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11살 차이 - 완. - 27편 (27/49)
그냥 시장에서 2만 원짜리 사준 건데..."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니까!...나야 다이아같은게 좋긴 하지만...큭...얼른 가서 풀어줘..." 혜주는 복도 끝 화장실로 향했기에 나도 뒤따라가게 된다. 보미와 삼구는 병실로 들어갔고 난 지금 화장실 바로 앞 복도에 기대어 혜주를 기다린다. 손을 씻었는지 양팔을 들어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고 나오던 혜주가 날 발견하고는 서둘러 뒷짐을 진다. 벽에 기댄 채 혜주의 행동하나하나를 놓치기 싫다는 듯 빤히 바라보게 된 날 발견한 혜주가 화장실 입구에서 그대로 멈칫 서 있다가 뒷짐을 진 채 내가 걸어온다... "들어가자." "... 아저씨..." "응?" 고개를 돌려 병실로 들어가려는데... 혜주가 내 환자복의 끝단을 잡고 멈추게 한다. "왜?" "이 옷... 정말로 그냥 시장에서 보이 길래 사온 거예요?" "옷? 그 추리닝?" "...예." "그...그렇다니까..." "정말로 아무 의미 없이?" "의미..." 의미라... 몇 개를 고르다가 색과 함께 가슴에 새겨진 글씨가 마음에 들어 무작정 구입하긴 한 건데... 혜주는 그럼 이 옷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한 변명거리를 찾아보지만... 마땅히 의미까지 부여 할 내 자신이 아니었던 지난 시간이었기에 혜주에게 선뜻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구나..." 쉰 목소리로... 혜주가 말을 끝내고는 날 지나쳐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 안타까운... 내 미숙함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잠시 복도에 서 있던 난 혜주의 뒤를 쫓아 병실로 들어가게 된다. 내 침대위에 보미가 걸터앉아서는... 이제 들어온 혜주에게 사탕발림으로 혜주를 놀리기 시작한 듯 혜주가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한거야?" "..." "오!~~ 울 혜주 화끈한데... 혜주야... 저 인간 야한 거 무지 좋아하거든... 조심해라!" ",,,," 내가 황급히 보미의 입을 막기 위해 병실로 들어가려던 걸 삼구가 내게 다가와 잠시 날 붙잡았다. 보미의 입을 막아야 되는데... 삼구의 조금은 진지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복도의 의자에 앉게 되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깔깔거리며 보미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들려와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안절부절 못하고 앉아 있는 내게 삼구가 편지봉투하나를 건넨다. "이거 뭐냐?" "뜯어보기 뭐해서 오늘 오전에 등기로 온 거 그냥 가져왔는데. 너 무슨 변호사랑 거래 하냐?" "거래?? 아!! 줘봐!" 나는 서둘러 삼구의 손에서 두툼한 봉투를 낚아채선 열어본다. '김정민 변호사사무실' 혜주 몰래 알아보며 진행하는 일이 이제서야 답이 왔나보다. "뭔데?" "혜주 일..." "혜주?? 너 뒷조사 했냐?" "아냐! 인마... 그냥 알아볼게 있어서 그렇지..." "뭐?! 너 진짜 미쳤구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비밀스럽게 변호사까지 사서 뭘 알아보는 건데?!" "..." 봉투 안에서 나온 여러 장의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며 삼구의 말을 씹고 있자. 삼구가 거칠게 내 손에 들려 있는 봉투를 빼앗아 갔다. 갑자기 이놈이 왜 이렇게 오버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장난칠 기분이 아니었기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삼구에게 편지를 돌려달라는 독촉을 한다. "내 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이게 뒷 조...사...응... 형제/자매 간 친권소송 판례?... 무...뭐야 이거?"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라니까... 얼른 줘." 내 말에도 삼구는 계속해서 내용을 훑어보고는 병실 입구를 잠시 쳐다보더니 내게 시선을 옮긴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혜주한테는 비밀로 하고...꼭 이다..." "나야 뭐 굳이 말할 필요까지 있겠느냐만은... 이런 거 본인이 직접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혜주 민번하고 다 아니까...지금은 전부 자세히 알아보고... 철저히 대비만 해두고 있어... 괜히 기대심 줬다가 잘못되면...혜주 힘들어할까봐..." "근데... 혜주가 부양능력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서류 보니까 두 명 다 미성년이던데..." "나... 