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성인소설) 호색 -완 - 30편 (30/62)

2026-10-04 14:52:57 조회 6
그런 연후에 흑천맹으로 가시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것입니다.” “하하, 자네의 말에 따르겠네. 그건 그렇고 이제 보니 자네의 지략도 보통이 아니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자네가 곁에 있으니 아주 든든한 걸.”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럼 검황 어르신이 계신 곳으로 가시지요. 참, 검황 어르신께는 일단 함구해 주십시오. 아직은 시기상조이니 형님과 저만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시간 전음을 나눈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신색으로 검황이 있는 연못가로 돌아갔다. 때마침 검황 남궁헌수도 집안단속이 끝났는지 다가오는 둘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래, 갔던 일은 잘 해결되었는가?” “그게 반만 해결된 듯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스물다섯 모두 제압은 하였으나 불미스럽게도 요주의 인물 다섯이 자결을 하는 것은 막지 못했습니다. 남궁세가를 암중 조정한 인물인 것 같은데 막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거 중요한 단서가 사라져서 어쩌죠?” “어쩔 수 없지. 일이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 것에 감사하는 수밖에. 그럼 나머지 스물은 지붕위에 쓰러져 있는가?” “네, 어르신. 혼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자결을 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참, 집안단속은 잘 마무리 하셨는지요?” “그럭저럭 마무리되었네. 몸에 요상한 문신을 새긴 녀석들을 모두 추려내어 면벽수행 3년을 하라 일렀으니 더 이상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걸세. 참, 언제 떠날 것인가?” “이리 소란을 피워 놓아 식솔들이 저를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으니 되도록 빨리 떠나야지요. 함께 가실 것입니까?” “당연한 소릴 뭐 하러 입 아프게 떠드나. 행선지는 어디인가?” “낙양입니다.” “낙양이라...좋은 곳이지. 그럼 어서 출발하세.” “그러죠.”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현탁이 한사코 가주의 전용마차를 내어주겠다 하였으나, 남궁헌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집안단속이나 신경 쓰라고 면박까지 주었다. 남궁현탁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볼멘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딸인 남궁소미에게 할아버님을 잘 모시라는 당부로 배웅인사를 대신하였고, 세가의 공용마차에 환자인 이성보만 태운 채 일행은 낙양으로 출발하였다. 71화 비담 일행이 남궁세가를 떠나 낙양으로 출발한지 사흘 후. 거만한 자세로 태사의에 앉아 보고를 받던 구지신마 극현도의 얼굴근육이 미세하게 꿈틀 움직였다. 보고를 하던 은영각주 문설란은 련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자 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등을 타고 식은땀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세한 경련을 시작으로 련주의 심기를 더 거슬렀다 죽어나간 목숨이 한둘이 아님을 알기에 초조하고 두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중간에 보고를 멈출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바로 죽음과 직결되기에. 그렇게 정신없이 이어나가던 보고가 끝이 나고, 다행히 아직 자신의 목이 온전히 붙어있음을 확인한 문설란이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극현도의 명을 기다렸다. “같은 놈이다?” “그렇습니다. 지난 번 보고 드렸던 빙궁의 일에 개입했던 비담이란 자가 이번 남궁세가의 일에도 관여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또 다른 조력자는 흑천맹의 구인철이고?” “그렇습니다.” “흑천맹이 조직적으로 이번 일에 관여했다?”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흑천맹에 심어놓은 간자에게 그와 같은 정황은 없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폐관에서 나온 구인철이 강호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한 여행을 하는 도중 비담이란 자와 엮인 것 같습니다.” “둘의 관계는?”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허나 보통사이는 아닌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근거는?” “낙양 취선루에서 함께 머무는 동안 잦은 술자리를 가졌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끊지 말고 계속하라.” “그것이 여인 둘과 한방에 머물며 밤새 그 짓을 했다는 첩보도 있었사옵니다.” “남녀 넷이서 한방에 머물며 교합을 하였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난잡하군. 