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쾌도강산 제1권. - 7편 (7/43)

2026-10-08 18:52:44 조회 7
그래서 두 사람은 몇 번인가 충돌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내려달라', '내려라.'라는 소리는 꺼내지 않았다. 덕분에 송자영은 꼬박 세 시진 째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불!' 멀리 희미하나마 한 점 불빛을 발견한 송자영은 다급히 손을 들어올렸다. "저기 봐. 불빛이야." 강산은 재빨리 송자영의 손가락을 쫏았다. 하지만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말이오?" "저기, 조-오기. 금방 반짝였는데.... 우리 어서 가보자." "확실하오?" "응, 빨리 빨리 가보자." 강산은 확실히 하고싶은 마음에 고개를 틀어 송자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말 확실하오?" 송자영은 쭉 머리를 내밀어 강산의 얼굴 한치 앞에서 힘차게 끄덕였다. 이어 강산의 귀를 잡고 그 불빛이 보였다는 곳을 향해 틀며 재촉했다. "참, 내가 무슨 거짓말쟁이인줄 알아. 확실히, 확실히,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강산은 송자영의 태도에서 무언가 석연찮음을 느꼈다. '이상한데...?' 하나 그 까닭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강산은 몇 걸음을 옮기는 사이 '혹시?'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리고 다시 몇 걸음을 옮기는 사이 '혹시'는 '역시'라는 확신(確信)으로 변하게 되었다. 차분히 송자영의 지시에 따라 걸음을 옮기던 강산은 갑자기 홱 돌아섰다. 과연 있었다! 적어도 송자영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라는 증거가 거기 있었다. 한 점 불빛이 멀리서 가물거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문제라면 그 방향이 송자영이 손짓한 방향과는 정 반대라는 점이었다. 스르르 귀를 떠나는 송자영의 손길이 느껴졌다. "햐, 저쪽에도 불빛이 있네. 호, 호, 호!" 강산은 그녀의 웃음을 무시하며 빠르게 달려나갔다. 일다경(一茶頃)이나 달렸을까? 이윽고 두 사람은 불빛의 근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한 채의 사각형 통나무 건물로 불빛은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건물은 꽤 튼튼해 보였으나 외양이 투박하여 집이라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사냥꾼들의 임시 거처라고 하기에는 또한 너무 컸다. 건물로 다가가던 강산은 문득 자신이 아직까지도 송자영을 업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강산은 힐끗 송자영을 응시하며 말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나왔다. "싫어!" "......?" 강산은 일순 멍청해졌다. 싫다니? 싫다면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설마 이런 꼴사나운 몰골로 남의 집 문을 두드리란 말인가? 강산은 냉큼 그녀를 받치던 손을 풀어버렸다. 주르륵! 송자영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팔과 다리로 강산의 목과 허리를 휘감고 버퉁겼다. "무슨 짓이야?" 얼마나 세게 목을 움켜 잡았던지 눈앞이 노래지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컥, 콜록! 손, 손 좀." "어머, 내 정신 좀 봐. 미안, 미안." 송자영은 황급히 팔다리의 힘을 풀었고, 강산은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덕분에 송자영은 세차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 송자영은 그대로 주저앉아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악을 써댔다. "야, 이 자식아. 병자(病者)를 이렇게 취급할 수 있어?" 머슥해진 강산은 말을 잇지 못하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바로 그때였다! 삐걱! 통나무집의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댓 명의 대한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무슨 소리야?" "오밤중에 이 무슨 잡놈년의 소리인고?" 통나무집 사방은 훤히 트인 공터요, 강산과 송자영이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도 않았으니 대한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기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메, 이 잡것들 좀 보소? 하나는 누워있고 하나는 서있네. 아무래도 일을 막 치르려던 모양인데?" "어째 그 좋은 보리밭, 뽕밭, 밀밭 다 놔두고 하필이면 우리 눈앞에서 지랄이다냐? 그러잖아도 요즘 하초(下焦)가 뻑뻑해 죽겠는데." "적선 좀 할 모양이지." "캬! 고것 죽이게 생겼네." 그들은 하나같이 황색 도포에 유생건을 두르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도문(道門)의 제자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걸죽한 입담하며 건들건들 걸음걸이는 간 데 없는 시장통 무뢰배였다. 