혜주랑 결...혼 할 거다..." "무. 뭐?!!! 지, 진짜?!!! " "응..." "진짜!!!!!" 갑자기 입구에서 숨어 있던 보미가 튀어 나오며 '꺅꺅' 거린다... 깜짝 놀란 나와 삼구였지만... 언제부터 안에서 듣고 있었던 건지... 나와 삼구의 얘기를 다 들었는지 손을 안으로 뻗어 혜주를 잡아 당겨 복도로 나오게 한다... 나...날... 쳐다보는 얼굴이 빨개져 또 다시 빨간 사과가 되어버린 혜주의 시선에는 당혹감과 함께... 황당함...그리고 기대감(?)... 하여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표정이 담긴 채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내 고백과도 같은 둘만의 대화를 다 까발려지듯 둘이 듣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기에... 나도 얼굴이 같이 빨개졌다... "보. 보미야!...혜주야 그게 아니고... 내 말은..." 설명을 하게 된다면...내가 혜주 몰래 벌였던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차마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혜주가 주춤거리며 몸을 돌리려 했다... 이 행동은 분명히 또 도망 가려한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나는 힘든 몸을 황급히 움직여 혜주의 손을 잡아챘다... 보미가... 놀란 한편 조롱을 한다... "꺄~~~~ 와! 자기 멋지다... 참나... 나한테 혜주한테 하듯 반만 했어도... 당장 결혼해 줄 텐데..." "넌 좀 조용히 해라...혜주 놀랐잖아!" "놀라긴... 혜주 입구부터 자기 목소리 듣고는 화끈 거리는 얼굴 가린다고 얼마나 손이 바삐 움직이던지...근데... 싫지만은 않은지 미소가!~~~ 큭큭" "..." "혜주야...그게 아니고...어휴... 이걸 모라고 해야 하나..." "..." 고개를 돌린 채 날 쳐다보지도 않던 혜주가... 작은 손등으로 작은 자신의 입을 가리곤 천천히 날 바라본다... 막상... 바로 앞에서 혜주의 얼굴을 보게 되니 내 입은 더 때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느끼며 우선 혜주를 이끌고 삼구가 앉아 있는 의자로 이끌어 앉혔다. "내가 결혼이라는 말을 꺼낸 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사...정이요?" "응...그러니까. 괜히 걱정하지 말고 내가 널 어떻게 한다는게 아니라니까..." "걱정...제가 걱정해야 되는 거예요?" "으.응??" "아저씨는...개인 사정 때문에 결혼해요?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 그게 아니고..." "그럼... 어제 저하고 한 뽀뽀도 사정 때문에 한 거예요?!" 내가 변명하는 것이 못마땅스러운지 눈망울이 흔들리는 혜주의 곧은 시선에... 차마 계속해서 혜주의 눈동자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보미도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잠시 입을 다물었고, 혜주는 문 뒤에서 기대하던 생각과는 달리 내 변명에 꼭 자신을 내가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눈물을 '꾹' 참으며 날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도저히... 혜주에게 더 이상의 숨김이나 거짓을 이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삼구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를 잡아 채 혜주에게 건넨다...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바라보던 혜주가...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한다... 빨개졌던 얼굴은 여전히 상태를 유지했지만... 혜주의 표정이 놀라움과 함께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서류를 보다가 날 바라본다... 여전히 쉰 쇳소리를 내면서... 내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이게 뭐에요?" "...그냥... 좀 알아봤어..." "어. 언제요?" "집에서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만 많이 하게 되더라고..." 서류를 들고 있는 혜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조금씩... 눈에 고이던 눈물이... 서류에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거... 해도 당장 동생들이랑 같이 살수 없는 거 잘 알아요... 그래도 고마워요 아저씨...그때 형사아저씨가 친권이 뭐라고 해서 막막했는데..." "어휴... 어차피 다 까발려진 거..." "..." 혜주의 감격스러워하던 표정이 현실을 직시했는지 점차 평소의 어딘지 모를 어둠을 담고 있는 얼굴로 돌아가기 시작했기에... 