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호색 -완 - 38편 (38/62)
물론 제갈현아는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 터라 극구 사양했으나 완고한 비담의 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선예당의 무희로 참여하게 되었고, 남궁소미 역시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수락하게 되었다. 비담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관철되자 그때부터 허세와 권력에 맛 들여 천지분간 못하는 우자(愚者:바보)로 행세하며 황궁에서의 첫날을 의미심장하게 시작하였다. 91화 황궁의 서남쪽. 인공가산과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전각에 선예당이라는 현판이 붙음과 동시에 아리따운 무희들이 너른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예정랑의 직책을 받은 관리를 기다리는 동안 각자 친분이 있는 이들끼리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제갈현아와 남궁소미 역시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무리에 섞여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러기를 일식경. 드디어 마당으로 통하는 전각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말쑥하게 관복을 차려입은 비담이 허세를 잔뜩 넣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곤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소란스러워진 마당의 100여명 무희들을 향해 우렁찬 사자후(?)를 터트렸다. “조용! 개미 기어가는 소리라도 나면 확 엎어버릴 거니까 똑바로 정신 차립니다. 지금 황궁에 놀러 들어온 줄 아십니까?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눈을 부라리며 인상을 팍팍 구기는 비담으로 인해 마당에 모여 있던 100여명 무희들은 그만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말이 좋아 선예정랑이지 단순히 초빙된 임시교관에 불과한 자가 무슨 대단한 벼슬씩이나 받았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꼬락서니하며 자신들을 마치 아랫것들 대하듯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비담의 안하무인(眼下無人) 행태에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들 역시 무예(舞藝)라면 전혀 꿀리지 않았고, 그러한 실력을 인정받아 이곳에 초빙된 무희들이었기에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고 가기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무희들의 표독스러워지는 눈빛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반감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그러한 상황을 음미하듯 지켜보던 비담의 입매가 사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후후, 이리 나와야 재미있지. 제갈현아와 남궁소미를 위해서라도 좀 더 울분을 토하며 기어 오르거라. 그래야 내가 황상께서 베풀어주신 성은 운운하며 제대로 굴려줄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 년은 도대체 누구로 변신해서 섞여 있는 거야? 적시를 시전해도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없는 역체변용술이라...아무튼 지가 알아서 기어 나오겠지.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감히 황제폐하께서 하사하신 벼슬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상관에게 그리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대드는 꼬락서니는 어느 나라 예법이고, 어떤 동네에서 배워온 개망나니 추태냐? 예로부터 배움을 청하기 위해선 자존심 다 버리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라 하였거늘 첫 대면부터 발끈 대드는 너희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싹수가 노랗구나. 부채춤이고 나발이고 너희들 정신부터 제대로 개조시켜 놓아야 제대로 된 춤이 나올 듯싶구나. 정확히 셋을 세겠다. 그 안에 10열로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선다. 만약 내 입에서 셋이라는 숫자가 나온다면...후후, 지옥을 구경시켜주마.” 비담은 동네 구경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롭게 거닐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비담의 입에서 둘이라는 숫자가 나왔음에도 무희들은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한낱 춤이나 가르치는 교관이 자신들 100여명을 어찌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자신들과 교관의 위치를 매듭짓겠다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에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기운만 감돌았다. 