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쾌도강산 제1권. - 42편 (42/43)

2026-10-08 18:49:05 조회 4
'강형!' 곽가량의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때 통로 저편에 흐릿한 하나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 자는 한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수급이었다. '죽여버린다.' 곽가량은 품안에 안고 있던 송자영을 내려놓으며 서서히 통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 통로 속의 인영이 통로를 완전히 빠져 나와 광장에 들어섰다. 비로소 곽가량은 그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에 절은 의복, 텁수룩한 수염, 산발한 머리, 그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무정한 눈동자, 그리고 남은 한 손에 쥐어진 칼 한 자루... 금강! 곽가량은 멍청히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 띄엄띄엄 한마디라도 지껄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쪽을 보고 히죽! 웃음지었기 때문이었다. "가, 가... 강... 산?"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는 강산이었다. 2 강산은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사대천왕이 주춤거리며 그의 앞을 막았다. 강산은 그들의 발치에 양한평의 수급을 던졌다. 흠칫하며 사대천왕중 한 사람이 물러섰다. 그러자 남은 세 사람 역시 주춤주춤 물러났다. 양한평이 죽었다! 천하의 삼불귀가 몸이 난자당한 채 목이 잘려진 것이다. 사대천왕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 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어찌 강산의 앞을 막을 수 있겠는가? 강산은 유유히 사대천왕 사이를 빠져나왔다. 그는 똑바로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송자영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반쯤 얼이 빠져버린 모습으로 강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송자영의 면전에 이른 강산이 입을 열었다. "다쳤구려." 송자영이 고개를 저었다. 비록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은 잔뜩 메어져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나 그녀는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괜찮아." 그때, 저편에서 위지광이 소리쳤다. "무엇 하는 게냐? 쳐라!" 그 순간, 강산이 쩌렁! 큰 한 소리를 뱉었다. "멈춰라!"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광장 전체가 무너질 듯 웅웅거렸다. 덕분에 중인들을 덮쳐가던 십팔신장들이 놀라 걸음을 멈췄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강산은 송자영의 뺨을 한 차례 다둑거려 주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시선속으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위지광의 모습이 들어왔다. 강산은 똑바로 위지광을 향해 다가갔다. 칠 장, 육 장... 순식간에 거리는 사 장으로 줄어들었다. 와중에 십팔신장 중 살아남은 자들과 사대천왕이 강산을 에워쌌다. 강산은 삼 장 거리를 남겨놓고 멈춰 섰다. "이렇게 하자." 위지광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독랄한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강산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지겨운 싸움을 너와 내가 끝을 맺자." 위지광의 입술이 벌어졌다. 잇새로 사이한 음소(陰笑)가 흘러나왔다. "크크크, 무리한 요구라 생각지 않느냐? 저기 넝마나 다를 바 없는 자들과 내 팔팔한 수하들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내가 너무 손해보는 짓이 아니냐?" 강산은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어차피 변하는 것은 없다. 순서 문제일 따름이다." "순서? 크크, 그럴듯한 말이군. 하지만 선택은 네가 아니라 내가 한다. 그리고 내 선택은... 크크크!" 위지광이 잠시 말을 끊고 미소지었다. 얼굴 가득 사악한 기가 넘쳐흘렀다.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표정이었다. "내 선택은... ." 한데 위지광의 이야기가 다시 끊겼다. 어디선가 들려온 늙수그레한 음성이 그의 말허리를 잘라버린 것이다. "틀렸다. 선택은 강산이 한다." "......?"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정체불명의 음성이 들려온 곳을 향했다. 위지광의 뒤쪽 통로, 바로 위지광과 그의 수하들이 나왔던 통로였다. 이내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니,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총 네 명이나 되었다. "흑!" "허억!" 