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11살 차이 - 완. - 12편 (12/49)
순수하면서 착한 본성을 지녔으면서도 돈이라는 현실세계의 독에 대해서 이미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스물두살의 너무도 조숙해 질수 밖에 없는 어린애였다... -지금도... 혜주가 글을 적다 날 쳐다본다. -너무 고마워요. 이어 적은 고맙다는 말은 손님들에게 의례 은행에서 듣는 말이지만 혜주의 입을 통한 말이 아닌...단지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게 된 나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택배지를 채우며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죽기보다 더 싫었던 주소적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이 택배지가 고맙게 느껴진다. 혜주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주문량이 많아지고 나서 편해진 게 하나 있다. 예전이라면 별로 안 되는 물건을 직접 들고 편의점으로 아침 일찍 걸어갔어야 하지만... 이제는 많은 수량으로 인해 택배기사가 저녁마다 찾아왔기에 그냥 매장에 앉아 있으면 되는 편함으로 주문이 들어와도 그나마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다른 이유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굳이 작은 방에서 잠을 자겠다는 혜주였지만 쌓여있는 내 물건들과 옷가지들로 어린아이라도 쪽잠을 잘 판인 작은방에 어떻게 혜주를 재울 수 있겠냔 말이다. 그래서 안방을 내 줬다. 아니 내 침대를 내줬다... 단 한 번도 어느 누구에게도 내준 적 없는 침대를 술 먹고 삼구가 내 집에서 잠을 자고 갈 때에도 절대 양보한 적 없는 내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혜주를 위해서라면 매트리스 커버까지 손수 먼지를 털어줘도 아깝지 않았다. 뜬눈으로 잠도 못자고 있던 나는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 시간을 확인해 본다... 벌써 새벽2시다... "휴... 이게 뭐냐..." 물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일어났고. 냉장고로 걸어간다... 생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혜주가 누워 있을 안방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발걸음이 혜주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옮겨졌다... 바로 혜주가 자고 있는 방문 앞에 서서 귀를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혹시 코는 고는 게 아닌지... 고르게 숨은 쉬고 있는 게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하며 온 정신을 귀에 집중하게 되었다. 갑자기... 문이 열렸고...깜짝 놀라 말못하는 사람처럼 뻐금대고 있는데 혜주가 눈을 비비며 날 빤히 쳐다본다. 저 늘어난 흰색 티는 옷핀을 제거했는지... 한쪽 어깨를 다 드러내 브래지어의 끈이 보였다... 헐렁한... 바지도 고무줄을 이중으로 묶었지만... 흘러내려 혜주의 골반에 걸려 있는 듯 보였다. 왠지 말을 하지도 않고 날 빤히 쳐다보는데...그제야 말을 못하는 혜주라는 걸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헛소리를 입밖으로 뱉어내기 시작하는 나다... "아...아니 난... 그냥 불편하지는 않은지...혹시 코는 고는지 걱정돼서..." 혜주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날 스쳐지나가듯 그냥 냉장고로 향한다... 길게 늘어트린 내 추리닝 바지를 발로 같이 밟으며 질질 끌고 가듯 걸어간 혜주가 냉장고를 열고는 내가 방금 입을 대고 먹었던 생수통을 꺼낸다... 그리곤 아무 망설임 없이 입을 대고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내 큰 티를 입고 있는 혜주의 몸이 냉장고의 불빛에 투과대어 티속으로 라인이 그대로 그려진다... 잘록한 허리에 안 어울리는 풍만한 가슴이... 나도 모르게 침을 크게 삼키게 되었다... 주책없게 이게 무슨... 여자의 나신이라면 보미를 통해서 지겹도록 봤는데...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는데 혜주가 내 침 삼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날 의아한 듯 쳐다보다가... 갑자기 내게 다가온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혜주에게 들릴까봐... 나도 모르게 숨까지 참게 되었다... 바로 앞에 다가온 혜주가... 내게 생수통을 넘긴다... 내 침넘김이... 목이 마른 줄 알았나보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든 생수를 마시게 되었고. 혜주는 또 그대로 나를 지나 방으로 들어간다...