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성인소설) 11살 차이 - 완. - 11편 (11/49)

2026-10-05 17:02:11 조회 11
그런데... 혜주가 긴장이 풀렸는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분명했다. 나는 이마를 짚고 쪼그려 앉은 채 천천히 고개만 돌려 집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혜주가 날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미소가 너무도 그리웠는데... 저 미소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혜주의 모습을 보며 다시 머리를 문에 소리 나게 찧기를 한 번 더 반복했다... 내 오버에도 혜주는 정말로 웃어 주고 있다. 억지로 웃음을 찾으려는 듯 혜주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계속 웃어준다... 비록 머리가 아팠지만...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기가차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던 수이가...혜주가 웃고 있는 모습에 '피식' 한숨과도 같은 웃음을 뱉어내곤 이내 혜주를 끌고 욕실로 걸어 들어가 버린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제야 얼굴이 빨개지며 창피함을 나타내는 나다... 어색하게... 봉지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그제야 깨끗한 접시나 컵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며 설거지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자꾸... 혜주의 방금 전 알몸이 생각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변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에 쉽게 무엇부터 바꿀지 결정하지 못했고, 결정할 수 도 없었다... 결정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힘든 건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혜주와 수이가 나온다. 혜주가... 내 잠옷으로 즐겨 입는 긴 남색 추리닝 바지와 목이 늘어난 흰색 티를 입고서 나온다... 어깨가 보일정도로 늘어난 티의 목 부분이 어색한지... 연신 옷을 뒤로 당기고 있었으며 바지는 발가락까지 다 가려선 바닥을 쓸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손이 멈췄다... 비록 안어울리는 내 옷을 입고 있는 혜주의 모습이...정말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갈망하게 만들 정도로 귀엽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저기 아저씨..." "으...응??" "옷이 이런 거밖에 없어요? 평상복은 보이지도 않던데..." "평상복이요?" "예. 전부 양복밖에는 없던데요..." "아... "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동도 하지 않는 나에게 그리고... 여친도 없는 나에게 멋을 내는 평상복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잘 입지도 않던 옷을 전부 헌옷 수거함에 가져다 버린지도 꽤 오래전 얘기다... 괜히 혜주에게 미안해진다. 불청객과도 같은 혜주였지만 정작 허름한 면티에 내 긴 바지를 입고 있는 혜주의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보였다. 그러나 혜주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수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가방을 끌어와 안에 있던 노트를 꺼내선 엎드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장... 옷을 몇 벌 사와야 갰다... 엎드린 혜주로 내 큰 면티가 흘러내려 가슴골이 보였기에 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열심히 뭔가를 적은 혜주가 내게 노트를 밀어 냈다. -아니에요. 이것만 빌려주셔도 감사해요.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요? 이런 얼굴로 당장 알바구하기는 힘들고, 혹시 매장에서 잡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노트를 보고 혜주를 보게 된다. 벌써 일을 찾는 혜주가 대견하다기보단... 미련하게 보인다. 겨우 삼일도 안 지났는데 그런 큰일을 당한 혜주가... 의사가 내게 말했다. 영양실조 초기에 몸이 성한 곳이 없다고... 그런 몸으로 일을 말하는 혜주가 답답해 보인다. "글쎄.,. 지금 매장에 다른 직원 고용했는데..." "..."(날 쳐다보던 혜주는 다시 노트를 끌고가선 필기를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할지 뻔했기에 단칼에 잘라버린다.) "잡일도 할 게 없잖아... 아무리 일이 많아졌어도...저번에 일했으니 알겠지만... 거기 낮에 놀기만 할 텐데 뭐 하러 사람을 쓰냐?" "너무해요 아저씨!!" 