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호색 -완 - 24편 (24/62)
비담은 어느 정도 계획이 수립되자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들다가 땅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인 인철의 모습에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하아! 저러다 얼굴 터지시겠네. 참, 남녀 간의 일은 불가사의하단 말이야. 어떻게 세상 모든 사내가 덤벼도 꺾일 것 같지 않은 형님의 목과 불굴의 의지가 여인의 가녀린 손짓 한방에 꺾이느냔 말이지. 누군가 했다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는군. 휴우, 숙맥인 형님과 세상물정에 어두운 아가씨 둘 다 교육시키려면 보통일은 아니겠구나. 제대로 된 함정이 아니면 걸리지도 않고 어설프게 일만 그르치겠어.’ 더 이상 어색한 상황을 보다 못한 비담이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일어나시죠. 낙양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할 테니까요. 참, 형님께 부탁하나만 드릴 게요.” 해롱거리던 인철이 부탁이라는 비담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리며 반문했다. “부탁?” “예. 다름이 아니라 형님도 알다시피 빙소저는 무공을 모르잖아요. 안 그래도 저는 이틀 동안 업고 온데다 거기에 형님이랑 시원하게 어우러지고, 좀 전엔 까망이들 상대로 이기어선까지 써서 너무 지쳤거든요. 그래서 형님께서 저 대신 빙소저 좀 업고 달려주시면 고마울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내, 내가 말인가?” 비담의 말을 들은 인철의 입이 떠억 벌어지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네. 형님이 빙소저를 업어주시면 한결 수월하게 낙양에 당도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야 그렇지만 서둘러 꼭 가야할 이유라도 있는가? 그리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까망이들 중에 찾아보면 다리가 튼실한 놈이 있을 터인데...” “아까도 말씀드렸듯 제가 취선루주에게 신세를 진 게 있어서 그분의 안위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까망이들이야 지들 몸 건사할 실력밖에 되지 않으니 안심이 안 되서 그렇습니다. 혹여 까망이들에게 소저를 업혔다가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쩌시려 그럽니까? 저는 형님의 실력은 철썩 같이 믿어도 아직 그 녀석들은 믿지 못하니 소저의 안위를 맡길 수 없습니다. 뭐 형님께서 정 내키지 않으시면 지친 제가 소저를 업고 달리는 수밖에요. 아이고, 삭신이야.” 툴툴거리며 과장되게 몸 이곳저곳을 두드리는 비담이었다. 비담의 의도를 눈치 챈 흑천대원들은 간절히 자신들의 주군을 응원하며 제발 승낙의 말이 튀어 나오길 학수고대하였다. 칼 한 자루에 몸을 맡기고 허허벌판에서 칼바람 맞아가며 평생을 외롭게 산 양반이 바로 자신들의 주군이었다. 이제 가정을 꾸리고 안정과 행복을 누릴 권리가 넘치고도 남았으며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빙루라면 주군의 짝으로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기에 어떻게든 진도가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들 모두의 바람이었다. 이런 모두의 바람이 전달되었던지 인철은 어정쩡한 자세로 허리를 굽혀 빙루에게 등을 내밀었다. 비담이 빙루를 향해 어서 업히라는 눈짓을 보냈고, 빙루는 수줍은 듯 조심조심 인철의 등에 업혔다. “허허, 소저. 그렇게 업히시면 달리다 떨어져요. 팔을 이렇게 돌려 형님의 목을 단단히 두르고, 가슴이랑 상체는 좀 더 등에 밀착시키고.” 일일이 빙루의 자세를 교정해주는 비담이었다. 비담의 지시에 따라 업히자 널따란 인철의 등에 포옥 밀착이 되었고, 옷을 수도 없이 껴입었으나 생생히 등으로 전해지는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인철의 얼굴은 이제 불이라도 난 듯 새빨갛게 변해버렸다. 비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철의 자세도 교정해 주었다. “형님도 마찬가지로 그런 구부정한 자세로 달리시면 힘만 더 들고, 요란하게 흔들려 등에 탄 소저가 어지럽습니다. 나이도 자실만큼 자신 양반이 그게 뭡니까? 서희가 어렸을 적에 한 번도 업어준 적 없으세요? 팔을 이렇게 둘러서 소저의 엉덩이를 튼튼하게 받쳐주셔야 안정감을 느끼죠. 자요, 이렇게요.” 비담이 굳어있는 인철의 팔을 억지로 끌어당겨 빙루의 엉덩이를 감싸게 만들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빙루의 엉덩이 감촉에 인철의 심장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했다. 자세를 손봐준다는 핑계로 둘의 몸을 더욱 밀착시키는 비담이었다. 모름지기 사랑의 감정은 접촉에서 시작되는 법. “음, 이제야 달릴 만하겠네요. 앞으론 제가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두 분 모두 이리 업고, 업히시면 됩니다.” “아, 앞으로? 오늘만 이러는 게 아니고?” “하하, 낙양까지 가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족히 사흘은 걸릴 겁니다. 