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 무슨 사춘기 애도 아니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는 눕고는 애써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새벽3시가 지났을 때... 방안에서 끙끙대는 혜수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이게 무슨 소린가 생각하며 기어가선 혜주가 잠들어 있는 방에 또 귀를 가져다 댔다. 혜주의 신음소리가 분명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땀을 흘리며 이불을 움켜잡고는 잔뜩 겁에 질려 몸을 떨며 자고 있는 혜주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조심스럽게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기어가선... 혜주의 손을 잡아줬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날 버리고 간 어머니가 날 떠나기 전에 악몽을 꾸는 내게 해주던 방법이다. 혜주가 내 손을 느끼며 처음에는 움찔거리더니... 조금씩 혜주의 손에서 전해지던 떨림이 멎어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걱정을 하며 손을 잡아주면 그 마음이 닿는다는 어머니의 몇 안되는 내 기억속의 말을 어렵게 떠올리며 혜주의 악몽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며 손을 잡아주고 있었고,, 혜주가 숨을 편히 쉬기 시작했다... 이제 손을 놓으려고 했을 때... 혜주의 눈이 가늘게 떠져선 날 확인하 듯 바라봤다...혹시나 날 치한으로 오인할까 걱정했지만, 날 확인한 혜주가 내게 짧은 미소를 지어주곤 다시 눈을 감는다... 결국 한 숨도 못 잔 나는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슈퍼에서 사온 계란과 빵으로 토스트를 굽기 위해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있는데 방문이 열린다. 혜주가 나와선 날 쳐다보고 있다. "미안... 나 때문에 깼지?" "..."(혜주가 고개를 저으며 하품을 한다. 하품하는 모습까지 저렇게 귀여울까...) 내 몸 가까이 눈을 비비며 다가와서는 내가 들고 있는 프라이팬을 쳐다본다... "아... 일찍 일어난 김에 토스트나 해주려고... 배고프지?" 가만히 날 쳐다보던 혜주가...갑자기 내 옷을 잡고는 끌어당겼기에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왜...왜 이래... " "으응!!"(또 고개를 젓고는 가스레인지를 꺼버린다...) "왜?" "으으응!!" "뭐??" 갑자기 혜주가 두리번거리더니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난 혜주의 행동을 지켜보고 서있는다. 내 작은 밥통을 꺼내 올려놓더니 쌀을 붓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가 지켜보는 건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쌀을 씻기 시작한다. "혜주야... 나 아침 원래 안 먹어... 그냥 빵이면 되는데..." "어어!!!" "응?" "으응!!" 날 약간 흘겨보며 밥솥의 쌀을 가리키곤 먹는 시늉을 한다...그리곤 양 팔을 위로 번쩍 들어 기지개를 편다... 그런 혜주의 행동이 너무 귀엽게 보이긴 했지만... 도통 뜻을 모르겠기에 계속 쳐다보고만 있으니 혜주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곤 노트를 가져와서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은 아침에 밥 먹어야 힘을 쓰죠!! "아~~~~그래도 난 아침은..." -바꿔요!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그냥 차려드리는 밥이나 드세요!! 강한 느낌표 두개를 그리듯 쓰고는 노트에 볼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날 또 흘겨본다... 어쩔 수 없이 난 물러나 앉았다... 혜주는 흥얼거리며 밥을 안치고는 그대로 프라이팬을 데우곤 계란을 깨 넣었다. 잠시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고는 먹다 남은 김치를 꺼내 도마에 올려놓고는 칼질을 시작한다... 칼이 도마에 부딫히는 소리가 흥겹게 들리기까지 했다. 악몽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내 앞에서 태평하게 요리를 하고 있는다... 아니... 꼭 잊으려는 듯 내 앞에서는 밝게 행동하고 있다... 내 기억이 형성되고 나서 난생처음 여자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제 날 도와준 기억에서도 사라진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난 누구보다 행복감을 느꼈고, 혜주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내 코를 즐겁게 해주고 있는데 혜주가 날 흔들어 깨웠다. 언제 잠이 든 건지... 깜짝 놀라 깬 나는 이미 상에 다 차려놓은 접시를 보게 되었다. 주먹밥처럼 동그랗게 만들어진 납작한 김치볶음을 보게 되었다. 