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강산 제1권. - 9편 (9/43)
다만 일행 모두의 생각이 강산과 같은 건 아니었다.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은 추적대의 기습에 의문을 갖고있었다.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는데?' '우리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것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 * * * 서둘러 밤을 달린 일행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속도를 늦췄다. 그때쯤 일행은 많이 지쳐있었다. 평범한 곳에서라면 두 시진이 아닌 이틀을 꼬박 달려도 호흡 한번 흐트러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들이었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밀림인 것이다. 더구나 점창산을 벗어나면서부터 희미해지던 길의 윤곽이 겨우 짐승들이나 다닐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뚝 끊겨 단 일 장을 전진하려해도 서너 번의 칼질을 필요로 했다. 쉬칵, 후두둑! "씨부랄, 어디 길다운 길 좀 안 나오나?" 퍽, 퍽, 후두둑! "망할 놈의 덩굴은 또 왜이리 질겨?" 선두에서 길을 트던 문정인이 연신 쌍소리를 쏟아 부었다. 평소에 묵직했던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현재 그의 고초가 어느 정도라는 건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보다못한 양표가 선두를 자청하고 나섰다. "문형, 그만 교대합시다." 문정인은 쾌히 응낙하고 물러났다. "아직은 견딜만한데... 험! 그래 주시겠소?" 양표는 내심 문정인의 얕은 인내에 경멸을 보냈다. '쯧쯧, 겨우 일다경을 버티지 못하고.... 다 하초가 부실한 탓이지.' 그리고 일다경의 반이나 지났을까? "씩씩!" 어디선가 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후우!" 곰 숨넘어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러다가 급기야 곰 폭발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개잡놈의 새끼가 감히 누구를 물려고 하는거야?" 범이라도 나타났나 싶어 앞을 보던 일행은 양표를 습격한 것의 정체를 보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절간 솥뚜껑 마냥 큼직한 양표의 손에 잡힌, 아니 짓이겨져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 개잡놈의 정체는 바로 모기였다. "양대협, 교대합시다." 선두는 소귀로 바뀌고 오래지 않아 다시 서문상으로 바뀌었다. 소귀가 후미로 빠지자 송자영이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가야하지?" 소귀는 가쁜 숨을 고르며 답했다. "흐읍, 흐흡! 빠르면 오늘 밤중으로... 적어도 내일까지는 난창강(瀾蒼江)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추적대는? 떨쳐버릴 좋은 방법 없어?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빨리 가더라도 흔적이 남잖아?" "그것도 난창강에 도착하면 자연히 해결됩니다. 강기슭을 따라 가다가 적당한 시기에 강을 건너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따라오면?" 거듭된 송자영의 물음에 소귀는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진짜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빗거리를 만들려는 것인지? 소귀는 일행이 처한 상황을 되새겨보았다. 세 시진을 넘어서는 행군에 심장을 달구는 폭염, 처진 분위기... . 아무래도 후자(後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염병할, 이거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은데... .' 소귀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최고의 추적자라면 능히 강을 건넌 흔적조차도 찾아낼 수 있으니 송소저의 질문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추적대에 최고의 추적자가 끼어있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밖에도 떼어버릴 장소는 많으니까요." 말을 마친 소귀는 송자영의 눈치를 살피며 단 한가지 질문만은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떼어낼 장소도 좋고 추적자래도 좋다. 제발 그 질문만 하지 말아다오.' 그런 소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자영의 입이 열리고 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따라오면?" 쿠쿵! 소귀의 뇌리에 낙뢰(落雷)가 쳤다. 이로써 모든 게 확실해졌다. 송자영은 결코 질문 따위를 하고있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그가 무슨 대답을 하더라도 그녀는 계속 같은 질문을 할게 뻔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대답이 아니라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전전긍긍, 소귀는 과연 이 위난을 타개할 방법에 어떤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없었다. 