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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호색 -완 - 45편 (45/62)

2026-10-04 14:52:57 조회 4
비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희로 인해 하루쯤 시장을 돌아다니는 고통을 감수하기로 하였다. 물론 시장을 돌아다닌 지 반 시진 만에 결심이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었기에 지금 당장은 그 역시 서희의 모습에 동화되어 마냥 행복했다. 빙루 역시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였다. 한동안 비담의 품에서 즐거워하던 서희가 이내 다시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기쁨에 겨워 장신구를 품평하고 몸에 두르며 자랑하였고, 비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가는 얼굴로 그것들에 맞장구도 쳐주고 미사여구를 날리느라 밤은 그렇게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망각이란 큰 강에 구인철을 던져버린 채. 이제나 저제나 초조한 마음으로 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구인철. 밤새 10년은 늙어버린 듯 얼굴이 초췌하였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이성보가 흠칫 놀라는 것을 시작으로 아침식사를 위해 삼삼오오 식당에 모여들던 까망이들 역시 주군의 안위가 걱정되어 한마디씩 던지는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5년 폐관에도 의연하시던 분이...” “주군의 상태를 보니 어젯밤 거절당하신 게 분명해. 하기야 평생 검만 알던 분이니.” “주군, 힘내십시오.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면 오십 번이고 백 번이고 찍으시면 되잖습니까? 저희 흑천대의 최고 자랑거리가 우직한 뚝심이니 언제고 빙소저께서도 주군의 마음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구일철은 퀭해진 눈을 들어 위로랍시고 던지는 그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리곤 이내 다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어깨가 축 쳐진 구인철을 위로하려던 흑천대원들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구인철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는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었으니. 비담 역시 밤새 시달렸는지 눈이 멍하게 풀린 채 식당으로 내려왔다. 자신의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 장신구였건만 세세하게 품평을 요구하는 두 여인들의 등쌀에 정신을 놓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다 흡사 면경을 들여다보듯 자신과 똑같은 몰골의 구인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헙!! 혀, 형님...’ 비담은 간밤 엄청난 심력을 소모했는지 폭삭 늙어버린 구인철의 모습을 대하자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뿔싸! 빙소저의 마음을 떠보겠다며 찾아간 서희와 내가 장신구 품평이나 늘어놓는 동안 밤새 애를 태우며 기다리셨구나. 이 일을 어쩐다.’ 축 쳐진 어깨로 먼 허공을 응시하는 구인철에게 쭈뼛쭈뼛 다가간 비담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 “소제가 그만 형님께 죽을죄를 지었군요. 그리 자신만만 큰 소리를 쳤으니 밤새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리셨는지 눈에 훤하네요. 모두가 부덕한 소제의 탓입니다.” “매제?” “네? 예, 형님.” “그녀가 거절하던가?” “아, 아닙니다. 사, 사실은...” “망설이지 말고 말해주게.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단단히 해두었네.” “휴우. 사실은 그게 말도 꺼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 구인철이 서둘러 대답을 재촉했다. 자신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어 거절했다 여기며 밤새 자포자기 하고 있었는데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비담의 말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막 비담이 내막을 설명하려던 찰나. “호호호.” “헤헤헤.” 빙루와 서희가 짜랑짜랑한 교소를 터트리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비담은 그녀들의 몸에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린 장신구들을 보며 곧바로 헛구역질을 하였고, 영문을 알 리 없는 구인철은 안쓰러운 눈으로 비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자네 괜찮은가?” “혀, 형님. 저, 저 물건들 때문에...” 비담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두 여인을 가리켰고, 구인철은 의아한 눈으로 두 여인과 비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물건들 때문이라니...