계란도 작게 뭉개져 들어가 있었고 양도 그리 많지 않은 보기에도 맛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란 국도 눈에 들어왔다... 조촐하면서도 호사스러운 아침식사를 하게 된 나는 먹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입에서 맴도는 볶음밥알이 맛있다고 느끼며 금세 접시를 비워 버렸다. 입맛을 다시며 혜주를 보니 눈을 깜빡이며 날 쳐다본다. 너무 급하게 먹었나...아니면 게걸스럽게?... 혜주가 '쿡쿡'거리며 자신의 접시에서 크게 한 숟가락 떠서는 내게 건네준다... 그것도 금세 비워버렸다... 내가 이렇게 식탐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출근을 하기 위해 문을 나서며 혜주에게 몇 번이고 당부를 한다. 절대 문열어주지 말고! 다른데 나가지 말고! 매장에는 일찍 갈 필요 없으니 12시쯤에 나가고!! 사실 매장에 내 보내기 싫었지만... 그게 더 혜주에게 부담감을 준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늦게 내보내려는 내 속셈이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등을 밀고는 내게 자신의 손목에 손가락을 가리켜 늦었다는 시늉을 하는 혜주였기에 마지못해 출근을 하게 되었다... 월차를 냈고 손목에 붕대를 하고 출근한 나를 직원들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엔 멍도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이상하게 혜주 앞에서는 감성도 풍부하다 못해 넘쳤고, 결정도 너무 쉽게 내린 나였지만 회사에서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우유부단한 내 직장 내 생활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된 나였는데... 거의 끝날 무렵에 유과장이 날 부른다... "예?" "무슨 일 있었나요?" "아니요." "근데 손하고 얼굴 왜 그래요?" "아!... 괜히 시비가 붙어서요..." "...그래서 쉬는 동안 생각은 해보셨나요?" "죄송합니다... 지금 집에 중요한 일이 생겨서요... 아직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예? 무슨 일이요?" "개인사정이라서요..." "... 알겠습니다... 어차피 상처나 낳아야 시작해도 할 수 있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몸조리 잘하세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퇴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급하게 가방을 챙겨서 은행을 나갔고. 서둘러 지하철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옷가게들이 즐비한 쇼윈도 거리를 보게 되었다. 항상 지나가는 길인데... 한 번도 유심히 본적 없는 그런 가게들이었는데... 보는 옷들마다 전부 혜주에게 잘 어울려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가 조금 넘었다... 어차피 혜주가 매장 일은 똑부러지게 다 해놨을거고... 7시 되면 집으로 갈 테니... 아예 집으로 가는게 좋을 듯 느껴졌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은행 앞까지 걸어간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가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자 옷들이 많을 줄은... 보는 것마다 전부 다 어울릴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게 된다. 유명한 메이커의 매장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혜주의 화난 얼굴이 생각났기에... 나오게 된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는 떠리 상품 방출... 이라는 간판이 적힌 가게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가격대가 1~2만 원대의... 여자 옷을 사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도 모르고 떠리 상품이라는 간판에 현혹되어 그냥 들어가 버렸다. 우선 편한 추리닝을 고르기 시작했다. 분위기 봐서 더 사주면 되니까... 한 벌씩 고르자는 생각에 그중에서도 가장 예뻐 보이는 옷들로 손이 가기 시작한다. 펑퍼짐한 것들보다는... 조금은 타이트해 보이는... 내 눈에 분홍색의 조금은 좁아 보이는 통의 추리닝이 들어왔다. 가슴에 크게 LOVE라고 적혀 있는... 난 보자마자 이걸로 결정하고는 우선 옷을 챙기게 되었다. 그리고 청바지와 티... 간단히 입을 수 있는 긴팔 후드 티도 하나 골라 계산을 마쳤다. 쇼핑백을 들고 왠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지하철을 향하는데... 내 눈에 여자 속옷가게가 들어왔다...그리고 혜주의 속옷이 생각났다... 허름해서 밑단이 다 닳은... 내 매장의 속옷들을 입히기에는... 나는 두 눈을 꽉 감고 그냥 들어갔고... 