둘의 무공수위는?” “천마의 진전을 이은 구인철의 무공수위는 최소 화경 급에 준한 것으로 판단되옵고, 비담이란 자 역시 그에 준하거나 조금 높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사옵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화경의 벽을 넘었단 말이지. 그 정도의 무공수위라면 귀풍대 전원이 참패를 당한 것도 이해가 되는구나. 검황의 움직임은?” “비담이란 자와 합류하여 현재 낙양을 향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후후, 늙었으면 곱게 뒷방이나 지킬 일이지 괜히 나서서 명을 재촉하는구나. 아마도 남궁가의 판을 흩트려 놓은 자는 그 노인네가 틀림없을 것이다. 이거 보답으로 어떤 선물을 보내야 그것들이 만족을 하려나...” 태사의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며 고민을 하던 극현도가 마침 좋은 생각이 났는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천면요희(千面妖姬) 매영(魅零)은 어찌 지내고 있느냐?” “특별한 일 없이 처소에서 쉬고 있습니다.” “좋다.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으니 마땅히 화답을 해주는 것이 도리에 맞겠지. 비담이란 자에게 그녀를 보낸다. 목만 아니면 어디든 하나쯤 잘라도 상관없다 전하여라.” “하오면 그 자를 살려두시겠다는 말씀이신지...” “후후, 그만한 실력을 지닌 장난감을 함부로 부술 수야 없지. 충분히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났을 때 버릴 것이다. 그리고 매영이라면 분명 그것을 선택해 잘라올 것이다.” “복명!” 짧게 대답하고 나가는 문설란을 바라보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실실 웃는 극현도였다. ‘흐흐흐, 병적으로 사내의 양물에 집착하는 그녀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비담이라 했던가? 앞으로 사내구실 못하게 될 네 녀석의 팔자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어야 되겠구나.’ “하하하!!” 속으로 조용히 삼키던 극현도의 웃음이 급기야 앙천대소가 되어 터져 나왔고, 곧 조용한 대전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극현도가 발작을 일으키며 대전이 떠나가라 웃던 그 시각.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다듬고 있던 20대 후반의 미녀가 살짝 아미(蛾眉)를 찡그렸다. 비단결처럼 부드럽던 머릿결에 미세한 상처가 생겨 머리끝이 흐트러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녀는 일절 망설임 없이 손톱에 내공을 주입하여 흐트러진 머릿결을 잘라내었다. 서걱 마치 잘 벼려진 칼로 그은 듯 깔끔한 솜씨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머리와 얼굴을 다듬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미녀의 모습은 요사스러움 그 자체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치명적 유혹과 끈적끈적함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천면요희(千面妖姬) 매영(魅零) ‘천의 얼굴을 지닌 요사스런 계집’이란 별호가 말해주듯 사내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여인이었다. 특이하게도 매영은 사도련에 속해있지도, 그렇다고 전혀 별개의 인물도 아니었다. 련주인 극현도에게 충성서약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재미를 위해 사도련에 몸을 의탁한 이상한 여인이었다. 사도련의 그 어떤 인물도, 심지어 련주인 극현도 역시 그녀의 사문이 어디인지 과거가 어떤지 그녀의 내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도련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빈객(賓客) 신분이라 할 수 있었다. 치장을 하기에 여념이 없던 매영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옥쟁반에 구슬이 굴러가는 듯 맑은 미성이 흘러나왔다.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 계시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들어오십시오.” “죄송하네요. 방해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마침 끝내려던 참이었습니다.” 매영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문 앞을 서성이던 의문의 방문객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은영각주(隱影閣主) 문설란이었다. 거울을 통해 방문객을 확인한 매영이 문설란을 빤히 쳐다보며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련주님께서 특별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전하기 위해 이리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알겠습니다. 련주님은 늘 저에게 흡족한 사냥감을 던져주셨죠. 이번에도 믿고 가보겠습니다. 이름과 별호가 어찌 되나요?” “그자의 별호는 없습니다. 이름은 비담이라 하구요.” “별호도 없는 애송이라...뭐 만나보면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니 그건 그냥 넘어가죠. 