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11살 차이 - 완. - 24편 (24/49)
"..." "나 때문에 불륜인 남자친구와 헤어졌거든...거기에 회사도 그만두고..." "불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네 애가 아니란 말이지?" "응..." "휴~~ 귀국해서 놀래주려다가...이게 뭐냐 오히려 십년감수했다... 그런데 혜주랑은 어디까지 갔냐? 이 엉큼한 새끼야! 크크크" "..." "벌써 따 먹었어?" "울 혜주 그런 애 아니야..." "울 혜주? 하하하하 너 진짜 빠졌구나... 야! 란제리 모델 한다고 찾아온 애가 그런 애가 아니면?!... 이 세상 모든 여대생들은 전부 그런 애가 아니냐?!!" "야!!" "크크... 너 진심이구나?" 내 쉰 목소리의 어렵게 나온 고함소리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삼구가 웃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정색을 하며 묻기 시작한다. "..."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혜주 이제 스물둘이야!... 너 같은 노땅하고 어울릴 거 같아?! 거의 띠동갑이잖아, 그냥 즐기려면 진하게 놀고 돈 좀 쥐어주면 다 떠나더라! 솔직히 여자란 동물이 말이다 말로는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지껄이지만 다 필요 없어! 지가 좋아하는 젊고 멋진 놈 나타나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는 게 여자란 동물이야!" "우리 혜주 그런 애 아니라니까..." "미친놈... 니가 된통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런데 혜주 얘는 어디간거야?" "미오씨한테 가본다고... 혼자 있다고 걱정되나봐..." "미오?? 그 심대리인가 하는 여자?" 내 말에 삼구의 얼굴이 굳어진다... 가만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삼구가 벌떡 일어났다. "왜. 왜??" "야!... 너 죽이려던 여자랑 단 둘이 놔두면 혜주가 가만히 있겠어?" ".응??" "너 문자 받고 울면서 어버버하다가 뱉어낸 첫말이 뭔 줄 아냐? 자기가 알고 있는 울 아저씨가 이럴 리가 없다고, 나쁜 여자가 울 아저씨 어떻게 하려고하는 거 같다더라...섬뜩했어 새꺄...나 같았으면 이 새끼 바람났구나! 라고 화 냈을 텐데...혜주는 계속 울 아저씨~ 울 아저씨~~...안나오는 목소리로 아주 통곡더라...정말 사랑하는 사람 부르는 것처럼 애절하게 말까지 트여서는...아! 참... 너 자고 있는 동안 여기 선생님한테 혜주 목 상태 확인했는데... 아직 말 많이 하면 안 된다고, 사고의 충격을 무슨 원인으로 극복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무리하게 목 사용하면 평생 목소리 쇠 끓는 소리처럼 변한채로 살아야 될지 모른다고 하더라..." "...그랬구나..." "그래 새끼야... 나도 솔직히 지금 긴가민가해서 너한테 질투 섞인 투정으로 경고는 하지만... 저런 여자 내 옆에 있었으면 벌써 내 여자로 만들어 버렸어..." "..."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한방에 단 둘이 있단 말이야?" "한방?,,일인실이야?" "어휴. 그 여자는 의식이 있어서 본능적으로 코를 가린 듯하다하더라... 사람목숨이 그렇게 쉽게 끊는걸 몸이 허락하겠냐...너보다 훨씬 경상이래...하옇튼 나 가보고 올께..." "같이...같이 가자...나 좀 부축 해죠..." "쉬어..." "아니야... 나도 같이 갈래... 혜주 말릴 수 있는 사람 나 밖에 없을 거야..." "..." 마지못해 삼구가 날 부축한 채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역시 삼구의 부축을 받으며 복도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가기 시작한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혜주의 쉬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의 절규를 들을 수 있었다... 들려오는 병실 쪽에는 이미 간호사가 한차례 사고를 수습하고 나오는지... 팔과 소매, 그리고 배에까지 피를 묻힌 채 땀을 닦으며 병실에서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분명 무슨 사고가 있었다...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착한 혜주가 내 복수를 대신해서 심대리에게 악행을 저질렀을 리가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애써 접고는 잘 옮겨지지도 않는 발걸음에 속도를 내어 간호사가 나온 병실로 걸어간다... 병실에 도착해서 병실 안을 보게 되었다. 혜주의 뒷모습과...그리고 침대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혜주를 노려보고 있는 심대리가 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혜주가 손을 올리더니 심대리에게 따귀를 날린다... 그 순한 혜주가... 