설마 빙 소저와 내 누이를 지칭하는 것인가?” “우웩! 그것이 아니오라 몸에 주렁주렁 걸친 저 물건들 말입니다.” “허허, 알아듣게 설명을 하게.” “몸에 달린 저 장신구들 말입니다. 어제 형님 이야기를 꺼내러 갔다가 저 물건들만 밤새 구경하며 시달렸더니 저도 모르게...” “그럼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이...흠!” 밤사이 벌어졌을 만행을 짐작했음인지 구인철이 오히려 측은한 눈빛으로 비담을 위로하였다. 구인철 역시 빙루와 함께 시장을 돌며 수없이 겪었던 일이기에 밤새 곱절로 시달렸을 비담의 처지가 눈에 선했던 것이다. 그때 자신의 장신구 때문임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서희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비담을 간호하겠다며 난리를 부렸고, 그럴수록 눈앞에서 흔들리는 장신구들로 인해 비담의 눈은 더욱 참담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때 아닌 소동으로 아침은 유야무야 지나갔고, 흑천대와 빙루 역시 심심한 위로의 말을 남긴 채 흑천맹으로 떠나갔다. 그렇게 구인철의 염원은 훗날을 기약하며 저 멀리 멀어져갔다. 109화 빙루가 흑막의 안가를 떠난 날. 하루 종일 요양을 취한 비담은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리곤 이내 검황을 만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안가 깊숙이 위치한 창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흑막의 안가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창고 안. 두 여인이 포박당한 채 죽은 듯 누워있었다. 머리는 산발이 된 채, 죽음보다 더한 상실감에 두 눈이 칙칙하게 꺼져 있었지만 그 미모만큼은 여전히 지하실 한쪽의 어둠을 밀어낼 정도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담은 죽은 듯 누워있는 두 여인에게 다가가 한참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뭐 얻어먹을 것 있다고 황궁에 들락거려 이리 험한 꼴을 당하는지...쯧쯧.” 비담의 혀 차는 소리에 두 여인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곤 이내 흘러나오는 표독스러운 빛. 장정 서너 명은 찜 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지독한 살기였다. “이...간악한 음적. 우리를 이리 대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것 같으냐? 감히...감히...” 뒷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는 남궁소미였다. 이미 하복부에서 찌르르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자신의 몸에 어떤 만행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기에. 하지만 마지막 수치심에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하였다. 제갈현아 역시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나 비담과 말을 섞는 것조차 수치라 여겼기에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대신 줄기줄기 살기를 내뿜는 것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간악한 음적? 내가 할 소리를 그리 넙죽 떠벌리면 곤란한데 말이야. 내가 볼 때는 간악한 음적은 내가 아니라 두 소저들 같은데. 내가 말이야, 천하를 주유한 경험이 일천하기는 해도 색공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거든. 헌데 그 정도로 지독한 최음제는 정녕 처음 경험해 봤다는 거지. 내 평생 그런 너저분한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할 줄 알았는데 또 겪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검황 그 영감탱이가 최음제에도 일가견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아니 솔직히 누가 짐작이나 했겠냐고. 딱 겉모습만 봐서는 신선인데 말이야. 후후, 그나저나 나 역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그건 서로 간에 피차 없었던 일로 하자고. 너무 자기들만 피해자인양 그리 억울해 뒈질 것 같다는 표정은 짓지 말아줘. 그건 그렇고 이미 서로 간에 재미를 보고 셈을 끝낸 것 까지는 좋은데...” 비담이 말끝을 흐리자 제갈현아와 남궁소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불안한 듯 물었다. “우릴 어쩔 셈이냐?” “생각 같아선 그냥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 쳐 박아 두고 싶은데 늙은이랑 약속한 것도 있으니 넘겨는 줘야겠지. 그런데 셈을 따져보니 조금 손해란 말이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억울하고 쪽이 팔려서 말이지. 내가 구룡포 뒤집어 쓴 영감 앞에서 춤을 추며 놀아난 것이 누구 때문이냐고...휴우, 좋아. 백 번 양보해서 이 나라 제일 높은 양반 앞에서 재롱 좀 떨었다고 치자.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여서 그 양반이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버렸지 뭐야. 