생각지도 않은 수이의 공격에 당황한다. 듣고 있던 수이가 날 노려보며 불쌍한 혜주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날 훈계하려는 듯 입을 놀린다. "원래 혜주가 매장 알바1호생이라면서요...그럼 나중에 온 그 사람을 자르고 혜주를 써야죠!" "혜주를?" "예!! 그게 당연하거 아니에요?" "혜주를 다시 란제리 모델로 고용해서 쓰라고요?" "...그...그거야..." "아까 봤던 그런 속옷 입고 사진 찍는 건대요...얘기 들으셨을 거 아니에요... 아픈 혜주를 그런 거 시켜도 되요?" "..." 혜주가 수이의 손을 잡고는 날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도 수이도 알고 있었기에 멍하니 혜주를 쳐다보게 된다. 혜주는 우리의 멍한 표정에 조금은 어색한지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글을 적는다. -저 할게요. 모델이나 잡부나 아무거나 시켜주시면 할게요. "혜주야...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 몸조리부터 하고 나중에 얘기하자...응?" 내 말에 다시 고개를 저으며 필기를 한다. -저 조금 있으면 얼굴 붓기 빠져요. 그리고 모자이크한다면서요. 얼굴 부어 있어도 괜찮아요, 여기서 지내게 해주신 거 감사드려요. 대신 청소하고 빨래도 할게요, 매장도 다 깨끗이 치우고 모델도 할 테니까. 대신 저번에 준다고 하셨던 월급 주세요.' 더 이상 더 절실해질 수 없는 혜주였나 보다. 혜주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작은 아빠라는 놈에게 뺏긴 돈을 이제는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것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엔 지금처럼이라면 늦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수이도 알고 있었기에 혜주를 선뜻 말리지도 못하고 그냥 쳐다보고 있다. 무너지기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다시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듯 보여졌다.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는 오뚝이와도 같은 혜주의 모습에 내 지난날들이 창피하게 느껴졌고, 그런 혜주였기에 내 호의나 배품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럼... 낮에만 일하는 걸로 하자. 모델은 나중에 더 생각하고 나서 결정하고 그렇지 않아도 요즘 주문이 너무 많아져서 정식 직원이 필요했는데 널 정식직원으로 채용할게. 집안일도 도와준다면 모델 안 해도 월 200줄께? 그럼 됐지?" "진짜요? 혜주야 정말 잘됐다...그럼 너 무리하지 않아도..." "단!! 일과 후에는 다른 아르바이트 금지야...그거 허락한다는 조건에 월200에 채용할게..." 수이의 말을 자르며 조건을 걸었다. 일과 시간이후의 남은 시간에 혜주는 분명히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여자다... 솔직히 청소하고 물건 체크만 하면 되는 직원에게 한달에 200만원이라는 월급은, 돈에서만은 철저한 혜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기에 집안일을 도우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잠시 고민을 하 듯 혜주가 볼펜을 입에 물고는 조금씩 씹기 시작했다. 혜주의 첫 번째 버릇을 발견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인 혜주가 예전과 달리 생각에 빠지거나...고민을 할 때면 볼펜을 씹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모습도 귀엽게 느껴졌다. 내 말에 날 똑바로 바라보던 혜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됐다... "그럼 여기 먹을 거 사왔으니까... 좀 먹어... 난 매장에 좀 다녀올게." "예? 혼자서요?" "그럼 혼자 서죠... 근데. 수이씨 혜주한테는 반말하고 수이씨한테는 존댓말 하니까 좀 헷갈리네요..." "저한테도 반말하세요... 우리 혜주 기둥서방님이 되셨는데..." "예?? 기...기둥..." "아얏! 아파 이 지지배야..." 혜주가 수이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혜주의 손등을 때리곤 허벅지를 연신 문지르던 수이가 이번엔 날 째려보며 얘기를 이어갔다. "근데 우리 혜주 처녀인건 아시죠?!!" "...예??"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하는 얘기 못 들으셨어요? 다행히 처녀성은 지킬 수 있었다는 거..." "..." "하옇튼 혜주한테 이상한 짓 하면... 진짜 고소할거니까... 아니지... 고소 가지고는 성에 안차지..." 처녀성...물론 의심한적 없었던 혜주였지만...그래도 정말 처녀일 줄은 몰랐다. 여자나이 스물둘에 혼자서 객지생활을 1년동안 했는데... 거기다가 혜주의 얼굴과 몸매에 처녀성이라니... 난 강간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에 집중했지 처녀성이라는 단어에 대해선 사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니 놀랄 일이었다. 문득 생각난 혜주의 남자친구에 대해서 묻게 된다. "아...