정말로 나 때문에 화가 많이 난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혜주의 이런 모습에 쉽게 병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나와 삼구는 잠시 문지방에 서 있게 되었다. 따귀를 맞고도... 여전히 심대리는 고개를 치켜세워 혜주를 노려본다. 그리곤 냉랭하고 쏘듯 혜주를 노려보며 말을 하는 심대리였다. "네가 뭔데!...네가 뭔데 내 목숨을 살리는 건데?!" 심대리의 이 말은... 나는 심대리의 고함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과...그리고 뽑혀있는 링거 줄을 보게 된다. 아마도 심대리가 또 다시 선택한 방법은 예전에 나와 같은... "넌 행복하잖아!. 그래! 네 거 내가 뺏으려고 했어! 그건 미안한데, 왜 내 목숨까지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거냐고!" "..." "민호씨 가졌다고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냐?!!! 왜?! 너도 내가 불쌍하게 보여? 그래 지금은 행복하겠지!!... 남자가 너한테 목매니까 행복하게 느껴지겠지...넌 그게 평생 갈 줄 알아!!" "..." 내 예상대로... 심대리는 그동안 너무도 불행하게 살고 있었나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거기에 이제는 증오까지 느껴질지도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 담고 있으니 말이다. 삶이 얼마나 망막했으면 내게 도움을 청하기보단 같이 죽음을 택하려고 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심대리는 이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자신의 한풀이를 하듯 혜주에게 쏘아붙이기를 계속 한다. "네년도 나랑 다를 거 같아?!! 너도 똑같아! 남자한테 버림받고 모든 걸 잃어봐야 내 심정과 똑같이 느낄 거야., 그러니까 상관하지 말고 지금 너 좋다고 달라붙은 그 놈한테 가라고!! 여기서 나가라고! 내가 죽던 말든 상관하지 말고!!" "엄. 엄마잖아요..." 혜주의 목소리가 들렸다...뒷모습만...혜주의 가녀린 등만 내게 보여 확실하진 않았지만, 울고 있는지 울먹이는 쉰 소리로 심대리를 보며 나지막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그 나즈막한 혜주의 목소리에도... 혜주를 부르려던 나와 그리고 심대리는 말을 잇지 못한다... 혜주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에 심대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걸 볼 수 있었지만,, 다시 심대리는 혜주를 노려보려 했다. "언.니... 엄...마 아니에요? 엄.마 잖아요..." "..." "언.니 뱃속에 아이가 살고 있잖아요...그 아기도...숨을 쉬고 잠도 자요...죽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직 태어나지도 못해서...한 번도 아름다운걸 보지도 못했는데... 엄마가 힘들다고 아기까지 죽이려고 해요? 언닌 엄마 아니에요?" "...그...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넌 내려가서 김대리 하..." "언니 엄마 살아계시죠? 지금 병원으로 오고 계신대요. 언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온다고요...언니는 세상엔 정말로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왜 모르세요... 그리고 안 느껴지세요? 언니 뱃속에서 아가가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지금도 떨고 있다는 걸요...엄마라면 아가를 사랑해주고 지켜줘야죠..." "..." 독하게 노려보던 심대리의 눈에선 혜주의 말에 한줄기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린다... 방금 전에 흘렸던 눈물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아마도 자신의 아기와 엄마를 생각하나보다. 시선을 혜주에게서 거두진 않았지만 심대리의 손은 어느새 자신의 배를 감싸듯 만지고 있었다... "그 아기가 뭘 알아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엄마 몸속에 있다는 것이 유일한 죄로 소중한 아기가 죽어야만 한다면...그러면 언니는 사람도 아니에요..." "...내...내 애야!...내가 죽이던 살리던 내 맘이라고..." 혜주의 손이 다시 공중으로 올라갔다... 다시 심대리의 따귀를 때리려던 혜주는 든 손을 떨며 배를 만지고 있는 심대리를 차마 때리진 못했지만... 정말로 아무렇게나 말을 뱉어내는 심대리를 원망을 하는 듯 들어 올린 손을 주먹을 쥐며 천천히 내린다... "사람이 죽으면요... 아무것도 못 봐요...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줬던 사람도 못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도 못보고, 자신의 딸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보지도 못하고, 딸은 아무한테도 못 보여줘요...