는다. "크크...혜주야... 그렇게 좋으면서..." "으응!!"(날 째리면서 이건 좋은 게 아니고, 아까워서예요!.라는 말을 하는 듯 보인다.) "어차피 이거 다 못가지고가. 배달되니까. 일어나." "..." 기가 차다는 듯 날 바라보는 혜주의 팔뚝에 손을 둘러 일으켜 세운 나는 정말로 저 옷들을 배달해 주는 거냐는 듯 점원을 노려보기 시작한 혜주를 끌고 옷 매장에서 나왔다. 혜주는 연신 포장을 하고 있는 점원들을 바라보며 쉽게 발걸음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혜주를 데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속옷 매장으로 향한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혜주는 내가 사준 속옷과 있던 속옷이 전부였을 것이기에 안면몰수하고 곧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엔 점원이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누가 봐도 원조교제 같은 모습의 우리일 테니... 점원의 의심 가득한 눈빛을 이해할 수 있는 나다. "여기 제 와이프한테 사이즈 좀 재어주세요. 시골에서 올라와서 아마 사이즈도 모르고 대충 입고 다니는 거 같아요." "예?? 아!~~~" "혜주야 따라가 봐." 그제야 점원은 발걸음을 옮겨 혜주에게 다가갔지만, 여전히 날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의심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속옷장사를 하는 나라도 이런 여성 속옷매장에 들어오기란 영 적응이 되질 않나보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보이는 간이 의자에 앉게 되었고, 잠시 후 얼굴이 새빨개진 혜주가 점원을 따라 커튼으로 이뤄진 드레스 룸에서 나온다. "완전히 잘못입고 계셨네요. 그것보다 너무 몸이 예쁘신데 왜 그런 속옷을..." 나오며 말을 하던 점원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말꼬리를 흐린다. "속옷 사이즈 안 맞죠?" "예?...예..." "차이 많이 나요?" "예???" 어차피 버린 몸... 대담해지기로 결심한 나였기에 서슴없이 점원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스타일별로 좀 사려고 하는데. 괜히 사이즈 잘못 쟀으면 다 못 입잖아요..." "..." "됐고요. 그럼 우리 혜주한테 어울릴 만한 걸로 골라주세요... 아니... 그냥 포장해주세요." 속옷매장이라서 그런가?... 혜주가 아까 옷매장과는 달리 고개를 숙인 채 나에게 덤벼들지 않는다... 조금의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행동에 김이 좀 샌다... 그래도 편하게 결제를 할 수 있으니...나야 상관없었다... 점원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건지... 아니면 단단히 오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스타일의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를 혜주가 아닌 내게 보여주며 계속 가져오기를 반복했다... 야한 속옷만 만지는 나로서는... 좀 많이 민밋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런 게 혜주한테는 정말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혜주가 먼 산을 바라보며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스타일의 검은색과 회색의 투톤이 V자로 위에는 검은색 쉐폰 원단과 부드러운 실크의 검정이 경계가 이뤄진 조금은 야한 속옷을 얼른 챙겨달라고 점원에게 부탁했다... 속옷매장에서 대량 20여종의 세트를 산 나는 배달을 요청하며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혜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혜주가 날 바라봤을 때...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걸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생각에 잠겨 있나 보다... 아무 말 없이 혜주의 손을 잡고 나는 화장품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혜주는 이제는 체념한 듯 내 손에 이끌려 힘없이 쫓아오기 시작한다... 마음이... 씁쓸하다... 보미와 비교하면 안 되는데... 아마 이런 선물을 보미에게 안겨준다면 날 자기가 아닌 서방으로 불러주며 하루 종일 매달리다시피 팔짱을 끼며 안겨 연신 입가에 미소를 버리지 못하고 재잘될텐데. "손에 바르는 걸로 많이 좀 챙겨주세요..." "예?? 이십대라서 특별히 바를 건 없을텐데... 원래 젊음이 가장 강력한 무기거든요. 아가씨도 보면...어머!!..." 그제야 혜주의 손을 잡은 점원이 깜짝 놀란다... 그리곤 다시 혜주의 얼굴을 쳐다보는 점원이었기에... 