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50편 (50/82)
그런데 이 아이의 내력이 정말 고강해서 이 무림에서 이 아이를 쫓아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마 몇 되지 않을 것이오.] 민유는 평소 자기 남편이 일반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인사들에 대 해서 좀처럼 칭찬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지라 그만 흐뭇해진 나머지 온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띄웠다. [그러나 이 아이의 무공이 너무나 생소하고 딱딱하군요. 역시 아버 지 되는 사람이 한 번 잘 가르쳐 주어야 하겠어요.] 석청은 웃었다. [당신이 그 토지묘에서 이미 이 아이에게 검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 소. 그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에 꾸러기인 아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는 엄한 부친보다 인자한 어머니가 나은 것 같구려.] 민유는 방긋이 웃었다. [부자 두 사람이 모두 다 배가 고플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가도록 하지요.] 이런 저런 질문과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그들은 어느덧 조그만 고 을에 도달하게 되었다. 객점으로 들어가 그들은 음식을 시켰다. 민유는 너무나 기뻐서 평소보다 한 보시기의 밥을 더 먹기까지 했 다. 그들은 객점에 들어가 반나절을 쉬었다가 나온 뒤 석파천과 함께 으슥한 산골로 들어갔다. 황량하고도 외진 산골짜기로 들어서게 되자 석청은 즉시 검법의 정 묘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석파천은 이 몇 달 동안 직접 고수들을 만나 상대를 해 보았기 때문 에 무학지도(武學之道)를 어느 정도 터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에 석청과 같은 대가가 다시 지도를 해주고 설명을 해주 게 되자 대뜸 확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사 노파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같이 보낸 시일이 그렇 게 많지 않은 편이었고 또한 칠십삼 초의 금오도법을 전수한 이후에 즉시 헤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석청과 같이 이토록 상세하게 지도할 여가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사 노파는 그저 설산파의 검법을 제압하는 데에만 뜻을 두 고 있는 것 같았으며 달리 요구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도법을 가르 치게 되었을 때에 그녀의 말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설산 검법을 대패 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만 오락가락했지 석청과 같이 무기를 사용하거나 권각법의 가운데의 무학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 다고 할 수가 있었다. 석청 내외는 차례로 그와 대련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의 초식에는 빈 틈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는 수시로 지도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민유가 토지묘에서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초식을 가르쳐 줄 때보 다 자연히 간단명료했고 또한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기다가 석파천은 일단 의문과 어렵게 느껴지는 점이 있으면 즉시 질문을 했다. 석청 내외는 그의 질문을 들어볼 때에 무한에 있어서 가장 조잡하고 앝은 도리마저도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것을 보고는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설명을 해준 이후에 설산파가 그토록 옹졸하고 치사하게시리 무공을 감추고 가르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에 대한 푸대접에 대해서 똑같이 대단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석파천은 공력이 심후하여 점심때부터 저녁까지 전심전력으 로 검법을 연마해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았고 숨 한 번 가쁘게 쉬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가르치고 대련을 한 석청 부부가 지쳐 땀을 뻘뻘 흘렸 다. 이와 같이 하기를 칠팔 일. 석파천은 신속한 진보를 보였다. 석청 부부가 전수해 준 상청관 검법까지도 터득하게 되었다. 이 동안 석청 부부는 식사할 때와 잠시 숨을 돌리려고 쉬게 될때 과 거의 일을 이야기하도록 석파천을 유도했다. 그의 기억을 회복시키기 위한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한데 석파천은 장락방의 총타에서 크게 앓고 난 이후의 일을 보다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조그만 일도 분명히 기억하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단 어린 시절 현소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능소성에서 무예 를 가르침 받은 경과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면 석파천은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세 사람은 식사를 한 이후에 다시 매일같이 검술을 연마 하는 버드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한담을 나누었다. 