형님도 제 얘기를 들어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공을 상당부분 써버렸으니 다시 내공이 찰 때까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형님께서 제 내공이 얼른 채워지도록 여인들과 동침을 하는 것을 허락할 리도 없고, 저 역시 서희를 두고 함부로 그러기도 싫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낙양에 도착하면 기루에 들러 여인들과 동침을 해야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저 역시 뾰족한 방도가 없으니 조금만 양해해 주십시오.” “아, 알았네.” “그럼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으니 낙양을 향해 출발하지요.” “그, 그러세.” 뒷정리를 깨끗이 마친 비담을 선두로 우람한 곰과 그의 등에 업힌 눈처럼 하얀 토끼 한 마리, 나머지 까망이들은 태양이 막 떠오르는 사막 위를 쏘아진 화살처럼 달려 나갔다. 꼬박 하루를 쉼 없이 달린 일행들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 하북성 북단의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하루 종일 달리느라 지친 다리와 여독을 풀기 위해 마을의 공동으로 사용하는 빈 곳간 하나를 빌려 짐을 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57화 “휴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이리 힘든 여정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닐세. 덕분에 시간도 줄이고 진귀한 경험도 하게 되었으니 충분히 만족한다네.” “예? 진귀한 경험이요? 특별히 진귀하다 표현할 만한 게 있었나요?” “허험! 그런 게 있으니 더 이상 묻지 말게나. 그나저나 모두 시장할 텐데 이럴게 아니라 뭐라도 요기할 만한 것을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럴 줄 알고 제가 까망이 17호랑 18호한테 음식 좀 구해오라 시켰습니다. 잡아오든 얻어오든 아니면 돈을 주고 구해오던 알아서 구해올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인철은 아직도 손안에 뚜렷이 남아있는 감촉들을 음미하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인철이 흐뭇한 상상으로 잠깐 방심한 사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온 빙루가 인철의 옆에 앉더니 인철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방비도 없이 기습을 당한 인철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빙루가 수줍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인철의 다리만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저를 업고 달리시느라 고단하셨지요?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무공을 익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 아니오. 소저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하나도 무겁지 않았소. 마치 저 혼자 달려온 듯 힘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이리 주무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말씀은 그리 하셔도 이리 땀이 송글송글 맺히신 걸요?” “이, 이것은 소저를 업고 와서 그런 게 아닌데.” “아무리 거짓말을 하셔도 저 역시 다 안답니다. 제가 침상에 누워 지냈던 세월이 얼마인데요. 몸이 고단하고, 힘들고, 아플 때마다 나오는 게 땀인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이 아팠을 때는 땀을 눈 내리듯 흘렸으니 속일 생각은 하지 마셔요.” “정말 아닌데...” 인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사리 같은 조그만 손을 열심히 움직여 그의 통나무처럼 튼실한 다리를 계속 주무르는 빙루였다. 인철은 지근거리에서 서로의 호흡이 맞닿아 있는 현재의 상태가 너무나 곤혹스러워 비담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고, 비담은 방긋 웃는 것으로 인철의 요청을 묵살해버렸다. 비담이 자신의 구원신호를 맛나게 씹어 먹자 안 되겠던지 인철은 까망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의 힘으로 가슴이 턱턱 막히는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가 없었기에 체면 불구하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까망이들은 주군을 하늘처럼 여기는 충복들이었다. 각자 할 일을 찾는다는 핑계를 대며 잽싸게 곳간 밖으로 나가버렸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대답을 대신하였다. 믿었던 부하들마저 자신을 배신하자 인철은 이를 으드득 갈아붙였다. 빠드득 “추우세요? 저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셔서 추우신가 보네요. 저도 가끔 땀을 많이 흘렸을 때 으슬으슬 한기가 들곤 했거든요. 이럴게 아니라 제 털옷이라도 입으세요.” 