그리고 황제께 진상할 춤이 엉망진창이 되면 모든 욕과 책임은 저기 철부지관리가 질 것이기에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무희들이었다. 만에 하나 어설프게 기선제압을 당하게 되면 두 달 내내 피곤한 삶이 예약되어 있을 뿐이었다. 비담은 무희들의 반응을 익히 예상했다는 듯 전혀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차분히 마지막 숫자를 외쳤다. “셋!” 우렁찬 소리로 셋을 외친 비담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얄밉게 이죽거렸다. “어이쿠! 이거 어쩌면 좋을까. 우리 콧대 높으신 무희아가씨들이 결국 내 입에서 셋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만들었으니. 뭐 지옥을 잠깐 둘러보며 견문을 넓히겠다는데 내가 일조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 자고로 여행만큼이나 사람의 정신세계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드무니 그럼 시작해 봅시다. 내가 말이야 과거 천하를 주유하면서 별 볼 일 없는 재주를 하나 익힌 게 있거든. 처음 당하면 조금 놀라겠지만 이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생각하고 몸소 체험해보도록.” 비담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100여명에 달하는 무희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휘젓고 다녔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의 마혈과 아혈을 눌러버렸다. 전무후무한 기사에 무희들은 모두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버렸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하지만 아혈이 제압당해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고, 마당은 어느새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점혈 당시 반탄력을 보인 여인이 도합 열. 무공을 익힌 흔적으로 보아 특정세력의 간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제갈현아와 남궁소미, 그리고 변신괴물을 제외하면 총 일곱이란 말인데...후후, 모두 똥물을 뒤집어 쓸 필요는 없지. 누가 보내서 이곳에 온 것인지 내 알바 아니나 앞으로 두 달 동안 단단히 각오해야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허수아비처럼 두 눈만 말똥말똥 뜬 채 잔뜩 겁을 먹은 여인들을 둘러보며 비담은 괴소를 날리며 말했다. “내 입에서 셋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순간 지옥을 경험한다 그리 일렀건만 야무지게 씹어 소화까지 시켰겠다? 그만큼 간덩이가 큰 년들이니 이정도 시련은 웃으며 견딜 수 있을 터. 여봐라. 준비한 것들을 어서 가져오도록 하거라.” 비담의 명령과 함께 황궁에 딸린 일꾼들이 부지런히 물건을 가져다 날랐다. 물건의 정체는 성인 하나가 우습게 들어갈 정도의 큰 항아리들이었다. 10열종대로 가지런히 늘어서는 항아리의 행렬을 지켜보며 무희들은 두려움과 의혹들로 더욱 눈이 커졌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일한 일꾼들의 노고에 화답하듯 가지런한 항아리부대가 완성되었고, 비담은 수고했다는 무언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런 다음 돌처럼 굳어버린 무희들을 항아리 하나에 한 사람씩 차근차근 담더니 준비한 모래를 이용해 목까지 덮어버렸다. 무희들은 꼼짝없이 항아리 안에 갇혀 목 위로만 내놓은 형국이 되었다. “히야, 이거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구먼. 귀여운 항아리 인형이 100개나 생겼어. 그나저나 황상께 받은 성은에 보답하려면 열심히 춤과 미모를 가꿔야 되지 않겠니? 그런 의미로다 내가 피부에 반들반들 윤기가 돌도록 꿀을 발라주마.” 비담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딸랑딸랑 꿀통을 든 채 항아리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는 준비된 붓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무희들의 얼굴에 열심히 꿀을 바르기 시작했다. 무희들은 오만상을 쓰고 싶고, 질끈 눈을 감고도 싶었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비담이 하는 대로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되어 작업을 끝낸 비담이 밝게 웃으며 꿀통을 집어 던짐과 동시에 의문의 나무통 하나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하하하, 햇빛에 번들번들 빛나는 것이 한층 미모가 나아지겠어. 그나저나 꿀만 발라주면 조금 서운해 하겠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심심할 텐데 이 친구들이 재미나게 해줄 거야. 참, 그리고 경락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혈기를 돋우는 데는 봉침(蜂針:벌침)만한 게 없다고 하니 사양하지 말고 실컷 맞아둬. 일생에 이런 천금 같은 기회는 흔한 게 아니거든.” 비담은 짊어지고 온 나무통을 그대로 개방해 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꿀벌들. 윙윙, 웨에웽 웽웽. 