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호색 -완 - 44편 (44/62)
그게 아니오라...너무 뜨거워서 저도 모르게...소녀는 괜찮으니 괘념치 마시고...” “알았소, 혹시 아프거든 참지 말고 꼭 말해주시오.” “네...상공.” 서희의 질끈 감은 눈 위로 가늘고 긴 속눈썹들이 춤을 추듯 떨렸다. 비담은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짧게 입을 맞춰준 후 다시 자신의 양물을 천천히 전진시켰다. 서희의 동굴 내부가 급격히 수축하며 비담의 양물을 환영하듯 빨아들였다. “으음!” “아아!!” 비담은 색공을 익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아찔함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자신의 양물 끝에서 온몸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전율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이, 이런 느낌이라니. 이래서 그동안 수많은 여인을 품었음에도 공허함을 느꼈던 거로구나. 색공을 배제한 상태에서야 진정한 남녀 간의 교합이 무엇인지를 깨닫다니. 그동안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 색기를 모은다는 목적과 욕구분출만을 위해서 교합을 하였으니 당연히 공허해질 수밖에...’ 비담은 태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음양의 이치를 깨달았고, 더불어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나누는 남녀 간의 정사야 말로 자연이 안배한 최고의 축복임을 깨달았다. 말이 내달리듯 전신을 타고 흐르는 짜릿함에 온몸을 맡긴 채 서희가 주는 따스함과 조임을 만끽하던 비담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까지 띠운 채 열심히 움직였다. “하아! 하아! 너무 좋아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상공.” “후우! 후우! 나도 태어나 이런 기분은 처음이구려. 정말 당신은 내게 크나큰 축복이고, 세상이 내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라오. 다시는 그대 곁을 떠나지 않으리다.” “아! 사랑해요. 흐윽!” “나도 사랑하오!” 서희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다가 으스러져라 비담을 꼭 껴안았다. 106화 비담 역시 자신에게 안겨오는 서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허리를 움직여 사랑을 속삭이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게 방안의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열기가 고조될 무렵. 비담은 자신의 하물에서 터질 듯 솟아오르는 느낌에 온 신경이 한 점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던 정액의 사정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비담은 더욱 속도를 높여 허리를 움직였고, 이내 꽉 막혀 답답함을 호소하던 무언가가 활화산이 터지듯 맹렬히 터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흐흐흠!! 아!” 비담은 세상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 부르르 몸을 떨며 그대로 서희의 몸 안에 자신의 정액을 쏟아내었다. 서희는 비담이 그대로 정지한 채 부르르 몸을 떨자 더욱 자신의 음부를 밀착시켜 비담의 양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서 꿈틀대는 비담의 양물을 느끼며 비담의 입술을 찾았다. 비담은 쓰러지듯 서희의 몸 위로 포개졌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가 얼굴을 부비며 입술을 찾자 맹렬히 빨아들였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느끼며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비담은 색공을 익힌 이후 처음으로 사정을 한 뒤 위용을 잃고 줄어든 자신의 물건을 서희의 동굴에서 꺼내었다. 축 늘어진 자신의 양물을 바라보며 약간 허무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비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엉켜있는 서희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쓸어 넘겨주었다. 처음 그녀를 안았던 그날 밤처럼. “이 순간이 마치 꿈속을 거니는 것처럼 아득하고 기분 좋구려.” “저도 그래요. 상공의 품에 안겨 있었던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답니다. 그런데 상공? 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게 뭐요?” “이제 상공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너무 궁금해서요. 유모를 조르고 졸라 물어보긴 하였는데 감이 잡히질 않아요. 분명 유모 말대로라면 상공께서 부르르 떠시긴 하였는데 확실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왜 궁금한지 물어봐도 괜찮겠소?” “그, 그야 당연히 상공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서 상공과 꼭 닮은 의젓하고 어여쁜 아이들을 많이 낳고 싶어요. 우리 사랑의 결실이 태어난다면 얼마나 경이로울지...벌써부터 가슴이 이리 두근두근 떨리고 설레는 걸요.” 비담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그녀를 덥석 안고 말았다. “흡흡, 사, 상공? 