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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강산 제1권. - 6편 (6/43)

2026-10-08 18:52:44 조회 6
"똑바로 해!" "그러믄요. 자자, 따라들 오십시오." * * * 일행은 천천히 불정봉을 향해 나아갔다. 혹시 추적해올지도 모를, 아니 거의 추적해온다고 봐도 무방한 삼절방의 추적자들을 생각한다면 날아가도 부족하겠지만 문제는 소귀였다.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완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나 '천천히'라고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비길 바는 아니었다. 가는 도중 소귀는 틈틈히 앞으로의 여정과 주의할 점, 그밖에 중요하다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일차 목적지는 감람패(橄欖 )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육칠백 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옥룡대산(玉龍大山)의 바로 전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간은 대충 십여 일 정도가 소요되리라 생각됩니다." 편복노조 이항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일차 목적지라니? 더 들어간단 말인가?" "구어르신의 설명대로라면 그 부근이 확실한데, 정확한 지점은 가봐야 알겠습니다. 저도 그쪽은 몇 번 가보질 않아서 말입니다." 이항이 힐끗 구청연을 일견한 후 계속 물었다. "얼마나 더 들어가겠나?" "이틀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넉넉잡아 보름이면 충분하겠군." "별다른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야... ." 소귀의 뒤를 바짝 따라가던 송자영이 낮게 코웃음쳤다. "흥, 제깟 놈들이 추적해와 봤자지." 그 말에 소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딱히 추적자들이 아니더라도 위험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뱀이나 독충, 폭염(暴炎), 원주민 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 한 모금, 이름 모를 풀잎 하나까지 자칫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추적자들은 그 위험의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이... 풀이 위험해?" 소귀는 보다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겉은 비길 데 없이 맑지만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 웅덩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물은 마셔선 안됩니다. 풀이나 과실(果實) 또한 마찬가지로 독을 품고 있는 게 많습니다." 송자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물이야 그렇다치고, 과실은 또 뭐야? 일반적으로 과실이란 게 나무가 자신의 씨를 퍼트리기 위한 수단이잖아? 그런데 독을 품고있으면 그걸 누가 따먹어? 나무한테 손해잖아?" "내성(耐性)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자면 송소저와 저와 성성이가 같은 열매를 따먹었을 때, 송소저는 앓아 눕고 저는 배탈이 나지만 성성이는 멀쩡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흠!" 소귀의 명확한 설명에 감탄한 듯 그를 보는 송자영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아니, 달라진 건 단지 송자영의 눈빛만이 아니었다. 소귀를 바라보는 중인들의 시선이 아주 우호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흠! 역시." 이항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소귀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양표가 씩! 누런 이빨을 드러내자 소귀 또한 프흐흐! 흐벅진 미소를 보여줬다. 그리고... "야, 보기와는 다른데!" 송자영이 툭! 어깨를 건드리자 마침내 소귀는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토해냈다. "푸하하, 제가 이래뵈도 밀림에 관해선 한 지식 하는 편입니다. 자랑 같지만 남들이 그러더군요. 왜 벼슬길에 나서지 않느냐고. 뭐, 나 같은 사람이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건 국가적인 낭비라나 뭐라나." 소귀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주접을 계속 떨었다. "그야 벼슬길에 나서기만 한다면 정승 정도는 따논 당상이라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생활이 좋습니다. 명예, 돈, 부귀영화, 그딴 게 다 무엇입니까? 중요한 건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기어코 한 대 맞고 말았다. 물론 송자영에게! "에구에구!" 눈탱이를 감싸쥐고 울먹이는 소귀, 그런 소귀에게 곽가량이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들었다. 그러다가 귀에 빠짝 입을 대고 소근거렸다. "달걀 하나 써보지 않겠나? 별로 비싸지 않은데." "......?" 소귀는 멍청한 얼굴로 곽가량을 훑어보았다. "왜 그래? 달걀 필요 없어?" "아닙니다. 필요해요." 소귀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 사내에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는 것이다. "얼마입니까?" "은자 한 냥!" 은 한 냥이면 달걀이 백 개다. '도둑놈!' 하지만 사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나 주슈." 소귀는 달걀로 눈자위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세상은 넓고 넓어 별의별 잡놈이 다 있다더니, 밀림에 달걀을 가져와? 참, 별 해괴한... .' 제 4 장 점창산(點蒼山). 1 바삐 움직이던 일행은 불정봉 정상 즈음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상당히 지대가 높은 곳으로, 부근의 지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일행은 각자 편한 자리를 잡아 후방을 살폈다. 추적자들과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추적자들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다. 