이미 시비 걸기로 작정한 암호랑이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결국 소귀는 포기했다. 괜히 바동대다간 채여 끝날 것 밟혀죽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 한데 그때였다. 예정된 결과에 겨우 '요.' 한 자만을 남겨놓은 그 순간, 놀랍게도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빨갛고 까만 생명줄이 내려온 것이다. "움직이지 마시오." 격한 한소리와 함께 소귀는 날쌔게 손을 뻗쳐 밧줄을 잡았다. "뭐야?" 송자영은 이젠 별 수작을 다 부리는구나 싶어 콧방귀를 날렸다. 하나 이내 소귀가 잡아 챈 밧줄을 보더니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꺄악!" 송자영은 마치 급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어 강산의 등에 매달렸다. 밧줄의 정체는 뱀이었다. 빨간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섬뜩한 뱀인 것이다. 놈은 꿈틀꿈틀 소귀의 손에서 발버둥을 치고있었다. 강산이 뱀을 눈짓하며 물었다. "독사인가?" 소귀는 힐끗 송자영을 일견한 후 웃음지으며 말했다. "반추사(反雛蛇)라는 뱀이 있습니다. 병아리와 비슷한 색을 띠고 있다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지요. 하지만 그 이름과는 달리 비길 데 없이 강한 독을 지닌 놈으로, 삼보추혼(三步追魂)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놈입니다." 가장 뒤에 처져있던 곽가량이 흥미가 생겼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물었다. 그는 행여 선두에 서게 될까 두려워 악착같이 후미를 고수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놈은 전혀 병아리를 닮지 않았는데?" "이놈은 그저 반추사 흉내를 내는 화사(花蛇)에 불과할 따름이지요." 팔과 다리로 강산의 목과 허리를 단단히 휘감은 송자영이 두려워 달달 떨면서도 그 시선만은 뱀에게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곽가량은 그런 송자영을 샛눈으로 응시하면서 뱀을 툭 손으로 건들어 보였다. "이봐, 풀뱀이라는데." "꺅! 치워." 송자영은 더욱더 강산의 목을 옥죄었다. 송자영의 격한 반응은 일행에게 뜻밖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곽가량에게는 말할 수 없는 환희를 주었다. '클클, 뱀! 뱀이란 말이지!' 소귀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만 이와 비슷한, 빨간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놈을 만나면 절대 조심해야합니다. 원주민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있습니다. 빨강에 검정이 있으면 무해(無害)하지만 빨강에 노랑이 있으면 한 명 죽는다 라는." 그때까지 뱀머리를 쓰다듬던 곽가량은 흠칫하여 손을 뗐다. 이어 팔을 몇 바퀴 돌려보더니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나갔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힘 좀 써볼까. 서형, 우리 교대합시다." 송자영은 곽가량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인간이 웬일이지?' 그때 푸석푸석한 강산의 음성이 귓전에 들려왔다. "그만 내려가는 게 어떻겠소?" 놀라진 않았소? 라고 따뜻이 묻지는 못할 망정... 참말 멋대가리라곤 새 눈물만큼도 없는 자식이다. 그후, 선두를 잡은 곽가량은 무려 두 시진에 걸쳐 길을 뚫었다. '이 자식들이 몽땅 휴가를 갔나? 널린 게 뱀이라던데.' '빌어먹을, 힘들어 죽겠네. 하지만 한 놈 건질 때 까지는... .' 태양이 중천에 떠올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선두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2 그날 밤, 일행은 보초를 두 명으로 늘렸다. 초번은 곽가량과 이항으로, 둘은 큰 나무아래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곽가량이 웃었다. 히죽히죽! 고개를 젖혀 야공(夜空)을 응시하며 반쯤 입을 벌리고 실실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미친 놈이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이항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곽가량은 휘휘 손을 저었다. "그게...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지만 헤벌쭉 귀밑까지 찢어지는 주둥이는 뭔가? 하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데야.... 이항은 툭툭 곰방대를 털고 새로이 연초를 쟀다. 이후에도 곽가량의 그 요상한 미소는 계속되었고, 그렇게 일 각 정도나 지났을까? 곽가량이 은근히 속삭였다. "선배. 그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잠시 후면... 으흐흐!" 그러다가 다시 말을 끊고 음흉히 웃음지었다. 