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호색 -완 - 50편 (50/62)
“흐흐, 저것들 열 많이 받았겠는데. 눈앞에서 오욱 이 양반도 놓치고, 동료도 10명이나 잃었으니 뭐 가벼운 인사치고는 꽤 괜찮았어. 룰룰루~” 그렇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객잔에 도착한 비담. 124화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은 야차처럼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객잔 2층에서 들려오는 짐승 같은 울부짖음과 신음소리. 분명 서희의 목소리였다. 비담은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고 오욱을 팽개쳐둔 채 그대로 2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부서진 방문과 그 안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광경에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왜...왜지? 도대체 네 녀석이 어째서 서희를...?” “으윽! 으하아!!” 팽철영은 비담이 뒤에서 지켜본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대로 여인 안에다 자신의 욕망을 쏟아내 버렸다. 그리고 여인의 몸 위에 축 늘어질 찰나, 뼈를 에일 것처럼 살벌하게 전해져 오는 지독한 살기에 저도 모르게 튕기듯 일어나고 말았다. “누, 누구? 헉!!” “서...서희를......서희를...” 비담은 서희의 목에 선명하게 나있는 붉은 손자국을 발견하였다. 길게 혀를 빼문 채 이미 절명한 상태로 축 늘어져 있는 서희, 그리고 침상 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수많은 혈흔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그녀의 음부. 비담의 눈엔 서희의 모습과 이런 장면들이 마치 현실이 아닌 환상이나 악몽처럼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비담은 거대한 둔기로 강하게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게 비어 버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화류선을 날려 그녀의 처참해진 음부 위를 덮었다. 붉게 충혈 된 비담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흐르는 피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그는 그대로 손을 뻗어 허공섭물을 시전 하였다. 비담의 손짓에 따라 팽철영의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자석에 끌려가듯 서서히 그의 앞으로 끌려갔다. 비담은 자신의 앞으로 끌려온 팽철영의 목을 그러쥐더니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죽고 싶으냐?” 팽철영은 가공할 공포에 숨이 턱턱 막혀와 제대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기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힘겹게 입을 열어 결코 말해서는 안 될 끔찍한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내...내가 아니라 시....시봉세 모두가....벌인....크악!!” 대답하기 무섭게 창문을 뚫고 저만치 날아간 팽철영. 바닥에 널브러진 팽철영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쉽게 일어서질 못했다. 비담이 목을 움켜쥔 순간 그의 근맥들을 이미 모조리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비담은 허공을 밟은 채 천천히 쓰러져있는 팽철영에게 다가갔다. 팽철영은 욕이라도 하며 발악하고 싶었으나 서서히 자신을 옭아매는 차원이 다른 공포에 그저 부들부들 떠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드디어 자신 앞에서 사신의 발자국소리가 멈췄을 때 팽철영의 입을 비집고 엄청난 비명소리가 흘러나와 마을 전체를 덮쳤다. “크~~~~~~아~~~~~~~~~~~악!!!!!!” 비담의 양손에 세로로 찢어진 팽철영의 몸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비담은 쓰레기를 버리듯 양손에 들린 팽철영의 몸을 그대로 던져버린 후,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딘가 꽉 막힌 비통한 절규와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몸. “나....나의 서희가......끝까지 지켜주기로 약속한 사랑하는 내 여인이......으....으윽!!!” 비담의 눈에서 흐르던 피눈물이 마르고, 그의 입 꼬리가 괴기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그러더니 파르르 떨리던 그의 눈이 점차 붉게 변하며 눈 전체를 물들였고, 곧바로 이어진 소름끼치는 귀성. “크~~~~~~~~~~~~~~~~~~악!!! 키히히히!!! 피...피가...필요해.” 비담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끝없이 피를 갈구하는 혈마귀의 현신, 그 자체였다. 125화 제 13 장 혈우강호(血雨江湖) 폭발할 듯 터져 나오는 귀기. 비담은 혀로 입술을 한 번 쓰윽 핥더니 붉은 눈을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아선 자들을 바라보았다. “죽기 싫으면......내 앞을 막지 마라.” 혈귀대주 마영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귀기로 번들거리는 붉은 눈과 숨 막힐 듯 터져 나오는 요사스러운 기운, 그리고 흡사 무저갱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으스스한 음성까지. 과연 이자가 그들이 조금 전까지 쫓았던 동일인물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옷이며 생김새가 같은 인물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금쪽같은 대원들을 앗아간 주범이자 혈귀대의 명성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겨준 인물. 그냥 이대로 물러서기엔 그동안 쌓아왔던 지옥훈련과 악명이 너무 억울했다. “흐흐,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가 호락호락 물러날 것이라 여겼느냐? 혈채에 대한 대가는 같은 피로 받는 것이 무림의 불문율.” “크히히히.” 대화를 나누기 귀찮다는 듯 듣기 거북한 웃음소리와 함께 비담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혈귀대 50명은 갑자기 폭사된 귀기에 움찔 몸을 떨었고, 그것이 결국 그들을 옭아매는 덫이 되고 말았다. 비담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초식도, 무기도 없었다. 단순히 힘을 이용해 사람의 몸을 갈가리 찢는 단순무식하고 잔인한 손속뿐이었다. 마영은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라는 이질적인 감정을 맛보았다. 