간혹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뭍짐승들의 기척만이 눈에 띨 뿐, 다수의 인기척은 전혀 없는 것이다. 혹시 추적대는 없는 것일까? 하는 당연한 의문이 일행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낙광영의 불 같은 성격이나 삼절방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늦는 것일까? 아직 일행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피치 못할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일까? 희박하지만 정말 추적대가 조직되지 않은 것일까? 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어차피 답이 없는 의문들일 따름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밝혀진 셈이었으니, 그것은 추적대의 유무(有無)에 관계없이 적어도 추적대와 그들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일행은 의문을 접어둔 채 계속 나아갔고 오래지 않아 소귀가 말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장소는 두 갈래 갈림길로, 왼쪽은 밀림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오른쪽은 원주민 부락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소귀는 초자도 문정인의 곁에서 달걀을 굴리고 있었다. 그가 굳이 문정인의 옆자리를 고집한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 자리가 송자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소귀는 은근히 송자영의 안색을 살폈다. 행여 좀 전의 일로 인해 또 다른 시비를 걸어오지 않나 내심 불안했던 때문이다. 다행히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송자영을 살피던 중, 소귀는 한 가지 기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웬일인지 그녀를 중심으로 반경 일 장 내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상하다...?' 물론 각자 편한 자리를 찾다보면 한 사람쯤 무리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 그 일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기이한 점은 본래부터 그녀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쉬어가기로 결정하고 자리를 잡았을 때, 그녀에게서 채 석 자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서문상이 있었고, 문정인이 있었으며, 또한 곽가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 사람은 거의 자신만큼이나 송자영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일어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못 봤는데...? 곰곰 생각해보지만 내막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한 소귀였다. 잠시 후, 소귀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가져와야 할 물건이 좀 되는데 두 분만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내가 가지." 곧바로 곽가량이 일어섰고, 이어 양표가 일어섰다. 그렇게 세 사람이 막 출발하려할 때 이항이 소귀를 제지했다. "자네는 좀 더 쉬는 게 좋겠네. 내게 살 물건을 말해주게." "아닙니다. 몸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물통이나 밀림도라면 이곳에선 흔한 물건일 테니 우리만 간다고 해도 별다른 지장은 없을 것이야. 무엇무엇인가?" 이항의 거듭된 제안에 소귀는 물러섰다. 불감청(不感請)일지언정 고소원(苦所願)이라, 기실 그 역시 꺼림칙한 마음이 없진 않았던 것이다. 이런 몰골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정말 재미 적은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마을 중앙의 잡화점을 찾아가십시오. 마을을 통틀어 상점이라고는 그것 하나뿐이니 찾는데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패륵(浿 )이라는 사람을 찾아 제 이름과 인원을 대십시오. 그러면 필요한 물건들을 알아서 챙겨줄 것입니다." 이것저것 소귀의 지시를 받은 세 사람은 곧 계곡을 따라 걸어가고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쯤 강산이 일어났다. "강형은 또?" 구청연의 물음에 강산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다. "마을 구경을 하고 오겠소." 순간, 강산을 따라 냉큼 일어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나도 가야지." 물론 그 사람은 바로 송자영이었다. 강산이 굳이 마을 구경을 가겠다고 한 것은 멀리서나마 편복노조 이항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며칠 전 정심장에서 목격한 편복노조 이항의 행동에 의문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데 그게 송자영이 따라붙고 보니 말짱 헛일이 되고 말았다. 다시 주저앉으려던 강산은 이내 생각을 바꿔 계곡을 내려갔다. 행동에 의문이 있는 건 이항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강산과 송자영은 이항 등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걸었다. 둘 사이의 침묵이 조금 어색하다 싶을 때 송자영이 물었다. "어이, 강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강산은 아직 누구를 두려워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녀를 두려워 할 리가 없었다. 하나 그렇다고 그녀와 시비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답을 하기는 해야될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 뿐, 적당한 대꾸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질문이 떨어졌고, 당연히 그 어조는 처음과 같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냐니까?" 강산은 걷는 와중에 슬쩍 신형을 틀어 곁눈질로 송자영을 살폈다. 강산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송자영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비도 안 날릴 테니까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어." 