그들이 모습을 보임에 따라 여기저기서 공 바람 빠지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강산은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나타난 자들의 몰골이 너무나 기괴하기 때문이었다. 작게는 허리에서 많게는 발끝까지 늘어뜨린 머리에, 귀광(鬼光)을 번뜩이며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습이 도저히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가공(可恐), 바로 그 자체였다. 강산이 알고 있는 것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강산은 그들의 정체 역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현인정과 인마, 지마, 공현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자들이....?' 위지광은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다 된 밥에 죽을 빠뜨려도 유분수지, 그토록 고생고생 해 가며 이제 상대를 마지막으로 몰아넣고 숨통을 끊으려는 순간 무공을 측량할 수도 없어 보이는 네 명의 절대고수가 나타났으니 그가 돌지 않은 것이 신통할 지경이었다. 네 사람의 출현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비록 그들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선택은 강산이 한다.' 라는 그 한마디로써 피아(彼我)의 구분만은 명확했던 것이다. 위지광은 벌건 안색을 하고 물었다. "뉘시오?" 현인정은 턱으로 강산을 가리켰다. 강산에게 물어보아라 하는 뜻이었다. 위지광은 잠시 현인정을 쏘아보다가 돌아섰다. "우리 둘이서 끝을 맺자고? 내가 승리했을 때 얻게되는 것은?" 그는 말을 하면서 품속에 손을 넣었다. 품을 빠져 나온 그의 손에는 그 재질을 분간하기 어려운 검은 색 수갑(手甲) 한 쌍이 쥐어져 있었다. 부드러운 것을 보며 가죽 같은데, 마치 흑진주처럼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것이 금속 같기도 한 것이다. 강산이 짧게 말했다. "당연히 네 수하들과 함께 떠날 수 있다." 위지광이 수갑을 끼며 물었다. "어떻게 믿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뒤쪽의 현인정에게서 나왔다. "그의 한마디는 천금(千金)과도 같다." 위지광은 피식!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 강산은 위지광이 수갑을 다 끼기를 기다려 냉랭히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물러나라." 십팔신장과 사대천왕은 위지광의 눈치를 보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물러났다. 이제 넓은 광장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남게되었다. 강산은 금강을 하단으로 내린 채 일 보를 전진했다. 일반적으로 하단세(下段勢)는 상대를 끌어들여 승부를 지고자 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위지광은 강산의 그 자세만 보고도 그가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게 끌면 불리하다.' 위지광이 마주 일 보를 내디디며 말했다. "이것은 혈천마갑(血天魔甲)이라는 물건으로, 교룡(蛟龍)의 힘줄을 꼬아 만들었다는 보물이다. 그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물질임에는 틀림없다. 창검은 물론 만년한철(萬年寒鐵)이라 할지라도 일단 걸리면 썩은 장작 꼴을 면치 못하게 되지. 너는 강호에서 이 혈천마갑을 보는 최초의 외인(外人)이다. 아울러 최초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위지광이 수갑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사이 강산은 삼 보를 더 전진했다. "입으로 싸울 참이냐?" 그 순간, 위지광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는 지금껏 강산의 신경이 분산되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사라진 위지광은 벌써 강산의 면전에 육박해 있었다. 쉬잇!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흘리며 위지광의 좌수(左手)가 강산의 머리를 훑었다. 순간, 강산은 허리를 뒤로 틀었다. 핏! 위지광의 좌수가 강산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간일발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금강이 위지광의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강산이 굳이 헛점을 보이면서 까지 위험을 자초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순간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한 자, 위지광이 피할 수 있는 공간도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오직 남은 길은 한 길, 두 쪽이 나는 길뿐이었다. 그런데...? 쩡! 기이한 소리가 났다. 