뜻밖의 상황에 떼굴떼굴 눈알을 굴리던 송자영이 푹! 콧김을 내쉬며 일어섰다. 그러고 한 발 한 발 진중한 걸음으로 대한들을 향해 걸어나갔다. 강산은 감히 말리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송자영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르르! 가늘게 떨리는 어깨에서 그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여실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황송하게 마중씩이나." "그래, 생각 한번 잘했다. 괜히 반항하면 몸만 피곤하지." "저것도 사내라고. 쯧쯧!" 한껏 비아냥거리는 대한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강산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상황을 모르고 거들먹거리는 다섯 구의 시체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불쌍한 놈들!' 그러다가 강산은 무언가 기분이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멀쩡하게 걸어가는 송자영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무언가에 사기 당한 기분이 드는군.' 2 치잉... 챙...! 소리가 들렸다. 바람소리를 잘못 듣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미세한 소리였다. 그것은 분명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였다. 사뭇 귀에 익은 소리, 아마 그 동안 무수히 들은 음향이 아니었다면 잡아내지 못했으리라. '이것은...!' 구청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동시에 곽가량과 이항, 양표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네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고, 그들은 결코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형과 서형을 불러오겠소." 문정인이 달려나가고, 이항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클, 결국 사고쳤군." * * * 간혹 까치는 괴이한 행동을 한다. 먹고 남은 벌레나 새 따위를 가시나무에 꽂아두는 것이다. 무엇이 이상한가? 남은 먹이를 숨겨두는 건 동물의 습성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습성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그렇다. 다만 까치는 다시 오지 않는다. 우연히 같은 장소에 다시 왔다 할지라도 먹이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괴이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길가의 가시나무에 꽂혀 빼빼 말라 가죽만 남은 작은 새의 시체를 흔히 볼 수 있다. 강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송자영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마리 까치와 가시에 찔려 버둥대는 댓 마리의 벌레가 보일 뿐이었다. 저런 여인을 지금껏 업고 다녔다니? 강산은 쓴웃음을 지으며 얼마전 까지만 해도 그녀가 업혀있던 자신의 등을 털었다. 송자영은 고문(拷問)에 여념이 없었다. 상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요혈(要穴)에 비수를 박아놓고 한 명씩 차례차례 주리를 트는 중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소, 소저, 제발 용서를... ." "이 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보라니까." "주, 죽을 죄를... 미처 태산을 알아 뵙지 못하고... 으, 으아악!" "뭐, 죽이게 생겼어? 오냐 그래, 내 손에 죽어봐라." "흐으으... 꼴깍!" 마침내 고통을 견디다 못한 사내 하나가 혼절(昏絶)해 버렸다. "어쭈! 이 자식이 장난치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야, 빨랑 못 깨어나?" 못 믿겠다는 듯 이미 혼절한 사내를 타고 앉아 한참이나 멱을 잡고 흔들던 송자영은 사내의 목에서 삐꺽!하는 소리가 터진 연후에야 비로소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 사내에게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만일 깨어나는 사내가 있으면.... 그건 그대로 그의 불행이 되었다. 송자영은 그렇게 다섯 사내를 처리한 후 돌아섰다. 툭툭! 손을 털며 돌아오는데 아직도 아쉬운지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러다 문득 송자영은 강산이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마침내 자신의 미모를 알아본 것일까? 하나 다음 순간, 그녀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이 아닌 다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송자영은 멈칫 멈춰 서는가 싶더니 헤헤! 웃음지으며 절룩절룩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잔인함은 까치요, 눈치는 비호(飛虎)와 같았다. 