민유는 한 가닥의 조그만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땅바닥에다가 흑백분 명(黑白分明)이라는 글자를 쓰고 물었다. [옥아, 너는 이 넉자를 기억하느냐?] 석파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글자를 모른답니다.] 석청 부부는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아들이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민유는 이미 천자문은 말할 것 없고 삼자경(三子經)을 비롯해서 당시(唐時) 등도 가르쳐 낭랑히 외우도록 했던 것인데 어떻게 해서 지금은 글자도 모른다는 말을 하 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흑백분명이라는 그 네 글자는 현소장 대청 한복판의 커다란 편 액에 씌어진 것이었는데 그 글씨는 한 분의 무림 명숙(名宿)이 쓴 것 이다. 그러니까 그 뜻은 흑백쌍검의 신분을 합쳐서 표명한 뜻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그들 부부가 항상 모든 일에 공평무사한 태도로 임하면서 정의를 신장(伸張)한 것을 칭찬한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거 석파천이 네 살 되었을 적에 민유는 그를 품에 안고서 커다란 편액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그 네 글자를 가르친 바가 있었 고, 석파천 역시 그때 알아보았던 터이라 그 당시 석청 부부는 그를 총명하다고까지 칭찬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녀가 땅바닥에다가 그와 같은 네 글자를 쓴 것은 석파천이 이로 인해서 지나간 과거사를 떠올려 주기를 바랬던 것이데 놀랍게도 그는 네 살 때 배운 글자마저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 다. 민유는 그 즉시 다시 나뭇가지로 땅바닥에다가 한일자를 써서는 웃 으며 물었다. [이 글자는 아직도 네가 기억할 수 있겠지?] 석파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글자라고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 이 없으니까요.] 민유는 그만 속이 구슬퍼지는 것을 금하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글썽 글썽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주르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릴 것 같았다. 석청은 한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옥아, 너는 저쪽으로 가서 좀 쉬도록 해라.] 석파천은 대답을 하더니 장검을 들고서 한쪽으로 가서는 그 혼자서 검술을 연마했다. 석청은 처를 위로했다. [사매, 옥아의 증세가 가볍지 않아서 며칠 사이에 완전히 치유 될 수 있기를 바랄 수는 없소.]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설사 그가 옛날의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은 또 한편 으로는 좋은 일이 아니라 할 수가 없소. 저 애는 옛날에는 경박하기 짝이 없었으나 지금은 약간……약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매우 온건하고 중후하며 착실한 면을 보이는 등 크게 훌륭해 지지 않았냔 말이오.] 민유는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지라 대뜸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띄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글자를 모른다고 해서 무엇이 대단한가? 기껏해야 내가 다시 처음 부터 가르쳐 주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녀는 과거 아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되고 불현듯 마음은 부드러운 정으로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지금 그녀의 아들이 이미 장성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으로는 아들이 여전히 천진하고 유치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멍청하고 철이 없는 듯한 언행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되려 더욱더 기쁘고 귀 엽게만 생각되는 것이었다. 석청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로서는 한 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소. 저 애의 기억 상실증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능소성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에 얻게 되 것이오. 그리고 나중에 한바탕 열병을 앓게 된 것은 그로 하여금 더 욱더 그 증세를 심화시킨 것이었소. 