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하얀 짬뽕 - 32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서 내려 차에 올랐다. 머리를 많이 써서 그런지 눈이 침침해서 미칠 것 같았다. 좌석을 뒤로 해 잠시 눈을 감아 버렸다. 눈알을 빼서 찬 물에 넣었다가 다시 끼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디오를 켜자 돈데보이란 음악이 흘러나왔다. 초희엄마가 구워준 시디가 차에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한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있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퍼즐을 완성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확인만 하면 그 뿐이었다. 누운 채로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날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었다. 내가 뿌린 먹이를 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시디에 있는 모든 음악을 다 들을 때쯤? 아니면 24시간? 아니면...
생각한 것 보다 빠른 답장이 도착했다. 엄마였다. 나는 엄마에게 길 춘택이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의 여부와 함께 사실을 알려줄 경우 미술학원 강사를 때려치우겠다고 보냈다. 이에 엄마는 만난 적이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엄마답지 않은 성급한 반응이었다.
결국 내 예상이 맞았다. 길 원장은 엄마를 알고 있었고 나이도 어린 내가 본원에서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능력 덕분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고 하고 있었고 이상할 정도로 몸이 들썩거렸다. 이런 감정은 오래전 정말로 아주 오래전 느꼈던 것이었다.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여자 애들을 강간하던 녀석들에게서 느꼈던 그런 감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나는 성장했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길 원장과 엄마가 연결이 되어있었다. 그로인해 정 원장과 유정은 껄끄럽지만 나를 맡았고 엄마 덕분으로 지역 유지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도의원의 조카딸인 로미와 연결된 것은 단순히 내가 발기가 안 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발기가 되어 로미와 섹스를 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학송이 처음 상담에서는 노발대발 하다가 갑자기 변한 것은 역시 로미 삼촌 권중에게 내가 로미를 입학 시킨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을 꿈꾸는 한 여자와 깊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로 뭉쳐지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사는 나를 무척이나 못 마땅해 했던 엄마였는데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었다. 어떤 이유가 아버지와 헤어지는 원인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자존심으로 나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 이었을 텐데 그렇게까지 엄마가 약해진 것인가?
막상, 엄마의 약해진 모습을 확인하고 나자 기분이 이상했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재혼은 정략적인 것이었다. 그 만큼 외로웠을 엄마를 떠 올리자 너무나 안쓰러웠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권력을 갖고 있는 여자가 안쓰럽게 느껴진다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그런지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눈까풀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나는 좌석에 누운 채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전화벨이 울려서 눈을 떴다. 주차장은 어둡진 않았지만 구석에 차를 대서 그런지 차 안은 어두웠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몸이 한 결 개운해져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서울 본원의 길 원장이었다.
“네, 원장님. 장 선생입니다.”
[그래, 어딘 가? 학원에선 일찍 퇴근 했다던데...]
“...학원 근처에 있습니다. 좀 쉬고 있었습니다.”
[... ...지금 만날 수 있겠나? ...]
길 원장이 전화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다. 시간을 보니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차를 몰아 서울에 올라가도 12시에나 볼 수 있는 거리였는데 만나자고 하는 이유는 뭔가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혹시?...
“...서울...학원으로 가면 되나요?”
[아니 ...여긴 ##낚시터네. 저번에 정 원장하고 왔던 그 자리...기억하나?]
“예. 기억합니다.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낚시터라면 이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길 원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 지역으로 낚시를 왔다. 그가 말한 장소에서 나와 길 원장, 정 원장이 낚시를 했지만 정 원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낚시 보다는 주로 술을 마시며 잡담을 했었다.
길 원장은 나를 보기위해 이곳에 직접 내려온 것이었다. 그는 엄마를 통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내려온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은 직접 만나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감정이 싫어서 피하고 피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돌아보면 아쉬움과 안타까움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복잡하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몸은 너무나 가벼웠다. 개운한 몸으로 시동을 켜자 경쾌한 엔진 소리가 울리면서 차가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분 좋은 떨림을 보이는 내 차처럼 내 몸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길 원장을 통해서 내 예상을 가늠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 심장도 기분 좋은 떨림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차를 몰아 낚시터 쪽으로 달려가다 보니 날씨가 좋지 않아보였다. 낮에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기후가 불안정해진 모양이었다. 변덕스런 날씨란 말은 요즘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비싼 장비를 들여서 예측을 한다고 하더라도 요즘이라면 쉬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영과 사귀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인간이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여자의 변덕스러움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 라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남, 녀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면서 끝나는 영화를 본 후 남자와 여자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마련이었다. 여자는 영화제작자의 바람대로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한 순간을 기억하고 그 순간만을 곱씹지만 남자는 그 후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변해갈 것을 떠 올린다. 남자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 했다가는 천둥, 번개가 내려칠 것이었다.