의외로 사람들이 있는 매장 안에 얼음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그때 점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서는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아...안녕하세요..." "선물하시게요?" "예...예..." "부인분꺼죠?" "...예..." "음...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예??" "부인분 쓰리사이즈요." "쓰리..." "예... 모르세요?" "..." "저랑 비교해서 말씀하셔도 되요. 어느 정도 되세요?" "..." "괜찮아요.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예... 키. 키는 좀 작고요... 그러니까... 한 160정도는 될 거에요." "호호호호... 키는 필요 없고요. 가슴은 어느 정도에요? 저보다 커요?" 내 앞에서 가슴을 내밀며 보여주는 여자직원의 태도에 내 얼굴이 빨개졌다. "비...비슷한데... 허리가 많이 얇아요..." "예?? 흠... 44인치 입으시나요?" "아마...이...이 정도는 될 거에요."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대충 여직원에게 보여주자... 부럽다는 듯 내 손을 쳐다본다... 그리곤 뒤돌아가서 두 세트의 검정과 빨강의 화려한 속옷을 가져와 보여준다. "이...이런 거 말고... 좀...그러니까 대학생들이 입는..." "예?? 대학생이요?"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여자의 시선이었지만...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같은 동종업계의 사람하고 대화를 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얼굴은 더 빨개진다... "잠시 만요..." 점원이 가져오는 속옷 중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것들로 두 세트를 사곤 도망가듯 가게를 나온다. 하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과 비닐봉지의 무게를 느끼자 이내 부끄럽다는 생각은 사라졌고, 기뻐할 혜주의 얼굴로 머릿속이 꽉 차기 시작했다. 뛰어가듯 계단을 올라간 난 오피스텔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역시 내 코를 즐겁게 하는 음식 냄새가 먼저 날 반긴다. 문소리에 혜주가 고개를 빼곰 빼고는 날 쳐다본다... 웃어주는 미소가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요리에 열중하는 혜주의 모습에 서둘러 구두를 벗게 되었다. 혜주는 여전히 내 티와 추리닝 바지를 걷어 올려 입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은 수제비였다. 그러고 보니... 음식 살돈도 안주고 주방 일을 맡겼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잠시 양복도 벗지 않고 물끄러미 혜주를 바라보는데. 혜주가 숟가락으로 간을 보다 말고 날 쳐다본다. 머쓱해진 난 곧 방으로 들어가 추리닝으로 갈아입는다. 잠시 혜주의 선물을 지금 줄 건인지 밥 먹고 줄지를 고민하며 손에 들고 방에 서 있을 때... 밥이 다 됐는지 문을 열고 날 쳐다본다. 그리곤 내 손에 들려 잇는 한 아름의 봉지와 쇼핑백을 궁금한 듯 쳐다본다... 어차피 욕도 빨리 먹는 게 좋다고... 나는 돌아가려는 혜주를 불러 세웠다. "혜주야..." 고개들 돌려 날 쳐다본다. "이거 몇 개 사왔는데. 입으라고..." 혜주가 가만히 날 쳐다보다가 화가 났는지 눈을 흘기며 그대로 가스레인지로 돌아가 버렸다... 이 정도는 각오한 일이었기에 난 서둘러 쫓아가 혜주의 손을 잡았다. "어른이 얘기 하는데!!" 갑자기 잡힌 손에... 혜주가 깜짝 놀랐는지 놀란 눈으로 잡힌 손에 떨림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너무 성급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한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손을 이끌고 혜주를 거실에 앉히곤 마주 보고 앉았다. 혜주는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지 앉은 채 내게 잡혔던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곤 어깨를 약간 움츠리곤 내게 보여주진 않지만 여전히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는듯 보였다. "미안... 놀랐다면 미안해..." "..." "근데 너 아직도 나 못 믿니? 내가 네 작은 아빠랑 같은 놈으로 보여?" "으응응!!" 혜주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든다... "내가 변태 같겠지만... 넌 끝까지 안 건드릴 거야... 그건 약속할게... 그리고... 이건 널 위해서 산게 아니야..." 내말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너 지금 입고 있는 옷 봐라... 그렇게 다 벌어진 티 사이로 가슴 다 보인다... 아무리 나라도... 너 그러고 있으면...나도 남자거든..." 내 말에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옷핀으로 고정한 목둘레를 더 여민다. "그것 봐... 