정말로 소중한 사람인데도...사랑하는 사람인데도 죽으면 대화도 못하고 같이 웃을 수도, 울지도 못한단 말이에요..." "네...네가 뭘 알아!...당장 여기서 나가! 사람 그만 괴롭히고 나가라고..." "몰라요!... 저도 언니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하지만... 남겨진 사람이 얼마나 힘든 진 조금 알아요...언니도 그 괴로움 아니까 죽으려고 한 거 아니에요!,.,." ",,,," "전... 울지도 못해요...웃...지도 못하고요...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도...보지도 못하지만... 하늘에서 저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 믿어서...그래서 울지도 못하고,, 남겨진 내 불쌍한 동생들 생각하면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겨도 웃지도 못해요... 언니가 얼마나 힘든데요?!! 저보다 힘들어요?!! 저라고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해본 줄 아세요...그럴 때마다 동생들 얼굴이 생각나서 죽지도 못했어요...언니는 엄마도 같이 살아 있고,, 뱃속에서 누구보다 언니를 사랑하고 있는 아기도 함께 있잖아요...왜 그걸 모르세요...왜 그걸 모르시냐고요...흑...콜록.,.콜록..." 말을 하던 혜주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곤 더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쓰러지듯 손을 땅에 짚고 주저앉는 혜주였기에 난 링거가 팔에 꽂혀 있는 줄도 잊은 채 혜주에게 달려가게 되었다... "혜, 혜주야..." "콜록...흑...아. 아저씨...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언니가 자꾸 제 마음을 몰라줘요...흑...흑..." 괴로움에 의한 투정인지...자신에 대한 설움인지...내게 심대리를 고자질 하듯 눈물을 흘리며 내 팔을 잡고는 내게 안긴다... 고통스럽게 기침을 계속하며 서럽게 울기 시작한 혜주였기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혜주의 머리를 잡고 내 품에 더 꽉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던 혜주가 훌쩍이며 날 민다...심대리 앞에선 이런 행동자체가 심대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눈물을 손으로 훔치곤 심대리를 향해 다시 일어난 혜주는 괴로운 듯 목을 잡고는 아까보다도 더 쉰 쇳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언닌 살아야 되요... 아기한테 미안해서라도 살아서 이번 잘못 갚으세요...아니면 제가 언니 용서 못해요..." "네...네가 뭐...뭔데..." 심대리도 이미 눈물을 쏟고 있었다...내가 알고 있는 예전의 심대리는 그렇게 모진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살시도를 하면서 내 도움을 받으려고 날 끌어들였을 것이다. 겁이 많아 혼자 가기는 무서웠을 테니까 말이다... "너..." 말을 하던 심대리가 갑자기 놀란 듯 손을 올려 혜주의 얼굴을 가리킨다. 그리고... 난 그제서야 내 환자복에 묻어 있는 피를 발견하게 되었다...정말로 놀란 나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확인해보지만 이건 내 피가 아니었다... 서둘러 일어나 혜주의 몸을 돌려 얼굴을 보는데... 입에서 피를 토해 흘러내리고 있는 혜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묻어 있는 붉은 핏자국은 섬뜩하리만큼 빨간색을 띠고 있었다... "가...간호사!! 간호사!" 난 목이 아픈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서 간호사를 연발하며 혜주의 입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아준다. 혜주도 내 손에 묻어나는 피를 보곤 당황하며 놀란 눈치였지만 자신의 흘리던 눈물을 멈추지 않고는 다시 몸을 돌려 심대리의 손을 잡는다. 피를 토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는 뒷전이라는 듯 심대리의 손을 잡고는 역시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언니... 저랑 약속해요... 다시는 이런 몹쓸 생각 안한다고 말이에요." "네...네가...알...알았으니까... 빨리 선생님한테 가봐... 알았다고..." 그제야... 옆에서 혜주의 상태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 간호사에게 향하는 혜주였다... 약간은 비틀거렸지만... 우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듯 다시 정신을 차려선 간호사가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삼구에게 심대리를 맡기고 나는 서둘러 혜주를 따라가게 되었다. 로비의 간호사실로 간 우리는 간단한 처치와 함께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다. 