낚시터에 도착하니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후텁지근하던 날씨는 이제 밤이 되면 쌀쌀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알 고 있었지만 이곳은 좀 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장소를 찾아 걸어갔다. 5분 쯤 걸어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길 원장이 좌대에 앉아 물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길 원장은 다른 낚시꾼들 하고는 달라보였다.
대체로 낚시 광들은 장비가 장난이 아니었고 모두 최고급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 원장도 골프에 취미를 붙였는데 기본기를 익히기 보다는 골프장비에 더 심혈을 기울였고, 테니스를 배우겠다고 온 베르디움 여자들도 최고급의 테니스 용품에만 더 열을 올렸다.
다른 낚시꾼들은 낚시 대도 한 번에 최소 다섯 개 정도를 늘어놓고 하기 마련이었는데 길 원장은 오직 한 대의 낚시 대만을 고집했다. 떡 밥도 사용하지 않았고 찌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낚시 대를 잡고 손에 오는 느낌만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과연 저렇게 해서 낚을 수 있을까? 도대체 길 원장은 뭘 낚고 싶은 것일까?
“아, 왔나? ...흐음...날씨가 좋지 않은데...곧 비가 오겠지?”
길 원장이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나는 길 원장 옆에 앉았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낚시를 할 수 있겠어요?”
“뭐 상관있겠나? 사나이 가는 길에 비바람도 치고 눈보라도 날리는 거지 ...!...”
내게 먼저 전화를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있어보였다. 길 원장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자 나는 조급해졌다.
“엄마가 전화를 하신 모양이군요?...”
길 원장은 내 말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낚시 대를 놓고는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는 길게 하늘 위로 연기를 내 뿜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곳에 내려온 것인가? 이미 길 원장이 하려는 정도의 일은 내가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뭘 말하고 싶어서 내려온 것일까?
“흐음...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 지...자네는 자네 엄마와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고...중간에 낀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구만...”
중간에 끼어있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길 원장에게 압박이라도 가하고 있다는 것인가? 엄마가 겁이 없는 여자라 하더라도 개념까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후우~~~~...자네 친부와 친모는 나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사이였네...자네 친부는 어린 나를 친 동생처럼 위해 줬었지...내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내와 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자네 친부인 일웅이 형님 덕분이었네...”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나와 당황스러웠다. 친부모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았고 생각하기도 싫었는데 전혀 예상도 못한 사람에게서 내 친부모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자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형님이 선생이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일가족을 살해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다가 떨어뜨리고 말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집어 들어 입에 물려고 했는데 젖어있었다. 밀려오는 짜증을 겨우 참고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길 원장이 불을 붙여주었다. 깊숙이 담배연기를 마신 뒤 길게 하늘로 내 뿜었다.
“살해당한 가족은 ...형님이 계신 학교의 이사장과 그 아들이었네...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지...학생들을 성추행하고 성폭행한 사람들이었으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실이었다. 친부의 살인사건은 신문에도 짧게만 기록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 길 원장이 하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확인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엄청난 일이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려질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피해 학생 부모가 있을 텐데 어떻게 숨길 수가 있죠?...”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네...더군다나 30년 전이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피해 학생 부모들은 이사장의 아내와 합의를 보고 입을 닫아버렸네...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후우!~ 말도 안 되는 핑계지...형님은 그것을 더 참을 수가 없었겠지...그 학생들이 증언을 포기하게 되면 다른 학생들이 이사장과 이사장 아들에게 계속해서 당하게 될 테니까...”
친부의 일이 아니더라도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약자들은 분노할 줄을 몰라서 계속 약자일 수밖에 없었고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잘 못된 것에 그리고 부당한 일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약자로 약소국가로 남을 것이었다.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고 했는데...자네 생각은 어떤가?...형님이 자네와 형수님을 위해서 참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그냥 모른 척 넘어갔을 겁니다...”
