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호색 -완 - 12편 (12/62)
아버님.” 대답을 하고 막 방을 나서던 구인철이 갑자기 생각난 듯 몸을 빙글 돌렸다. “참, 서희를 만나러 가기 전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제가 폐관을 하며 놓쳤던 5년의 기간을 채우기 위해 흑천대와 함께 잠시 여행을 다녀왔으면 합니다. 무림의 정세도 살피고 가볍게 바람도 쐴 겸 유람차 다녀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허락해 주십시오.” “음, 정 네가 원한다면 그리 하거라. 단, 너를 비롯한 흑천대는 흑천맹의 기둥이라는 것을 항시 유념하고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일엔 관여하지 않겠다고 아비와 약조할 수 있겠느냐?” “하하, 물론입니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그리고 아버님의 말씀대로 위험한 일엔 관여치 않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서희를 만나는 대로 바로 떠나거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완고하신 아버지가 선뜻 승낙을 해주자 구인철은 약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믿고 있다는 반증이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아마도 5년 폐관의 상을 주신 것이리라. 27화 구월각에 도착한 구인철은 왈가닥 여동생을 5년 만에 재회한다고 생각하자 저절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집안에선 그 누구도 여동생을 이기지 못했는데 한마디로 집안무적이었다. 그런 여동생이 또 무슨 사고를 쳐 감금되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하하, 성격은 여전한 모양이구나. 내가 폐관에 들었을 때 15살 꼬맹이였으니 지금은 어엿한 요조숙녀가 되어 있겠구나. 얼마나 예쁘게 자랐을지 무척 궁금한걸.’ 목소리를 가다듬은 인철이 우렁차게 외쳤다. “흠흠, 서희 안에 있느냐?” “오, 오라버니? 진짜 오라버니가 돌아오신 거예요? 꺄악!!” 구월각을 뛰쳐나온 서희가 무섭게 돌진하여 덥석 인철의 품에 안겼다. “하하하, 말만한 처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이 무슨 추태냐?” “꺄악!!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완전히 오신 거 맞죠? 그렇죠?” “하하, 알았으니 그만 하거라. 이제 어디 가지 않을 것이니 제발 이것 좀 풀고 말하려무나.” “싫어요. 안 풀어 줄 거예요. 제가 5년 동안 얼마나 오라버니가 그리웠는지 아세요?” “나도 우리 서희가 무척 보고 싶었단다.” “참말이요?” “당연히 참말이지. 이제 더 이상 어디 안 갈 것이니 제발 놓아주려무나.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야.” “호호호, 알았어요. 참말이라 하시니까 그만 풀어드릴게요. 근데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하하, 급한 성격은 여전하구나. 방금 돌아왔단다.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바로 오는 길이란다.” “우와!! 근데 오라버니는 못 본 사이에 더욱 멋지고 늠름해지셨어요. 이거 처녀들이 시집오겠다고 줄을 서겠는 걸요?” “녀석, 입심 또한 변하지 않았구나.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디 보자. 우리 서희는 얼마나 예쁘게 자랐을꼬?” “치, 저야 당연히 천하제일미로 자랐죠.” 인철은 서희가 포옹을 풀어주자 그제야 자세히 서희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음성. ‘흐흠. 도대체 5년 사이에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미모가 나라의 운명을 기울여 버린다는 ‘경국지색’이란 말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구나. 왜 아버지께서 저 아이가 단독으로 뛰쳐나가려는 것을 막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왜 말씀이 없으세요? 제 농이 너무 지나쳐서 화나신 거예요, 오라버니?” “어? 아, 아니다. 화는 무슨. 네가 너무 예쁘고 훌륭하게 자라서 감탄하느라 그만 할 말을 잃은 것뿐이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마저 폐관에 들어 너 혼자 어찌 지낼지 걱정이 많았는데 이리도 훌륭하게 자라주어 너무 고맙고 대견스럽구나.” “오라버니께 칭찬을 듣는 날도 다 있네요.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요. 저 궁금한 게 얼마나 많다고요.” “그래, 들어가자.” 오빠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서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언제나 든든한 자신의 버팀목이자 지원군인 오라버니가 돌아오고, 또 그동안의 이야기를 할 생각에 서희는 죽을 정도로 신이 났다. 인철은 그런 동생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모두 받아주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화제가 자연스럽게 서희의 현재 상황으로 이어졌다. “하하, 그런데 서희야?” “왜요?” “아버지께 들으니 네가 꼭 누굴 찾아야 한다며 무사들을 달라 청했다지? 