나는 모든 걸 얘기하게 된다. 혜주의 감격에 취한 표정을 본 직후라서 그런 진 모르겠지만... 다시 변해가는 혜주의 표정에 안타까움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삼구와 보미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요 근래 혜주를 위해 내가 준비 했던 모든 일을 얘기하게 된다. "내 오피스텔 옆에 방이 두 달 후에 만기된데... 우선 계약금 걸어놨어... 일이 잘 안된다면 계약금 날릴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울 혜주가 어떤 아인데...잘 안 될 리가 없지..." "예??" "변호사랑 통화했는데... 네가 능력만 된다면 충분히 승소할 가능성이 높고, 거기에 거처까지 마련되어 있으면 더 확실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물론 대학생인 네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는 걸 사실 그대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서류상으로라도 우리가 결혼한 걸로 되어있다면... 서류상으로 만!! 꼭 결혼한다는 게 아니고... 서류상으로 그렇게 남아 있다면 내가 능력이 되니까... 부양능력도 충분하고 네 친족에 대한 더 이상의 의견제시도 힘들 거라고 하더라고,...근데..." "..." 혜주의 표정이 못내 진지하고 심각했다. 물론 혜주의 얼굴에 담긴 많은 생각을 나도 알 수 있었다...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제 겨우 스물 둘인데... 나 같은 노땅 아저씨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꼭 심청이처럼 자기 가족 살리려고 몸버리라는 거밖에는 더 되겠냐는 생각이 들어 말을 하던 나도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난... 정말로 혜주와 사랑을 나누고 싶고...거기에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변호사의 편법에 대한 방법을 설명 들으며 편법이 아닌 진심으로 수만번...수천만번 해봤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강압적이고 외퉁수적인 상황은 나도 껄끄럽고... 무엇보다 혜주에게 미안해 졌기에...이건 말 그대로 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는 강요가 아니겠냔 말이다... 더군다나... 어제 혜주의 첫 키스를 빼앗은...나 인데... 오늘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날 망설이게 만들었다. 잠시 혜주의 표정을 살피며 머뭇거리는 날 빤히 쳐다보는 혜주의 시선에 용기를 낸다. "물론... 호적상에 남기는 하지만... 혜주 이제 겨우 스물둘이잖아... 동생들 학교만 졸업하면... 정말로... 내...내가 마음에 안 들면 서류상으로 이...이혼...하면 되는 거고..." "이. 이혼이요??" "응...결혼을 한 것처럼 서류가 만들어질 거라서... 이혼도...서류상으로는 남을 거야... 그래서 쉽게 얘기를 하지 못했어..." "..." "무...물론... 결혼이라는 게 얼마나 성스럽고...존귀한 단어인지는 알고 있고,, 무엇보다 혜주의 의사가...그리고 요즘은 이혼하는 커플도 많아져서 흠도 안 된데..." "..." 혜주의 표정에 많은 갈등과 고뇌가 담겨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찌 보면 내 어이없는 결혼과...그리고 이혼이라는 말에 황당해 할 수도 있는데... 그만큼 혜주는 절박했나보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보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럼...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한 게 동생들 때문이었어?" "..." "응... 울 혜주 고생 정말 많았어... 그러니까 이제 행복...해 질 때도 됐잖아..." "그럼... 자기는 혜주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동정심 때문에 결혼까지 생각한 거고?" "아니야!!!!!!!!!!!!! 내가 무슨 어린애냐?!! 내 성격 몰라?!!!! 사랑하지도 않는데 귀찮게 이런거 다 조사하고 계약하고...결...혼..." 열변을 토하며 보미의 얼굴에 띤 미소를 보게 된 난... '...낚였다' 내 얼굴이... 보미의 미소를 보게 된 후 창피함에 혜주보다 더 빨개진다...일산화탄소 중독 때보다... 더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먹먹해지는 듯 느꼈다... 11살 차이의 혜주 앞에서... 서른세 살의 내가 속내를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내 모습에 스스로 창피함을 느끼며 입을 닫은 채 혜주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오!~~~ 자기... 언제부터 그렇게 대담해졌냐!! 야! 장혜주... 결정 났네... 