빙루가 훌렁 털옷을 벗어 씌워주자 인철은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태어나 칼을 손에 쥔 이후로 오늘처럼 무기력하게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완고하고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빙루는 환자를 다루듯 정성을 다해 인철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덩치의 반도 가리지 못하는 털옷을 추켜 올려주고, 다리를 주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인철은 진지한 빙루의 표정에 정말 자신이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옅은 미열에 시달렸고, 고스란히 풋풋한 빙루의 숨결을 느끼며 몽롱하게 취해 버렸다. 딴청을 피우며 둘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던 비담이 곳간을 철옹성으로 만들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리 세상사나 남녀 간의 이치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기본적인 본능이 있는 이상 지금의 분위기가 진도를 나갈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것이다. “아, 까망이 녀석들 음식 구하러 나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돌아와? 이것들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비담은 일부러 곳간의 문이 큰 소리가 나도록 닫은 다음 나가버렸다. 이제 곳간 안에는 순수한 영혼 둘만 남았다. 곳간에서 조금 떨어진 수풀 속. 비담은 그곳에 몸을 웅크린 채 곳간 주위에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바야흐로 두 남녀의 역사가 이루어지려는 숨 막히는 순간이었기에 비담 역시 살짝 흥분하고 긴장하였다.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짭짤한 전리품을 얻어온 17호와 18호는 영문도 모른 채 비담에게 순간 포획되어 수풀 옆에 쥐죽은 듯 숨어있었다. 비담을 포함 까망이들 스물은 자신이 가진 바 내력을 총동원하여 귀를 쫑긋 세운 채 곳간에서 새어나올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렇게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기다리길 일각.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리가 곳간의 좁은 틈을 비집고 두런두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몇몇의 목울대를 타고 침 넘어 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고, 벼락처럼 채근하는 동료들의 눈빛에 그들은 급급히 입을 막느라 분주해졌다. “으음, 한 번 만져 봐도 되겠소? 눈처럼 뽀얀 것이 무척 부드러울 것 같소만...” “조심히 만져주세요. 보는 것과는 달리 예민해서 강하게 어루만지면 상처가 생긴답니다.” “캬아! 내 태어나 이처럼 보드라운 감촉은 정말 처음이오. 그리고 봉긋 솟은 이곳은 정말 탐스럽고 따스하군요.” “하아! 저도 아까워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답니다.” “그나저나 끝에 매달려 있는 이것은 무엇이오? 빨갛게 익은 것이 꼭 열매 같소이다.” “저도 잘 모르겠지만 특히 예민한 부분이니 살살 다뤄주세요.” “정말 신기하군요.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볼 때마다 늘 신기했답니다. 아슬아슬 끝에 매달린 것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그럼 제 것을 구경하고 만지셨으니 저도 당신의 것을 구경하고 만져 봐도 괜찮을까요?” “많이 놀랄 터인데 그래도 괜찮겠소?” “늘 각오하고 있었는걸요?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당신 물건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모를 거예요. 어서 빨리 꺼내주세요.” “하하하, 보여드릴 것이니 너무 보채지 말아주시오. 자! 이것이오.” “꺄아! 정말 크네요.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다니세요?” “하하, 남자라면 의당 이정도 물건은 지니고 다녀야지요.” “너무 멋져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네요.” “칭찬을 과하게 해주시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비담과 까망이들은 대화의 수위가 꽤 높고, 진도가 급박하게 나가자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순둥이 대장에게 저렇게 저돌적인 면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더불어 눈처럼 순수한 빙루가 덥석 대장의 물건을 구경하며 감탄할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손이나 잡고, 서로 입술이나 부딪히면 대성공이라 여겼던 그들로써는 주군의 저런 돌발적인 행동이 정말 경이로울 뿐이었다. 백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용설란의 꽃을 보았다고 해도 오늘처럼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물건의 크기에 감탄하는 빙루의 말이 들림과 동시에 갑자기 작아지는 까망이 7호와 16호였고, 남자라면 의당 여자가 기함할 정도의 물건을 지녀야 한다며 의기양양 가슴을 쫙 펴는 까망이 9호와 12호였다. 