이항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늙은 생강의 오랜 경험으로 이럴 때는 그저 관심 없는 척 가만히 놔두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데?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고 말 좀 해봐?라고 장단이라도 맞춰주다가는 그대로 상대의 기세만 올려줄 뿐이다. 과연 이항이 상대를 안해주자 곽가량은 즐거움이 적잖이 반감된 모양인지 히죽거리는 와중에 입술을 삐죽삐죽거리며 말하고 싶어 환장하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클! 오래 버티진 못하겠군.' 이항은 느긋하게 기다렸고,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된 겁니다." 한데 곽가량이 막 속사정을 설명하려는 순간, 뜻밖의 방해자가 나타났다. 송자영이 저편에서 다가오는 것이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녀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손에는 낯익은 밧줄 하나가 들려있었다. "......!" 그녀의 손에 들린 뱀을 본 순간, 이항은 대충 일의 전후(前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뱀이 송자영의 약점이라 생각한 곽가량이 뱀 한 마리를 구해 슬쩍 그녀의 잠자리에 집어넣은 것이리라. '쯧쯧쯧! 불쌍한지고.' 곽가량은 제 이야기에 취해 그녀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떠벌리고있었다. "선배께서도 보셨지요? 어제 오전에 일어난 사건을. 큭큭! 전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더라구요. 큭큭!" 곽가량이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송자영은 이미 곽가량의 바로 등뒤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항은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외면하고 말았다. "선배, 어딜 보십니까? 이제부터가 진짜인데." 순간, 싸늘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너지?" 더불어 스르륵! 뱀꼬리가 곽가량의 이마를 타고 늘어졌다. "힉!" 그 서릿발처럼 차가운 음성에 놀라고 늘어지는 뱀꼬리에 거듭 놀란 곽가량은 마치 염라대왕이라도 대면한 듯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하나 그가 물러선 곳에는 이미 송자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곽가량은 황급히 손발, 머리를 저었다. "무, 무슨... 나, 나 아냐." "흥! 잠자리를 봐준다며 들썩거릴 때부터 내 알아봤어." "저, 정말 내가 안 그랬어." "빌어먹을 자식아! 왜 먹을 것 가지고 지랄이야." 퍽! 눈앞에 별이 반짝하며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골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곽가량은 그 골을 빠갤 듯한 통증에 앞서 의문을 느꼈다. '먹을 것...?' 송자영이 돌아간 후 곽가량은 물었다. "선배,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된 일은. 말 그대로 뱀이나 만두나 뱃속에 들어가면 그게 그거지." "하지만 분명히 어제 오전에는...?" 이항이 끌끌 혀를 찼다. "누군가가 옆에 있고 없음의 차이지. 생각해봐, 곡정에서 시장구경 나갔을 때를. 그 삼 장이 넘어가는 거망을 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는데, 겨우 도토리만한 게 위협이 되겠어?" 의문이 풀리자 비로소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보다 몇 곱절이나 강력한 것이었다. "백여시같은 년! 선배?"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일은 꼭 새알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곽가량이었다. * * * 다음 날, 새벽같이 길을 나선 일행은 정오 조금 못미처 난창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복은 땀에 절어 소금기가 허옇게 떠있었고, 물통의 물은 떨어진지 오래였으니 실로 일행의 반가움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강은 꽤 넓었다. 잔잔한 강물이 십여 장 너머까지 이어져있었고 축축 늘어진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기슭까지 헤아린다면 능히 이십 장은 넘어 보였다. "꽤 큰데." 반가움인지 감탄인지 모를 문정인의 한마디에 소귀가 피식 웃음지으며 말했다. "난창강은 작은 강이 아닙니다. 이미 밝혀진 길이만도 일만 리를 헤아리는, 그 길이나 넓이가 결코 장강(長江)에 못지 않은 거대한 강입니다. 동네 개울 정도라서야 어디 남만의 젖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뭐? 그렇게나...?" 소귀는 손짓으로 상류를 가리켰다. "넓은 곳은 강폭이 백여 장에 이르는 곳도 있습니다. 앞으로 강을 따라 며칠을 보낼 것이니 제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씻는 건 될수록 기슭에서 해주십시오." 신발을 벗고 무릎깊이까지 들어갔던 송자영이 주춤 멈춰서며 물었다. "왜?" "악어를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는 없는 것 같지만." "뭐?" 