그러나……그러나……] 민유는 남편의 말속에 깊은 우려의 빛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그만 걱정이 되어서는 물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석청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옥아의 글재주를 따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일자무식이고 무공으로 따진다 하더라도 전혀 고명한 편이 못되어 부질없이 내력만이 심후할 뿐이오. 그러니 경력이나 자격은 말할 것 없고 지모나 수단에 있어서 도 더욱더 논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오. 장락방으로 말하면 근년에 강 호에서 일어난 하나의 커다란 방파이며 팔구 년 동안에 대단한 명성 을 날리고 있는데 어째서……] 민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그래요. 어째서 저와 같이 어린 사람을 방주로 내세웠을까요?] 석청은 생각에 잠긴 듯한 어조가 되어서는 자기의 생각을 털어 놓았 다. [그날 우리가 서주(徐州)에서 노동삼웅(魯東三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장락방을 창시한 방주의 이름은 동방휭 (東方橫)이라 했으며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못되나 그를 떠 받드는 그의 부수(副垂) 격인 착수성춘(着手成春) 패해석(貝海石)은 매우 대 단하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길래 방주가 한 명의 젊은 이인 석파천 으로 바뀌었는냐 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노동삼웅은 장락방의 젊은 방주가 매우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 일 뿐만 아니라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이상야릇하고 거짓이 많으나 무 공에 있어서는 퍽이나 고강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을뿐 본래 그 누구 도 그의 내력을 몰랐던 것인데 나중에 설산파의 여제자 화만자가 알 아낸 결과는 설산파에서 쫓겨난 제자 석중옥이라는 것이었소. 그리하 여 설산파는 정히 장락방으로 찾아가 그들에게 따졌다고 하더구려. 그런데 이제 보니 일을 처리하는 행동이 이상 야릇하고 거짓이 많으 며 무공이 고강하다는 평은 실로 그에게 부적합하다고 하지 않을 수 가 없을 것 같소.] 민유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과거 우리의 옥아는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은 심지는 정말 깊고 무 서웠어요. 만약 그의 무공이 정말 고강하게 되었더라면 무슨 방주가 된다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는 전혀 의 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저 어떻게 그를 구출해 내는가 하는 계책 만 의논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저 모양을 보니……]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그녀는 갑자기 음성을 높여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형, 이 가운데는 틀림없이 어떤 중대한 음모가 개재되어 있을 것 같군요. 사형은 생각해 보세요. 착수성춘 패 의원은 얼마나 똑똑하고 능력이 많은 인물이냔 말이에요.]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말하는 소리마저도 떨려왔다. 석청은 약간 마음이 초조해진 듯 두 손으로 뒷짐을 진 이후 버드나 무 아래에서 서성거리며 몇 바퀴 원을 그리더니 입으로 끊임 없이 되 풀이해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를 방주로 세운 것이 무엇 때문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이냔 말이 다.] 그리하여 그가 다섯 번째 원을 돌개 되었을 때에 마음속으로 어느덧 모든 것이 환히 밝혀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모든 상황과 일 들이 모두다 딱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다만 이 일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라 감히 입밖으로 내놓을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일곱 번째의 원을 그리게 되었을 때에 민유쪽을 흘깃 쳐다보게 되었는데 민유 역시 눈길을 들어 석청을 쏘아보고 있는 것 이 아닌가. 두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 교차하게 되었고 동시에 두 눈에서 공포스 럽기 이를 데 없는 빛을 띄웠다. 그리고 두 내외는 그와 같은 상태에서 멍하니 상대방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 [상선벌악(賞善罰惡)!] 두 사람이 그 넉자를 입밖으로 내뱉게 되었을 때에 그 음성은 매우 우렁찬 것이어서 멀리 한쪽에서 검초를 연마하던 석파천도 듣고서는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아버지, 어머니. 상선벌악이란 무엇을 가르키는 것입니까? 철차회 에서도 듣고 상청관에서도 여러 번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석청은 되물었다. [장삼과 이사가 너의 결의형제를 맺게 되었을 때 네가 장락방의 방 주라는 것을 몰랐느냐?] 석파천은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그들은 아무말이 없었어요. 십중팔구 모를 거예요.] 