그리고 도대체 주군의 물건이 얼마나 우람하고 대단하기에 빙루가 저토록 감탄성을 연발하는지 공통된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 그들이었다. 비담은 어수선한 까망이들에게 눈빛으로 주의를 주고, 흘러나오는 대화에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와! 이렇게 크고 단단한 것이 구멍을 찾아 들어간다니 너무 신기해요. 이런 거에 찔리면 많이 아프겠지요?” “소저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처음 당하는 사람은 이 물건에 찔리는 순간 피가 철철 흘러나오기도 하지요.” “정말요? 많이 아프겠네요.” “하하하! 제 물건을 소저께 함부로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녀석이 보기와는 다르게 여린 성격을 지녀 조심조심 다뤄줘야 합니다. 잘못 다루면 주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니까요.” “그럼 살살 다루셔야 되겠네요. 물건을 관리하고 다루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남자인 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을요. 5살 때 이 녀석을 처음 쥐고 흔들었을 때부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래도 처음 쥐고 흔들었을 때의 그 쾌감이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휘두르니 주변에 큰 기쁨도 주고 그럭저럭 물건 값은 하고 있습니다.” “어머! 정말 대단하세요. 5살 어린나이에 벌써 물건을 쥐셨다니. 그럼 최근엔 이 물건을 어디에 사용하셨어요?” “어디보자? 그게 가장 최근엔 비담에게 꺼내어 사용하였지요. 우리 둘은 서로 물건을 맞대며 지극한 기쁨을 맞보았답니다.” 58화 까망이들의 동공이 급속도로 커지며 비담을 징그러운 벌레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이어지는 구토. 우웩 어우욱 비담 역시 인철의 뜬금없이 터져 나온 모함에 할 말을 잃을 채 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 벌렸다. 저것은 오해라고,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변명을 하고 싶었으나 너무 큰 정신적 충격에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리고, 뇌마저 자신의 기능을 팽개치고 직무유기를 하는 바람에 홀라당 더러운 누명을 덮어 쓰고 말았다. 채앵 곳간 안에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으나 구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까망이들은 미처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아직도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뇌로 인해 비담 역시 소리를 놓치고 말았다. “이야! 정말 쭉 뻗은 모습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요. 이거 언제 넣어야 되요?” “소저의 마음이 흡족해지면 그 때 넣겠습니다.” “정말요? 그럼 더 구경해도 되나요?” “하하, 그 녀석 역시 민감하니 조심히 다루기만 한다면 얼마든 구경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소저께서 만족을 느끼신 후 넣고 싶을 때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제가 넣어 드리겠습니다.” “호호, 자상하시네요. 고맙습니다. 그럼 밝은 곳에서 구경할래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 신나십니까?” “그럼요. 매일 침상에 누워 상상만 했는걸요. 그러다 제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아마도 오늘밤을 잊지 못할 거예요.” “저도 자랑스레 제 물건을 꺼내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곳간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영혼 둘의 경쾌한 대화가 이어질 무렵, 수풀 속에선 정신 줄을 놓고 허망하게 앉아 있는 비담과 그를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며 입가에 묻은 분비물을 훔치는 까망이들의 묘한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비담과의 거리를 벌린 까망이들은 비담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던졌고, 비담은 억울함과 분함이 가득한 눈으로 까망이들에게 호소하였다. 하지만 곳간 안의 대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자 비담과 까망이들은 암묵적으로 휴전에 합의하고 다시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충분히 구경했으니 그만 넣어주세요. 너무 바깥구경을 오래했다며 잔뜩 화를 낼지도 모르잖아요. 헤헤.” “별 말씀을요. 이 녀석은 원체 바깥에 나오는 걸 좋아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넣어도 된다고 하셨으니 염치불구하고 넣겠습니다.” “아니에요. 자꾸 구경을 시켜달라며 조른 것은 저인걸요? 그런데 집이 조금 작아 보이는데 꽉 끼어서 답답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네요.” “보기엔 이래보여도 들어가면 꽉 맞물려 한 치의 틈도 없답니다. 