“후우우!~ 그렇겠지...나도 그러니까...불편한 진실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까 말이야...지금 그 학교의 이사장은 이사장의 아내가 맡은 상태고 친 인척들이 장악하고 있네. 개판이지...!...”
개판...개판...정말 개 같은 일이었다. 친부의 일을 외면하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이상하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장 검사는 정말로 엉뚱한 사람이었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사장과 그 아들의 비리를 밝히려다가 좌천 됐다던데 그는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고는 자네 친모와 함께 항소를 준비했지. 어떻게 해서든 장 검사는 재단 비리를 밝히고 싶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네. 자네 친모가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이지... 후우!~ 아마...장 검사가 의원님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 거네...”
길 원장이 말하는 의원은 엄마일 것이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단지 나란 존재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손이 떨려왔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쥔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처음엔 내가 자네를 입양하려고 했었는데...장 검사가 고집을 피웠지.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이야...아직도 그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고...후우!~ 힘들구만...”
아버지가 왜 나를 키우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당신께서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친부가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린 아버지가 그 재단에 맞서 싸우는 일처럼 나를 키우는 일은 아버지가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았다.
“...사모님은 잘 계시죠?...”
“잘 지내지...항상 자네 걱정을 하면서 말이야...”
길 원장과 그의 아내는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릴 적 광주에서 자주 찾아왔었다던 부부는 길 원장 부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사람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광주에 오셨었죠?...”
“우리를 기억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자네는 5살 때까지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으니...흐음...”
친모에 대한 일과 그 외의 기억이 없는 이유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보통 5살 때 까지를 기억하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종석이만 해도 6살 이전에 대한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희미한 기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장 검사가 자네를 입양한 뒤 나는 자네를 만나고 싶지 않았네. 형님과 형수님 생각을 하면 나도 괴로웠으니까...그런데 자네가 형님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불편했지. 그래서 꼬투리를 잡아서 학원에서 쫓아내려고 했는데 ...후우!~ 웬 걸...다른 강사들 10년 만에 할 걸 자네는 1년 만에 해 버리더군...후후...”
“... ...”
“의원님과 만난 게 그때였지...자네를 내 보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네. 자네를 옆에 두고 오래 동안 보고 싶었지. 아내도 그러길 바랐고...그래서 나는 의원님의 말을 모른 척 했네...그러니까 바로 국세청에서 조사를 나오더군, 하하하...!”
언젠가 탈세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엄마와 관계된 일 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튼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 원장님은 어디까지 알 고 계신 겁니까?”
“...그 자식은 자네에 대해 아는 게 없어...그런데 거 누구냐? 자네가 맡았던 애 있잖나?...”
“...로미...말인가요?”
“그래...걔 삼촌이 자네와 의원님 사이를 알고 있더군...아마 그 사람을 통해서 자네 얘기를 들은 모양이네...”
대충 그림이 정리되고 있었다. 초희 아버지, 학송이 갑자기 변한 것도 나에 대해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정 원장이 학송을 불편해 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통해서 엄마와 연줄을 잡으려는 그들을 엄마 성격으로 받아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의원님이 자네를 원하는 이유를 난 알 것 같네. 후우!~ 자네라면...자네라면...말이야...”
“... ...”
“...아...언제 시간 내서 지리산에 한 번 가지?... 자네 어머님을 보내드린 곳에 말이야...”
아버지의 죽음으로 길 원장으로써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떠 올린 것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일은 뺀 채로 아버지와 내 친 엄마의 일만을 얘기했지만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친모에게 길 원장 부부가 어떻게 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낚시 대를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빈 바늘이 흔들리며 다가왔고 그는 익숙하게 손으로 잡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길 원장이 바늘에 지렁이를 끼우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먹이를 교체하는 것에만 집중한 채로 말이 없었다. 옆으로 보이는 풀들이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나와 길 원장 사이로 거센 바람이 확!~ 하고 지나갔다.
“흐음...!...이거...장난 아니겠는데?...”
먹이를 다 끼운 그가 역시 익숙한 동작으로 다시 바늘을 물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낚시 대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계속...그런 낚시를 하실 건가요?”