지옥훈련 동안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생경한 감정을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영은 두려움 속에 마냥 빠져있을 수도 없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부하들의 비명과 한 폭의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주변 광경 때문이었다. 마영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저, 저자에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 명의 부하라도 더 살리려면...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퇴각하라. 전원 산개하여 목숨을 부지하라. 이건 명령이다. 어서!” 마영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미쳐 날뛰는 악마에게 대적할 치기 따윈 애초에 사치라는 듯 그는 무조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벗어났다. 비담은 피로 얼룩진 얼굴을 쓰윽 손으로 한번 훑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보았다. “키히히히히!” 비담은 만족스러운 듯 음침한 괴소를 흘리다가 이내 몸을 날렸다. 멀어져 가는 그의 등 뒤엔 오로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와 피밖에 남지 않았다. 사도련주 극현도가 머무는 대전 안.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와 파르르 떨리는 극현도의 눈매가 예사 상황이 아님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혈귀대가 실패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처음 목표였던 멸사대를 제거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사오나 갑자기 등장한 괴한으로 인해 오욱을 놓쳤다고 하옵니다.” “고작 멸사대의 피라미 몇 마리 제거하고 사라질 소모품들이 아니었거늘...몇이나 돌아왔느냐?” “그것이 살아 귀환한 마영의 보고에 따르면 늦게 합류한 10명을 포함해 25명이라 하옵니다.” “하하하, 고작 스물다섯?” 극현도의 광소에 대전 안의 공기가 부르르 진동하더니 이내 천장에선 먼지마저 떨어졌다. “크윽, 계속 보고하겠습니다.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본 결과 괴한의 무공수위는 최소 현경 급이라 사료되옵니다.” “흐흐, 내가 혈귀대 100명을 상대로 75명을 도륙하고 남은 자들이 공포에 떨며 도주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 “련주님이라면 충분히...” “갈! 사실 그대로를 말하라.” “음...속하 목숨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련주님의 신위로도 가능성은 절반 이하라 여겨지옵니다. 동귀어진을 각오하시고 전력을 쏟아 부으신다면 중한 부상을 입으시겠으나 가능하기는 하옵니다.” “바로 보았다. 나 역시 혈귀대 100명을 상대로는 힘에 부친다. 그만큼 그들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무섭다. 그런데 생채기 하나 입지 않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자다. 어찌 생각하느냐?” “현재 마영을 포함한 혈귀대원 전부가 그자와 대적하며 느낀 공포로 인해 식음을 전폐한 채 제대로 된 증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영의 상태로 미루어 솔직히 엄청난 강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누구라 생각하느냐?” “처음엔 그자의 잔인한 손속 때문에 천마신교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마기가 아닌 정체불명의 기운이 분명하다는 증언이 많았기에 그것을 접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도맹이나 은송림에서 그만한 고수를 키워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들의 한계 상 아무리 욕심이 많다고는 하나 그렇게 잔인무도한 살인병기를 키워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황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공의 특성상 정파에선 그렇게 살기와 광기 가득한 인물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 속하의 생각입니다. ” “주화입마의 가능성은?” “가능성은 있겠으나 희박해 보입니다. 괴기스럽다는 특성이 다를 뿐 혈귀대를 도륙하는 일정 시간동안 계속 유지한 것으로 보아 잠능을 폭발시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리무중이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미친놈이라...솔직히 그 녀석이 매우 탐나는구나. 하지만 혈귀대를 저 모양으로 만들어 써먹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 혈채는 받아내야겠지. 팽철영의 시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사지간의 인물인 것 같으니 앞으로 그 녀석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라.” “복명!” 혼자 남은 극현도는 재미난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흥미 가득한 얼굴로 태사의의 팔걸이를 툭툭 쳤다. “흐흐, 재미있는 녀석이 등장했군. 마음 같아선 당장 련으로 끌어들이고 싶으나 통제하기가 만만치 않을 터. 누구를 겨냥하든 상관없으니 마음껏 무림을 흔들고 들쑤셔놓아라.” 극현도의 머리가 무섭게 회전하며 뜬금없이 나타난 의외의 변수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편 극현도가 여러 가지 계략을 구상하며 머리를 굴리던 그 시각. 광기에 휩싸인 비담이 하북팽가 앞에 나타났다. 세가의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은 봉두난발에 옷 여기저기 굳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비담의 행색에 잔뜩 긴장하며 더듬더듬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웨, 웬 놈이냐?” “오........정.........회.......” 질문에 돌아온 답은 단지 오정회라는 을씨년스러운 음성뿐. 무사들은 흡사 귀신을 본 듯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가...감히 여기가 어...어디라고...썩 물러가지 못할까?” “지.......운.......다......” “뭐? 지워? 무엇을...으~~~~~악!!!” 그 비명은 무림사에 전무후무한 대참사의 시작을 알리는 구슬픈 신호탄이었다. 비담은 찢겨진 무사의 시체를 옆으로 던진 후, 석상처럼 굳어 있는 다른 무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으....으....오지마. 크~~악!!” 