눈물을 여전히 닦으며 심대리가 불쌍하고 원망스러운지 날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안..." 괜히 사과를 하는 나다... 내가 혜주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혜주의 눈물이 더 많아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목이 아픈지... 목을 잡고는 이제야 얼굴을 들어 날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부은 눈으로...내가 전혀 미안할 게 없다는 듯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심각해진 내 얼굴을 바라보던 혜주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때는데 그때 마침 의사선생님이 다가와 혜주를 살피기 시작했다. 입을 벌리게 해서 안을 라이트로 비추며 쳐다보는 의사선생은 잠시 입가에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선 붉은 핏자국을 보고는 한숨을 쉰다... "정밀 검사를 한번 받아보시는게 좋을 거 같네요. 보기에는 갑자기 목에 심한 무리를 줘서 각혈이 일어난 거 같긴 한데..." 혜주가 고개를 저으며 의사의 말을 자른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역시 쉰 목소리로...어렵게 말을 해 거부를 한다...그리곤 또 심대리 걱정을 한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건지...겨우 스물둘 인데... "선. 생님 512호 심.미오.환...자 언제 퇴원해요?" "예? 일산화탄소중독환자라면 내일이라도 퇴원가능하시긴 한데요..." "예..." 혜주가 의사와 대화를 하는 도중 간간히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이미 예상이 된다... 혜주라면...내가 알고 있는 혜주라면 다음 행동이 무엇이 될지 충분히 감을 잡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혜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푸념하듯 한숨을 쉬게 되었다. 의사의 권유로 그 후 나는 응급실로 돌아가게 된다. 혜주가 심대리와 같이 있고 싶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 고집으로 인해 심대리 곁에는 삼구가 남아있게 되었고, 그나마 내 몸 상태도 더 이상의 후유증이 없을 거 같다는 의사의 진단에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혜주를 옆에 두고 심대리와 삼구, 이 넷이서 휴게실에 있다. 심대리의 속죄(?)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대리의 상태는 불안하고 심각했다는 걸 심대리의 차분한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는 심대리의 모습으로 그 분위기는 오히려 더 착잡하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밝힌 그 남자의 본성을 알게 된 심대리는 아이를 지울 생각으로 병원으로 향했었고, 도저히 푹신하다고 느낄 수 없는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가 들어와 마지막으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결정하기를 요구했고, 심대리의 뱃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 힘차게 들려오는 심장소리를 듣게 된 심대리는 끝내 낙태를 하지 못하고 병원을 나오게 되었단다... 며칠을 울면서 힘들게 밥도 먹지 못하고 지내던 심대리는 마지막이라는 미련한 미련으로 그 남자에게 연락을 했고, 연신 전화를 끊어버리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억울함과 배신감에 결국 그 남자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경솔한 짓을 저질렀다는 심대리의 말에 그게 왜 경솔한 짓인지 생각을 하는 나였지만, 쉽게 입을 때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 여자는... 담담하게 다 알고 있다는 듯 심대리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권유까지 했다는 것이다. 꼭 복수를 하려는 전화통화는 아니었지만... 그 여자의 냉랭한 목소리는 복수심은커녕 심대리 자신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가 되어버린것에 대한 자각을 시키기기에 충분한 듯 보였다. 그래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게 고마움을 전하려고 내 퇴원날짜에 맞춰 인사하러 오던 길에... 나와 혜주를 보게 되었고, 쫓아와서 우리를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해 하다는 걸 알게 된 후...내가 느꼈던 고마움은 또 하나의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나와 혜주가 웃으며 장을 보는 것까지 고스란히 다 지켜본 심대리는... 