일이 이처럼 피곤하게 돌아가는데 내가 뭐 성인군자도 아니고 응당 대가를 받아내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 게슴츠레 웃는 비담으로 인해 두 여인은 오싹 소름이 돋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비담은 그녀들의 행동에 실소를 머금으며 툴툴 웃고 말았다. “후후, 꿈도 야무져라. 내가 너희들을 다시 덮쳐줄 거라 오해하는 거야? 물론 서운하고 아쉽겠지만 그런 기연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한 번 만족한 것으로 끝내자고.” “그럼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간단해. 황제가 미쳐 날뛰는 것은 당장 어쩔 수도 없거니와 중과부적이라 너희도 힘에 부칠 거야. 대신 련을 좀 손봐줬으면 좋겠어. 내가 예전에 받은 선물도 있고 하니 섭섭지 않게 대접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싫다면?” “싫어? 뭐 싫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나도 숨통이 좀 트여야 하니까 섬응탄인지 뭔지 하는 화탄의 출처와 사용내역, 물증들을 관에 찌르고 무림에 퍼트려 시간을 버는 수밖에. 아마 군침 흘리며 달라붙을 파리들이 꽤나 많을 거야. 그리고 보아하니 시봉세인지 뭔지 하는 후기지수 모임에 좋아 하는 사내들이 있다던데 그쪽에도 둘의 상태를 흘려줘야지. 물론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니까 다 포용하고 이해해줄 거야. 간악한 음적 운운하며 나를 잡아 죽이려 혈안이 되겠지만 둘의 미래는 어찌 될까? 과연 그들이 뒤집어 쓴 허울 좋은 가면이 너희들을 보듬어 준 채 끝까지 버틸까? 후후, 내기해도 좋아. 아마 겉으론 너희들을 이해하는 척 감싸겠지만 곧 시들해지고 말거야. 원래 덜 여문 사내들이란 그리 하고도 남으니까. 자, 대충 내 얘기는 여기까지인데 아직도 싫다면 어쩔 수 없고...” “이, 이런 천인공노할 음적. 결단코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리도 사리분별이 엉망이니 그리 뒤통수나 얻어맞고 다니지. 쯧쯧,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어. 용서란 당한 자가 하는 것이고, 넓은 아량을 베풀 정도의 힘을 가진 이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당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피해자는 나다. 그리고 너희들의 지금 꼬락서니처럼 잘나신 오정회 양반들이 다 덤벼도 날 어찌하진 못한다. 이제 대충 감이 잡히나? 용서란 내가 너희들에게 베푸는 것이지 너희처럼 꼼수나 부리는 잡것들이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 뭔가 항변의 말을 하려던 둘은 스산한 살기를 피워 올리는 비담으로 인해 그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마음 같아선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비담이었지만 바락바락 대들며 생을 마감하기엔 그녀들의 원한이 너무도 컸다. ‘두고 보자. 오늘의 치욕과 고통 모두 몇 갑절로 되돌려주마.’ “우리가 어찌하면 되느냐?” 서둘러 감정을 수습한 제갈현아가 감정이 배제된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순식간에 감정을 제어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모습에 비담은 시들해진 표정을 지으며 기계적으로 설명하였다. “뭐, 간단해. 너희들이 정면으로 사도련의 본진을 쳐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으나 그럼 셈이 어긋나겠지. 그래서 더도 말고 사도련 지부들만 들쑤셔주면 된다. 정확히 한 달간만 그리해 준다면 앞으로 이리 서로 얼굴 붉히며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또다시 나를 건드리면 장담할 순 없겠지만.”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제갈현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나 우리 오정회에서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너희들 편할 대로. 단, 한 달간 그들의 이목을 붙잡지 못할 시엔 나 역시 너희들의 치부가 공개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아니, 직접 퍼트리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오정회의 역량을 무시하지 마라. 그 정도는 소리 소문 없이 해치울 수 있으니. 그건 그렇고 더 할 말이 남았느냐?” “아니. 전할 말은 그게 다야.” “그럼 그만 꺼져줬으면 좋겠구나. 얼굴 마주하고 말을 섞기가 심히 역겨우니.” ‘그리 당하고도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니. 명문가라는 간판이 가진 양날의 검이지.’ 고개를 모로 비트는 두 여인의 행동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찬 비담이 창고를 조용히 벗어났다. 110화 다음 날. 비담은 구인철과 함께 두 여인을 마차에 실은 채 백마사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초조함과 걱정, 분노로 인해 얼굴이 반쪽이 된 검황 남궁헌수가 이미 도착해 비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궁헌수는 황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만만치 않았던 듯 여기저기 옷이 찢어진 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아마도 증손녀와 제갈현아의 안위가 걱정되어 갈아입을 정신도 없이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하하! 