이렇게 지극정성인데... 결혼 안 해주면 또 자살 어쩌고 지롤 하겠네..." "예?...!!" 내 말에 놀라며 날 바라보고 있었던 혜주가 보미의 말에 자신도 당황하게 된다... 나와 같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게 되는 혜주다... 아니... 나와는 다르게... 이제는 귀까지 빨개진 혜주는 무릎위에 얹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다... 차마... 혜주에게 프러포즈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내 눈은 혜주의 손만 보였다... "크크크... 그럼 나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고... 삼구오빠 우리 밥 먹으러 가요." "그래..." 삼구가 동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근데... 이놈이 일어나면서 내 정강이를 후려쳤다. "윽..." "행복한 새끼... 에잇!" 보미를 따라 가는 삼구...둘은 연신 웃으면서 뒤돌아 앉아 있는 우리를 훔쳐본다...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난 조심스럽게 혜주에게 말을 이어갔다. "아. 안되겠지... 아무리 서류상이라도..." 한참을 가만히 있던 혜주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을 한다. "아저씨..." "으...응?" "자꾸 왜 서류상이라고 말을 해요?" "그...그거야..." "너한테 부담 주는 거 같고...거기에...진짜 이제 겨우 스물 둘이잖아... 나 같은 중년 변태가 감히 순수한 혜주한테 할 말이 따로 있지...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풋..."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듣던 혜주가 어깨를 들썩인다... 혹시 울고 있는 건가...라는 내 생각은... 들썩이는 어깨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니... "큭큭...진짜 변태예요? 아저씨?" "아. 아니!...그 건 아닌데..." "하긴... 우리가 결혼하면 도둑분이라고 말을 듣겠네요..." "크.,,..." "근데..." '우리가 결혼하면...' 별다른 의미없이 얘기했겠지만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우리' 아저씨와 혜주가 아닌 '우리'라는 자기와 타인을 통틀어 지칭하는 이 단순한 단어가... 혜주의 작고 귀여운 입에서 나오게 되자 전혀 달리 들리는 나였다... 웃음을 참던 혜주는 진정을 되찾으며 이제는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아까와는 달리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혜주의 시선은 너무 올곧아서 나 같은 겁쟁이가 똑바로 쳐다보기엔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만들 정도로 큰 눈망울에 잡티 하나 없다... "아저씨 마음은 너무 감사한데요...근데요... 동생들은 제가 돈 모아서 준비한 방에 데려올 거예요..." "뭐...? 언제?!! 십 년 후에? 그때면 이미 그 동생들 다 성인이야!... 집에서 다 나올 수 있다고... 지금 둘째가 고1이던데...지금이 가장 중요한때라고..." "..." 현실을 깨우쳐 줄 필요가 있었기에... 난 조금은 직설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혜주의 고집을 꺾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걸 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갚아! 보자~... 지금 등록금에... 방값까지 하면... 3년은 내 밑에서 꼬박 일해야 겠네... 무보수로..." "..." "다. 당연히 생활비랑... 동생들...그리고 네 학비는...계속 빌려줄게... 그럼 4년이 조금...아니 5년은 넘게 내 밑에서 일해야겠지만..." "..." "그...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그...그냥... 서류상 와이프한테 투자했다고 치면 되지... 그런 거 있잖아 전도유망한 와이프 유학까지 보내는...그 뭐냐... 노후를 위해 투자하는 남...남편..." "..." "아...아니 꼭 내가 정말로 나중에 너한테 뭘 바라는 게 아니고... 마. 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 침묵으로 일괄하는 혜주였기에... 나는 횡설수설하며 끝내 혜주에게 약속하듯 서류상 결혼 후의 일을 못 박아 둔다... "그...리고... 네 생활에 일절 관여 안 할게...저번처럼 어처구니없게 질...질투나 하는 일도 없을 거고...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나 그 이후의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얘기와...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서류상의 결혼이라고 해도 이런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냔 말이다... 