자신의 불행에 대한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고 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그 남자와의 사이를 갈라놓은 중요한 요인으로서 심대리에게 각인 되어갔고, 결국 어제 술에 약을 타는 결과까지 이어졌단다. 자신을 책망하려면 지금 하라는 듯 얘기를 하는 심대리였지만... 나를 포함해 병실한의 세 명은 그저 심대리가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일 뿐...아무도 얘기를 선뜻 꺼내지 못하고 있다. 심대리의 자살 소동으로 인한 감시가 있었기에 삼구도 더 이상 심대리에게 갈 필요는 없었고, 내 집으로...아니 혜주와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가서 쉰다며 나가버린다... 내가 안방은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를 몇 번이고 했지만...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음흉한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을 하지 않는 삼구의 표정에 혜주가 약간은 골을 내는 듯 보였다. 병실 안에 다른 환자도 있었지만 이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혜주만 남게 되었다. 혜주는 누워있는 날 보면서 한숨을 쉰다... 맨날 병원이냐는 듯... 날 불쌍하다는 눈빛까지 보내며... 한숨을 쉰다... 나도 한숨이 나왔다... 쓰나미가 몰려간 후의 허탈함 같은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 심대리였기에.,,나온 한숨이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는데 혜주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픈 목인줄 뻔히 알면서 혜주에게 말을 건넨다... "목 많이 아파?..." ",,,,,,,,,,,아뇨..." 쉰 목소리에 날카롭게까지 들리는 음성이지만... 바로 내 옆에 혜주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사슴처럼 큰 눈망울에 작고 오뚝한 콧방울에 어울리는 작은 입술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날 위해 그렇게 서럽게 울어줬다는게 믿기지가 않았는데... 자신의 트라우마 마저 깨고 말을 하게 된 원인이 나라니... 미안하면서도 정말로...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심대리의 일은 안타까웠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혜주가 가장 소중했기에 혜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날 죽음으로 잡아당기려던 심대리마저도 용서가 되는 듯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죽을뻔한 나인데...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런 삭막함만 느껴지는 병원 안에서...그리고 방금 전 심대리의 심각한 얘기를 들은 직후인데도 혜주를 바라보고 있으니 미소를 짓게 된다. 어이없다는 듯 날 바라보는 혜주의 시선을 느꼈지만. 연신 미소를 짓고 있자 혜주도 피식 웃으며 예전에 누웠던 간이침대에 자리를 펴기 시작한다... "거...거기 불편하잖아..." "...괜.찮.아요."(목이 많이 아픈가 보다... 여전히 목을 잡고 얘기를 한다.) "내가 내려갈까?" "..." 정말로 기가 차다는 듯 날 바라보며 귀엽게 인상을 쓴다... "내가 내려갈게... 혜주야 위에서 자." "...참.나..." 내 말을 무시하고 다시 이불로 배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달랑 하나 있는 이불로 배계를 만들면... 뭘 덮고 자려는 건지...어제 아침에 학교에 입고 간 원피스 그대로였고, 거기에 여기저기 피도 묻어있는데다가 더렵혀졌는데도... 앉아서 이제야 묻어 있는 피를 보며 속상해 하는 혜주는 괜히 날 노려본다... 이런걸 입게 만든 내가 잘못이라는 듯 말이다... 푸념하듯 한숨을 쉬며 내게서 시선을 거둔 혜주는 옆에 있던 비닐봉지에서 내 재킷을 꺼낸다. 그리곤 누워서 이불을 덮듯 재킷을 덮는데... 짧은 재킷으로 상체만 덮어 혜주의 곧게 뻗은 다리가 그대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조금씩 손을 내려 재킷을 내리는 혜주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해서 다리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자...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혜주가 벌떡 일어난다. "저...집.에 다.녀.올래요..." "으.응?? 그래?..." "꼼.짝.하지 말.고 누.워 있어요...금.방 다.녀.올테니까요..." "근데 지금 시간에?" "집.이.랑 가.깝.잖아요. 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