송자영은 질겁을 하여 뒷걸음질쳤다. 뒤쪽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곽가량은 낮게 중얼거렸다. "놀고 있네. 또 속을 줄 알고. 흥, 백여시!" 그러다가 곽가량은 문득 송자영의 곁에 강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만...!' 주위를 둘러보자 과연 강산은 대여섯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더구나 주춤주춤 물러나 겨우 발목깊이에서 깔짝대는 송자영을 보니 이번에는 정말 내숭이 아닌 듯 싶었다. '이것 봐라.' 기쁨에 겨워 자신도 몰래 자리에서 일어났던 곽가량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문제가 있었다. 겨우 실마리를 잡은 것까지는 좋은데 걸리는 문제가 한둘이 아닌 것이다. 그 큰 놈을 어떤 방법으로 몰래 잠자리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놈을 잡으면 되겠지만 그러면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잡느냐에 있었다. '나도 무서운데...' 안타깝지만 포기해야만 될 운명이었다. '쩝쩝!' 곽가량은 입맛을 다시며 송자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발을 씻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더할 수 없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본 곽가량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안돼!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그 동안 받은 수모를 생각하면... 새끼라도 잡아서 넣어볼까? 아니야, 그 정도로는 안돼. 끄응! 곽가량아, 곽가량아, 머리를 써라. 머리를!' 끙끙! 그렇게 곽가량이 악어포획계획에 골머리를 썩이는 동안 강산 역시 한편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송자영과 이항은 아니란 말인가?' 그저께 밤, 강산은 새발자국처럼 생긴 흔적을 발견한 바 있다. 그것이 연락용 표식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강호인(江湖人)들이 흔히 사용하는 비밀 표식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일행에 삼절방의 첩자가 끼어있다는 걸 의미했다. 어제오늘 강산은 일행의 행동에 주의하였다. 특히 주의 깊게 살펴본 자는 둘, 송자영과 이항이었다. 대리의 정심장에서 머물 때 간밤에 담을 넘어온 두 사람의 행동이 의문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나 지난 이틀 간 살펴본 바로 그들은 어떠한 수상쩍은 행동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선두를 설 때도 있었고, 볼 일 보러 가는 곳까지 따라가지는 못했으니 완벽한 감시였다고는 할 수 없었다. 혹시 낌새를 채고 활동을 중지한 것인가? 라는 의문은 어젯밤 같은 표식을 발견하면서 지워졌다. '단순한 외출에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인가? 아니면 느슨하게 감시한 것인가?' 강산은 동료의 필요성을 느꼈다. 일행중 그가 동료로 삼을만한 인물은 오직 두 명 뿐이었다. '곽가량, 구청연.' 둘 일 필요는 없었다. 한 명이면 충분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일행은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려 길을 나섰다. 강기슭을 따라가자니 여정은 한결 수월했다. 물통의 물이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고 또한 일일이 밀림도를 휘둘러 길을 뚫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좋았다. 다만 한 가지! "악어를 조심하십시오." * * * 꾸륵, 꾸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린 갈매기가 칭얼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상처입은 짐승이 보호를 요청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무슨 소리지?' 부쩍 호기심이 동한 송자영은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띠는 건 없었다. 아쉬웠다. 그 맑고 연약한 소리로 미루어 틀림없이 작고 귀여운 동물일텐데. 병아리나 다람쥐 정도의... . 이 무료한 여행길에 그와 같은 동행이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말이다. 하지만 실망은 일렀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일행이 가고있는 방향,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는 온 신경을 곧두세워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 놈을 잡아서 어깨에 태우고 다니면... 후후!' 단지 생각만으로 즐거워지는 송자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역시 새(鳥)였구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보금자리 하나가 강기슭에 꾸며져 있었다. 