선예당의 마당은 시커먼 벌떼의 급습으로 인해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고, 무희들의 얼굴은 노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렸다. 입을 벌려 어떻게든 소리치며 도망가고 싶었지만 항아리와 일심동체가 되어 꿈쩍도 할 수 없으니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리고 왜 저 가증스런 놈의 입에서 셋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오기 전에 말을 듣지 않았을까 땅을 치며 후회하였지만 이미 깨어진 사발이고, 뛰쳐나간 송아지였다. ‘후후, 여인들은 여섯 발 달린 벌레와 다리 없는 짐승들을 유독 싫어하고 징그러워하지. 거기에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것들이 몸에 붙는다? 아마도 속으론 죽여 달라 애원하며 절규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니 벌들이 공격은 하지 않을 터. 뭐 개중에 이상한 놈들은 침을 쏘겠지만 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정작 두렵고 무서운 것은 눈앞에서 끊임없이 날아다니는 저놈들의 날개소리와 모습. 한 시진 늘어지게 자고 오면 깨끗이 해결되겠군. 감히 초장부터 어디서 기어오르려고.’ 비담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떠는 여인들을 그냥 내팽겨 둔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다시 선예당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92화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진 후. 달게 잠을 잤는지 살짝 눈곱까지 낀 비담이 다시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에는 그가 떠날 때와 똑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라면 몇몇 여인의 얼굴이 군데군데 붉은 반점과 함께 부어올랐다는 것과 양껏 꿀을 채취한 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인들의 눈빛이 까맣게 퇴색되어 죽어있다는 점. 비담은 만족스럽게 둘러본 후 여인들의 아혈을 풀어주기 위해 항아리주위를 천천히 거닐었다. 그러다 제갈현아와 남궁소미의 핼쑥해진 모습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림의 여식에게도 벌은 두려웠던 모양이지? 매영 그년에게 모두 들은 이상 너희 둘은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둘을 지나친 비담의 눈동자에서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비담은 일련의 과정을 끝마친 후 예의 단상에 올라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첫 대면을 축하하기 위해 내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이,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따위 망발을 늘어놓는 것이냐. 이곳에서 풀려나면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더러운 몸뚱이를 오체분시하여 저자거리에 던져 놓아야만 내 직성이 풀릴 것이야.” 악에 받쳐 발악하듯 외치는 여인의 말을 필두로 여기저기 비담을 성토하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비담은 한 번이라도 입을 뗀 여인들을 눈여겨보았다. “후후, 이것들이 정신을 덜 차렸구나. 살려 달라 합창을 하며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단체로 죽여 달라 애원을 하는구나. 그깟 꿀벌 몇 마리 날아다닌 것 견식 했다고 지옥을 구경했다 간덩이가 부으면 큰 오산이지. 어차피 그것은 단순히 인사치레였고, 밥 먹기 전 물 한 잔 들이 킨 것에 불과하니까. 오냐! 지옥행 특급마차에 실어 보내주마. 다시 한 번 묻겠다. 내가 셋을 세기 전까지 마차에서 내릴 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거라. 그렇지 않으면...상상은 너희들의 몫이다. 하나, 둘...셋!” 비담은 셋이라는 숫자와 함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여인들의 항아리는 그대로 부셔버렸다. 물론 점혈 당시 반탄력이 있었던 열 명은 입을 한껏 벌려도 제외시키는 섬세함과 배려도 잊지 않았다. 촤앙, 챙그랑. 비담의 손에 속절없이 날아간 항아리의 개수는 도합 쉰. 정확히 반절의 항아리가 부서져 나갔고, 그 안에 있던 여인들은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며 모로 쓰러졌다. 아직 마혈이 제압당해 모로 쓰러진 여인들은 안중에도 없이 비담은 그대로 항아리에 몸을 담구고 있는 여인들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감히 선예정랑인 나에게 반기를 들었겠다? 좋아. 내 정녕 이것만은 절대 만들지 않으려 했건만...굳은 결심 속에 봉인했던 내 최악의 조제 비방을 풀어 약을 만들어야 되겠군. 여봐라. 준비한 물품들을 어서 가져오너라.” 비담의 외침에 일꾼들이 끙끙대며 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탁자 위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더불어 천으로 덮여 정체를 알 수 없는 함도 여러 개 보였다. 비담은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쓰며 공포에 떠는 오십 명의 무희들을 쓰윽 둘러본 후 주절거리며 물건들을 집어 조그마한 통속에 넣었다. “내가 과거 천하를 돌며 주유하던 시절, 금기시되는 약품조제비법을 하나 배운 적이 있다. 