송자영은 그대로 다가오기가 어색했는지 다시 발길을 돌려 통나무집을 향했다. 그러면서도 다리는 여전히 절룩거리고 있었다. 힐끔힐끔 강산의 눈치를 살피던 송자영이 통나무집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야, 오늘은 이곳에서 지내면 되겠다." 강산은 내심 그녀의 다리를 분질러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다른 곳을 찾아봐야 될 것 같소." "왜?" 강산은 송자영 옆에 쓰러져 있는 장한을 가리켰다. "복장을 보시오." 송자영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도복(道服) 아냐? 도복이 어째서?" "저들은 점창의 문하들이오. 그리고 저 통나무집은 외곽초소요." 송자영의 안색이 약간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흥! 콧방귀를 날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장한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점창? 점창이 별건가? 만약 이 시덥지 않은 놈들의 일로 따지려고 하면 콱 본산(本山)에 불을 질러버리지." 강산은 걸음을 옮겼다. "갑시다. 초소가 이곳만은 아닐 것이니 곧 몰려올 것이오." 몇 걸음 옮기던 강산은 따라오는 기척이 없자 돌아보았다. 송자영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지 않을 참이오?" 송자영은 자신의 삔 발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업어줘야 가지." 강산은 하도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걸 순진하다고 해야 할 지 가증스럽다고 해야 할 지... . 송자영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방금 전에는 울컥해서 몰랐는데 지금은 더 아파." 딴에는 아프다는 표정을 짓는 모양인데 강산에게는 벌레 홀리는 까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장정 다섯을 초주검으로 만들어놓고 하는 변명치곤 너무 얄팍하지 않은가? 강산은 못들은 척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야, 정말 아파서 못 간다니까." 강산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대로 나무를 돌아 사라져 버렸다. 송자영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야, 누군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정말 아프다고. 야, 야, 임마! 야, 이자식아!" 몇 번을 불렀으나 마찬가지,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가버린 모양이었다. "이게 죽을려고." 본색을 회복한 송자영은 강산이 돌아나간 나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데 그녀가 막 나무를 돌아설 때였다. "이크!" 그곳에 시커먼 물체가 있었다. 강산이었다. 가까스로 충돌을 면한 송자영은 강산의 넓은 등을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강산이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건 뻔한 일, 비록 말은 매몰차게 했지만 마음은 정반대인 까닭 아니겠는가? '이게 갈수록 귀여운 짓만 하네.' 송자영은 냉큼 두 팔을 뻗어 강산의 등에 업히려 했다. 그러나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마음을 바꿨다. '아니지. 애들은 오냐오냐하면 기어오르려는 습성이 있어. 이번 기회에 따끔히... .' 송자영은 툭 쏘아붙였다. "뭐해, 가자며?" 한데 곧이어 떨어진 강산의 한마디가 의외였다. "이미 늦었소." "늦어? 뭐가...?" 내심 미안, 죄송! 따위를 기대했던 송자영은 일순 강산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어 의아한 눈으로 강산의 시선을 따라잡던 송자영은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어둠 저편에서 번뜩이는 수십 쌍의 눈동자를, 자신과 강산을 중심으로 은밀히 움직이는 수십의 검은 그림자를! '이렇게 빨리...?' 수십의 흑영은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그들은 한 방향을 열어둔 채 삼면에서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열어둔 곳은 일행의 후방으로, 바로 초소가 있는 공터였다. 강산은 힐끗 송자영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그녀는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산은 송자영의 손목을 움켜쥐고 공터로 물러섰다. "기다려 봅시다." 그것이 상대의 의도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숲이 더 위험했다. 이쪽의 위치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반면 상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우선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고 그 속에서 틈을 찾아야했다. 두 사람이 공터의 중앙까지 밀려나자 마침내 흑영들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때를 같이하여 전방에서 세 사람이 걸어나왔다. 