아니... 저기 예전에 우리 매장에서 일할 때... 오래 사귄 남자친구 있다고..." "예?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 갑자기 웃기 시작한 수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본다... 혜주도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 아저씨 진짜 좋은 사람이구나..." "예??" "안심하고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다...쿡쿡쿡..." "..." "남자 친구야 많죠!. 동네 꼬맹이들도 있고, 하숙집 아저씨들도 있고... 오래된 진짜 남자친구만 없다는게 문제죠... 혜주가 자꾸 찝쩍대는 사장들이 하도 많아서 매일 써먹는 레퍼토리에요... 한번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호호호호..." "..." "여자 친구도 있다면서요... 어떻게 그런 말을 믿어요?" "여...여자 친구 없어..." "예?? 그럼 혜주가 말했던 그 매장안에서의 여자는요?" "...매장 다녀올께..." 달리 대답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섹스파트너라는 단어를 여기서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혜주도 궁금한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두 여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잠시 앉아 있던 나는 옛날 버릇이 튀어나왔다. 몸을 일으키며 옷도 안 갈아입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 나가 서둘러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을 때 수이가 따라 나왔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날 세운다. "아저씨." "예...응??" "혜주한테 정말 아무 짓도 않할거죠?" "...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그건 약속할게..." "아니에요... 아저씨 어제 프러포즈 하는 거 보고... 믿기로 했어요..." 그때의 남사스러운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얼굴이 빨개졌다... 진짜...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응급실안의 풍격이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내 빨개진 얼굴을 재밌다는듯 바라보던 수이가 다시 말을 시작한다. 그때는 너무도 많은 사건이 일어난 하루였기에 정말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충동적인 모습에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혜주의 부은 얼굴을 봤을 때... 이미 난 내가 아니었던게 분명했다... "근데... 혜주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내요... 아저씨에 대해서 말할 때 뭐 이런 변태 중년이 있나 했는데... 덧붙여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혜주가 이해가 안 갔거든요..." "...변태..." "딱 이잖아요. 속옷 좋아해서 일까지 하고...거기다가 여자 끌어드리고... 정말 변태의 표본으로 들리던데..." "... 할만 다했으면 혜주한테 가지...혼자 있으면 무서울 텐데..." "예?? 호호호호호호... 근데 지금 매장이라고 하셨는데... 그 속옷 가게에요?" "...속옷 가게가 아니고!... 그냥 인터넷... 어휴~,... 다녀올게..." "호호호호호... 옙! 다녀오세요~~ 구경좀 시켜주세요.나중에 저도 놀러 갈게요." 등 뒤로 들려오는 수이의 농담섞인 목소리가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마도 혜주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면 저런 당돌한 여대생이 되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저렇게 당동하진 않고 오히려 요조숙녀가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주는 남에게 신세지는 것도... 폐를 끼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성격이 수이와 같이 막 말을 내뱉기 보다는 속을 삼키는 스타일로 커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에서 혜주의 불행한 상황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매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며칠 전 갔던 경찰서로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했다. 형사들이니 일요일에도 일을 할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두 번째지만... 