혜주에게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선 말을 끝내야 하는데... 내가 머뭇거리며... 말을 계속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날 바라보는 혜주의 입에서 뜻밖의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바보..." "..." 정말 바보처럼... 혜주의 바보라는 말에 어리버리 멍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다... 뭐라고... 말을 이어해야 하는데... 내가 왜 바보냐고...부정이라도 해야 하는데, 날 빤히 쳐다보고 있는 혜주의 직설적인 시선에 내던 용기가 깡그리 사라진다. 가만히... 혜주의 눈동자만 바라보는데... 혜주가 내 얼굴을 향해 천천히지만.,...정말로 순식간인 듯 느껴지는 긴 시간을 거쳐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눈을 감고는 내 입술을 가볍게 부딪치는 혜주의 입술은... 어색함과 혜주의 잘못된 다가오는 속도로 인해... 서로의 이빨이 각자의 입술 안에서 부딪히며 입술에 기분 좋은 고통을 유발했다... 자신도 느낀 통증에 깜짝 놀란 혜주가 황급히 얼굴을 때고는...손으로 입을 가린다... 다시 점점 빨개지는...당황하던 나는 혜주의 얼굴에 보며 아픈 입술도 잊은 채... 웃게 된다...미소라기 보단...폭소를 참으며 혜주의 쑥스럽지만 과감한 행동에도 웃음을 참지 못한 나였고 그런 나를 정말로 어렵게 낸 용기를 창피라는 단어로 바꿔 느끼고 있는지 얼굴이 빨개진 채...계속해서 웃고 있는 날 귀엽게 흘겨본다... "씨~... 처...처처음이라서 그런거예...요... 웃지마요!" "큭큭큭..." "씨~~ 웃지 말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씨..." 귀엽게 '씨~'를 연발하던 혜주가 일어나선 병실로 도망가듯 종종걸음으로 황급히 들어가 모습을 감춰버렸다...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 혜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결과가 좋지 않다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혜주의 기분에 애써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알아야 할 건 아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병실로 쫓아 들어간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예쁜 얼굴의 큰 눈망울에 참고있던 눈물을 글썽이면서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혜주를 보게 된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침대에 노우며 혜주의 손을 훔쳐본다. 혜주의 손에 들려 있는 항상 만지작거리는 양말을 보게 되었다...구멍 난...검은색 양말의 모습에... 통장을 또 보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 나는 좀 더 고개를 들어 내려 보게 되었다... 내 시선을 의식한 혜주가... 애써 담담하게 여전히 양말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요... 울 아빠 거예요..." "..." "아저씨도... 왜 통장을 이런 양말에 넣고 다니냐는 생각했었죠?" "...응. 솔직히 좀..." "수이도 처음엔 냄새나는 양말에 왜 소중한 통장을 넣고 다니냐고 했는데요...막...챙겨서 도망 나오는데 급하게 달랑 한쪽만 신은 양말이 이거더라고요... 우리 양말서랍에 같이 있었던,, 그래서... 통장이 없을 땐...그러니까 처음 아빠랑 엄마 묻어주기 전에는 여기에 가루 넣고다니다 보니까...어느새 제 부적이 됐어요." "그랬구나..." "예...근데...알바비 입금하고 나서 잠깐 여기에서 빼놨다가... 작...그 사람한테 뺏겼고요..." "...근데 혜주야..." "..." "아까 그 서류 말이야...사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변호사말대로...확률이 높을 뿐이지... 해봐야 아는 게 민사라고 하더라...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혜주가 날 보면서 고개를 크게 젓는다. 양말을 꼭 쥐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날 본다... 확실하게 말을 해줘야 하는데... 혜주의 이런 표정을 보면서는 도저히 말을 잇지 못하겠기에 나는 잠시 혜주의 손에 쥐어진 검은색 헤진 양말을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신경 써주신것만도 고마워요..." "..." 혜주는 기대에 부풀었을 게 당연한데도...내게 이렇게 말을 한다. "아저씨... 저 무작정 도망치듯 서울 오고 나서 요즘이 정말 사람하고 사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