두 명의 사십 대 중년인과 부리부리한 눈매가 매우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오순 노인이었다. "간도 크구나. 감히 점창산(點蒼山)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말을 한 자는 중앙의 오순 노인으로, 그는 소매가 넓은 학창의(鶴 衣) 차림에 왼손에 묵죽(墨竹)으로 만든 죽멸선(竹 扇)을 쥐고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줄기줄기 칼같은 예기가 뻗어 나왔다. 강산은 노인의 내력을 생각해 보았다. '점창에서 이 정도의 예기를 뿜어낼 수 있는 인물은 점창오로(點蒼五老) 뿐이라고 들었는데... .' 강산의 마음을 짐작하였을까, 송자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점창오로의 막내인 태을장(太乙掌) 구영소(丘英昭)라는 늙은이야." 뜻밖에도 송자영의 견식은 강산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강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바닥에 쓰러져있는 장한들을 둘러보던 구영소가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데려가서 치료하거라." 곧바로 몇 명의 사내가 뛰어나와 쓰러진 사내들을 안고 사라졌다. 순간 송자영이 나직이 냉소를 토해냈다. "흥! 아직 숨이 붙어있는 모양이네." 그 말을 들었는지 구영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나 이어진 그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한 것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본문(本門)의 제자를 상하게 하다니, 살아서 점창산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자영이 다시 냉소를 날렸다. "흥! 이따위 허접쓰레기들로는 힘들 텐데." 구영소의 눈썹이 꿈틀 역팔자를 그렸다. "요망한 것! 뭣들하는 게냐? 쳐라!" 구영소의 일갈(一喝)에 와아! 하는 함성이 터지며 사방 숲속에서 이십여 명이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구영소와 그를 호위하고 있던 두 명의 중년인은 이 장여 뒤로 물러났다. "이놈들, 목을 내밀어라." "원수를 갚자." 숲속에서 쏟아져 나온 자들은 하나같이 황색 도포에 유생건 차림으로, 조금 전에 송자영의 손에 쓰러진 자들과 같은 복장이었다. 뭉툭한 박도(朴刀)나 도끼를 들고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날이 좁은 유엽도(柳葉刀)를 쥐고 있었다. 강산은 구영소의 행동에 내심 어이가 없었다. 이미 쓰러진 다섯으로 두 사람의 실력이 녹녹치 않다는 걸 짐작했을 텐데 직접 나서지 않고 수하들을 보내다니... 이건 점창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실로 비적(匪賊) 따위나 할 짓이 아닌가? "점창이 구파(九派)의 말석(末席)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었군." 강산은 싸늘히 뇌까리고 이어 구영소와 두 명의 중년인을 턱으로 가리키며 송자영에게 말했다. "저 셋은 내가 맡겠소." 송자영은 속도 모르고 함빡 웃음을 지었다. "좋아. 대신 남은 건 다 내 꺼야."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산은 이미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쉬잇, 쉭! 벌써 일 장 내로 접근한 자들이 좌우에서 유엽도를 날렸지만 강산의 발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강산은 어렵지 않게 포위망을 뚫고 구영소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강산의 행동에 일순 당혹스런 표정을 짓던 두 중년인이 이내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왔다. "이놈!" "차앗!" 한 명은 운횡진령(雲橫秦嶺)의 식으로 허리의 신유혈(腎兪穴)을 찍어왔고, 다른 한 명은 획지위뢰(劃地爲牢)로써 하반신을 쓸어왔다. 상하(上下)를 동시에 노리는 조직적인 공세는 하루 이틀 합공(合攻)을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좋구나." 강산은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파해법을 생각해 냈는지 조금도 망설임없이 그대로 칼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뛰어들어다 싶은 순간 급작스레 상체를 숙였다. 그러한 강산의 행동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그의 신유혈을 노렸던 칼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갔던 것이다. 하나 한 자루는 보기 좋게 피했지만 납작 엎드린 덕분에 하반신을 쓸어오던 칼에 가슴이 정면으로 노출되어 버렸다. 거리는 지척, 상식적으로 그 한 칼을 피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쉬컥! 금방이라도 피가 튈 것만 같은 순간, 칼과 강산의 가슴이 불과 한 치 사이로 육박하던 그 순간, 지면과 수평을 이루던 강산의 신형이 꿈틀 작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회전(回轉)이었다. 