이 비방을 가르쳐주신 분은 절대 이것이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으나 너희들처럼 버르장머리 없고, 콧대 높은 것들에게는 이 약이 직방일 것이다.” 비담은 비 맞은 중마냥 주절주절 혼자 중얼거리며 약품들의 종류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것들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준비된 통으로 던져 넣었다. “교미 중인 암전갈의 꼬리 다섯 개, 더불어 한껏 발정이 난 개의 음낭 두 개, 갓 백일이 된 여자 아이의 오줌 세 숟가락, 번데기가 되기 직전의 구더기 열 마리, 보름달이 뜨는 날 묘지 주위를 기웃거리는 검은고양이의 꼬리털 스무 개......이게 말이다, 재료의 혼합에 있어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으면 안 되거든. 만에 하나 약간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이 약을 먹고 미쳐버릴 수도 있음이야. 한 때 이것을 가르쳐주신 분도 잠깐 조는 바람에 꼬리털이 스물 한 개가 들어가고 만 거야. 그래서 어찌 되었는지 알아? 글쎄 이 약을 먹은 사람이 동네방네 알몸으로 뛰어다니며 자기 성기를 꺼내어 자랑을 하더란다. 뭐 그러다 일 년을 못 넘기고 죽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말인데 이 약을 조제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돼요. 흠흠, 가만 있자...내가 분명 검은고양이의 꼬리털을 스무 개 넣었던가...에라, 모르겠다. ” 방금 꼬리털이라며 의문의 털 뭉치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담은 다시 한 번 똑같은 생김새의 털 뭉치를 한웅큼 집어 넣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무희들은 한 번 더 넣었다며 고래고래 발악을 하였으나 비담은 못 들은 듯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덤벙덤벙 물건들을 집어 넣었다. 방금 자신의 입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부작용이 없다 떠벌려놓고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행동을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비담은 흥에 겨운 듯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천으로 뒤덮인 함을 그대로 공개하였다. 그 안에는 잔뜩 독이 오른 살모사 한 마리와 엄청난 냄새를 풍기는 의문의 동물이 털을 곧추 세운 채 성을 내고 있었다. 비담은 살모사의 머리 부분을 잽싸게 움켜쥔 후 그 녀석의 아가리를 벌려 독니가 드러나게 하였다. “호오, 힘이 장사네. 모름지기 이만한 약을 만들기 위해선 이 살모사처럼 잔뜩 약이 오른 녀석의 침 몇 방울이 꼭 들어가야 하지. 가만 있자...어느 쪽으로 침이 나오더라? 세 방울이 꼭 들어가야 하는데 독이 나오는 구멍이랑 침이 나오는 구멍이 가물가물하네. 에라, 모르겠다. 이 구멍이 맞겠지 뭐.” 비담은 한껏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살모사의 입을 벌려 의문의 액체 세 방울이 통 속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이 녀석의 독 한 방울이면 어른 서른 정도는 우습게 저승으로 보내지. 뭐 다행히 독이 아닌 침이 나오도록 만들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 가만, 살모사는 침과 독이 함께 나오나?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지도 동물이니 따로따로 나오겠지. 하아, 정말 그분의 설명만 듣고 처음 만들려다 보니 많이 헷갈리네. 대충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 이 녀석 차례지. 이거 남만(南蠻)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귀한 동물이야. 이 녀석이 뿜어내는 방귀가 얼마나 독한지 남만 사람들도 이 녀석만 보면 기겁을 하고 건드리지 않더군. 글쎄 평생 후각을 잃는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 녀석의 방귀액도 조금 넣어줘야 약효가 제대로야.” 비담은 털을 곤두세운 채 항문을 자신 쪽으로 향하며 으르렁거리는 동물을 잽싸게 제압하여 방향을 통 쪽으로 틀었다. 순식간에 항문을 뚫고 터져 나온 분사액은 통 안으로 직행하였다. 만족한 듯 동물을 다시 함안으로 집어넣은 비담이 나무 몽둥이를 이용해 골고루 저었다. 보기만 해도 역겹고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은 액체가 통 안에서 휘돌았다. 그렇게 일각의 시간이 흐르자 통 속의 액체는 점점 응고되어 끈적끈적 점성을 띠었다. 그러다 종래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비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굳어버린 약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히야, 모양과 빛깔이 제대로야. 예전에 그분께서 약을 만들었을 때랑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똑같아. 가만, 그런데 약간 얼룩덜룩한 이것은 뭐지? 예전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뭐 별 문제야 생기겠어? 