도저히 이 삭막함에는 적응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때와 달리 철망 안에는 두 명의 남자가 누워 자고 있었고, 책상들에서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정작 그 형사가 눈에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가 앉아 있던 책상으로 향해 잠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오셨죠?" 경찰서에 도착해서 두 번째 받은 질문이다. 입구에서 경찰제복을 입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첫 번째로 받았고, 두 번째는 머리가 짧은 조폭이 더 잘 어울려 보이는 노스페스잠바를 입고 있는 남자가 날 부르며 질문을 한다. "이 자리에 계시는 형사분 좀 만나 뵈러 왔는데요." "구형사 지금 어디 갔지? 출동 아닌데... 아! 저기 오네요..." 조폭형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화장실을 다녀오는지 손을 닦고 걸어오는 그 구형사라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어!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예... 앉으시죠...아니다... 나가시죠. 거기 앉으면 이상하게 죄다 범죄자로 보여서..." ",,,,,예." 구형사가 안내하는 휴게실로 이동한다. "장혜주씨 건 때문에 오셨죠?" "예... 그 놈은 어떻게 됐나요? 감옥에 갔나요?" "죄송합니다... 상해죄를 적용한다고 해도 친족 간의..." "설마 벌써 풀려난 건 아니죠?"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죠... 지금 혜주가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풀려 날 수 가 있단 말입니까..."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작 피해자가 선처를 요구하는데..." "서...선처요??" "장혜주씨가 노트에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시는데... 저희가 어떻게 하겠습니다..." "무...무슨 말도 안 되는..." "저도 속이 타는데... 아마 장혜주씨한테는 그 동생들이 족쇄가 되는가 봅니다... 저도 동민장에 가서 좀 더 알아보니까. 정말 착하고 성실한 아이던데... 그 때려죽일 놈한테...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전치 2주 나왔잖아요. 얼굴이 팅팅 부었는데... 그게 왜 죄가 없어요?" "누가 죄가 없다고 했습니까... 친족 간의 폭력에 피해자가 합의 봤다고 하는데... 불개입이라도 손을 쓰려고 했다니까요..." "..." "장혜주씨는 좀 괜찮아 지셨나요? 제가 갔을 땐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시던데..." "그런 아이에요... 자기 약한 모습 안보이려고 눈물 참는..." ",..." "그럼 돈은요?" "그건 더 알아보고 있습니다. 저도 혜주씨가 불쌍해서 알아보니까 하루 18시간정도를 일한적도 있으시더군요..." "18시간..." "예... 그거 알고 나니까... 그 사람이 뺐어간 돈은 찾아 주고 싶어서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 "근데 손은 좀 어떠세요?" 내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며 형사가 인사치례를 한다...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갈게요." "그리고 이게 제 명함인데요. 혹시 그 작은 아빠란 사람이 행패를 부리거나 찾아오면 곧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 괜한 분노로 사고 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감사를 느끼지도 않았지만... 우선 그렇게 대답을 했다...맥없이 경찰서를 나온 난 매장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혜주를 보고 싶었지만...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 혜주를 볼 수 없었다. 안고 있다고 어느 하나 해결되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난 매장에 도착해 힘없이 의자에 앉아 담배부터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멍하니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폭주하고 있을 주문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한다... 220건...삼일동안 내 인터넷 매장에 접수된 주문이다... 일도 하기 싫어지는 저 220개라는 숫자에... 한숨부터 나온다... 접수된 주문 건을 열어보는데...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주문이 보미가 입고 카메라로 찍어 올려놓은 제품들이었다... 10장... 20장... 택배지에 주소를 적는데... 결국 볼펜을 던져버리게 된다... 이게 무슨 짓인지... 내가 왜 일을 시작했는지 후회가 됐지만... 이내 내일부터 혜주가 여기서 일을 할 거라는 생각에 다시 볼펜을 잡고 택배지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보미가 오늘 올리는 없고... 혜주였다...들어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혜주는 미소를 지어준다... 