비담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고 있던 무사의 가슴을 사정없이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잡혀 나오는 것은 놀랍게도 팔딱팔딱 뛰고 있는 붉은 심장. 126화 절명한 무사의 공포 가득한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의혹이 가득했다. 무사가 허물어지듯 모로 쓰러지자 비담은 자신의 손에서 아직도 제 본분을 하기 위해 쿵쾅쿵쾅 뛰고 있던 심장을 그대로 터트려버렸다. 그리곤 붉은 눈을 들어 웅장한 필체로 써져있는 하북팽가의 현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담의 눈이 닿자마자 현판은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푸스스스스 “지....운......다.....” 비담의 신형이 꺼지듯 연기처럼 사라졌다. 비담이 사라진 자리엔 오직 그가 남긴 말과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현판뿐이었다. 다음 날. 무림은 경천동지할 소문 하나에 몸살을 앓고 말았다. ‘하북팽가 멸문.’ 이 여섯 자가 무림에 던진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 수많은 왕조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무림의 큰 축 하나가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다. 사람들은 허황되고 과장된 소문으로 치부하며 그 누구하나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문을 가져온 이를 미쳤다며 놀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정도맹과 오정회에서 모든 사실을 확인하고 밝혔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런데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무렵 들려온 또 하나의 소문. ‘하북팽가를 멸문시킨 자의 정체는 혈안광마(血眼狂魔)다. 빨갛게 물든 그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손짓하리니. 피하라, 무조건 피하라.’ 피처럼 붉은 눈을 가진 미친 악마. 그것이 비담에게 생긴 별호였다. 사람들은 소문 하나에 또다시 공포에 떨며 전율하였고...숨죽였다. 긴급 소집된 오정회 장로회의. 회의장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정회의 다섯 축을 담당하는 자리 중 한 곳인 하북팽가의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대세가의 장로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그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모용세가의 전대 가주 천무신검(天武神劍) 모용수가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의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되오?” “전멸. 그 미친 악마가 지나간 뒤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이다.” “정녕 생존자가 없소?” “조사를 담당했던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무공을 모르는 하인들을 제외한 하북팽가의 모든 식솔들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찢어진 채 발견되었다는 보고였소.” “으흠.” 회의장 안은 또 다시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정사대전 이후 오대세가가 성세를 구가하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참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단 1인에 의해서 말이다. 오정회 장로들은 큰 모멸감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그자의 출신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손속이나 성정만 가지고 미루어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더불어 혈안광마가 무림전체를 겨냥하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 오정회를 향해 발톱을 드러낸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관절 무슨 까닭으로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 여기시오? 단순히 원한관계로 치부하기엔 피해나 상황이 너무 끔찍한 것 같소만.”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북팽가가 주변의 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잦은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런 참상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북팽가와 마찰이 있었던 곳들의 역량으로 보아 그만한 고수를 고용했다는 것도 역시 어불성설이고요. 그렇다면 단순히 광기에 휩싸인 미친놈의 소행이란 결론인데...아무래도 그자의 행보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저 역시 검황 이 친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현재로써는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자가 우리 오정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물론 그럴 수도 있으니 세가 자체적으로 철저히 대비를 하고 자구책을 마련해야겠지요. 괜히 섣불리 뭉쳤다가는 사도련이나 황제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세가의 특성상 모두 혈족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세가를 비우고 어느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인질을 제공하여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정도맹에서 혈안광마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추살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조금 더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합시다. ” “알겠소. 그럼 각자 세가로 돌아가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해 주시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소이다.” 오정회 장로들의 실질적인 수장인 벽력수(霹靂手) 황보영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의가 끝났음을 알렸다. 한편 황제가 머물고 있는 황궁의 대전 안. 홍력제는 동창의 수장으로부터 무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었다. 동창 제독의 구체적인 보고가 끝난 후, 홍력제는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하였다. “하하하, 무림에 재미있는 녀석이 등장했구나. 