갑자기 그러시면...소, 소녀 다,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진단 말이에요.” “그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이젠 상상하기조차 두렵고 싫구려. 음, 확답은 못하겠으나 우리가 서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 경이로운 소원을 이루지 않을까 싶소만. 아직 밤은 많이 남았고, 노력은 미진하니 더욱 정진해 봅시다.” “꺄악! 상공. 갑자기 거길 만지시면...” “하하하, 우리 사이에 뭐가 부끄러워 그러시오. 그러지 말고 이리 오시오.” “그, 그래도 너무 부끄러운데...으흠!!” 비담의 손길을 피해 몸을 비틀던 서희는 이내 그의 현란한 기교에 무너져버렸고, 뜨겁고 끈적끈적한 숨을 몰아쉬었다. 비담은 다시 혈기왕성하게 되살아난 자신의 양물을 서희의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이 체득한 방중술 중에 아직 순진무구한 서희가 충격을 덜 받는 것들로 엄선하여 여러 가지 체위를 시도하였다. 처음엔 조금 어색해하던 서희도 차츰 적응을 하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비담의 동작에 맞추어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둘의 머릿속에서 이곳이 흑막의 안가라는 사실은 잊혀져버렸고, 본의 아니게 안가에 묵고 있던 사람들은 밤새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강구하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다음 날 아침. 비담과 서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듯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식당으로 내려왔다. 모두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이성보는 익히 짐작했다는 듯 껄껄 웃으며 둘을 반겼고, 선화는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아침인사를 건네었다. 까망이들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둘을 당혹하게 만들었고, 비담은 짐짓 헛기침을 남발하며 애매한 상황을 유야무야 넘겨버렸다. 오직 전날 밤의 향연을 이해하지 못한 빙루 만이 순진한 표정으로 멀뚱하게 앉아 왁자지껄 떠드는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자코 돌아가던 상황을 지켜보던 구인철은 오붓하게 회포를 푼 둘을 골려주고 싶었던지 아침부터 이성보에게 농을 걸었다. “루주님, 안가의 살림이 걱정이 되어 밤새 잠을 한숨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돈이 부족하시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삐거덕 거리는 침상 몇 개 정도는 제 사비로 충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밤새 요란...읍읍.” “하하,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 오라버니? 어제 과음을 하시더니 술이 덜 깨셨나 보네요. 호호, 저랑 밖에 나가서 조용히 이야기 좀 나눌까요?” “읍읍, 아, 아니다. 술 다 깼어.” “그럼 조용히 아침 드셔요. 알았죠?” 화들짝 놀란 서희가 급히 구인철의 입을 막고는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았다. 구인철은 별일 아니라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가 쌍심지를 켠 서희를 마주하곤 서둘러 입을 닫았다. 약간의 무력을 사용하여 구인철을 봉쇄한 서희가 아무렇지 않은 듯 모두를 휘 둘러보더니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까망이들 역시 농을 걸려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한 대주의 전철을 상기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움이 정리되고 모두들 모여 아침식사까지 마친 뒤, 비담과 구인철, 이성보가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그나저나 황제까지 나서서 공자님의 뒤를 쫓는다면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지겠군요.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은 황제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지요. 황제의 성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도 저랑 했던 약속은 지키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우선 급한 대로 어떻게든 사도련과 오정회부터 손을 본 연후에 잘나신 그 양반도 한 번 물 먹일 생각입니다. 다시는 무림을 넘보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혹시 생각해두신 묘책이라도...?” “우선은 사도련부터 칠 생각입니다. 황궁과의 끈이 떨어졌으니 이제는 무림을 도모하는데 집중하겠지요. 그래서 우선 그들의 자금줄부터 말릴 생각입니다. 그 일은 서희와 매영, 그리고 제가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부흥상회를 와해시킨 연후에 사도련의 본진을 곧바로 친다면 많이 당황하겠지요. 아마도 이리 빨리 우리가 쳐들어올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하고 있다가 큰 피해를 당할 것입니다. 속전속결. 