도대체 누굴 찾으려 했던 것인지 살짝 오라비에게라도 말해줄 수 없겠느냐?” 서희는 인철의 질문에 얼굴이 굳어지며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완고하고 고지식한 아버지께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 밝힐 수 없었지만 늘 자기편이었던 오라버니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월각에 감금 아닌 감금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오라버니밖에 없었다. 결심이 굳었는지 서희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대신 오라버니만 알고 계셔야 해요.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전 끝장이란 말이에요. 무조건 비밀을 지켜주신다 약속해주시면 말씀해드릴게요.” “으음, 약속까지 할 만큼 심각한 일이냐?” “그럼요. 저에겐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에요.” “알았다. 무조건 비밀을 지켜준다 약속을 하마. 그리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힘을 보탤 것이니 이제 속 시원히 말해보아라. 누군데 그렇게 찾으려고 애를 썼던 거냐?” “한 남자를 찾고 있어요. 제 마음을 훔쳐간 한 남자를요.” “무어라? 네 마음을 훔쳐? 그게 무슨 말인지 소상히 이야기해 보거라. 어서.” 인철의 서슬 퍼런 재촉에 서희는 할 수 없이 부흥상회에서 비담과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단, 뜨거웠던 그날 밤의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말이다. 서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인철은 한 번도 본적 없는 비담이 괘씸하게 여겨졌다. ‘얼마나 잘난 녀석이기에 서희의 마음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그냥 훌쩍 떠났을까? 그리고 내 동생이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매정하게 돌아서냔 말이다. 이런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이번에 여행을 떠나면 그녀석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 되겠어. 감히 하나뿐인 내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 고얀 녀석 같으니라고.’ “안 그래도 이번에 여행을 떠날 참이었다. 이미 아버님의 허락도 받았고. 오라비가 힘닿는 데까지 그 녀석을 찾아볼 것이니 인상착의나 특징이 있으면 말해보아라. 그리고 신상명세도 알고 있는 데로 다 말해주고.” 서희는 인철이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책상 앞으로 뛰어갔다. “역시 오라버니는 제 마음을 알아주시리라 믿고 있었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공자님의 인상착의를 그려드릴게요.” 쪼르르 달려가 소매를 걷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서희의 모습을 인철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다 무엇을 보았는지 두 눈이 경악으로 치켜떠졌다. ‘원 녀석도. 저리 좋을까. 가만!! 어렸을 때 찍은 손목의 수궁사가 사라졌잖아? 마음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몸까지 빼앗겼구나. 이런 우라질 새끼를 보았나. 감히 서희와 함께 밤을 보내고도 나 몰라라 도망갔다는 말이냐.’ 그림이 완성되자 서희가 해맑게 웃으며 인철에게 내밀었다. “완성되었어요, 오라버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모습일 테니 꼭 찾아서 제 앞에 데려와 주셔야 해요. 알았죠?” 복받치는 감정에 인철이 부들부들 손을 떨며 서희가 내민 그림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서희는 인철의 마음도 모른 채 마냥 들떠 쫑알쫑알 떠들었다. “그리고 그 분의 신상명세는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한 가지 그 분의 본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름은 알고 있어요.” “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 “비담이라고 들었습니다.” “비담이라...” 인철이 씹어뱉듯 비담의 이름을 되뇌었다. 동생의 앞이라 분노를 삭이고 있을 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찾아내 요절을 내버리고 싶었다. ‘기다려라, 비담. 내 반드시 너를 찾아내 반쯤 죽여 놓은 상태에서 끌고 와주마. 그리고 동생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난날의 과오를 사죄하게 만들고, 얼마나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었던 짓인지 뼛속까지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동생 때문에 차마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할 뿐이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아니다. 오라비를 믿느냐?” “당연하죠. 