무척 기대하였는데 이런 제 염원과는 달리 무사하셨네요. 겉모습만 봐서는 딱 오늘 내일 우화등선하게 생기셨는데 말이죠.” 비담이 손까지 흔들며 등장하자 검황의 미간이 내 천자를 그리며 꿈틀거렸다. “현아와 소미는?” “이 안에 무사히 있습니다.” 비담이 탕탕 마차의 짐칸을 두드렸다. 짐승들을 실어 나를 때 사용하는 짐칸이 있는 마차였기에 순간 검황의 얼굴이 확 구겨지며 노성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네 이노옴!!!” “아이고, 귀청이야. 뭘 삶아 자셨기에 그리 목청이 좋은지. 그러다 이 안에 들어있는 예쁜 짐승들 경기 일으키니 우리 살살 시작합시다.” “이, 이런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자자, 흥분 가라앉히세요. 어르신 나이엔 흥분하는 게 제일 위험하다는 것 모르세요? 그리 급 흥분하시면 뒷목 잡고 쓰러지십니다. 좋게 좋게 천천히 하자고요.” “흐음! 원하는 게 무엇이냐?” “원하는 건 여기 짐칸 안에 있는 무림(無林)이한테 다 말해 두었으니 나중에 차차 들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약소하나마 어르신이 마련한 귀하고 황홀한 약에 대한 보답으로 저 역시 잊지 못할 선물을 준비해 두었으니 댁에 가시거들랑 풀어보시고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무림(無林)? 무림? 네 이놈! 거기 서지 못할까?” 천천히 하자던 말과는 반대로 서둘러 제 할 말만 끝낸 비담이 구인철과 도주를 하였고, 낯선 별호를 주워 삼키던 남궁헌수가 서둘러 마차 짐칸의 천을 거두었다. 그 안에는 두 여인이 포박당한 채 잠들어 있었는데 틀림없는 제갈현아와 남궁소미였다. 불안한 마음에 남궁헌수는 완력으로 짐칸을 분해해버렸고, 두 여인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수혈이 눌려 잠들어 있었기에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내 잠식해 들어오는 분노. 그런데 분노로 인해 몸을 부들부들 떠는 남궁헌수의 귓가로 저만치 멀어지는 비담으로부터 기다렸다는 듯 전음이 날아들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쫓아올 생각일랑은 일찌감치 접으쇼. 아주 구린내 풀풀 나는 오대세가의 치부들이 세상에 공개되는 걸 영감도 바라진 않을 테니. 참, 그리고 약 잘 듭디다. 영감 덕분에 절세미녀 둘을 끼고 질펀하게 노는 호사를 누렸지 뭐요. 그나저나 무슨 비법으로 조제했는지 몰라도 약발이 활활 터지다 못해 넘쳐흐르는 뜨거운 밤이었소. 나중에 둘에게 마저 들으면 무지 재미질 것이오. 아무튼 그러다 복상사 당할 소지가 다분하니 영감은 남용하지 말고 적당히 애용하길 권하는 바요. 무림말학의 가슴 절절한 마지막 충고였소. 그럼!’ 비담의 전음으로 인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궁헌수가 쓰러져있는 두 여인에게 공허한 시선을 던지기 무섭게 엄청난 노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비~~~~~~~~~~~담!!! 네 이노옴! 결단코 네놈을 곱게 죽이진 않을 것이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갈가리 찢어놓고야 말 것이다.” 식후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시듯 남궁헌수의 속을 뒤집어 놓은 비담은 곧바로 구인철과 헤어진 후 서희와 매영을 데리고 부흥상회를 찾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부흥상회의 모습은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회가 새롭구나. 서희를 만난 일이 어제 일 마냥 또렷한데. 후후, 어찌 보면 이곳이 나에겐 성지라 해야 하나?’ 옛일을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젖었던 비담이 곧 훌훌 털어내고 매영을 대동한 채 부흥상회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서 오신 누구십니까?” “성일상단의 양대인이십니다.” 인피면구를 통해 수행원의 모습으로 바꾼 비담이 근엄한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서있는 중년남성을 소개하였다. 물론 근엄한 모습의 중년 남성은 역체변용술로 모습을 바꾼 매영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여기 있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문지기는 예약된 명부를 통해 성일상단의 상단주가 방문할 것임을 확인한 후 일행을 안으로 안내하였다. 문지기를 따라 안쪽으로 이동하며 비담은 슬쩍 서희를 돌아보았다. 그녀 역시 눈이 초롱초롱해져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모습이 비담과의 옛일을 추억함이 분명해 보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비담은 하인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던 서희를 향해 과장된 행동으로 입술을 내민 후 자신의 따귀를 살짝 때리며 눈이 멍하게 풀린 모습을 연출하였다. 서희는 비담의 행동에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뒤를 돌아보는 문지기로 인해 서둘러 표정을 수습하였다.