지금이 사도련을 분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허나 사도련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만만한 단체가 아닐세. 그동안 극현도 그 자의 계략과 강자존의 논리에 의해 사도의 세력이 하나로 결집되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단일 세력으로 사도련을 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허나 무림의 모든 문파들이 사도련을 겨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물론 현 무림이 1차 정사대전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도련이 타격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최적기입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시간이 흐르면 무림은 또다시 저들의 계략에 이용당한 채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황제의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요.” “그럼 무림의 세력들이 모두 사도련을 겨냥하게 만들 묘책이라도 있으신지요?” “우선 흑천맹의 모든 세력은 형님께서 책임져 주십시오. 이와 같은 정황을 흑천맹주이신 아버님께 설명한다면 흔쾌히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천마신교의 조력까지 얻어낼 수 있겠지요. 그럼 형님께서는 그 세력을 인솔하셔서 본진으로 오는 사도련의 구원군들을 중간에 끊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부흥상회를 지워버린 다음 바로 정도맹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들 역시 정사대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절치부심 복수를 꾀하고 있을 것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은 힘을 모아 사도련을 제거한 후 흑천맹과 함께 무림을 양분할 수 있다하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흑천맹과 똑같이 구원군을 차단하라 부탁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형평성에 맞을 테니까요.” “그, 그럼 사도련의 본진은 홀홀단신 혼자 쳐들어갈 생각인가?” 107화 “후후, 제가 그리 무모해 보이십니까? 제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지 않습니까?” “그, 그게 대체 누군가?” “이번에 황궁에서도 손발을 같이 맞춰보았던 오정회와 황궁의 무사들이지요. 여기 계신 루주님 덕분에 오정회의 약점도 꽉 잡고 있겠다 더불어 훌륭한 인질까지 있으니 이제 협상과 함께 미끼를 던져야지요. 그네들 스스로 사도련의 본진으로 뛰어 들어가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오정회의 세력만으론 사도련의 본진을 치기엔 역부족일 테니 황궁 무사들의 힘을 빌릴 생각입니다. 황제에게 앙심을 품은 제가 오정회와 사도련 측 인물들과 자주 회합을 갖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동창 그 양반들 머리가 복잡해질 것입니다. 능구렁이 같은 황제를 속일 수는 없겠으나 확인은 필요할 터이니 사도련과 오정회의 지부들을 들쑤셔 놓겠지요. 그럼 오정회 측에는 이와 같은 정황을 미리 흘려주어 피해가 없게끔 만들어주고, 사도련 측은 고스란히 피해를 입도록 만들어야 되겠지요. 그 일은 막주님께서 맡아 주십시오. 가급적 황궁무사들과 사도련의 무사들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사도련의 지부들을 간추려 주시면 됩니다. 물론 자금이 많이 소요되겠지만 부흥상회의 일이 처리 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일을 추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의 관건은 시간 싸움이 될 테니까요.” “그 일이라면 제 전공이니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럼 지금 당장 사도련 지부들의 현황에 대해 파악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형님께서도 다시 한 번 맹에 다녀와 주십시오.” “알았네. 아버님께 모든 정황을 설명 드리고, 자네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지.” “혹시 장인어른께서 거절하시면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니 서둘러 전서구를 띄워주십시오.” “그럼 시간이 촉박하니 지금 떠나야 되겠구먼.” “아닙니다. 이틀 후 검황 그 늙은이와 백마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 때 저와 함께 인질로 잡혀 있는 두 여인을 데리고 함께 가시지요. 그곳에서의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떠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획이 시작되면 이곳 역시 위험해질 수 있으니 빙소저는 까망이들과 함께 내일 맹으로 보내십시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소저를 위해선 그게 제일 안전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군. 나 역시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렸다네.” “막주님 역시 가급적 은신처를 여러 곳에 두십시오. 