석청은 다시 입을 열었다. [독주를 마실 때 그들의 행동이 어떠했는지 좀 자세히 말해주련?] 석파천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독주였습니까? 그러면 제게 왜 중독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석파천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했다. 석청은 그의 이야기가 막 끝난 이후에 잠시동안 생각해 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옥아, 한 가지 일에 대해서 반드시 너에게 분명히 말해 주어야겠 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만회할 수 있으니 너 역시도 놀라거나 당황해 할 것은 없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는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삼십 년전 무림에서는 많은 커다란 문파와 커다란 방파의 수뇌자들 이 갑자기 차례로 초청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동짓날 남해(南海) 에 있는 협객도(俠客島)로 가서는 팥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요. 모두들 협객도로 가서 동지팥죽을 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면 매우 두려워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동지팥죽 에 독이라도 있나요?] 석청은 가만히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그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 대문파와 대방회의 수뇌자들 은 동패 즉 구리패를 초청장으로 받았던 것인데……] 석파천은 불쑥 입을 열고 물었다. [구리패로 초청장을 삼았다면 바로 그 두 조각의 구리패를 말하는 것인지요?] 석청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바로 네가 조허 사백부의 몸에서 찾아낸 그 두 조각의 구 리패이다. 한 조각의 구리패에는 하나의 웃는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내린다는 것이고 다른 한 조각의 구리패에는 노기를 띤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악한 일을 한 사람을 벌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구리패를 전달한 사람은 한 명은 뚱뚱하고 한 명은 비쩍 마른 두 동자였다.] 석파천은 되물었다. [동자라니요?] 그는 이미 장삼과 이사를 말하는 것임을 헤아려 보았지만은 그들을 동자라고는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석청은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했다. [그것은 삼십 년 전의 일이니 그들 두 사람은 그때 아직도 나이가 어렸던 것이다. 각 문파와 방회의 수뇌자들은 구리패의 초청을 받고 는 초청을 한 주인이 누구냐고 묻게 되자 그 두 명의 사자는 가빈(嘉 賓)에서 협객도에 이르게 된다면 자연히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또한 만약에 초청을 받은 사람이 약속 한대로 찾아가 준다면 물 론 아무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 초청받은 그 사람의 문파나 방회는 커다란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나타난 즉시에 갈 것이냐 가지 않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따졌단다. 그 런데 가장 먼저 구리패의 초청을 받게 된 사람은 천서(川西) 청성파 (靑城波) 장문인인 욱산 도장(旭山道長)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무거운 어조로 다시 입 을 열었다. [구리패의 초청을 받게 된 욱산 도장은 두 조각의 구리패를 속에 쥐 고서는 내력(內力)을 돋우어서는 두 조각의 구리패를 녹여서 두 무더 기의 쓸모없는 구리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원래 그 당시 무림 을 진동시킨바 있는 독보적인 내공이었으며 욱산 도장이 바라는 것은 그 두 명의 건방지고 오만한 동자가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도록 하자 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막 그 구리패를 망가뜨리게 되었을 때 그 두 명의 동자는 갑자기 네 손을 일제히 뻗쳐내어서는 욱산 도장의 가 슴팍을 후려쳐 대뜸 천서 무림의 영도자격인 욱산 도장을 그 자리에 서 쳐 죽이고 말았단다……] 석파천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아! 손을 쓰는 것이 그토록 악독하다니!] 석청은 석파천이 하는 말에 아무런 평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 다. [그렇게 되어 청성파의 뭇 도사들은 자연히 떼를 지어 두 동자를 공 격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두 동자의 무공은 아직도 나중에 이르러 보 여준 것처럼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들 두 동자는 즉시 두 자루의 장검을 도사들로부터 빼앗아서는 세 명의 도사를 죽이고 즉시 도망을 쳤다. 