강산은 못들은 척 걸음을 빨리 했다. "차-암! 비도 안 날린다니까. 왜, 내 말이 안 믿어져?" 그녀로서는 모처럼 강산과의 사이에 무언가 돌파구를 열어보자고 마음먹고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이란 것이 '겁먹지 마라.', '내 말을 믿어라.'라는 것뿐이니 이래서야 코웃음밖에 나올 게 없다. 강산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송자영의 걸음 역시 덩달아 빨라졌고, 또한 그럴수록 강산의 걸음 역시 더더욱 빨라졌다. "정말이야. 안 날릴게." "........" "정말이라니까." 그렇게 묘한 실랑이가 이어지던 어느 순간, 급기야 송자영의 아미가 상큼 치켜 올랐다. "너, 정말... ." 순간 이제나저제나 때를 기다리던 강산은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에 두 발에 힘을 모았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날아오리라던 비도는 오지 않고 대신 '아야!'한소리와 함께 송자영이 푹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꼴을 보아하니 발목을 삔 것 같은데.... 무언가 미심쩍은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강산은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송자영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왼발을 잡고 주저앉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쳤소?" 발딱 고개를 쳐든 송자영이 양 볼에 바람을 가득 담고 노려보는데 그 모습이 꼭 늦가을 독오른 독사와도 같았다. "이, 씨-!" 볼따구니 사이로 새는 바람 소리가 날카로웠다. 강산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바지를 걷자 챙이 넓은 각반(脚絆)이 나왔다. 강산은 각반마저 걷어올렸다. 그런데 손끝에 닿는 각반의 느낌이 조금 생소했다. 겉은 비단이지만 속은 단단했던 것이다. 뭐랄까, 쇠붙이를 만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쇠처럼 무거운 물체는 아닌 듯 싶었다. 강산은 '보석 종류이겠거니.' 생각하며 발목을 잡았다. 한데 그녀의 발목을 잡는 순간, 저르르! 정체를 알 수 없는 느낌이 손끝에 전해져왔다. 그리고 가슴으로 흘렀다. 따스하면서도 간지러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녹피화나 각반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강산은 애써 송자영의 시선을 외면하며 물었다. "여기요?" "아니." 강산은 조금 윗부분을 잡았다. "그럼 여기요?" "조금 왼쪽." "여기요?" "아니, 조금 오른쪽." "여기 말이오?" "조금 아래."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무언가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짜증은 나지 않았다. 대신 땀이 흘렀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항이 뜻 모를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봄이로구나." "킬킬!" 곽가량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이항의 뒤를 따랐다. * * * 마을에 갔던 세 사람이 밀림도와 물통, 백반 따위를 잔뜩 들고 돌아온 것은 한 시진 정도가 흐른 후였다. 물통은 짐승의 위에 가죽을 덧댄 것으로 그 모습이 마치 학의 주둥이와도 같아 매우 우스꽝스러웠고, 밀림도는 폭이 넓고 반듯해 안령도(雁翎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길이는 조금 짧았다. 준비물을 나누던 구청연은 문득 상문신 양표를 향해 물었다. "양형, 그 허리의 얼룩은...?" 중인들의 시선은 구청연을 따라 움직였고, 이내 양표의 허리께에서 붉은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핏자국! 작지만 뚜렷한 것이었다. 양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제것이 아닙니다. 마을에서 웬 놈들이 시비를 걸기에." "이런 곳에도 무뢰배들이 있나." 구청연은 툭 한마디 던지며 준비물로 주의를 돌렸다. 순간, 갑자기 소귀가 물었다. "혹시 놈들이 도사(道士) 아니었습니까?" 양표는 그들의 모습을 뇌리에 그렸다. 우락부락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에 가슴을 턱 들어낸 채 들고있는 무기는 큼지막한 삼지창(三枝槍)에 화적(火賊)들이나 쓸만한 대감도(大 刀)라... . 양표는 살레살레 고개를 저었다. "글쎄, 도포(道袍)에 유생건을 둘렀기는 했는데... 그런 옷을 입었다고 도사라면 놈들도 도사가 맞겠지." 한데 뜻밖에도 소귀의 안색이 돌변한다. "야단났습니다." 그의 반응이 너무 과민한지라 일행은 일순 그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서문상이 픽 코웃음을 치며 농을 쳤다. "야단이라니, 설마 놈들이 무당(武當)의 제자라도 된단 말인가?" "무당의 제자라면 무서울 게 없지요. 놈들은 점창(點蒼)의 문도(門徒)들입니다. 삼절방이 운남땅에서 그처럼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점창의 패악(悖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창에 고개를 돌린 많은 무림인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소귀의 그 한마디에 중인들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점창이라... 과연 그들을 깜박했군." 소귀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삼절방에 대해서만 한 수 양보할 뿐, 그외엔 꺼려 하는게 전혀 없는 놈들인데... . 우선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습니다. 이거 참, 진작에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구청연은 재빨리 준비물을 갈랐다. "물통과 백반은 각각 하나씩, 밀림도는 네 자루뿐이니 돌아가면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준비물을 나누다보니 물통과 백반이 두 개씩 남았다. 구청연은 눈을 깜박이며 양표에게 물었다. "양형, 물통을 몇 개나 샀습니까?" 양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사람 수대로 가져왔는데... ." "그러면...?" 일행은 의아한 눈으로 남은 두 개의 물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없어진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 * * '송자영이 어떻게 내 등에 업혀 있게 되었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강산이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언제 어떻게 이 꼴이 됐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발목을 만진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그 뒤는...? 