만에 하나 저들의 이목에 걸리면 당장 중단하시고 숨으셔야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번 남궁세가에서처럼 저돌적으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상잔을 통해 저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니 위험하다 싶으면 꼬리를 자르셔야 됩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그리고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괜한 일에 형님과 막주님을 끌어들인 것은 아닌지 죄송하네요. 허나 이번 황궁에서의 일을 겪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황제 역시 여태껏 숨겨놓은 시커먼 속내를 드러냈고, 오정회도 독자적으로 무림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던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련 역시 이번에 당하기는 하였지만 황궁까지 넘볼 정도라면 그들의 자금과 세력이 포화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들 세력들을 서로 상잔시켜 놓지 않으면 언젠간 정도맹과 흑천맹은 소리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당한 것을 생각하면 황제고 황궁이고 속 편하게 모두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지만, 죄 없는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이제야 안정된 제국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적당히 물 좀 먹이는 선에서 끝내야지요. 그런 다음 더 이상 무림을 넘보지 않겠다는 약조문서를 받고 물러날 생각입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낸 사도련과 오정회는 기둥뿌리가 뽑혀 나갈 정도의 타격을 줄 생각입니다. 물론 저의 계략대로 그들이 움직이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지금 자신들의 넘쳐나는 세를 믿고 자만한 상태이니 성공할 가능성도 높은 게 사실입니다. 맥 놓고 앉아있다 당하는 것보다는 저희들이 먼저 선수를 쳐 어떻게든 소중한 무림을 지키고 싶습니다. ” “음, 이야기를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지는군.”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나 잘 준비하면 제대로 한방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같은 무림의 세력들끼리 다툼을 벌여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황제가 바라는 대로 움직였다간 그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한 일.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고 황제의 세력에도 타격을 주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심각했던 회의가 그렇게 마무리된 후 자리에서 일어난 비담은 따로 구인철과 독대를 하였다. “참, 제가 황궁에 가있는 동안 빙소저와 진도는 나가셨어요?” “흠흠, 시간이 하도 촉박하여...” “이런. 그럼 빙소저는 형님의 이런 애틋한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겠네요. 소저의 마음을 얻으려면 우선 형님의 마음부터 내보여야 되겠어요. 이제 내일이면 맹으로 떠나실 텐데...안 되겠어요. 서희랑 제가 나서야 진도가 나가겠네요. 오늘 서희를 통해 소저의 마음을 떠보고 형님에 대한 연정이 있는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만약 빙소저에게 형님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오늘밖에는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는 수밖에요.” “그, 그래도 갑자기 그러면...”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랍니다. 형님은 잠자코 계세요. 그냥 확인만 해보려는 것이니 부담 느끼지도 마시고요. 아마도 서희가 직접 나서준다면 한결 수월하게 마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만에 하나 형님에 대한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면 마음을 얻을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에요.” 걱정이 태산 같았던 구인철은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몰랐고, 비담의 눈동자는 결연한 의지로 빛났다. 비담에게 그간의 이야기와 제반사정을 전해들은 서희는 흔쾌히 수락하였고, 곧바로 작전에 투입되었다. 똑똑 “누구세요?” “저예요, 언니. 들어가도 괜찮아요?” “어서 와, 동생.” 빙루는 자신에게 닥칠 운명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서희를 맞이하였다. 비담이 황궁에 가있는 동안 시름에 잠겨 있는 서희를 위로하며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한 둘이었고, 선화를 포함 셋이서 전투적인 수다를 통해 서로의 친목을 다져놓기도 하였다. “이야, 이게 다 뭐예요? 무슨 짐이 이리도 많아요?” “호호, 그러게. 난 별로 사지도 않았는데 막상 정리하려니 꽤 많네.” 까망이들이 들었으면 입에 거품 물었을 소리를 너무도 태연히 내뱉는 빙루였다. 그동안 노심초사 빙루를 지켜왔던 까망이들 입장에서 저 물건들은 그저 재앙덩어리 자체였다. “이야! 빛깔이 너무 고와요. 어때요? 저한테 잘 어울려요?” 