궤적을 그리는 칼의 움직임에 따라 강산 역시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강산의 몸은 어느 사이엔가 두 칼과 칼이 휘둘리는 빈 공간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한 치의 거리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미처 힘을 거두지 못해 솟구치는 자신의 팔을 중년인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다음 순간에 벌어질 일을 이미 알고있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과연 강산의 손에 어느 새 하나의 거무스름한 도(刀)가 쥐어져 있었다. 드디어 그가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금강도를 뽑아든 것이다. 번쩍! 맑은 빛이 흐르고 시뻘건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큭!" "크악!" 두 가닥의 단말마(斷末魔)의 비명과 함께 두 명의 중년인은 허리가 두동강이 난 채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실로 눈부시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무섭도록 빠른 도법(刀法)이었다. 느긋하게 지켜보던 구영소의 안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이놈, 한 수 재간은 있는 놈이로구나." 눈깜빡할 새 두 중년인을 처리한 강산은 그대로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구영소의 코앞으로 짓쳐들었다. "이, 이놈이... ." 구영소는 황급히 물러서며 두 팔을 쭉 뻗었다. 쿠릉! 얕은 뇌음(雷音)이 울려 퍼지며 하얀 구름 같은 경기(勁氣)가 강산을 향해 뻗어나갔다. 바로 오늘의 구영소를 있게 한 태을장(太乙掌)중의 제일초 태을분화(太乙噴火)라는 수법이었다. "태을장인가." 강산은 중얼거리며 금강도를 몸 중심에 세웠다. 당혹감에 일그러졌던 구영소의 표정이 환히 펴졌다. "미친 놈, 칼로 장풍을 막아낸단 말이냐?" 순간, 강산의 입에서 한소리 거센 일갈이 터졌다. "파(破)!" 순간, 푸르르! 어디선가 말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산의 금강도에서 한 줄기 담담한 서기(瑞氣)가 뿜어져 나왔다. 그 서기는 칼을 중심으로 반경 한 자 정도의 공간을 형성했다. 다음 순간, 치이잇! 빛에 닿은 장풍이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갈가리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이럴 수가?" 구영소는 혼비백산하여 정신이 다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그의 태을장은 천근 거석이라도 단숨에 박살내 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그 도기(刀氣)만으로 장력을 갈라 버리다니 경험이 풍부한 구영소로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 이런 무서운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적어도 수하들의 보고는 전혀 이런 것이 아니지 않았는가? '좋지 않다.' 뒤늦게나마 강산의 진면목을 확인한 구영소는 있는 힘껏 지면을 차고 올랐다. 동시에 전력을 기울여 태을장 중 가장 위력이 강대한 태을경천(太乙驚天)을 펼쳐냈다. "차앗!" 쿠르르릉! 조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치 강맹한 기운이 용음(龍音)과도 같은 굉음을 울리며 강산을 덮쳐갔다. 그 순간 강산의 신형은 어느 새 구영소의 지척에 접근하고 있었다. 강산은 자신의 전면을 무서운 기세로 덮쳐오는 장세(掌勢)를 보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금강도를 떨쳐냈다. 부우욱! 일 장여의 공간이 공처럼 부풀어오르는가 싶더니 번쩍하는 섬광이 피어오르며 그토록 가공할 기세로 닥쳐오던 장세가 반으로 쫘악 갈라졌다. 끼이이! 가슴을 후비는 거북한 음향과 함께 빨간 비가 후두둑 내렸다. 그리고... 툭! 팔 하나가 떨어졌다. 구영소의 것이었다. 도마뱀이 꼬리를 떼듯 그는 그렇게 팔 하나를 남겨두고 사라진 것이다. "신법(身法) 하나는 확실한 일류로군." 강산은 벌써 아득히 멀리로 도망치고 있는 구영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다친 곳은 없어?" 언제 다가왔는지 송자영이 물었다. 강산은 고개를 저으며 장내를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십여 명이 누워있었다. 아예 넙죽 뻗어버린 자들도 있었고, 기를 쓰고 박박 바닥을 기는 자들도 있었다. 나머지는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의 도주에 썰물 빠지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송자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아까 그거 혹시 도강(刀 ) 아니었어?" 조금 전 강산이 구영소의 태을장을 막던 광경을 본 모양이었다. "별로 내세울 만한 건 아니오." 송자영의 눈이 커졌다. "히야-! 굉장하네." 그녀는 강산의 팔을 덥썩 움켜쥐었다. "나는 말만 들었지 직접 본 것은 처음이야. 한 번만 해봐. 좀더 자세히 볼 수 있게. 응? 응?" 이런 몰상식이 있나? 밑천을 까보이라니? 여러 말하기가 귀찮아진 강산은 대충 얼버무렸다.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두 번 이상은 펼치지 못하오." "그래? 그럼 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