혜주가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려는 듯 조금 고개를 숙인다...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느끼는지... 들려 있는 손을 급하게 빼내곤 앉아 있는 원형 의자위에 예쁘게 모인 허벅지 위에 손을 누르듯 포겠다... "제가 죽일 놈이죠... 오빠 공부한다는 핑계로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있는 고생 다 시키고... 이제 해결 됐으니까 울 혜주 공주 만들어 주려고요. 좋은 거 다 주세요..." "아~~~ 공부면? 사시?? 혹시 검사님 되시는 거예요?" "..." 가벼운 미소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나는 점원의 말을 넘겨버렸다. 그제야 혜주를 바라보는 점원의 시선에 안타까움이 배어나기 시작했고, 정말로 정성스럽게 혜주의 손을 잡고는 보듬어보기도, 쓰다듬기도 한다. 그리곤 얼굴에 손을 대본다. "에고.,. 이렇게 예쁜데...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여기 있는 거 다 사달라고 하세요 오빠한테... 이 정도는 껌도 아니겠네..." "..." "하하... 그렇죠... 혜주한테 맞는 거 다 싸주세요..." "예??" "전문가시니까 필요한 거 아시잖아요. 혜주가 저 때문에 그 흔한 로션도 없어요..." "... 그건 너무했다..." "그렇죠... 괜히 아가씨한테도 미안해지네... 얼른 싸주세요..." "미안해야죠!. 이렇게 곱고 예쁜데... 다는 필요 없고요, 제가 알아서 챙겨볼게요..." 여자는 무슨 스포일러 같은 것에 화장품을 담아 혜주의 손등에 묻혀 문질러보더니 다시 그 행동을 몇 번 반복한다. 기름종이 같은 파란색의 종이에 연신 닦아내며 이번엔 샘플 화장품을 발라보기도 하고... 하옇튼 이상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선 혜주에게 한보따리의 화장품을 안겨줬다... 정말로... 마지못해 받는 듯 혜주는 날 연신 바라보며 이걸 받아도 되는 것인지 망설이기를 했기에 내가 점원의 손에서 낚아채 혜주에게 건네줬다. 혜주는... 화장품을 받아 들고는 날 안타깝게 바라본다... 저 눈빛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내 기분은 좋을 뿐이다... 혜주와 가볍게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번엔 강하게 혜주가 내 팔을 잡았다. "왜?" "..."(혜주는 집으로 가자는지 손을 지붕을 만들어 내게 보여준다.) "집에?" "응~..." "집에 먹을 거 하나도 없는데..." 끝내 나는 혜주의 팔에 이끌려 지하 매장으로 향했고, 식품 층인 지하1층에서 내린 나와 혜주다. 혜주가 어디선가 바구니를 들고 오더니 앞장을 서기 시작한다. 여긴 내 담당이 아니었기에... 그저 혜주의 뒷모습을 쫓아 걸어가게 되었고, 혜주의 등가 방에서 수첩을 꺼내는 걸 볼 수 있었다. 한참을 노트를 바라보는 혜주였기에 가까이 다가가 노트 안을 훔쳐보게 된다... 뚫어져라 쳐다보던 노트에서 내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급하게 닫고는 날 또 귀엽게 째려본다. 혜주의 노트 안에 적혀 있는 예쁜 글씨를 볼 수 있었다. '스테미너 영양죽' 저건 언제 또 적어놓은건지... 분명히 병원에서 식차를 몰고 오는 아줌마와 한참을 얘기하더니... 금세 친해져선 웃기까지 하더니...저런 것까지 적어 놓은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날 의식하며 노트를 조금씩 열어보며 재료를 고르기 시작하는 혜주다... 한 가지 재료를 고르더라도 연신 들어다 놨다를 반복하는 혜주의 모습이... 결국 사지도 않고는 다시 노트에 뭔가를 적고 그대로 지나친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혜주였기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빈 바구니만 바라보게 되었다. 거의 30분 동안을 돌아다닌 우리였지만... 바구니엔 달랑 우유하나가 다였다... "왜 안사는 거야? 뭐 만들려고 하는 건데?" "응응!!" 귀찮다는 듯 나보고 기다리라는 손의 모양을 하곤 다시 처음으로 갔던 양파가 있는 코너로 돌아가는 혜주다... 그리곤 양파에 코를 바짝 대곤 냄새까지 맡더니 결국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그 다음은 아마도 밤이 있는 코너였을 것이다. 역시 혜주가 그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그대로 밤이 진열된 진열장을 지나 두 불럭이나 떨어진 냉장상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냉동 밤...을 꺼내 담는다... 나는 서둘러 아까 지나쳤던 밤 코너의 진열된 상품과 냉동 밤을 비교해보니... 160원차이로 냉동 밤이 더 싸다... 그런데 양이 1/3이나 냉동 밤이 더 많다... 그런 일의 반복이었다... 