내 말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 낚시?...무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찌도 없고...낚시 대도 한 대고...그래서는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당연하지...고기를 잡으려고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후후...내가 강태공을 흉내 내고 있는 것 같나?”
“...전 낚시를 몰라서요...원장님이 강태공 흉내를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길 원장은 담배를 종이컵에 끄고는 옆의 가방에서 캔 커피를 꺼내 들었다. 손이 큰 그는 두 개의 커피를 집어 들고는 하나를 던져주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것을 받았다. 따뜻했다. 그렇잖아도 거세진 바람으로 인해서 춥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참이었다.
“흐음...뭐 난 강태공처럼 물고기를 속이는 짓은 하지 않고 있네...후후...!”
그는 웃으면서 옆에 있는 지렁이를 가리켰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길 원장도 강태공을 의식하긴 했던 것인가? 아마 내가 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좀 몸이 풀린다...후우!~ 여긴 금방 쌀쌀해지는 군...”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는 길 원장이 말했다. 나도 한 모금을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면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나도 처음엔 여러 대를 세워놓고 낚시를 했었지. 손맛에 취하다보니 장비에 욕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고기? 나도 엄청 잡았지...!...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게 그런 낚시가 재미가 없어지지 뭔가? 그래서 있는 장비를 다 버리고 빈 낚시를 해보니 너무 재밌더구만. 하하...!”
“... ...”
“낚시가 뭔지 모르긴 나나 자네나 마찬가질세...오래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더군...하긴...누가 그걸 안다고 할 수 있겠나?...”
그림을 시작했던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흰색 종이에 모든 것을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희열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재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똑 같이 사진처럼 그리는 일이 바보 같고 병신같이 느껴지자 형체가 점점 불분명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확신조차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인영이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내게서 떠나버린 것처럼... ...
“...자넨 아직도 인영이를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
“... ...”
“...쉽진 않겠지만 이젠 정리하게...뭔가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내 손에서 더욱 멀어질 뿐이니까 말이야...자네도 이젠 기다림에 익숙해질 나이가 됐네...안 그런가?”
광호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돈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진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했다. 나는 상인도 나 처럼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녀에게 나는 그저 촉매제일 뿐이었다.
나는 낚시에 대해 잘 몰랐다. 여자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리고 산 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젠장!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살아있다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리했습니다. 걔도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엄마니까요...”
“그래...기다리다보면 자네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겠지...
음악을 들으면서 한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있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퍼즐을 완성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확인만 하면 그 뿐이었다. 누운 채로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날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었다. 내가 뿌린 먹이를 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시디에 있는 모든 음악을 다 들을 때쯤? 아니면 24시간? 아니면...
생각한 것 보다 빠른 답장이 도착했다. 엄마였다. 나는 엄마에게 길 춘택이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의 여부와 함께 사실을 알려줄 경우 미술학원 강사를 때려치우겠다고 보냈다. 이에 엄마는 만난 적이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엄마답지 않은 성급한 반응이었다.
결국 내 예상이 맞았다. 길 원장은 엄마를 알고 있었고 나이도 어린 내가 본원에서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능력 덕분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고 하고 있었고 이상할 정도로 몸이 들썩거렸다. 이런 감정은 오래전 정말로 아주 오래전 느꼈던 것이었다.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여자 애들을 강간하던 녀석들에게서 느꼈던 그런 감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나는 성장했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길 원장과 엄마가 연결이 되어있었다. 그로인해 정 원장과 유정은 껄끄럽지만 나를 맡았고 엄마 덕분으로 지역 유지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도의원의 조카딸인 로미와 연결된 것은 단순히 내가 발기가 안 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발기가 되어 로미와 섹스를 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학송이 처음 상담에서는 노발대발 하다가 갑자기 변한 것은 역시 로미 삼촌 권중에게 내가 로미를 입학 시킨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을 꿈꾸는 한 여자와 깊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로 뭉쳐지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사는 나를 무척이나 못 마땅해 했던 엄마였는데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었다. 어떤 이유가 아버지와 헤어지는 원인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자존심으로 나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 이었을 텐데 그렇게까지 엄마가 약해진 것인가?