아주 기특해.” “어찌하면 좋을지 명을 내려주십시오, 폐하.” “그 녀석 때문에 무림말살계획을 진행하는 게 아주 수월해지겠어. 물론 이번 사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놈들도 있겠지?” “동창의 조사에 의하면 제일 먼저 정도맹이 움직일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정파의 기치를 내걸고 잔인무도한 행위를 일삼는 자들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하여 제거하는 것이 존재이유인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정회는 어찌 나올 거라 생각하느냐?” “집안 단속하는데 여념이 없을 것이옵니다. 비록 하북팽가가 몰살되어 사라졌다고는 하나 정도맹에 비하면 그들의 결속력은 약한 편이옵니다. 더불어 그들은 이문에 밝은 승냥이들이기에 서로 눈치만 보며 섣불리 뭉치려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후후, 그럼 각개격파 당할 소지가 다분하구나. 사도련이나 흑천맹의 움직임은?” “사도련은 이번 사태를 최대한 이용하려 들 것입니다. 저번 황궁에서의 사태나 각 문파에 간자들을 심어 내분을 일으키고 그들을 회유하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무림을 도모하는 자들입니다. 더불어 그만한 힘 역시 가지고 있기에 적극적으로 그자를 지원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사옵니다. 반면 흑천맹은 정사대전의 여파가 채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약할 것으로 보입니다. ” “무림을 지워버리기 위해선 우리 역시 그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되겠구나. 당장 동창과 금의위에서 무공이 탁월한 자들을 선별하여 그 녀석을 지원하라. 단, 우리가 나섰다는 것을 들켜서는 아니 된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럼 어느 선까지 지원해야 할는지 하명해 주시옵소서.” “그 녀석이 활동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주변만 정리해 주거라.” “하명하신대로 거행하겠나이다.” 동창 제독이 길게 읍을 한 후 뒷걸음쳐 물러나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제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드리워졌다. “혈안광마라...역시 사냥을 하려면 숲을 뒤흔들어야 하는 법. 시의적절 나타난 유능한 몰이꾼이 짐을 돕는구나. 크하하하하.” 황제의 미소는 어느새 앙천대소로 바뀌어 큰 대전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127화 같은 시각. 사도련의 대전 안에도 황궁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하의 보고를 받는 극현도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던 것이다. “호오, 혈안광마라는 별호까지 생겼다고?” “그렇사옵니다.” “흐흐, 그자의 활약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군. 그나저나 그자의 행보는?” “지금 현재의 이동경로로 보았을 때 다음 목표는 모용세가입니다.” “모용세가?” “그렇사옵니다. 하북팽가를 기점으로 곧장 북동진하는 것으로 보아 모용세가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합니다.” “그럼 그자의 목표가 오정회라는 것이냐?” “속단하긴 이르나 현재로써는 오정회를 목표로 움직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중간에 있는 중소방파 그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자가 만약 무림 자체에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일을 벌였다면 진주언가 역시 무너뜨려야 앞뒤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진주언가를 버젓이 통과하면서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진주언가라면 창으로 이름을 떨친 전통과 역사가 있는 무가로군. 비록 오정회에 들진 못했으나 무림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세 역시 무시할 순 없지. 그럼 오정회를 목표로 움직인다는 말이 일리가 있겠어. 참, 황궁의 늙은 구렁이는?” “아마도 이자의 뒤를 봐줄 것 같습니다.” “까닭은?” “오래전부터 무림을 말살하려던 자입니다. 누구보다 무림이 혼란 속에 자멸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흐흐, 아마도 어깨춤을 추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겠지. 하지만 우리로써도 전혀 손해가 아니니 황궁의 구렁이는 그냥 내버려둔다. 나중에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려면 힘을 아껴둬야 할 터이니.”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지 명을 내려주십시오.” “후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무림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 우리 역시 그놈에게 힘을 실어준다. 혈살대(血殺隊) 300을 내보내 오정회의 길목을 끊는다.” “복명!” ‘우선 무림에서 오정회를 지워버린다. 황제 역시 어부지리를 노리며 은밀히 움직일 터. 뒷날 황궁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자와 무림을 놓고 승부를 겨루려면 우선은 후방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겠지. 하늘이 나를 돕기 위해 혈귀를 보내줬음이야.’ “크하하하!!” 혈귀대가 입은 타격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 있던 극현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전이 떠나가라 웃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운명의 손이 자신을 무림지존으로 이끄는 것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혈안광마(血眼狂魔)’. 이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잠잠하던 무림이 요동치려 하였다. 바야흐로 혈우강호(血雨江湖)의 도래. 정사대전의 아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무림은 또다시 진한 혈향에 신음을 흘려야만 하리라. 피비린내 가득한 비담의 행보로 인해 강호무림은 때 아닌 몸살을 앓았다. 혈안광마를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추적에 나섰던 정도맹은 의문의 무사들에 의해 지리멸렬 무너졌고, 모용세가로 지원을 나간 오정회의 무력 역시 핏빛 복면을 한 괴한들에 의해 길목이 차단당한 채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