혜주는 장을 하나 보는데도 이렇게 공을 들여 양과 가격을 비교하며 꼼꼼하게 체크까지 해서 고르고 골라 가장 좋고 싼 것들을 찾아 바구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판대에 놓여있는 시식코너는 모조리 선렵하듯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하나씩 맛보며... 꼭 미소까지 지어주는... 그러나 정작 시식코너에서 맛본 것들은 하나도 사질 않았다... 한가득 채워 계산을 하는데... 3만2천원이 나왔다... 아마도 내가 저 정도 양의 장을 봤다면... 4만원이 훌쩍 넘었을 게 분명했다... 혜주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예쁜 옷이나...화장품을 사줬을 때도... 이런 미소를 보인 적 없던 혜주였는데... 사실 위층에서 쓴 돈이 아마 300은 넘을 거다... 그런데 3만 2천원에 이렇게 음식을 만들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내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끝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집 문을 열고... 혜주가 들어가다 그대로 현관 앞에 서서 움직이질 않는다... 무슨 일인가?라는 생각에 나는 혜주의 어깨 너머로 집안을 둘러보는데... 집안 꼴이... 그러고 보니... 폐인처럼 생활하며 모든 살림과는 담을 싸고 지낸 시간이 한달이다 보니... 집안은 엉망이라는 단어도 아까울정도로 개판이었다... 날 향해 고개를 돌린 혜주가... 진짜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한다... 혜주의 눈빛이 무섭다... 갑자기 짐을 현관 옆에 내려놓더니... 날 끌고 오피스텔에서 나온 혜주는 그대로 앞 슈퍼의 의자에 날 앉히고는 손을 내 앞에 내민다... "으.응?? 뭐?" "으응응!"(혜주가 돈을 세는 시늉을 한다...) "아! 돈?" 나는 지갑을 꺼내 돈을 꺼내려하는데... 말도 없이 지갑채로 낚아채 간 혜주는 그대로 슈퍼로 들어가 정작 지갑은 자신의 추리닝 상의 주머니에 넣고는 바지에서 동전들을 소리 내며 꺼내선 내가 즐겨 먹는 이온음료를 하나 사왔다.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손을 올려 담배를 펴는 시늉을 한다...그리곤... 크게 양손을 교차하며 X자를 만든다... 아마... 담배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인 듯 보였고, 분명히 내가 슈퍼에서 담배를 살거라고 예상을 했는지... 지갑채 압수당하게 된 나는 멍하니 오피스텔로 사라지는 혜주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10분이 지나가...20분이 지나도... 혜주가 나오질 않는다... 조용히 일어나... 잠시 오피스텔의 현관문의 동태를 살핀 난 몰래 슈퍼로 들어갔다. "아줌마. 돈 조금 있다 드릴게요. 담배하고 라이터 좀 주세요." "응?? 김 군한테는 안 팔아..." "예??" "돈 주고 산다고 해도 안 팔아..." "그...그게 무슨 말이에요?" "김 군한테... 저번 저녁에 술 팔고 나서... 내가 혜주한테 얼마나 원망을 들었는데...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내 딸년 생각나서 나도 같이 울었다니까... 그래서 혜주하고 약속했어. 다시는 담배하고 술 안판다고..." "그...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딨긴 여기 있지... 억울하면 저기 100m 떨어진 편의점 가서 사오던가..." "와... 이...이 지지배가..." "누구보고 지지배래!!" "깜짝이야... 왜 아줌마가 화내요?..." "다시 그런 욕해봐...아주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릴 테니까..." "에휴..." "거기... 오징어 다리 하나 들고 가서 씹든가...그건 공짜로 줄께." "예~~~~! 감사합니다~~..." 500원짜리 다리 하나가 들어있는 봉지를 하나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허탈하고...한편으로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역시 혜주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창문을 올려다보는데... 혜주가 예상이라도 했는지... 창문을 열고 걸레를 든 손으로 턱을 괴고는 킥킥대며 웃고 있다... 도대체... 내 얼굴이 왜 빨개지는지도 모른 채... 혜주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웃으며 날 바라보던 혜주가... 고개를 들어 따스한 햇볕을 얼굴로 받아내려는지 눈을 감고는 잠시 창문에 턱을 괸 채로 그대로 있는다... 꼭 외화의 한 장면처럼... 붉은 빛의 때가 묻어 있는 벽과 창문이 혜주로 인해 밝아지는 듯 한 기분까지 전해지며... 나도 모르게 혜주와 같이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햇볕을 받아본다... 감은 눈에도 검붉은 햇볕의 따뜻함이 보여진다. 얼굴에 따스함이 느껴졌고, 정신이 아련해진다... 