오라버니께서 반드시 공자님을 제 앞에 데려와 주실 거라 믿어요.” “그래. 반드시 그 녀석을 데리고 오마. 녀석의 털끝하나 상하지 않고 네 앞에 대령해줄 것이니 오라비를 믿고 기다리거라.”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헤헤.” 서희를 두고 뒤돌아 나오는 인철의 안광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오냐. 네 소원대로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으마. 털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르겠지만.’ 인철이 나간 것을 확인한 서희는 서랍에서 부채를 꺼내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나를 버리고 떠나신 게 아니야. 부채를 우리의 징표로 두고 떠나셨어. 뭔가 사정이 있으셔서 떠나셨겠지만 분명 돌아오실 거야. 그리고 오라버니가 나서준 이상 더 빨리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비담 공자님.’ 한편 그 시각. 낙양성으로 막 들어서던 비담은 온몸에 오싹 한기가 스미는 것을 느꼈다. “뭐, 뭐지? 몸이 허해져서 그런가?” 비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기에 고기라도 먹어 몸보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8화 제 5 장 어둠의 정보 상인, 흑막(黑幕) 비담은 서희를 떠나보낸 슬픔에 이곳저곳 한 달간 방황을 하며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낙양성에 도착했다. 하남성에 위치한 낙양은 주(周)나라가 기원전 도읍을 정한 것을 시작으로 9개 왕조가 도읍을 정하였다 하여 구조고도(九朝古都)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였다. 비담은 낙양성에 들어서자 정신적 충격으로 허약해진 육체를 달래기 위해 우선 유명한 주점부터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아낌없이 돈을 풀어 산해진미를 주문하였다. 뜻밖의 재신이 강림하자 점소이는 깍듯이 고개를 숙여 전망이 좋은 자리로 다시 옮겨주었고, 숙수들은 주방에서 지지고 볶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문한 양이 많고 종류가 다양하여 상이 차려지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나온 음식들은 기다린 보람이 충분할 정도로 냄새도 구수하고 비담의 입맛에 딱 맞았다. 그런데 한참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비담의 맞은편에 웬 거지가 와서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더니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킁킁, 캬! 냄새 죽이네. 소협? 혹시 이걸 혼자 다 먹으려고 시킨 거요?” “엥? 누구쇼? 누군데 허락도 없이 함부로 앉는 거요?” “에이, 보아하니 무림인 같은데 야박하게 너무 그러지 마시오. 사해가 동도라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이야기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읍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 “하! 내가 무림인인지 아닌지 당신이 어찌 안단 말이오?” “무림인이 아니었소? 그럼 그냥 적선하는 셈 치면 될 것 아니오. 거지에게 이깟 음식하나 대접하지 못할 정도로 궁해 보이지는 않소만?” “궁하지 않다고 해서 무작정 적선을 베풀라는 법도 없지요. 그나저나 제법 명성이 있는 식당 같은데 관리가 영 엉망이군요. 거지가 함부로 들어와서 손님의 식사를 방해해도 아무런 제제도 가하지 않으니.” “관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는 못 하는 것이오. 뭐 무림인이 아니라니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아쇼.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나는 여기 단골거지라 함부로 못 대한다오.” “하하, 단골거지도 있소? 뭐 아무튼 내가 아직 허락도 안했는데 닭다리를 덥석 집으시네요. 도대체 이건 무슨 경우요?” “에이, 젊은 사람이 너무 빡빡하게 구는구먼. 경로우대라는 좋은 미풍양속은 국 끓여 자신 거요?” “하하하, 당신처럼 넉살이 좋은 거지는 정말 처음 보는구려. 알았소. 어차피 남을 음식이니 크게 인심 한 번 쓰리다. 드시고 싶은 데로 마음껏 드시오.” “역시 처음 볼 때부터 배포가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소. 그럼 사양하지 않고 먹겠소이다.” 거지영감은 걸신이라도 들렸는지 게걸스럽게 남은 음식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음식을 해치우는 속도만 놓고 보았을 때는 천하제일고수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빨랐다. 처음에 이야기를 나누면 좋다는 말은 엿을 바꿔 먹었는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포만감을 느꼈는지 한 마디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낙양에는 처음인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오셨소?” “직업이 거지인줄 알았는데 점쟁이까지 겸업을 하는 줄은 미처 몰랐구려. 