음양의 조화가 오묘하다는 것을 넣을 때마다 느낍니다.” “우와, 물건을 보면서도 그런 걸 느끼시다니 정말 존경스럽네요. 저도 빨리 그 물건을 가지고 싶어요.” “하하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소저께 어울리는 아담하고 가벼운 것으로 말이지요.” “저, 정말요? 제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요?” “당연히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소저라고 해서 이런 물건을 가지지 말란 법이 없지요. 나중에 손수 무공도 몇 가지 가르쳐 드리고 제 손으로 직접 장만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마음껏 쥐고 휘두르십시오.” “꺄아! 생각만 해도 벌써 흥분되고 미칠 것 같아요. 오늘의 약속 꼭 지키셔야 되요.”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 했으니 반드시 소저와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돌아오는지 모르겠군요?” “그러게요. 음식을 구하러 가신 까망이님들도 그렇고 볼 일 보러 가신 분들도 감감 무소식이라 걱정이 되네요. 나가신지 꽤 오래 되었는데.” “함께 나가서 찾아볼까요?” “네. 그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참, 소저의 보드라운 물건 챙겨 나오십시오.” “호호, 대장님도 물건 빠뜨리지 마시고 가슴에 끌어안고 나오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 녀석과 저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 걸요. 하하하.” 둘은 곳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곳간 주변의 수풀에 서서 귀신이라도 보았는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는 비담과 까망이 스물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눈엔 지금 인철의 품에 살포시 안겨있는 검 한 자루와, 조심스럽게 자신의 털옷을 쓰다듬는 빙루의 모습이 망막 가득 잡혀 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하냐?” “여기서 뭐하세요?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있었나요?” 정말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인철과 빙루였다. 둘은 서로의 털옷과 검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구경꾼들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며 제대로 농락당한 것이었다. 다시 곳간으로 돌아온 일행은 17호와 18호가 얻어온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비담은 음식을 먹으며 간간히 까망이들을 향해 눈에서 광선을 내뿜었고, 본의 아니게 오해와 억측들로 비담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까망이들은 지은 죄가 있었던 터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눈치 없는 인철과 빙루는 비담과 까망이들 사이에 생긴 깊은 오해의 골이 자신들의 대화 때문임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즐겁게 음식을 먹느라 바빴다. 비담은 까망이들이 꼬리를 말고 묵묵히 식사에만 열중하자 이번엔 분노의 화살을 인철에게 돌렸다. 좋게 처음부터 칼이라 설명하고 비담과 서로 무기를 섞어가며 즐겁게 싸웠노라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처럼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굳이 물건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한순간이었지만 자신에게 씻지 못할 불명예를 안겼기에 속에서 화산이 터질 지경이었다. 비담은 쌍심지가 돋은 눈으로 태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는 인철을 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식사가 끝나는 대로 저 좀 보시죠.” “응? 갑자기 왜?”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시간 좀 내주십시오.” “아, 알았네.” 비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인철은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으나, 바로 이어지는 말을 하며 비담이 살짝 부채에 손을 가져가자 마지못해 승낙을 하였다. 만약 거절을 하면 무조건 부채를 날릴 기세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하루 종일 고단했던지 빙루가 먼저 잠을 청하고, 까망이들 역시 곳간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눈을 붙였다. 태연하게 잠을 청하려던 인철은 얼굴 한쪽이 따끔따끔 거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다 비담과 눈이 마주쳤고, 나오라는 비담의 신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거참 알 수가 없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순한 양처럼 내 말이라면 고분고분 따르던 동생의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