꼭 구름위에 있는 듯 몸이 가벼워진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나는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지 하늘을 이렇게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없었다...햇볕을 이렇게 따스하게 느껴본적도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바쁜 삶에 하루하루가 귀찮기만 했는데... 단 5분의 햇볕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은 모르고 지냈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혜주가 턱을 괴던 팔 아래로 고개를 내려 창문 밑틀에 대고 있던 팔에 얼굴을 내려놓고 기대어 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눈이 마주쳤고,,잠시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혜주가 웃으며 올라오라는 손동작을 하고 나서야 들어가 사라져 버린 혜주의 잔상에 이상한 아쉬움이 남았다...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약30분 전의 집안과는 완전히 다른... 꼭 새집처럼 느껴지는 내 집을 보게 되었다... 쌀을 들어오자마자 이미 불려놨는지 그릇에 덮어놨던 자신의 노트를 치우곤 불린 쌀을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간간히 저으면서 다른 반찬들을 만드는 혜주의 모습을 보게 되자... 이게 삶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멍하니 혜주가 내가 들어왔을 때 틀어놓은 텔레비전에 시선도 주지 않고 혜주의 뒷모습만 바라보는데...그동안의 내 행동이 너무 후회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내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기에 괜한 죄를 지은 듯 느낀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여.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퇴원하셨죠?] "아... 수이니?" [예.] "응... 지금 집이야." [혜주는요? ] "같이 왔지..." [그럼 지금 가도 되요?] "그래...빨리 와 밥 먹을 거니까." [예~~] 혜주는 잠시 날 쳐다보더니 서둘러 밥을 밥통에 안친다... 그러고 보니 죽만 같이 먹을 생각이었나 보다... 서둘러 요리를 준비하는 혜주의 허둥대면서도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에 다시 한 번 감탄을 받으며 계속해서 혜주를 쳐다보고만 있던 나는 문을 두드리는 수이의 소리에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이미 밥과 반찬은 다 준비되어 있었기에 내 작은 상에 상을 차리고 있던 혜주가 수이를 보며 너무도 반갑게 반긴다... 여자들은 참... 본지 삼일도 안 지났는데... 저렇게 반가울까?... 소소한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고, 역시 혜주의 음식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 끓여보는 영양죽일텐데... 내 입맛의 간을 벌써 파악하고 있는 혜주였는지 딱 적당하게 싱거운 정도로 금세 한 그릇을 다 비우게 됐다... 웃으며 한 그릇을 더 퍼오는 혜주였고,, 뭐가 그리 좋냐는 듯 날 쳐다보는 수이 때문에 나이에 맞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나다... 꼭 신혼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두그릇을 비우고...또 달라고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라는 생각으로 혜주와 수이를 번갈아 바라보곤 나는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간다. "누구세요?" "김민호씨 댁이죠?" "예? 예... 누구세요?" "OO마트요... 배달 왔는데요." 마트라는 소리에 문을 열어준 나는...적자니 당황하게 되었다... 방금 방을 치웠고... 주문한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남자들이 두어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옮긴 상자와 쇼핑백이 거실의 한편을 전부 차지해 버렸다... "저...저게 뭐에요?" "혜주...옷일 거야..." "예??!!!" 누구보다 놀란 건 수이였다... 하긴 놀라지 않는다면 이상한 그림이지... 나도 포장을 하니 저렇게 많아 보일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저...저게 다요?" "응..." "와!! 혜주야 너 로또 맞았다..." "..."(혜주가 얼굴을 붉히며 수이의 허벅지를 꼬집는다.) "윽!! 계집애는 꼭 좋은 말하는데도 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