두 아름이나 될까, 새 둥지치고는 조금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잔가지와 낙엽 등으로 도톰히 쌓아올린 그것은 틀림없는 새의 둥지였다. 꾹, 꾹, 꾹...! 외객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울음소리가 점점 급박하게 변해갔다. "호호! 귀여운 것들. 걱정하지 말아라, 해치려는 게 아니란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둥지로 접근했다. 노란 털이 수북한 병아리를 기대하면서. "꺄악!" 아닌 밀림에 웬 비명소리가 일행을 놀라게 하였다. "뭐, 뭐야?" "무슨 소리야?" "송소저 목소리 아냐?" "응? 정말 안보이네." 그제야 일행은 행렬에서 송자영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언제 사라졌어?" "가까운데 빨리 가보자고." 다급히 신형을 날린 일행은 십여 장 너머에서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과연 좀 전에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파헤쳐진 악어둥지, 꾹꾹거리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막 부화한 듯한 새끼악어들, 한 그루 나무위에 올라가 불쌍하다기보다는 가증스럽게 떨고있는 송자영, 비수를 댓 자루나 맞은 채 허연 배를 까뒤집고 발발!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는 불쌍한 어미악어. 악어는 채 이 장이 넘지 않는 작은 놈이었다. "그만 내려오시오. 이미 죽었소." 구청연의 이야기에도 송자영은 내려오지 않았다. "정말 죽었어?"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는 게 보이지 않소?" "발로 건드려봐." 구청연은 픽 웃음지며 그녀의 말에 따라 툭툭! 발끝으로 악어를 건들었다. 악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죽은 게 확실한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송자영은 나무를 내려왔다. 곽가량은 그 조심조심 나무를 내려오는 송자영을 곁눈질하며 악어둥지로 다가갔다. '새끼도 효과가 있을까?' 곽가량의 관심사는 그것이었다. 쪼그려 앉은 곽가량은 둥지를 살폈다. 대부분이 껍질만 남긴 채 도망가고 없었지만 개중에는 아직도 부화하지 못한 놈과 빙글빙글 둥지를 돌며 어미가 데려다 주기만을 기다리고있는 놈도 있었다. 곽가량은 그 중 한 마리를 잡았다. '에이 징그러워.' 꼬리를 잡힌 놈은 꾹꾹! 매우 시끄럽게 울어댔다. 곽가량은 개의치 않고 송자영을 향해 새끼악어를 들어 보였다. "새끼는 꽤 귀여운데." "꺄악! 저리 안 치워?" 질겁을 하는 송자영을 보며 곽가량은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이로써 새끼악어도 효과가 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그것도 기대를 한참 넘어서는 수준으로. 그런데 역시 문제는 있었다. 꾹꾹! 새끼악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쉿! 조용히 못해?" 숨죽여 욱박질러 보지만 통할 턱이 있나. 꾹꾹꾹꾹, 꽈악! "염병!" 정말 염병이었다. 쌀이 익어 밥이 되려는 찰나에 침을 튀겨도 유분수지,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있나.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송자영이 도끼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야, 너 그거 빨리 못 버려?" "염병!" "응? 야,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아니야, 이놈이 손가락을 물어서." 곽가량은 멀리 악어새끼를 버렸다. 생살을 도려내듯 아픔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진한 아쉬움에 휴우! 한숨을 내쉬던 그 순간! 번갯불처럼 강렬한 생각 하나가 곽가량의 뇌리를 스쳤다. '가만... .' <개구리는 어디서 오는가? 올챙이에서. 그러면 올챙이는 어디서 오는가? 개구리 알에서. 개구리는 우는가? 운다. 올챙이도 우는가?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구리 알도 우는가?> '그렇지!' 곽가량은 은근히 주위를 살피며 악어 알 하나를 집었다. 자기 형제들이 모두 나왔으니 이놈도 곧 나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안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던가, 오늘 곽가량이 딱 그짝이었다. 몰래 집는다고 집었지만 그걸 송자영이 본 모양이었다. "그건 뭐하게?" 비수를 회수하다 말고 묻는 송자영의 눈꼬리는 암팡지다 못해 매서웠다. 상큼 치켜세운 눈썹하며 독사처럼 번뜩이는 눈초리가 대답여하에 따라 주먹이라도 날리겠다는 기세다. "에... 이거 그냥... ." 곽가량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고, 때를 같이하여 송자영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그냥, 뭐?" 아이고 이거 잘못하다간 공매만 벌겠구나 싶어 알을 포기하려던 곽가량은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냉큼 알을 눈으로 가져가며 빽 소리쳤다. "달걀 대용이다. 왜?" "달걀...?! 대용이면 대용이지 이게 어디다가 눈을 부릅뜨고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