장소는요?” “낙양입니다.” “기한은 언제까지 입니까?” “기한에 대한 언급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목만 아니면 상관없으니 어디든 잘라도 무방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마의 진전을 이은 흑천대주 구인철과 검황 남궁헌수, 더불어 현 남궁세가주의 여식인 소운검 남궁소미가 그자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오호? 별호도 없는 애송이의 동료치고는 꽤나 화려한 조합이군요. 모두 건드리기엔 역부족일 것 같은데...” “련주님께선 간단히 인사정도만 나누길 원하십니다. 기회를 틈타 비담이란 자만 손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뭐 그거야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군요. 알겠습니다. 곧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뵙지요. 그 녀석의 하물과 함께 말입니다. 호호호.” 짜랑짜랑한 교소와 함께 유쾌하게 웃어 재끼는 매영이었다. 무료했던 일상에 드디어 먹잇감이 던져졌고, 이제 차분하게 옭아맬 그물을 준비하여 사냥을 즐기기만 하면 끝이었다. 문설란은 거울에 이리저리 몸을 비추며 즐거워하는 매영을 보다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사도련이 창설된 이후 가장 특이한 빈객이 매영이었고, 예측불허인 이 손님이 이제껏 사냥감을 놓치고 돌아온 적이 한 번도 없음을 상기하였다. ‘호호, 무슨 연유로 우리의 일에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만 네놈의 운명도 정말 기구하구나. 평생 남자구실 못하고 빌빌거리며 살아야겠지만 그래도 저토록 아리따운 여인을 한 번 품을 수 있다면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련주님의 마음이 언제 바뀌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는 마음껏 비참함을 즐기거라.’ 천의 얼굴을 지닌 매영의 가장 큰 무기는 역체변용술과 손톱을 이용한 강기공. 화려한 꽃에 취해 앉은 벌과 나비들은 어느 순간 파고드는 가시에 온몸이 관통되어 절명하고 만다. 72화 더불어 전리품처럼 항상 잊지 않고 챙기는 사내들의 하물. 같은 여자인 문설란에게도 그것은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악취미이자 납득할 수 없는 매영의 일그러진 성격의 한 단면이었고, 불특정 사내들을 향한 집요하면서도 잔인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낙양에 도착한 비담은 흑막의 안가가 아닌 적당한 객잔을 잡아 일행들과 함께 묶었다. 흑막주 이성보의 신분이 들통 날 것을 염려한 이유도 있었고, 더불어 구인철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지금의 구인철은 정사대전이 사도련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는 내막을 알고 있기에 남궁헌수를 싫어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5년 전 흑천맹을 급습했던 정도맹과 오정회의 만행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던 터라 함께 움직이는 것에 대해 조금은 꺼려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돈을 아끼지 않고 방을 여러 개 잡은 것이다. 그런 다음 남궁헌수에겐 적당히 핑계를 대고, 거동이 불편한 이성보를 데리고 흑막의 안가로 향했다. 비담이 안가에 도착하자 퀭한 모습의 선화가 한달음에 달려 나왔고, 만신창이가 된 이성보를 부여잡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성보는 아픈 와중에도 딸을 보듬어 안으며 진정시켰고, 비담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깜짝 놀란 눈으로 지켜보았다. 선화가 단순히 흑막의 고위층이라 짐작만 했을 뿐, 설마 막주의 딸일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의 상봉이 더더욱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선화가 눈물을 닦으며 비담과 구인철에게 성심을 다해 절을 올렸다. “고맙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리 살아 돌아오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공자님들 덕분입니다. 앞으로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는지.” “아니오. 막주님께서 저희들께 베풀어준 호의에 비하면 작은 보답에 불과하니 그만 일어나시오.” 정신을 차린 비담이 한사코 무릎을 꿇고 있는 선화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다독였고, 이들의 훈훈한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보는 아픈 와중에도 미소를 지었다. “하하, 막주님께서는 안정을 취해야 빨리 나으실 테니 그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수줍게 웃음 짓던 선화가 일행을 안가로 안내하였고, 그렇게 한바탕 기쁨의 상봉은 막을 내렸다. 선화는 정성을 다해 막주 이성보의 병간호에 매달렸고, 한숨 돌린 비담과 일행들이 마주 앉아 차후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럼 형님께서는 지금 바로 흑천맹으로 떠나시지요.” “나도 그게 좋겠다 생각하였네. 검황을 못 믿는 것은 아니네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안가에 있는 지금 몸을 빼는 것이 안전하고 비밀이 덜 새어나가겠지.” “맞습니다. 