도저히 쇠와 육신(肉身)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괴음이 난 것이다. "크크크,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물질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강산은 의문을 가질만한 여유도 없이 위지광의 두 번째 공격을 피해야했다. 우측으로 사라졌던 위지광의 좌수가 어느새 정면에 나타나 가슴을 쥐어왔던 것이다. 강산은 틀었던 허리를 펴며 그 탄력으로 위로 솟구쳐 올랐다. 다행히 공격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았던 관계로 제때 피할 수 있었다. 다만 강산은 피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사라졌던 금강이 강산의 등을 돌아 크게 원을 그리며 위지광의 목덜미를 베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쩡! 강산은 비로소 혈천마갑의 위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씩이나 금강을 막은 것은 틀림없는 위지광의 손, 혈천마갑이었다. "간지럽구나." 위지광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짓쳐들었다. 강산은 재빨리 물러났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강산은 점점 수세(守勢)에 몰렸다.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에서 조금씩 물러나더니 급기야는 일방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위지광의 손은 엄청나게 빨랐다. 그는 혈천마갑을 낀 양 손을 그야말로 전광(電光)이 무색할 정도로 휘둘렀는데, 그것은 수비를 완전히 도외시한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장갑에 보호된 그의 손은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살인흉기나 마찬가지였다. 그 살인흉기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미친 듯이 날아들고 있으니 배겨날 도리가 없었다. 이제 금강은 칼이 아닌 방패로 전락하고 말았다. 베고 쓸고 하는 칼 고유의 동작은 까맣게 잊은 채, 그저 강산의 몸뚱이에 바싹 붙어 막고 퉁기고 비껴낼 뿐이었다. 한데 문제는 단지 그에 그치지 않았다. 금강이 부서지고 있었다. 비바람에 바위가 깎이듯, 혈천마갑에 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챙! 기어코 금강이 부서지고 말았다. 비록 끝부분이 조금 부서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중인들에게 주는 타격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금강이 부서지는 순간, 장내에 가득 탄성이 메아리쳤다. 반은 환호성이요, 반은 절망적인 탄식이었다. 바로 그때, 금강이 부서지고 탄성이 메아리치고, 곽가량이 뛰쳐나가려 자세를 잡을 때! 강산이 훌쩍 뛰어 이 장여를 물러났다. 위지광이 눈빛을 싸늘히 빛내며 소리쳤다. "놈, 도망치려느냐?" 그 순간 강산은 금강을 보고 있었다. 듬성듬성 이가 빠지고 끝이 잘린 금강을 덤덤한 눈길로 응시하고 있었다. 수하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장수를 생각케하는 모습이었다. "진혼곡(鎭魂曲)이라도 불러주랴?" 위지광은 냉랭히 일갈하며 신형을 날렸다. 중인들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멀쩡한 금강을 가지고도 위지광의 혈천마갑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날이 빠진 칼로 어떻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위지광은 이미 강산의 죽음을 예견한 듯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양 손으로 강산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의 공격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대신 엄청나게 빠를 뿐이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혈천마갑은 공포(恐怖)스럽기 조차했다. 그 순간, 강산은 왼손으로 금강의 날을 힘껏 움켜잡고 오른 손으로 금강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무명(無名)을 꺼내들었다. ......... 주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중인들은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흑지의 고수들은 흑지의 고수들대로, 곽가량등 중인들은 그들대로 모두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산의 오른 손. 그곳에는 실로 기이한 모습의 병기가 쥐어져 있었다. 글쎄... 이것도 칼이라고 해야 할까? 길이는 삼척이 겨우 될까말까 했다. 꼬챙이처럼 가늘고 길었으며, 기이한 금광(金光)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도신(刀身)은... 톱날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한 톱날이었다. 