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뒤로 돌렸던 문지기는 고개를 갸우뚱한 후 다시 일행을 안내하였고, 매영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웃음 짓고 있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를 끝낸 문지기가 돌아가고, 일행은 준비된 다과를 들며 조석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비워갈 무렵. “하하하,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 법도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워낙 과중한 업무에 치이다보니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과장된 웃음과 함께 중년 남성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 양반이군.’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성일상단의 양승욱이라 합니다.” “어떤 분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흥상회라는 조그마한 상단을 운영하는 조석태입니다.” “하하하, 요즘 상단계에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흥상회가 조그마한 상단이라 하시니 제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군요. 아무튼 무척 바쁘신 것 같으니 바로 찾아온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용건을 단도직입적으로 꺼내겠다는 양승욱의 태도에 일견 놀라워하던 조석태가 이내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천운이 닿았는지 이번에 제가 감숙성 인근에서 대규모 금광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막대한 자금이 생겼음에도 믿고 거래할 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더군요. 고민을 거듭하며 여러 상단들을 물색하던 중 자금의 규모나 거래량, 상단주의 인품까지 고려해본 결과 부흥상회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3년. 금광에서 나오는 모든 금을 부흥상회를 통해 거래하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흠. 양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금맥만을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는 자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의 성을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 하더군요.” “저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하, 따로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알다시피 저희처럼 중소 규모의 상단이 거래를 주도하기엔 금이라는 물건이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대신 대가는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릴 것이니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저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거래를 하지요.”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한 조석태였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었으니 인간인 이상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이신지?” “오면서 상회 안을 둘러보니 인공으로 조성된 가산이며, 호수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더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곳에 며칠 묵으며 구경을 하였으면 좋겠는데...” “하하, 그렇게 하십시오. 따로 숙소를 내어드릴 테니 며칠이고 이곳에 머물며 즐기셔도 무방합니다.” 111화 “고맙습니다. 역시나 제 안목이 어긋나지 않았군요. 그럼 기꺼운 마음으로 머물겠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계약서를 작성한 후 배정된 숙소로 이동한 비담 일행은 차후의 일을 의논하였다. “일단...잠입까지는 성공했고. 매영 당신은 추후 조석태의 역할을 대행할 것이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관찰하시오. 그의 습관이며 행동, 말투를 비롯해 세세한 부분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나중에 그를 대신해 부흥상회를 장악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저는 뭘 하면 되죠?” “매영의 관찰이 끝나면 시행할 수 있도록 당신은 ‘미염경혼공’을 준비해 주시오. 련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보기 좋게 한 방 먹이려면 그자의 기억을 모조리 뽑아내야하니까.” “알겠어요, 가가.” “자,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저들은 우리가 이곳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테니 일종의 유희라 생각하고 즐깁시다. 그럼.” 비담이 밝게 웃으며 대화를 마쳤다. 매영과 서희가 각자 배정된 방으로 이동하고 혼자 남은 비담은 여러 가지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