막상, 엄마의 약해진 모습을 확인하고 나자 기분이 이상했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재혼은 정략적인 것이었다. 그 만큼 외로웠을 엄마를 떠 올리자 너무나 안쓰러웠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권력을 갖고 있는 여자가 안쓰럽게 느껴진다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그런지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눈까풀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나는 좌석에 누운 채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전화벨이 울려서 눈을 떴다. 주차장은 어둡진 않았지만 구석에 차를 대서 그런지 차 안은 어두웠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몸이 한 결 개운해져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서울 본원의 길 원장이었다.
“네, 원장님. 장 선생입니다.”
[그래, 어딘 가? 학원에선 일찍 퇴근 했다던데...]
“...학원 근처에 있습니다. 좀 쉬고 있었습니다.”
[... ...지금 만날 수 있겠나? ...]
길 원장이 전화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다. 시간을 보니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차를 몰아 서울에 올라가도 12시에나 볼 수 있는 거리였는데 만나자고 하는 이유는 뭔가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혹시?...
“...서울...학원으로 가면 되나요?”
[아니 ...여긴 ##낚시터네. 저번에 정 원장하고 왔던 그 자리...기억하나?]
“예. 기억합니다.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낚시터라면 이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길 원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 지역으로 낚시를 왔다. 그가 말한 장소에서 나와 길 원장, 정 원장이 낚시를 했지만 정 원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낚시 보다는 주로 술을 마시며 잡담을 했었다.
길 원장은 나를 보기위해 이곳에 직접 내려온 것이었다. 그는 엄마를 통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내려온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은 직접 만나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감정이 싫어서 피하고 피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돌아보면 아쉬움과 안타까움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복잡하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몸은 너무나 가벼웠다. 개운한 몸으로 시동을 켜자 경쾌한 엔진 소리가 울리면서 차가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분 좋은 떨림을 보이는 내 차처럼 내 몸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길 원장을 통해서 내 예상을 가늠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 심장도 기분 좋은 떨림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차를 몰아 낚시터 쪽으로 달려가다 보니 날씨가 좋지 않아보였다. 낮에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기후가 불안정해진 모양이었다. 변덕스런 날씨란 말은 요즘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비싼 장비를 들여서 예측을 한다고 하더라도 요즘이라면 쉬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영과 사귀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인간이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여자의 변덕스러움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 라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남, 녀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면서 끝나는 영화를 본 후 남자와 여자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마련이었다. 여자는 영화제작자의 바람대로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한 순간을 기억하고 그 순간만을 곱씹지만 남자는 그 후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변해갈 것을 떠 올린다. 남자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 했다가는 천둥, 번개가 내려칠 것이었다.
낚시터에 도착하니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후텁지근하던 날씨는 이제 밤이 되면 쌀쌀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알 고 있었지만 이곳은 좀 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장소를 찾아 걸어갔다. 5분 쯤 걸어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길 원장이 좌대에 앉아 물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길 원장은 다른 낚시꾼들 하고는 달라보였다.
대체로 낚시 광들은 장비가 장난이 아니었고 모두 최고급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 원장도 골프에 취미를 붙였는데 기본기를 익히기 보다는 골프장비에 더 심혈을 기울였고, 테니스를 배우겠다고 온 베르디움 여자들도 최고급의 테니스 용품에만 더 열을 올렸다.
다른 낚시꾼들은 낚시 대도 한 번에 최소 다섯 개 정도를 늘어놓고 하기 마련이었는데 길 원장은 오직 한 대의 낚시 대만을 고집했다. 떡 밥도 사용하지 않았고 찌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낚시 대를 잡고 손에 오는 느낌만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과연 저렇게 해서 낚을 수 있을까? 도대체 길 원장은 뭘 낚고 싶은 것일까?
“아, 왔나? ...흐음...날씨가 좋지 않은데...곧 비가 오겠지?”
길 원장이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나는 길 원장 옆에 앉았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낚시를 할 수 있겠어요?”
“뭐 상관있겠나? 사나이 가는 길에 비바람도 치고 눈보라도 날리는 거지 ...!...”
내게 먼저 전화를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있어보였다. 길 원장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자 나는 조급해졌다.
“엄마가 전화를 하신 모양이군요?...”
길 원장은 내 말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낚시 대를 놓고는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는 길게 하늘 위로 연기를 내 뿜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곳에 내려온 것인가? 이미 길 원장이 하려는 정도의 일은 내가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뭘 말하고 싶어서 내려온 것일까?