내가 이처럼 정성을 쏟고,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집중해서 만들었는데. 그분 말씀대로 이 약을 먹은 사람은 복종심이 뭔지를 뼈에 새긴다고 하였으니 아직도 상관에 대한 예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너희들에게 먹여야지. 자, 그럼 시식을 해볼까나?” 비담이 응고된 정체불명의 괴약을 한 숟가락 크게 떠 다가오자 무희들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일련의 조제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이상 절대 저 약을 먹을 순 없었다. 비담은 사색이 된 그녀들을 실컷 놀리며 점찍어 둔 열 명에게 그대로 양껏 퍼서 입에 우겨 넣었다. 제갈현아를 비롯해 9명의 여인들은 애원하듯 발악하며 한사코 먹기를 거부하였으나 작정하고 퍼 먹이는 비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밀려드는 쓴 맛에 얼굴의 근육들이 저절로 경련하였고, 온 신경이 실시간으로 반응하였다. 비담은 토악질을 하려는 그녀들의 아혈을 친절하게 점혈 해주었고, 입을 굳게 닫아주는 섬세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까 눈여겨보았던 입을 열어 반항한 여인들에게도 한 숟가락씩 퍼 먹이고 똑같이 아혈을 제압해 버렸다. ‘후후, 인간은 상상이란 괴물에 잡아먹히는 순간 대항할 용기를 잃고 나약해지지. 실상은 모습을 똑같이 흉내 낸 모조품들을 집어넣었으나 내가 떠벌린 말들로 인해 고스란히 믿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스스로 공포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뭐 인체엔 별 해가 되지 않으니 그냥 실컷 먹고 즐기거라. 특히나 너희 열 명은 한 번의 열외도 용납할 수 없으니 끝까지 나와 함께 하자고. 흐흐흐.’ “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라. 혹시나 마음이 바뀌었다면 내가 약을 먹이기 전 입을 크게 벌리고 살려 달라 애원하거라.” 비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아직 약을 먹지 않은 서른 명의 무희들은 앞 다투어 살려 달라 애원하였다. 93화 인간이 연출할 수 없는 최악의 표정을 지으며 약을 입안에 물고 있는 무희들을 보니 더 이상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비담은 아쉽다는 듯 손에 든 통을 돌아보았다. “기껏 정성을 들여 만들어놨더니 싱겁게 포기해 버리네. 이 재료들 구하느라 내 주머니가 거덜 날 정도로 탕진하고 고생했는데. 많이 아쉽네, 쩝.” 입맛을 다시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비담을 향해 서른 명의 여인들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무슨 일이든 앞으로 절대 토 달지 않고 성심을 다해 나리를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니 제발 저희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제발~!” “그래? 그럼 약속하는 거다. 앞으로 한번만 더 오늘 같은 만행을 저지른다면 남은 이 약을 다시 꺼낼 것이니 명심하길 바란다. 그럼 굳게 입을 쳐 닫고 있는 저 스무 명만 처리하면 되겠군.” 비담은 안도의 눈으로 새로운 삶이라도 얻은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른 명의 항아리를 시원하게 부셔버린 후 남은 스물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다. “후우. 내 특제약에도 굴복하지 않다니. 정말 너희들의 굳은 심지와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비장의 한 수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내가 깨끗이 포기하고 너희들을 궁 밖으로 내보내 주겠다. 그래도 혹시나 마음이 바뀌었다면 내가 셋을 세기 전에 말을 하거라. 하나! 둘!...셋! 저런...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군. 어쩔 수 없지. 마지막 비장의 수를 꺼내는 수밖에.” 남은 스무 명의 여인들은 필사적으로 입을 벌려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아혈이 제압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억울해 죽겠다는 눈빛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발광하였으나 비담은 그저 느물느물 웃으며 준비한 물품을 향해 몸을 돌릴 뿐이었다. 그중 제갈현아와 남궁선미, 더불어 매영은 정말 미쳐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대관절 저 미친 작자가 왜 이 같은 만행을 저지르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한 배를 탄 동료에게까지 저런 무리수를 쓰는 연유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비담은 방글방글 쪼개며 옻나무 다발을 들고 돌아섰다. “좋아, 좋아. 그 정도 객기와 참을성을 갖춰야만 훌륭한 춤을 소화할 수 있는 법. 지금 남은 스물은 앞으로 특별관리 대상으로 묶어 섭섭지 않게 지극한 관심을 쏟을 것이니 기대하라고. 그럼 마지막으로 온몸이 가려워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긁지 못하는 고통을 경험해 보도록. 물론 이것 역시 남만에서 구해온 특제 옻나무라 웬만한 사람은 옻을 타게 되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