참, 여우에 홀린 것도 아니고.' 강산은 의문을 간직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내리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등과 손바닥에 와닿는 감촉이 그다지 싫지 않은 바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문득 송자영이 말했다. "왜 칼집도 없는 칼을 들고 다녀? 내가 좋은 걸로 하나 사줄까?" 딴엔 금강(金剛)을 그냥 들고 다녔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강산은 뭉클한, 뭔가 따뜻한 기운이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강산은 적절한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마음만으로도 고맙소.' 정도의 너무 경박하지도 않고 또한 너무 무례하지도 않은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나간 한마디는 "됐소." 라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송자영이 화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강산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야, 우리 저리 가보자." 강산은 충견처럼 송자영의 지시에 따랐다. "이번에 저리 가보자." "조금만 더 들어가봐." 그렇게 송자영의 명을 받들어 길도 없는 깜깜 숲을 헤치고 나간 지가 얼마나 됐던가? 강산은 문득 서녘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 해가 걸려 있었다. 높게도 낮게도 아닌 중간 정도에. 일행이 휴식을 취할 때 보았던 해는 중천(中天)에 걸려 있었다. 벌써 한 시진 이상이 흘렀음이 틀림없었다. 강산이 멈춰서자 송자영이 물었다. "왜 그래? 다리 아파?" 아닌게 아니라 다리도 저렸다. "나는 원래 날씬해서 별로 안 무거운데... . 그럼 내가 업어줄까?" 강산은 애써 귓가의 그 간지러운 유혹을 외면했다. "이제 다리는 괜찮소?" "응! 응...? 아니, 아니야. 아직 많이 아파. 호호호!" 뭐가 응! 이고 뭐가 응? 이라는 것인지, 강산은 돌아섰다. "이제 그만 돌아가 봐야겠소." "벌써...?" "아마 다들 돌아왔을 것이오." "벌써?" "우리를 찾고있을지도." "벌...써?" 강산은 듣지 못한 듯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고양이 목울음같은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좀 천천히 가-아. 다리 아파." "너무 늦었소." 생각해보면 자신이 언제부터 이처럼 말이 많아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강산은 마음속으로 무의미한 대꾸는 일절 하지 않겠다고 외치며 걸어나갔다. 하나 채 십여 보나 옮겼을까? "귀 그만 잡아 다니시오." "아파? 아프면 안 잡아 다닐께." "아프진 않소."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남의 귀를 떡 반죽하듯 하던 송자영은 기어코 강산의 입을 통해 '아파.'라는 말을 들은 다음에야 귀를 놓아 주었다. 하나 그녀가 놓은 것은 단지 귀 뿐이었다. "머리카락 꼬지 마시오." "아파? 아프면 안 꼴께." "아파!" 강산은 그 뒤로도 목조르기, 수염 뽑기, 코후비기 등등 별별 수난을 다 이겨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길을 잃은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였다. * * * 산의 해는 짧은 법. 길게 꼬리를 빼던 태양이 검붉게 타올라 이내 그마저도 사라져버리기 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구청연은 천천히 일행을 쓸어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건 무리일 듯 싶습니다. 수색대를 조직해서 찾아봐야 겠습니다." 소귀가 그의 말을 받았다. "곤란합니다. 이곳은 밀림이고 또한 지금은 밤입니다. 찾을 가능성 보다는 아예 잃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구청연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턱대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도 없는 일 아니겠나. 언제 추적자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점창의 문제도 있고." "점창의 본거지는 학운봉(壑雲峯) 너머에 있습니다. 이곳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아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는 추적대인데... ." 이항이 대화에 끼여들었다. "점창파 놈들이 가장 빨리 연락을 했다면, 예를 들어 전서구(傳書鳩)를 이용했다면 의외로 이곳에 빨리 도착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나?" 소귀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해도 최소한 두 시진의 여유는 있습니다."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문정인이 문득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왔던 길을 향해 걸어갔다. "추적대라면 내가 감시하지." 문정인의 의도를 깨달은 서문상이 뒤를 따랐다. "문형, 같이 갑시다." 구청연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두 시진만 기다려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오지 않는다면...." 이항이 반문했다. "오지 않는다면?" 순간 곽가량이 구청연의 음성을 흉내내어 말했다. "한 시진만 더 기다려보겠습니다. 그래도 오지 않는다면? 별 수 없죠. 또 한 시진... ." "풋!" "클클클!" 무거웠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한편 그렇게 일행이 가슴 졸이고 있을 무렵, 강산과 송자영은 열심히 길을 찾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산 혼자 찾고 있었다. "못 찼겠어?" 일 각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던지는 송자영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힘은 담겨있지 않았다. 풀이 죽어 힘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런 경우 으레 따라붙게 마련인 절박함이나 긴장 같은 게 담겨있지 않은 것이다. '못 찾겠어? 그럼 말지.'정도라고나 할까.