어찌 아셨소?” “내가 행색은 남루하고 거지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소식통이라오. 그리고 당신처럼 귀티가 좔좔 흐르는 고객은 항상 머릿속에 단단히 박아 놓는 편인데 아무리 뒤져도 댁 같은 인물은 처음이란 말이지. 그러니 낙양에 처음 온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는 법이라오. 무슨 일로 오신 거요?” “하하하, 정말 귀신을 속이는 것이 더 빠르겠군요. 사실은 한 가지 알아볼 것이 있어 낙양에 들렀소이다.” “그게 뭐요?” “잘 됐군요. 영감이 낙양의 소식통이라고 하니 한 번 물어보겠소. 이것도 맞추는지 어디 봅시다. ‘흑막’이란 단체에 의뢰를 하고 싶은데 통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군요. 혹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시오?” “물론 알고 있소. 낙양의 소식통이라 자부하는 내가 그깟 흑막에 대한 정보도 모를까봐?” “정말이요? 정말 영감이 흑막이란 단체를 알고 있소?” “당연하지. 근데 거기는 의뢰비가 꽤 비싼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의뢰인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부탁하시오. 나 역시 정보를 취급하니까.” “하지만 행색을 보아하니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소만...” “클클클, 소협이 불쌍한 거지에게 음식을 적선하였으니 특별히 알려드리리다. 뭐 무림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무림에는 개방이라는 거지들의 단체가 있소. 혹시 들어보셨소?” “에이 나를 뭐로 보고 그러시오. 내가 무림과는 연관이 없어도 천하의 개방을 모르겠소? 당연히 들어보았죠.” “그럼 얘기가 수월하게 풀리겠군. 내가 바로 개방의 낙양분타를 맡고 있는 취풍개 오삼이오. 이제 정체를 알았으니 내 말을 믿으시겠소?” “아! 개방의 영웅이셨군요. 그것도 모르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진즉 말씀을 하셨다면 그리 타박을 하지 않고 음식을 드리는 건데 말입니다. 당연히 개방의 정보력이라면 거래할 만하지요. 정말 흑막이란 단체보다 저렴합니까?” “물론이오. 거기는 워낙에 소수정예로 움직이다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소. 그에 비하면 우리 개방은 천하에 널린 게 거지 아니오. 그래서 저렴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오.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말만 하시오. 내 한 시진 안에 공자 앞에 떡하니 내어 놓으리다. 가격은 그때 가서 흥정을 하면 될 것이니 우선 말부터 해보시오.”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신뢰가 가는군요. 그럼 제가 원하는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화류선’이라는 부채의 행방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누구의 손에 그 부채가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부채의 행방쯤이야 누워서 떡먹기지. 좋소. 내 다녀오리다. 여기서 꼼짝 말고 조금만 기다리시오.” “알겠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소.” 취풍개 오삼은 남은 음식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휑하니 주점 밖으로 사라졌다. 비담은 느긋한 마음으로 별난 거지영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비담이 차를 마시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을 무렵. 사라졌던 취풍개 오삼이 다시 주점에 나타났다. 어깨가 축 쳐진 것이 아마도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비담은 짐짓 모른 채 자신의 정보를 구해왔는지 물었다. “오! 역시 개방의 영웅들은 시간을 잘 지키는군요. 정확히 한 시진 만에 이렇게 돌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원하던 정보는 구해오셨습니까?” “그, 그게...아무리 애를 써도 화류선이란 부채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소. 지급으로 개방의 본타가 있는 개봉에도 전서구를 띄웠지만 모르겠다는 답신만 왔다오. 대관절 그 부채가 무엇이오? 정말 있기는 한 거요?” “하하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신세를 진 어른께서 애타게 찾으셔서 당연히 있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없지요. 그래도 애쓰셨습니다.” “휴우, 미안하오. 곧 찾을 것처럼 큰소리를 뻥뻥 쳐놨는데 면목이 없소이다. 내가 거지생활 50년에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오. 내 자존심이 무척 상하기는 하지만 음식까지 얻어먹은 마당에 이대로 손을 놓기도 찝찝하고. 흑막에 대한 정보라도 드리리까?”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아니요. 내가 거지이기는 해도 염치는 알고 있다오. 괜히 소협의 시간만 뺏고 음식만 축냈으니 무료로 가르쳐 드리리다. 낙양대로를 따라 쭉 가다보면 ‘취선루’라는 주루가 보일 것이오. 