검황 어르신께는 제가 적당히 둘러대겠습니다. 참, 그리고 빙소저와 까망이들은 계속 안가에 머물게 하고, 형님 혼자 다녀오십시오. 그게 저들의 이목에도 걸리지 않고, 기동성 있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알았네.” 간결한 대답과 함께 구인철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더니 부동자세로 서있는 흑천대의 부대주를 향해 짧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은 흑막의 안가다. 당분간 저들의 이목을 속이고 은신해 있기에는 좋은 장소이나 무공을 전혀 모르는 빙소저나 지금 위중한 상태인 흑막주의 신변이 노출되었을 때는 이곳만큼 위험한 곳도 없다. 여러 가지 변수나 차후의 일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고 방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주의하거라. 그리고 비담 동생 역시 이곳의 안전을 위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출입을 삼갈 것이다. 그러니 그 점 유념하고 네가 이곳을 책임져야 한다. 그럼 믿고 다녀오마.” “복명.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대주.” 신뢰 가득한 눈으로 인사를 대신한 구인철이 안가를 막 떠나려 몸을 일으킨 순간, 망설이던 비담이 다급히 구인철을 불러 세웠다. “저, 저기 형님?” “응? 무슨 일인가?” “휴우, 너무 미안해서 많이 망설였는데 그래도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거 받으세요.” 홀딱 벗은 미녀를 앞에 두고 물건이 서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는 사내처럼 우왕좌왕하던 비담이 결심을 굳혔는지 결국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인철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 편지 같은데...” “서희에게 전해주십시오. 부족한 필력이지만 서희를 생각하는 진심과 사랑을 가득 담아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제 마음입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적은 것이라 엉망이겠지만 그래도 꼭 형님께서 전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그시 비담의 진심어린 눈을 바라보던 인철이 밝게 웃으며 편지를 갈무리했다. “후후, 알았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서희의 두 손에 자네의 마음을 전하겠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몸조심하고. 그럼.” “형님도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구인철이 안가주위를 면밀히 살핀 후 한 점 바람이 되어 사라졌고, 비담 역시 침상에 누워 요양 중인 이성보와 선화, 그리고 빙루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 까망이들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드려준 연후 다시 객잔으로 돌아갔다. 비담은 앞으로 인철이 무사히 돌아오고 흑막주 이성보가 완쾌될 때까지 안가엔 얼씬거리지 않은 채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지낼 생각이었다. 비담이 적당히 둘러댄 후 눈물겨운 부녀상봉을 주선하던 그 시각. 객잔에 남아있던 남궁헌수와 남궁소미 역시 비담이 나간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외출에 나섰다. 장소는 낙양의 명소 중 하나인 ‘용문석굴(龍門石窟)’이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당나라 때 완성된 석굴로 약 10만 여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낙양의 대표적 명소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그 명성을 입증하듯 수많은 불자(佛者)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난리가 아니었다. 남궁헌수는 처음 와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를 유연하게 피하며 남궁소미를 데리고 만 오천여개의 소불상(小佛像)들이 조각된 약방동으로 향했다. 그리더니 관광객처럼 태연한 신색을 지으며 연신 감탄성을 내뱉으며 구경하였고, 남궁소미 역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73화 그렇게 일식경 정도 불상들을 구경하였을까. 자연스럽게 접근한 중년의 남성이 불상의 내력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남궁헌수와 남궁소미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남성의 설명을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이동하였다. 처음부터 같은 일행이라 오해할 정도로 중간에 녹아든 중년 남성의 행동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이곳은 병에 대한 한방약처방이 적혀 있어 약방동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만들어진 계기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말을 하는 도중 중년의 사내는 전음입밀(傳音入密)을 수법을 사용하여 남궁헌수에게 전음을 날렸다. “아! 