“흐음...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 지...자네는 자네 엄마와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고...중간에 낀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구만...”
중간에 끼어있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길 원장에게 압박이라도 가하고 있다는 것인가? 엄마가 겁이 없는 여자라 하더라도 개념까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후우~~~~...자네 친부와 친모는 나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사이였네...자네 친부는 어린 나를 친 동생처럼 위해 줬었지...내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내와 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자네 친부인 일웅이 형님 덕분이었네...”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나와 당황스러웠다. 친부모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았고 생각하기도 싫었는데 전혀 예상도 못한 사람에게서 내 친부모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자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형님이 선생이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일가족을 살해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다가 떨어뜨리고 말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집어 들어 입에 물려고 했는데 젖어있었다. 밀려오는 짜증을 겨우 참고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길 원장이 불을 붙여주었다. 깊숙이 담배연기를 마신 뒤 길게 하늘로 내 뿜었다.
“살해당한 가족은 ...형님이 계신 학교의 이사장과 그 아들이었네...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지...학생들을 성추행하고 성폭행한 사람들이었으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실이었다. 친부의 살인사건은 신문에도 짧게만 기록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 길 원장이 하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확인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엄청난 일이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려질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피해 학생 부모가 있을 텐데 어떻게 숨길 수가 있죠?...”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네...더군다나 30년 전이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피해 학생 부모들은 이사장의 아내와 합의를 보고 입을 닫아버렸네...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후우!~ 말도 안 되는 핑계지...형님은 그것을 더 참을 수가 없었겠지...그 학생들이 증언을 포기하게 되면 다른 학생들이 이사장과 이사장 아들에게 계속해서 당하게 될 테니까...”
친부의 일이 아니더라도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약자들은 분노할 줄을 몰라서 계속 약자일 수밖에 없었고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잘 못된 것에 그리고 부당한 일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약자로 약소국가로 남을 것이었다.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고 했는데...자네 생각은 어떤가?...형님이 자네와 형수님을 위해서 참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전...그냥 모른 척 넘어갔을 겁니다...”
“후우우!~ 그렇겠지...나도 그러니까...불편한 진실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까 말이야...지금 그 학교의 이사장은 이사장의 아내가 맡은 상태고 친 인척들이 장악하고 있네. 개판이지...!...”
개판...개판...정말 개 같은 일이었다. 친부의 일을 외면하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이상하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장 검사는 정말로 엉뚱한 사람이었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사장과 그 아들의 비리를 밝히려다가 좌천 됐다던데 그는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고는 자네 친모와 함께 항소를 준비했지. 어떻게 해서든 장 검사는 재단 비리를 밝히고 싶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네. 자네 친모가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이지... 후우!~ 아마...장 검사가 의원님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 거네...”
길 원장이 말하는 의원은 엄마일 것이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단지 나란 존재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손이 떨려왔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쥔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처음엔 내가 자네를 입양하려고 했었는데...장 검사가 고집을 피웠지.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이야...아직도 그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고...후우!~ 힘들구만...”
아버지가 왜 나를 키우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당신께서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친부가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린 아버지가 그 재단에 맞서 싸우는 일처럼 나를 키우는 일은 아버지가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았다.
“...사모님은 잘 계시죠?...”
“잘 지내지...항상 자네 걱정을 하면서 말이야...”
길 원장과 그의 아내는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릴 적 광주에서 자주 찾아왔었다던 부부는 길 원장 부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사람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광주에 오셨었죠?...”
“우리를 기억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자네는 5살 때까지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으니...흐음...”
친모에 대한 일과 그 외의 기억이 없는 이유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보통 5살 때 까지를 기억하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종석이만 해도 6살 이전에 대한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희미한 기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장 검사가 자네를 입양한 뒤 나는 자네를 만나고 싶지 않았네. 형님과 형수님 생각을 하면 나도 괴로웠으니까...그런데 자네가 형님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불편했지. 그래서 꼬투리를 잡아서 학원에서 쫓아내려고 했는데 ...후우!~ 웬 걸...다른 강사들 10년 만에 할 걸 자네는 1년 만에 해 버리더군...후후...”
“... ...”