황홀하게 빛나는 장신구에 정신이 팔린 서희는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도 잊은 채 이것저것 구경하고 착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호, 너무 잘 어울려. 그러지 말고 이것도 한 번 차봐. 머리모양이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헤헤, 어때요? 저 예뻐요?” “호호, 예뻐. 예뻐도 너~무 예뻐.” 나비문양이 조각된 비녀를 찬 서희가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방안은 두 여인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기를 한 시진. 이제나 저제나 서희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비담은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한 시진이면 구인철에 대한 빙루의 마음을 떠보기엔 충분한 시간인데 감감 무소식이니 뭔가 일이 틀어졌다 오해를 한 것이다. ‘혹시 빙소저는 형님을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괜히 섣부른 짓을 벌인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구나. 그나저나 나만 믿고 기다리라 인철 형님께 큰소리 뻥뻥 쳤는데. 아니지. 만에 하나 다른 속사정이 있을 지도 모르니 여기서 전전긍긍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 낫겠어. 아직도 서희가 빙소저의 마음을 떠보는 중이라면 한 팔 거드는 것이 나을 거야.’ 점점 깊어지는 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애만 태우던 비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곤 조심조심 빙루가 머물고 있는 방문 앞에 도착하여 안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방안에선 익히 예상했던 소리가 아닌 두 여인의 즐거운 비명과 탄성만 쏟아져 나왔다. ‘무슨 일이지? 일이 잘 성사된 것인가? 가만...그런데 이 엄습하는 불길함은 대체 뭐지. 아니야. 저리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일이 잘 성사되었음이야.’ “흠흠, 빙소저? 저 비담입니다.” 헛기침까지 하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으나 방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비담이 살포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벌어진 아찔한 광경. 흡사 별이라도 뿌려 놓은 듯 방안을 가득 채운 휘황찬란한 빛에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구한 물건인지 몰라도 방안에는 촛불에 반사된 수백 개의 구슬들이 두 여인의 몸을 감싼 채 둥둥 떠다녔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이기어검으로 날아든 구인철의 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비담이었다. 108화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두 여인은 비담이 멍하니 서있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장신구들을 흔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 저기...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머! 언제 오셨어요? 참, 가가. 이거 너무 예쁘죠? 태어나 이처럼 영롱한 빛을 뿌리는 보석은 난생 처음이랍니다.” 그제야 비담의 등장을 알아챈 서희가 자랑하듯 자신의 몸에 달린 장신구들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러움과 장탄식. “글쎄 이 모든 게 오라버니께서 언니에게 선물하신 거래요. 그 구두쇠 오라버니께서 말이죠. 어려서부터 아끼고 아껴야 가문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부르짖던 그 오라버니가 말입니다. 제가 뭐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전 한 바퀴 돌면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장신구라도 감지덕지인데 그마저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제 팔자가 거기까지인 걸 어쩌겠어요. 뭐 부럽다는 말은 아니고요. 물론 사달라는 말도 아니에요. 그냥 이 애기들이 너무 예쁘다는 거죠. 물론 저는 가가의 사랑만 있으면 되니 이런 것 다 필요 없어요. 휴우.”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뱉는 서희. 그리고 그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비담. 눈물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장신구들을 매만지는 서희의 손길은 비담이 느꼈던 그 어떤 초식보다 정교하고 매서웠다. 마치 목욕재계하고 침상에 누워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마나님처럼. ‘무조건 사줘야한다. 당장.’ “하하, 형님께 이런 낭만이 있는지 몰랐네요. 그게 무어 어렵다고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쉽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나가서 사드릴 수 있답니다.” “저, 정말이세요? 꺄악.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가가밖에 없어요.” 서희는 팔짝팔짝 뛰며 방안을 휘돌더니 급기야 비담에게 폭삭 안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