그곳에 들어가면 1층에 큰 도박장이 있을 거요. 어떤 도박을 해도 상관없지만 한 가지만 명심하시오.” “그게 무엇입니까?” “도박을 하면서 돈을 엄청 잃든가, 아니면 엄청 따시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것들이 곧 상부에 연통을 넣어 ‘선화’라는 기녀를 데리고 올 것이오. 그럼 공자께서 그녀와 도박을 하면 되는 것이오. 그때 한마디만 건네면 곧 공자가 묵고 있는 숙소로 그쪽에서 사람을 보낼 것이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소?”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똑똑히 기억해두었습니다. 그럼 ‘선화’라는 기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면 되오?” “선화를 만나거든 이대로 말하시오. ‘은은히 비치는 속옷의 색이 검정색인 모양인데 아주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하면 알아서 흑막이랑 연결이 될 거요.” “꼭 그렇게 말해야 합니까?” “그게 암어니 어쩔 수가 없소. 대신 속옷을 가지고 놀린 파렴치한으로 몰려 따귀는 한 대 감수해야 할 거요. 아시겠소?” “휴우,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어쩔 수가 없죠. 아무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미안하오. 부디 흑막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얻길 바라겠소. 그럼 바빠서 이만.” 29화 거지영감 오삼은 터벅터벅 주점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비담은 도박장에 가기 위해 자신의 자금을 점검한 후 방을 잡고 눈을 좀 붙이기로 하였다. 어스름한 어둠이 켜지고 하나둘 거리에 등이 걸리면서 낙양대로에도 활기가 찾아왔다. 낙양대로를 따라 걷고 있던 비담은 저마다 빛을 피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마냥 신기해하였다. 낙양의 밤거리는 난주에 비해 화려함은 떨어졌지만 그 규모는 훨씬 웃돌았다. 비담은 ‘취선루’라는 간판을 찾으며 사람들로 북적대는 거리를 한가롭게 거닐었다. 그러다 드디어 비담의 눈에 취선루가 들어왔다. “거지영감이 말한 취선루가 바로 저곳이구나. 이야!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어가네. 안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거야? 나도 이럴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 봐야겠군.” 비담은 태어나 처음으로 도박장을 구경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설레었다. 가벼운 심호흡 한번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비담이 취선루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후끈후끈한 공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도박장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고 돈을 흔들며 광란에 빠져있었다. 비담은 도박에 미쳐 열광하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탐욕을 즐기며 천천히 도박장을 둘러보았다. 사실 비담은 잘 몰랐지만 취선루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은 운영시설이나 판돈의 규모만 놓고 보았을 때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방대한 크기와 유명세를 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여기서 발생한 돈을 이용하여 관리들에게 푸짐한 뇌물까지 상납하면서 별다른 잡음 없이 유혹에 약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버젓이 털고 있었다. 심지어 한쪽에 마련된 고급 방에서는 권세를 틀어쥔 관리들이 찾아와 도박을 즐기기도 하였다. 또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사행성도박을 이용하여 돈을 긁어모았다. 이른바 여성들이 소문난 장인의 명품을 원하는 욕구와 비등한 남자들 특유의 승부욕에 발동이 걸리면 염라대왕과 대면하기 전까지는 말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적절히 이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취선루의 도박장은 그러한 승부욕과 한탕주의라는 자양분을 먹고 욕심껏 자기 몸을 불리는 괴물이었다. 비담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신이 할 만한 도박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먼저 비담의 흥미를 끈 도박판이 바로 귀뚜라미싸움이었다. 귀뚜라미 두 마리가 격리되어 있다가 주인이 작은 붓으로 약을 올린 후 중간의 나무판을 제거하자 미친 듯이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며 자신이 돈을 건 귀뚜라미를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귀뚜라미는 서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라도 되는 양 상대방의 머리를 물어뜯으며 필사적으로 싸움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