그 당시 청성파의 기세나 세력은 엄청난 것이었고 욱산 도장 또한 엄청난 명성과 덕망을 누리던 사람인데 청성파로 찾 아온 두 명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자에 의해 살해를 당했음은 물 론 살해를 한 두 동자가 무사히 물러갔다는 사건은 그만 반 달 안에 무림에 널리 소문이 퍼지게 되었단다……] 석청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진 이후 스무날이 지나게 되었을 때에 유주(유 州) 서촉표국(西蜀표局)의 조(爪) 노표국사가 크게 잔치를 벌여서는 환갑을 기리게 되어서 자연히 축하를 하러 온 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 그 두 명의 동자가 그 장소에 청하지도 않았는데 나타나서는 구리패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뭇 축하객들은 본래 청성파의 사 건을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던지라 두 동자가 나타나서 구리패를 내 미는 것을 보자 그만 공분을 일으키게 되어 모두 다 앞으로 달려나와 두 명의 동자를 포위공격하게 되었으나 뜻밖에도 두 명의 동자는 여 유있게 뭇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사흘 후 서촉표 국은 조 노표국사 이하의 표사들은 말할 것 없고 쟁자수(쟁子手) 등 삼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다 비명횡사하고 말았고 다만 늙고 연약한 사람이나 여인들과 어리애만 죽이지 않았다는구나. 그리고 놀 랍게도 표국의 대문에는 바로 그 두 조각의 구리패가 박혀 있었다는 구나.] 석파천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제가 가장 먼저 두 조각의 구리패를 보게 된 것은 비어방의 무 리들이 떼죽음을 당한 곳의 선실문에서였어요. 그런데…… 그것이 바 로 염라대왕이 보내온 초청장인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어요.] 석청은 석파천을 한 번 바라본 이후 입을 열었다. [그 사건이 퍼져나게 되자 모두들 소림사로 달려가 소림파의 장문인 묘체 대사(妙諦大師)를 영도자로 삼아서는 두 동자에게 대항코자 했 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소림사로 몰려가게 되었을 때에 소림사의 승려들은 방장대사가 운유(雲遊)를 떠난 이후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 다는 것이며 얼렁뚱땅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이 전혀 사실인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만 무당산으로 달려가 무당파의 장문인 우다 도장(愚茶道長)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무당산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 진무관(眞武觀)의 도사들은 하나같이 근심에 눈 썹을 잔뜩 찌푸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역시 장문인께서는 외 출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뭇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되자 자연히 이런 저런 추측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추측 끝에 두 분 당세 의 무림에서 절정의 고인들이 갑자기 동시에 실종된 것은 협객도에서 보내온 사자의 독수에 걸려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면 화를 피하기 위 해서 숨어버린 것이라고들 짐작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별수없어진 그들 무리들은 오대산(五坮山)의 선본 장로(善本長老), 곤륜파(崑崙 派) 고백 도장(苦柏道長)이 공동으로 나서서는 무림의 각대문파의 장 문인들을 초청해서는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고 동시에 많은 사람 들을 사방으로 내보내서는 그 두 사자의 행방을 탐지하도록 했다… …] 이어 그는 목이 마른듯 입맛을 한 번 다시더니 재차 계속해서 이야 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 두 명의 사자들은 신출귀몰하여 상대방쪽에서 어떤 준비 를 하고 있을 적에는 어느 곳에도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일단 경계가 조금이라도 풀어지게 되고 준비에 소홀함을 보이기만 하 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서는 두 조각의 구혼패(拘魂牌)를 디밀어 놓곤 했다. 더군다나 그 두 동자는 독을 잘 썼다는구나. 선본 장로와 고백 도인은 구리패를 받은 이후 즉시 망가뜨려 없앴는데 그 당시에는 아무탈이 없었지만은 한 달쯤 지나게 되었을 때에 차례로 악질(惡疾)에 전염되어서는 죽어갔 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뭇 사람들은 그 일이 있은 이후에 그제사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그들은 선본 장로와 고백 도인의 무공이 너무나 고강했기 때문에 상선벌악의 두 사자가 무공으로서는 도저히 그들을 상대해서 이길 수도 없고 더욱더 오대산이나 곤륜산에 위치한 두 파를 흔들어 놓을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구리패에다가 극독을 묻히게 되었고 따라서 선본 장로와 고백 도장은 그 독을 손에 묻힌 이후 극독이 온 몸에 퍼져서는 끝내 독이 퍼져 죽게 되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가 있었단다.] 석파천은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자 모골이 송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