기이하게도 강산이 들고 있는 칼날은 톱니바퀴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위지광은 강산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멍하니 강산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두 팔은 이미 잘려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왼쪽가슴에서 오른쪽 가슴까지 끔찍한 도흔(刀痕)이 나 있었다. 마치 톱으로 썰어놓은 듯 횡(橫)으로 그어진 도흔은 끔찍스러운 것이었다. 그 도흔이 조금씩 벌어지며 시뻘건 선혈이 뿜어나오고 있었다. 그토록 가공할 위세를 자랑했던 혈천마갑은 산산히 부수어진 채 그 잔해만이 사방에 널려 있을 뿐이었다. 위지광은 다시 고개를 들어 강산을 쳐다보았다. "그... 그 칼은..." 강산은 수중의 칼을 왼손으로 가져갔다. 그의 왼손에는 여전히 날이 빠진 금강이 쥐어져 있었다. 기이하게도 금강의 손잡이는 어디론가로 빠져나갔고, 그 사이로 무언가가 들어갈 수 있는 길쭉한 공간이 내비쳤다. 강산은 톱니모양의 칼을 그 공간에 집어넣었다. 철컥! 나직한 음향과 함께 칼은 금강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중인들은 금강이 사실은 칼이 아니라 칼집임을 알 수 있었다. 금강 속에 다른 하나의 칼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위지광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 칼은...." 강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이름이 없다(無名)." 위지광의 몸이 한 차례 격렬하게 떨렸다. "무명이라고....?" 그러더니 그의 신형은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쿵! 그의 몸은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쓰러진 그의 가슴에 나 있는 흔적은 양한평의 시신에 나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 * * 쿠쿠쿠쿠쿵----! 땅이 울었다. 그리고 화염이 솟구쳤다. 화염은 하늘 끝까지 솟구쳤으며, 땅은 며칠이 지나도록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어느 날인가 세상의 끝 남만 땅에서 이루어진 폭발이었다. "참, 저놈의 화염 좀 보소. 벌써 이틀이 지났건만 도무지 사그라들 줄을 모르네." 잠시 휴식 중에 곽가량이 남쪽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구청연이 물을 마시다말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휴-!" 한순간, 그의 입에서 까닭 모를 한숨이 터져나왔다. 곁에 누워 있던 이항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왜, 지금도 아까운가?" 구청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벌써 포기했습니다. 이제는 지난 일인 걸요." "그래, 포기해야지. 뭐, 포기하지 않았다 한들 이제 와서는 별 수 없지만." 구청연이 문득 이항을 직시하며 물었다. "한데 선배님께서는 어디 소속이십니까?" 이항이 픽! 웃었다. "그것이 궁금한가?" "다들 내력을 밝혔는데 오직 선배님만 불분명 하지 않습니까?" "그게 밝힌 것인가? 밝혀진 것이지." 순간, 곽가량이 불쑥 소리쳤다. "구마림(九魔林)이 아니면 또 어디겠소?" 구청연이 의아해 물었다. "곽형이 그것을 어떻게 아시오?" "참, 내가 어디 소속이오? 개방의 정보망이 최고라지만 어디 황궁만이나 하겠소?" 곽가량의 음성은 매우 밝았다. 활기가 철철 넘쳐 흘렀다. 본래 곽가량이라는 인물이 시무룩해서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난 이틀간은 지나칠 정도였다. 이래도 헤헤! 저래도 헤헤! 송자영이 면박을 주어도 헤헤! 한 대 터져도 헤헤!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이항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곽가량의 허리춤에 있는 볼록한 부분, 이유는 그것이었다. "자네, 야광주를 몇 개나 가져왔나?" 한마디, 이항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한마디가 여러 사람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무, 무, 무슨 야광주 말입니까?" 곽가량은 안색이 변해 소리쳤고, "야광주를 가져왔어?" 송자영은 누워 있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곽가량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염병할 놈의 영감탱이!' * * * "아야야!" 송자영이 넘어졌다. 평평한 길에서, 튀어나온 돌부리 하나 없는 길에서, 누가 미는 놈도 없었는데... 그냥 넘어졌다. "영매, 어디 다쳤... ." 이항은 눈치도 없이 주절대는 곽가량의 팔 소매를 끌었다. "왜 그러십니까?" "미련스럽기는... 조용히 따라오게." 이항과 곽가량, 구청연이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송자영은 강산의 등에 업혔다. "에헤헤... 좋다. 그런데 언제부터 알았어?" "뭘 말이오?" "내 정체 말이야." "짐작은 하고 있었소." "그게 언제냔 말이야." "난창강을 건널 때요. 분명히 표식이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다음 날 추적대가 여전히 따라오는 것을 보고 짐작했소. 당시에 내 뒤에 온 사람은 그대... 밖에 없었거든." "그대? 음, 좋아. '당신'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났군. 그리고 완전히 알았을 때는?" "흑지에 도착해서요. 