그런 이유로 이곳이 만들어졌는지는 처음 알았소이다. 이거 들을수록 신기하군요.” ‘나야 집안단속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지. 림주(林主)께서는 무탈하신가?’ 남궁헌수 역시 전음을 이용해 화답하였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매우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제가 이 약불동에 전해져 오는 전설 한 자락 들려드릴까요?” ‘림주님께서는 무탈하게 잘 지내십니다. 그나저나 급히 저를 보자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약불동에 내려져 오는 전설이라. 벌써부터 구미가 당기는군요. 어서 들려주시지요.” ‘잘 지내신다니 다행이구먼. 다름이 아니라 자네를 급히 보자 한 이유는 사도련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일세.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재미난 녀석을 하나 만났거든. 비담이라는 녀석인데 내력은 아직 불분명하나 가진 바 무공이 나에 필적하거나 아니면 이미 나를 능가했을 지도 모르는 유별나고 위험한 녀석일세. 내가 옆에서 쭉 지켜보며 감시하고 회유하겠으나 자네도 가서 림주께 이와 같은 정황을 알리고 림(林)의 정보력을 이용해 그 녀석의 내력에 대해 소상히 조사해주게. 그 어떤 것이라도 놓쳐서는 안 되네. 알겠는가?’ “하하, 너무 보채시니 당장 말씀을 드려야 되겠군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알겠습니다. 림주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헌데 그자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군요. 어르신도 알다시피 림의 정보력을 움직이는 것은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는데 말입니다.’ “으음, 정말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그런 전설이 담겨 있으니 이곳이 그토록 유명할 수밖에요.” ‘림의 밝은 앞날을 위해 우리 대신 선봉에 나서서 설쳐줄 허수아비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일. 그 녀석이 전면에 나서서 사도련의 일을 방해하고 시선을 끌어준다면 그동안 우리는 음지에 숨어 사도련의 뒤통수를 칠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걸세. 대어를 낚기 위해선 그만큼 먹음직스럽고 토실토실한 미끼가 필요한 법. 그만한 희생이나 위험부담은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그럼 다른 동굴도 마저 둘러보십시오. 아쉽지만 저는 볼일이 있어 이곳에서 그만 작별을 고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르신의 뜻 림주님께 그대로 전하고 내락을 받겠습니다. 그럼.’ “고맙습니다.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덕분에 오늘 제 귀가 좋은 이야기를 마음껏 듣는 호사를 누렸군요. 나중에 또 인연이 닿으면 제가 술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고맙네. 그럼 살펴가시게.’ 약방동에서의 구경이 끝났는지 남궁헌수와 남궁소미 역시 객잔을 향해 서둘러 돌아갔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가 비담에게 괜한 오해를 사기 싫었고, 더불어 사도련의 간자들 역시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궁헌수가 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비담은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고, 목욕을 한 후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자 때마침 비담이 객잔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나갈 때와 달리 혼자의 몸이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남궁소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궁헌수가 혼자 들어오는 비담을 향해 의문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어째서 혼자 돌아오는가? 내가 치료해준 그 환자야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데려다준다 하였으니 그리 알고 있네만 함께 간 자네의 형님은?” “하하, 형님도 잠깐 집에 다녀온다며 가셨습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는데 그 아가씨께 청혼을 하려면 준비할 것도 많고, 아버님께 허락도 받아야 한다며 부랴부랴 가버렸습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금방 다녀온다는 말만 남기고 훌쩍 가버려 저 역시 물어보거나 말릴 틈이 없었지요.” “정말인가? 낙양에 오는 내내 그런 내색이 전혀 없더니 무척 의외로구먼. 그나저나 그 마음에 두고 있다는 처자가 혹시 우리 소미는 아니겠지? 말이 나와서 말이네만 우리 소미만한 처자도 드물지. 저만한 미모에 단아한 품성하며 거기에 가문의 후광도 든든하겠다, 더불어 무공까지 받쳐주고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나 따라다니느라 고생하여 시봉세에 이름을 못 올려서 그렇지 만약 세가에서 착실하게 지냈다면 당당히 들어가고도 남았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