그런데 수이가 보이질 않는다. 여길 왔다는 건 분명히 수이도 같이 왔을 텐데... 잠시 기다려봐도 수이가 들어오질 않는다... 그제야 혜주의 손에 내 야구모자가 들려 있는걸 볼 수 있었다. 혜주는 잠시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는 상자에 당황한 듯 멍하니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곤 나를 보며 한숨을 쉰다... 저 한숨이... 날 창피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발목까지 몇 번이고 접은 듯 보이는 내 추리닝과 아예 옷핀으로 늘어난 목을 줄여 끼운 좀 우스운 모습의 옷태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내게 다가와선 내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볼펜을 찾은 혜주는 프린트 되어 있는 주소록 중 뒤에서 몇 장을 꺼내 말도 없이 택배지에 적기 시작했다. 꼭 머슴애처럼 입고 있는 옷이 웃겼지만... 혜주의 긴 생머리가 상처받은 얼굴인데도 여자로서의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다.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고개를 돌려 택배지에 일을 해야 하는데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콕!콕' 혜주가 책상위에 있는 종이를 볼펜으로 두드렸다. 그제야 혜주가 종이에 글을 적고 나에게 내민 것을 볼 수 있었다. -일해요!! "큭... 여긴 왜 왔어..." -수이 보내고... 방청소 하는데... "청소??" -도저히 속옷 때문에... "아!!" 종이에 글을 적는 혜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한 번에 몰아서 하는 빨래로... 수북이 쌓여 있을 내 팬티가 떠올랐다. "그...그냥 나두지... 왜 청소를 하냐..." -수이 보내고 나니까... 멍하니 있기도 그래서요. "어휴..." -근데 진짜 주문 많아졌어요. "응... 귀찮아 죽겠어..." -또!!!!!!!- "응?" -진짜 아저씨 그러면 안 돼요.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 내가 말이 없어지자 혜주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는 글씨가 어린 여자아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보였기에... 주문 물품번호를 찾아 사진을 가끔 띄워 나오는 익숙한 야한 속옷들이 어색해진다... 혜주는 상관없다는 듯 일에 열중했다. 아무리 남과 엮이는게 싫은 나였지만... 이런 혜주를 보고 있자니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혜주야... 너 왜 고소 안 해?" "..." 혜주가 볼펜을 잡고 있던 손이 약간 떨리는걸 볼 수 있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난 혜주대신에 고소를 해주고 싶었다. 돈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아둔 돈이 꽤 됐고, 이정도면 충분히 싸워볼만하다는 생각을 했고 잘 하면 지금 호적이 바뀐 동생까지도 혜주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볼펜을 쥐고 있던 혜주가 손에 힘을 주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소하면요... 내 동생들은 어떻게 해요? "데려 와야지!! 그건 내가 도와줄게. 내가 비록 네 눈에는 변태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능력은 좀 있어." -민사래요... 민사 재판은 변호사비가 얼만지 아세요? 그리고 데려와서요? 어디서 살아요? 같이 살 돈은 어디서 구해요? 작은아빠...가 가져간 그 돈 찾을 수 있데요? '작은아빠'라는 글자에서 볼펜이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눌러 쓴 혜주의 글씨를 보며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혜주는 스물두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그 다음의 다음까지 생각하고 있는 혜주는... 내가 대답도 준비하기 전에 글씨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도와준다고요? 얼마나 도와줄 건데요? 절 돈으로 사실건가요? "..." -제가 얼마나 되죠? "아...아니야!! 그깟 종이 쪼가리로 널 어떻게 산다고... 그런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었어..." 혜주가 날 똑바로 쳐다본다... 혜주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창피함에 몸이 작아지는 듯 느껴진다... 순수하면서도...한 점의 부끄러움 없는 저 맑은 눈동자가 나뿐만이 아닌,, 병패한 삶에 찌든 어른들을 거짓말도 허세도 부리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 혜주였기에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이 날 더 가슴아프게 했다... 자신의 가격을 내게 물어보는 혜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