“의원님과 만난 게 그때였지...자네를 내 보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네. 자네를 옆에 두고 오래 동안 보고 싶었지. 아내도 그러길 바랐고...그래서 나는 의원님의 말을 모른 척 했네...그러니까 바로 국세청에서 조사를 나오더군, 하하하...!”
언젠가 탈세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엄마와 관계된 일 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튼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 원장님은 어디까지 알 고 계신 겁니까?”
“...그 자식은 자네에 대해 아는 게 없어...그런데 거 누구냐? 자네가 맡았던 애 있잖나?...”
“...로미...말인가요?”
“그래...걔 삼촌이 자네와 의원님 사이를 알고 있더군...아마 그 사람을 통해서 자네 얘기를 들은 모양이네...”
대충 그림이 정리되고 있었다. 초희 아버지, 학송이 갑자기 변한 것도 나에 대해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정 원장이 학송을 불편해 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통해서 엄마와 연줄을 잡으려는 그들을 엄마 성격으로 받아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의원님이 자네를 원하는 이유를 난 알 것 같네. 후우!~ 자네라면...자네라면...말이야...”
“... ...”
“...아...언제 시간 내서 지리산에 한 번 가지?... 자네 어머님을 보내드린 곳에 말이야...”
아버지의 죽음으로 길 원장으로써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떠 올린 것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일은 뺀 채로 아버지와 내 친 엄마의 일만을 얘기했지만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친모에게 길 원장 부부가 어떻게 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낚시 대를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빈 바늘이 흔들리며 다가왔고 그는 익숙하게 손으로 잡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길 원장이 바늘에 지렁이를 끼우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먹이를 교체하는 것에만 집중한 채로 말이 없었다. 옆으로 보이는 풀들이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나와 길 원장 사이로 거센 바람이 확!~ 하고 지나갔다.
“흐음...!...이거...장난 아니겠는데?...”
먹이를 다 끼운 그가 역시 익숙한 동작으로 다시 바늘을 물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낚시 대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계속...그런 낚시를 하실 건가요?”
내 말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 낚시?...무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찌도 없고...낚시 대도 한 대고...그래서는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당연하지...고기를 잡으려고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후후...내가 강태공을 흉내 내고 있는 것 같나?”
“...전 낚시를 몰라서요...원장님이 강태공 흉내를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길 원장은 담배를 종이컵에 끄고는 옆의 가방에서 캔 커피를 꺼내 들었다. 손이 큰 그는 두 개의 커피를 집어 들고는 하나를 던져주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것을 받았다. 따뜻했다. 그렇잖아도 거세진 바람으로 인해서 춥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참이었다.
“흐음...뭐 난 강태공처럼 물고기를 속이는 짓은 하지 않고 있네...후후...!”
그는 웃으면서 옆에 있는 지렁이를 가리켰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길 원장도 강태공을 의식하긴 했던 것인가? 아마 내가 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좀 몸이 풀린다...후우!~ 여긴 금방 쌀쌀해지는 군...”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는 길 원장이 말했다. 나도 한 모금을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면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나도 처음엔 여러 대를 세워놓고 낚시를 했었지. 손맛에 취하다보니 장비에 욕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고기? 나도 엄청 잡았지...!...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게 그런 낚시가 재미가 없어지지 뭔가? 그래서 있는 장비를 다 버리고 빈 낚시를 해보니 너무 재밌더구만. 하하...!”
“... ...”
“낚시가 뭔지 모르긴 나나 자네나 마찬가질세...오래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더군...하긴...누가 그걸 안다고 할 수 있겠나?...”
그림을 시작했던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흰색 종이에 모든 것을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희열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재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똑 같이 사진처럼 그리는 일이 바보 같고 병신같이 느껴지자 형체가 점점 불분명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확신조차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인영이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내게서 떠나버린 것처럼... ...
“...자넨 아직도 인영이를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
“... ...”
“...쉽진 않겠지만 이젠 정리하게...뭔가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내 손에서 더욱 멀어질 뿐이니까 말이야...자네도 이젠 기다림에 익숙해질 나이가 됐네...안 그런가?”
광호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돈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진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했다. 나는 상인도 나 처럼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녀에게 나는 그저 촉매제일 뿐이었다.
나는 낚시에 대해 잘 몰랐다. 여자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리고 산 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젠장!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살아있다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리했습니다. 걔도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엄마니까요...”
“그래...기다리다보면 자네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