입구를 발견했을 때와 내가 철문을 부수려하자 확신에 찬 어조로 폭약이 매설됐을지도 모른다면서 말렸을 때." "그렇구나. 흠, 궁금한 것은 이제 됐고, 내게 뭐 궁금한 것 없어?" "하나 있소. 왜, 고량이나 사마자웅조차 당신의 정체를 몰랐던 것이오? "당신이야? 그대야?" "그대!" "방내(幇內)에 알력이 있어. 방주인 위지한승을 중심으로 모인 소장파(小壯派)와 금비 아저씨와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인 노장파(老壯派). 뭐, 이유야 뻔한 거지. 더 멀리 날고 싶은 게 젊은 사람들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게 늙은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흑지를 조사하기 위해 몰래 숨어들었던 거야." "어머니라면..."" "칠대공 중의 세 번째인 화공 구환쌍비 유옥연이 우리 어머니야." "그랬었구려. 한데 아까부터 등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리는데, 돌이라도 넣어 두었소?" "아, 이거. 돌은 돌이지. 야광주야." "야광주? 그대도 가지고 나왔오?" "아니, 곽가량이 주데. 시집밑천 하라고. 호호호...!" < 大 尾 > 쾌도(快刀) 강산(江山) 이라는 사나이. 운중행(雲中行)을 알게된 지는 벌써 오년이 되어간다. 처음 망원동 사무실에 있을 때 불쑥 찾아온 더벅머리 청년이 어느 새 삼십대 중반을 바라보는 중견작가가 되어 있으니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운중행은 무던히도 나를 웃기고, 속 썪였으며, 황당하게 했다. 언제나 그와 함께 한 시간동안 나는 내내 즐거웠다. 이번에 운중행이 자신의 네 번째 작품인 <쾌도강산(快刀江山)>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무협(武俠)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하고 '강산(江山)'이라는 하나의 사나이를 함께 만들어 갔지만, 그동안 내내 힘들다기 보다는 신나고 재미있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지극히 운중행다운 해학과 익살, 그리고 무협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완벽한 문장이라고는 할 수 없고, 무협 본연의 통쾌한 맛도 떨어지지만 운중행의 작품에는 분명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의 맛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본 작품, <쾌도강산>은 운중행이 2부작으로 기획한 작품중 첫 번째 이야기이다. 무대가 중원이 아닌 머나먼 남만(南蠻)이고, 주된 이야기의 골격은 오천 리에 이르는 여정(旅程)이다. 얼핏 단순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 단순함 속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집어 넣은 것은 운중행만의 재주일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마도 강산이 중원으로 돌아와서 벌이는 이야기 일 텐데, 가칭 <쾌도무영(快刀無影)>이라는 이름아래 작업을 진행중이다. 하나 변덕심한 운중행이 마음이 바뀌어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펼치겠다고 나설 지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그의 문장이 매끄러워지고 스토리의 미흡함과 대화(對話)의 미비점이 고쳐질 때까지 나는 늘 그의 곁에 머물 생각이지만, 설사 그가 완벽한 문장에 완벽한 스토리를 갖춘 완벽한 작가가 되었다 해도 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다.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한없이 즐겁기 때문이다. <쾌도강산>을 읽고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 공(功)은 당연히 운중행의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며 즐거워할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신년(新年),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처럼 '용대운프로'의 출범과 아울러 더욱 새롭게 변신한 운중행에게 찬사와 격려의 말을 보내는 바이다. 코끝이 차가운 날, 용화소축(龍華小築)에서 용대운(龍大雲) 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갓 일 년을 넘겼으니 자취 초년생인 샘입니다. 촛자가 늘 그렇듯 하루하루 몰랐던 많은 점을 배웁니다. 낮에 자는 법, 저녁에 노는 법, 될수록 적게 먹고, 될수록 적게 움직이고, 될수록 많이 사랑하는... 그 모든 일들이 때론 햇살로, 때론 눈으로, 때론 흐림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일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합니다. 가슴에 새기지 못해서이겠지요. 새겨야 할 것을 새겨갈 때, 그것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삶이 좀 더 풍족해지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자취 초년생치고는 너무 감상적이지 않나 하고도 생각해봅니다. 감사를 드려야할 분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