너도 신경 쓰이지? 그러니까...저거 입어... 그리고! 저거 시장에서 떠리로 5천 원씩에 파는 거니까 부담같은건 안 가져도 된다. 같은 집에 사는 아저씨...아니...아...아빠 같은 사람이 딸같이 생각하는 아이한테 이런 선물도 못해주냐..." 끝까지 하기 싫었던 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단어 만큼 혜주를 안심시킬 수 있는 단어는 세상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 단어를 사용한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혜주가 날 쳐다보며... 정말로 아빠를 찾으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렵게 우리 사이에 놓아둔 물건들을 손으로 잡아든다... 그리곤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일어나선 손으로 얼른 밥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아침보다 더 맑은 미소로 날 쳐다보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 미소가 있는 지금이 꿈이라면... 정말로 깨고 싶지 않았고...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저녁시간이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는 혜주의 뒷모습을 보던 난 텔레비전으로 어렵게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잠시 텔레비전을 같이 본 혜주와 난 가끔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텔레비전을 향한다. 혜주가 방에 들어간 후 이불을 펼쳐 눕게 되었다... 누워 진짜 꿈이 아닌지 볼을 꼬집어 본다...아프다...그러다가 아까 생각했던 식대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들고 노크를 하며 문을 열었다. 갑자기 혜주가 무엇인가를 뒤로 숨기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분명히 등 뒤에 숨긴 손에는 내가 사준 분홍색 추리닝 상의가 들려 있는걸 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그게 창피한지... 벌개진 얼굴로 혜주가 날 또 흘겨본다... 저렇게 입어보고 싶은걸 밥먹고 텔레비전 보는 동안 어떻게 참았을까...침대 위에 이리저리 놓여있는 옷들이 날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문을 열고 서있는데... 혜주가 잰걸음으로 와서는 문을 소리 나게 닫아 버렸다... 역시 혜주도 스물둘의 꾸밀 줄 아는 처녀였다... 단지 절실하게 자신의 희생을 강요당한 삶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한 채 살아갔을 뿐... 누구보다도 귀엽고 아름다운 혜주도 역시 또래 여자처럼 예쁜 옷에 흥분할 줄 아는 여자란 게 날 안심하게 한다... 만약... 혜주와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도 팔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깨닫게 된다. 이렇게 순진하고 착한 혜주가 바로 앞에서 다른 여자와 뒹군 날 사랑 해줄 리도 없었고, 11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혜주를 맡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녀가 받은 상처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지울 수 있도록 나만이라도 사랑해 주기로 결심하게 된다. ========== 내 얼굴이 거의 다 낳았을 무렵 혜주도 예전의 곱고 앙증맞은 얼굴로 빠르게 회복이 되었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은가 보다... 나보다 훨씬 심하게 부었던 얼굴이 이제는 거의 티도 안나니 말이다. 혜주는 요 며칠 동안 내가 사준 분홍색 추리닝만 입고 다닌다. LOVE라는 단어가 정말 마음에 드는지 나와 지내고나서 혜주의 두 번째 버릇이 생겼다. 가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땐 가슴부위에 그 반짝이며 꺼칠한 LOVE라는 글자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위치기... 좀 거시기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이상하게 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훔쳐보게만 된다. 내 선택은 탁월했다... 약간 좁은 통의 추리닝은 혜주의 몸에 딱 들어맞았고, 잘록한 허리와 볼륨감 죽이는 가슴과 엉덩이를 어느 모델보다도 아름답게 추리닝을 맵시있게 소화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자꾸 야릇한 생각이 스믈스믈 몰라온다... 애써 잡생각에 빠져들때가 많았다... 일주일동안 혜주도 많은 안정을 찾았고, 이제는 무의식적인 나와의 접촉에 더 이상 몸을 떨거나 도망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